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귀환무사 63화>
당문곡은 사천당가 내에서 암기를 잘 쓰기로 제법 인정받는 청년 고수다.
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모용세가의 청년을 보며 노골적으로 비웃음을 날렸다.
“허접한 놈이 눈까지 멀었으니 오래 살긴 글렀군.”
모용세가의 청년 무사가 말을 받았다.
“본 세가를 모욕했으니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한다.”
“그거 좋지. 대신 죽어도 할 말 없기다?”
“오냐!”
히죽거리는 당문곡을 보며 청년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가 자신보다 고수임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피하고 싶지 않았다. 뒤늦게 소란을 듣고 달려온 모용세가의 무사들이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상대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용세가의 무사들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한 명이 황급히 구파와 오대세가의 인물들이 식사를 하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것을 본 당문곡이 크게 웃었다.
“가 봤자 뾰족한 수가 있을까? 하하하!”
“닥쳐라! 싸움은 너와 내가 한다. 그러니 어서 칼을 뽑아라.”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기꺼이 죽여 주지.”
챙!
당문곡이 검을 뽑았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뛰어왔다. 사천당가의 또 다른 무사였다.
“사고치지 말라는 가주님의 엄명을 잊었느냐! 문곡!”
“저놈이 정식으로 결투를 신청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되레 사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임을 모르느냐! 하니 그만 물러서라!”
딴에는 제법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은 당문곡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결의에 찬 표정으로 그를 직시하던 모용세가의 무사도 허리에서 검을 뽑았다.
챙!
“멈춰.”
싸늘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모두가 그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는!”
당문곡이 인상을 그릴 때, 모용세가의 뒤쪽에 나타난 청년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쐐액!
“엇!”
엄청난 검의 속도에 당문곡은 당혹성을 지르며 황급히 검을 휘둘러 막았다.
깡!
한 번은 막았다.
그러나 두 번째 공격이 당문곡의 가슴을 그대로 강타했다.
퍽!
“크윽!”
가슴을 정통으로 맞아 버린 당문곡이 비명과 함께 피를 뿌리며 날아가 꼬꾸라졌다. 다른 당가의 청년들이 검을 뽑았다.
당문곡을 쓰러뜨린 청년의 주먹이 한 당가 무사의 턱을 그대로 강타했다.
퍽!
“으악!”
퍽! 퍽!
연이어 두 번의 타격음이 울렸다. 기세 좋게 나섰던 당가의 청년들이 모조리 한곳에 꼬꾸라졌다.
난데없는 상황에 모용세가의 무사는 크게 놀란 표정으로 청년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청년은 대답 없이 당가의 무사들을 향해 싸늘히 경고성을 날렸다.
“한 번만 더 소란을 피우면 그땐 목을 잘라 버릴 것이다!”
“으…….”
당문곡을 비롯한 당가의 무사들은 충격 때문에 일어서지 못했다.
청년이 비로소 뒤돌아섰다.
모용세가의 무사는 처음 보는 청년을 향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항의했다.
“귀하께서 관여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사의 당당한 태도에 청년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저런 놈들은 상대할 필요가 없다.”
“…….”
청년이 바람처럼 몸을 날려 전각 너머로 사라지자 모용세가의 무사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오후가 되자 대회가 속개되었다.
이어진 단체전은 예상대로 구파와 오대세가들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와 달리 개인전은 오전과 마찬가지로 이변이 속출했다.
당초 무난히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공동파와 곤륜의 출전자들이 이름조차 없는 무명의 청년들에게 쓴잔을 마셨다.
다만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광주진가의 진가경만이 용문(龍門)의 출전자를 꺾고 승리했을 뿐이다.
그리고 드디어 화산파가 출전을 할 차례가 돌아왔다.
“수련을 하던 대로만 하면 무난히 이길 수 있으니까 어금니 꽉 깨물고 올라가라.”
왕전은 여전히 긴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셋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화산의 출전자들은 어서 대위로 오르시오!”
호명소리가 울렸다.
심호흡을 한 진호는 진청과 진명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멋지게 경공을 펼쳐 대위로 날아올랐다.
뒤를 이어 진명이 진호에 못지않은 신법을 선보이며 몸을 날렸다. 마지막으로 진청이 비무대 위로 몸을 날렸다.
“엇!”
극도로 긴장을 했던 진청은 비무대의 끝부분에 발이 걸리는 바람에 크게 휘청거리다가 결국 넘어졌다.
“으하하하!”
“역시 화산은 실망시키는 법이 없구나! 으하하하!”
곳곳에서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런 멍청한 놈.”
“쯧쯧쯧. 잘한다.”
왕전을 비롯한 모두의 얼굴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
장문인 태허를 비롯한 진유와 장로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그러고 있을 때, 혁련천후만은 달랐다. 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진청을 보며 담담히 웃었다.
“덕분에 긴장을 해소할 수 있겠어.”
그 뒤에 섰던 진유가 고개를 갸웃하며 비무대 위의 진청을 응시했다.
순간 그는 혁련천후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퉤!”
거칠게 침을 뱉은 진청의 얼굴이 무척이나 성이나 있었다.
진청의 얼굴에 불꽃이 피었다.
창피도 이런 창피가 없었다.
군웅들과 남해검문의 출전자들이 일제히 자신을 보며 비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슬쩍 사문을 돌아보니 사부들이 머리에 손을 짚고 있는 것이 보였다.
‘빌어먹을!’
진청은 신경질적으로 침을 뱉고는 남해검문의 출전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실실거리지 마라. 확 그냥 아가리를 조져 놓기 전에.”
“화산 주의!”
거친 욕설에 심판관으로부터 경고까지 받는 진청. 다시 한 번 곳곳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으하하!”
“오늘의 첫 경고를 결국 화산이 받는구나! 으하하!”
진청의 얼굴이 더욱더 붉어졌다.
그는 야유를 퍼붓는 군웅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다가 또다시 주의를 받았다.
“다시 한 번 무례한 행동을 하면 실격패를 당할 것이다!”
심판관의 호통이 쩌렁쩌렁 울리자 태허와 진유는 탄식을 쏟아 냈다.
그러나 혁련천후만은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둥! 둥! 둥!
“개전!”
대결이 시작되었다.
남해검문의 출전자는 노골적인 살초를 전개해 왔다. 심판관이 주의를 주어야 옳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저 방관만 했다.
“저것들이!”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
왕전을 비롯한 모두가 열렬히 환호성을 보내고 있는 남해검문 진영을 노려보았다.
진유를 비롯한 화산의 인물들은 그런 심판관의 부당한 처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
순간 진유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동시에 소란스러웠던 군웅들이 조용하게 가라앉았다. 혁련천후를 비롯한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고 장문인 태허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저럴 수가!”
태허의 입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싸늘하게 웃고 있는 진청, 그런 그의 발아래에서 남해검문의 출전자가 꿈틀거리며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승부가 나 버렸다.
몇 수까지는 남해검문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모두가 진청이 크게 다칠까 걱정하던 터였다.
그런데 진청이 단 한 번의 반격으로 상대를 꺾어 버렸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란 건 군웅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일방적으로 몰리더니 그냥 화산이 이겨 버렸잖아?”
“남해검문이 방심을 한 모양이군.”
“운이 좋았겠지.”
군웅들이 술렁거렸다. 대부분은 진청의 승리가 상대의 방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했다.
“화산 승! 남해검문은 두 번째 출전자를 내시오.”
심판관의 호명 소리에 남해검문에서 다른 출전자가 나섰다.
진청을 죽일 듯 노려보는 그는 남해검문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청년 고수였다.
그 역시 동료가 방심해서 진 것이라 여기고는 진청의 검을 든 오른팔을 노골적으로 노려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마치 ‘그 팔을 잘라 주마’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청은 코웃음을 쳤다.
“내일부터 남해에서 물고기나 잡으며 살아가게 될 거다.”
“뭣이!”
“시끄럽고. 냉큼 덤비기나 하시지.”
“언제까지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보마!”
휘익!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남해검문의 출전자는 진청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남해검문의 고수라면 누구나 검을 사용했지만 그는 특이하게도 보통의 검보다 더 길고 넓은 도(刀)의 형태를 한 무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파괴력이 소위 장난이 아니었다.
깡! 깡!
이번에도 진청은 연신 뒤로 밀렸다.
들뜬 기색을 보였던 태호와 장로들의 낯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상대를 압도할 실력이 아니라면 일단 수세에 몰리면 좀처럼 공세로 전환하기가 힘든 법이다. 더구나 상대는 제법 알려진 신진 고수였으니 모두는 진청이 패배할 것으로 여겼다.
깡깡!
거침없이 몰아붙이던 남해검문의 출전자는 의외로 진청이 잘 버텨 내자 점점 조급해졌다.
그는 뒤늦게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청의 표정이 지나치게 여유로웠던 것이다.
‘설마 일부러 밀리는 척을…….’
그때 진청이 싸늘히 비웃었다.
“고작 그게 다냐?”
“……!”
“역시 너희들은 주둥이만 살았단 말이지. 그런데 이거 어쩌나. 주둥이로 과연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까?”
“닥쳐! 개자식아!”
“어디 개한테 한번 물려 봐라. 망할 새끼야!”
휘익!
진청이 돌연 몸을 회전하며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상황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지켜보던 모두가 놀랐다.
화산과 남해검문 측의 사람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때 진청의 검의 측면으로 상대의 허리를 강타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남해검문의 출전자가 비무대 아래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진청아…….”
진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저 진호와 진명이 어느 정도 선전을 해 주기만 기대했던 그는 진청이 둘을 연이어 격파하자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우! 또 화산이 이겼네.”
“어떻게 된 거야? 남해검문이 상대가 안 되잖아!”
“저 친구가 화산의 자하각주라고 하던데. 줄을 서서 각주가 되었다는 소문하고는 완전 딴판이잖아!”
군웅들의 반응이 바뀌어 가고 있었다.
운이 따랐다고 하기에는 진청의 움직임과 공수 전환의 수준이 매우 높았다.
진청의 뒤에 서서 출전을 기다리던 진명과 진호는 서로를 돌아보며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