소설리스트

귀환무사-64화 (64/425)

# 64

<귀환무사 64화>

“저러다가 혼자 다 쓸어버리는 것 아니냐?”

“어째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두근! 두근!

둘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세 번째 대결도 진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와아아!

“화산파가 이 회전에 진출했다!”

“대단하다! 화산!”

군웅들이 야유가 아닌 열렬한 환호성을 보내 주었다.

“으싸!”

진유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장문인 태허를 비롯한 장로들은 격동으로 몸을 떨었다.

당초 그들을 출전시키겠다는 혁련천후의 말을 어쩔 수 없이 따랐던 그들은 크게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터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천덕꾸러기였던 진청이 혼자서 남해검문을 무너뜨리는 게 아닌가.

“허허허!”

태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장로들도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는 당연한 결과라 여기며 비무대 위의 진청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제법인데? 후후후.”

“좋은 스승을 만났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냐.”

흑야의 중얼거림에 왕전의 얼굴이 성난 곰처럼 변했다.

“내가 더 많이 가르쳤거든?”

“짧아도 제대로 가르치는 게 중요한 법이다.”

“유후! 각주님 최곱니다!”

“각주님! 멋쟁이!”

청명과 청진이 두 팔을 벌리며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화산은 한마디로 축제 분위기였다.

혁련천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한쪽에서 찌릿한 기운이 흘렀다.

진정 자신이 원했던 사문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서로 함께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며 함께 발전하는 모습들.

‘진즉에 이랬어야 했다. 화산이여…….’

그때 비무대 위의 진청과 시선이 마주쳤다.

진청이 씨익 웃으며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해 오자 혁련천후도 마주 웃어 주었다.

* * *

계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두터운 털옷을 걸친 사내는 개울가에 앉아 손과 얼굴을 씻었다.

시원한 물이 정신을 맑게 하자 사내는 뒤쪽 바위에 걸터앉아 술병을 꺼내 들었다.

짜릿한 화주의 뜨거움이 식도를 타고 배 속을 자극하자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좋군.”

단숨에 한 병을 다 마셔 버린 사내는 술병을 개울물에 띄워 보내고는 천천히 산의 능선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산을 넘으면 주인과 벗들이 있다.

그곳을 가기 위해 오 년간 몸담았던 조직을 배신했다.

자신을 쫓아오던 동료들도 죽였다.

“나, 북궁천소에게 후회란 없다.”

무심히 중얼거린 사내는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놓았다.

철컥! 철컥!

걸을 때마다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러고 보니 사내의 전신에는 수많은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병기고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리라.

특히, 우측 어깨에 메고 있는 붉은색의 도집에선 은은한 기운마저 서려 있었다.

그때였다.

“끄응!”

품속이 꿈틀거리며 작은 짐승이 머리를 쑥 내밀었다.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만 서식한다는 흰색여우였다. 북궁천소는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조금만 참아라. 곧 있으면 네게도 주인이 되실 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캉! 캉!

마치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여우는 앙증맞게 짖어 댔다.

북궁천소의 손이 허공을 가볍게 휘저었다.

그러자 저 멀리 풀잎 위에 앉아 있던 사마귀 두 마리가 날아와 손아귀에 떨어졌다.

캉! 캉!

북궁천소는 먹이를 달라며 짖어 대는 여우에게 사마귀를 먹이고는 천천히 걸음을 놓았다.

휘이잉!

오늘따라 바람이 매우 거세게 불어 대고 있었다.

북궁천소가 자리를 뜬 지 얼마 안 된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그가 머물렀던 곳에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흰색 호피 조끼를 걸치고 대부(大斧)를 손에 쥔 그들에게서 패도적인 기운이 물씬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백호의 가죽으로 만든 조끼를 걸친 그들의 가슴에는 하나같이 북(北) 자가 수놓아져 있었다.

천하에 이러한 복장을 갖춘 집단은 오직 한 곳뿐이다.

북해빙궁(北海氷宮).

세외의 하늘이라 불리며 북해를 수백 년간 통치해 온 북해빙궁의 무사들이었다.

선두에서 이동하던 거한이 손을 들자 모두가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짙은 눈썹에 우뚝 솟은 코와 두꺼운 입술을 지닌 거한의 어깨에는 보기에도 흉흉한 거대한 쌍부(雙斧)가 걸려 있었다.

살부광마(殺斧狂魔)라는 섬뜩한 별호에 전위라는 이름을 지닌 그는 북해빙궁주의 제자이자 미래의 후계자다.

주변을 찬찬히 살피던 전위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주변을 살펴봐라!”

스스슥!

전위의 명령이 떨어지자 작은 체구에 세모꼴의 얼굴을 한 인물이 재빨리 주변을 예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사냥개처럼 코까지 킁킁거리던 인물이 어느 곳에 이르러 전위를 돌아보며 외쳤다.

“크크! 주변에 술 냄새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아 이곳을 지나간 지 한 식경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한 식경이라면 거의 다 따라잡았군.”

“놈은 지금 우리가 쫓고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아니라면 이렇듯 천천히 이동을 할 리가 없습니다.”

한 식경이면 밥을 한 끼 먹을 시간이다.

“어느 쪽으로 갔느냐!”

“남쪽입니다.”

전위의 시선이 남쪽을 향해 돌아갔다.

산 위에 걸린 태양이 세상을 붉게 비추고 있었다. 노을이 반사된 전위의 눈동자도 서서히 핏빛을 띠어 갔다.

“천소! 드디어 네놈을 잡게 되었구나.”

“서두르면 일각이 채 지나기 전에 놈의 목을 따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소종사.”

“이곳은 정도맹의 구역, 최대한 빨리 놈을 처치하고 궁으로 돌아간다!”

“예!”

스스슥!

덩치와는 달리 숲을 헤쳐 나가는 그들의 경공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고 빨랐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눈보라가 일었다.

파스스스…….

* * *

또 다른 무리가 있었다.

여인의 그것보다 더 희고 고운 피부를 지닌 청년은 주변을 날카롭게 살펴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사방에서 백색 무복을 걸친 자들이 뭔가를 찾고 있는 듯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한 인물이 전방을 가리키며 나지막이 외쳤다.

“저곳입니다, 대주.”

대주라 불린 사내의 시선이 전방을 향해 돌아갔다.

산의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 커다란 장원이 있었다. 사내의 입가에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후후후. 고작 저따위 곳에 머물려고 우리를 배신했느냐. 조윤…….”

장신의 백의인이 다가오며 굳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이곳은 정도맹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지역입니다. 자칫 큰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대주.”

“상관없다. 우린 그저 성주의 명령에 따라 놈의 목만 가져가면 그뿐이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백의인이 다시 물었다.

사내는 여전히 싸늘히 웃었다.

“놈을 죽이기 전에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하오시면…….”

“하오면이고 뭐고 당장 놈을 잡으러 가자꾸나.”

사내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의 등을 잠시 쳐다보던 백의인이 눈짓을 보내자 모두가 사내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장원의 앞을 가로지르는 강가가 지척에 이르렀을 때, 사내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는 사내의 눈초리가 슬쩍 가늘어졌다.

덩달아 모두가 뒤를 돌아보았다.

제법 먼 곳에서 숲이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에 놀라 사방으로 날아가는 새들. 은은한 진동이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힘자랑하고 싶어 안달난 놈들인가 보군.”

“중원무림의 무사들일 수도 있습니다.”

차마 몸을 숨기라는 말을 못한 백의인을 향해 사내는 특유의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아서 할 테니 물러서.”

“알겠습니다.”

잠시 후, 숲이 흔들리며 조끼를 걸치고 대부를 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위를 비롯한 북해빙궁의 무사들이었다.

사내와 일행들을 발견한 전위가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춰 세웠다.

전위와 사내의 눈길이 부딪혔다.

보이지 않는 섬광이 각자의 동공 깊숙한 곳에서 피어났다. 전위의 얼굴 근육이 살짝 뒤틀렸다.

“지금 우리를 막아선 것인가?”

“보다시피, 길이 하나라서.”

사내는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리는 시늉을 했다.

전위가 주변을 느릿하게 둘러봤다. 자신들이 선 곳은 울창한 수림의 중심, 당연히 사람이 다닐 만한 길은 없었다.

곧 사내의 대답은 길이 이곳뿐이니 일부러 막아선 것은 아니라는 말과 같았다.

시비를 거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싸울 이유는 없었다.

“운이 좋은 친구군.”

전위는 사내가 자신을 알아보고 꼬리를 내린 것으로 판단했다. 명백한 착각이었다.

“이동한다.”

전위의 명령이 떨어지자 북해빙궁의 무사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는 전위가 자신의 곁을 지나가도 그저 묵묵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렀을 때였다.

“운이 좋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

“설마 내가 네놈 따위가 두려워 꼬리를 만 것이라 여겼나?”

“아닌가?”

“후후후. 북해빙궁에 꽤나 재밌는 놈이 있었군.”

사내가 손을 움직였다.

움직인다고 느끼는 순간 사내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고 전위 역시 거대한 도끼를 뽑아 들었다.

꽈앙!

검과 대부가 충돌하며 굉음이 일었다.

파생된 기운에 의해 주변의 수풀들이 잘려 날아가면서 허공을 가득 덮었다.

우스스스!

둘은 손목을 뻐근하게 만드는 충격에 잠시 서로를 노려보며 가만히 있었다.

양측의 무사들이 무기를 뽑아 들며 각각 둘의 좌우로 늘어서면서 주변은 일촉즉발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전위를 노려보던 사내가 돌연 검을 들어 보이는 시늉을 하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북해빙궁이 결코 와선 안 될 곳에 온 걸 보면 꽤나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 역시 같은 입장이니 싸울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전위는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이 인상을 그리는 것보다 더 사납다.

“원한다면.”

“후후후. 그럼 먼저 지나가라. 선공을 한 것에 대한 답례라고 해 두지.”

사내가 검을 거두었다.

일촉즉발의 기운이 감돌았던 살벌한 분위기는 전위가 어깨 위로 도끼를 올리는 순간, 소멸되었다.

전위는 사내를 보며 웃었다.

“오늘은 이대로 끝난다만 다음엔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거다.”

“기대하고 있겠다.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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