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귀환무사 62화>
제5장 화산파 출전
귀빈석이 마련되어 있는 연무장의 가장 높은 곳에 맹주 나백을 비롯한 각파의 수뇌부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는 출전자들의 수준이 예상보다 대단하자 연신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껄껄 웃었다.
그런 그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닌 청년들이 앞줄에 앉아 있었다.
흑색 장포를 걸치고 등에 커다란 대도를 둘러멘 장대한 체구의 청년과 핏빛 장포를 걸치고 가슴에 검을 품은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은 출전자들을 향해 연신 비웃음을 날렸다.
바로 마교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저 정도에 환호성이라니, 우습지도 않군.”
뭔가가 불만인 듯 연신 코웃음을 치는 장대한 체격의 청년. 옆에 앉은 청년이 그를 향해 나무라는 눈짓을 보낸다.
[이곳이 어딘지 잊었느냐. 행동과 표정을 조심해라.]
[죄송합니다, 소교주님.]
뜻밖이었다.
마교에서 그런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 마교의 후계자뿐이다.
그러나 정파의 그 누구도 그가 마교의 소교주임을 모르고 있었다. 당초 출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검마전의 출전자로 위장을 하고 온 까닭이었다.
문제는 그가 출전한 것을 마교의 대종사인 뇌어양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호승심이 무척 강했던 마교의 소교주가 조부에게조차 숨기고 몰래 나선 까닭이었다.
그는 비무대보다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은 명문정파의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하게도 혁련천후와 그 일행들이 앉은 곳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그의 시선은 혁련천후의 옆에 앉은 관산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얼굴은 본 적이 없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눈에 익었다.
“꽤 거친 분위기를 지닌 자가 있었군.”
마교 소교주의 눈빛이 흥미로움으로 물들었다. 그는 관산악의 주변 인물들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혁련천후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찌르르…….
가슴에서 이상한 울림 현상이 일자 마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두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종류를 알 수 없는 기이한 열기.
이런 경험은 마교의 장로들이나 대종사인 자신의 조부에게서나 가끔 느꼈던 현상이었다.
‘설마 절대 고수? 아니다. 화산파에 절대 고수가 있을 리가 없다.’
절대 고수가 있었다면 화산파가 쇠락을 할 까닭이 없다. 게다가 혁련천후는 젊어도 너무 젊었다.
‘아니지. 소문에 화산파를 구해 준 삼왕을 부리는 자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럼 저자가…….’
반짝!
마교 소교주의 눈빛이 점점 더 호기심으로 물들어 갔다.
* * *
모용단승이 출전했다.
간단한 대전 방식을 들은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검을 뽑았다.
두근! 두근!
가슴이 마구 뛰고 있었다. 숨이 차오르고 호흡이 가빠졌다.
‘젠장!’
긴장을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건만 상대를 의식하는 순간 시야는 이미 뿌옇게 흐려져 지척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둥! 둥! 둥!
“시작이오!”
대결의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상대가 검을 뽑아 들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대전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훅!”
모용단승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쐑!
상대가 순간 흐릿해지더니 느닷없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놀랄 사이도 없이 검을 틀어 공세를 막아 냈지만 팔에서 따끔한 통증이 솟아올랐다.
우우우!
“뭐야? 한 수에 부상을 입다니. 저 실력으로 어떻게 출전을 한 거냐!”
“역시 점창파답구나! 틈을 주지 말고 밀어버려라!”
군웅들의 야유 소리와 함성이 모용단승의 귀에는 모기소리처럼 앵앵거렸다.
지켜보던 왕전과 담대소천의 낯빛이 일그러졌다. 관산악은 아예 머리를 흔들며 이마에 손을 짚었고 흑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완전히 얼었군.”
“저러다가 한 방에 가는 것 아니냐?”
“성질머리 하나만큼은 믿을 만했는데, 역시 애송이는 애송이라는 건가?”
모두는 모용단승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들의 눈에 점창의 출전자는 절대 모용단승의 상대가 못 되었다. 비록 점창이 쾌를 중시하는 쾌검을 구사한다고는 하나 결코 자신들이 수련을 시킨 모용단승의 속도를 넘어설 수는 없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모용단승은 일검에 어깨를 스쳐 맞고 말았다.
욱신!
어깨에서 통증이 올라왔다.
그러자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좁았던 시야가 일순 정상을 되찾았다.
“그냥 패배를 시인하는 게 좋지 않을까? 더 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웬 개소리.”
“……뭐?”
“닥치고 덤비기나 해, 자식아.”
모용단승이 비로소 본연의 색깔을 되찾았다. 청성파의 출전자가 성을 내며 달려들었다.
날카롭기로 정평이 나 있는 사일검법의 한 초식이 허공을 갈라 왔다.
“고작 그따위였냐.”
모용단승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의 검격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검이 아닌 어깨로 상대의 가슴을 그대로 강타했다.
퍽!
“욱!”
묵직한 신음성과 함께 비무대 밖으로 굴러떨어지는 인영은 점창파의 출전자였다.
일어서려고 꿈틀거리던 점창의 출전자가 그대로 축 늘어지자 곳곳에서 탄성이 울렸다.
“와! 질 것 같더니 한 방에 역전을 시켜 버렸잖아!”
“그러게. 나이를 보니 사대제자쯤 되어 보이는데, 화산파가 언제 저렇게 강했지?”
모두는 모용단승을 화산파의 검수로 여겼다.
그도 그걸 것이 신분을 감추기 위해 예선전까지 치렀다가 뒤늦게 화산파의 검수로 재등록을 했기 때문이었다.
와아아!
함성이 터졌다.
모용단승은 혁련천후와 일행들이 있는 곳을 응시했다. 모두가 활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후욱!”
깊숙이 숨을 들이마신 모용단승은 연무장의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모용세가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누나 모용미가 비수처럼 눈을 찌르고 들어왔다.
자신을 찾고 있음이리라.
울컥!
모용단승은 울컥하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비무대를 내려갔다.
두 개의 비무대에서 쉬지 않고 대회가 이어졌다. 그렇게 도합 네 번의 대전이 끝났을 때, 약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패배를 한 문파들과는 달리 승리한 문파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소란을 떨었는데, 화산파의 제자들도 몰래 자리를 빠져나와 모용단승의 승리를 축하해 주고 돌아갔다.
왕전이 모용단승의 어깨를 두들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꽤 멋진 한 수였다. 얼음!”
“한 칼 맞으니 정신이 돌아오더냐? 다음부터는 긴장하지 마라. 알겠냐?”
모두가 모용단승의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혁련천후도 담담한 미소로 그를 맞아 주었다. 흑야만이 싸늘히 질책했다.
“다음부터는 멍청하게 쫄지 마라.”
“……예.”
* * *
“언제까지 그렇게 웃을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사천당가의 대공자 당문성이 화산파의 사람들을 응시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그들을 보니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화산에서 부상을 당한 탓에 꿈에도 그렸던 영웅 대회에 출전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으니 화산파에 대한 악감은 대단했다.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
당효가 당문성을 나무랐다.
자식의 심정이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그였지만 천하의 이목이 집중된 이곳에서 자칫 화산파와 다시 충돌을 하기라도 한다면 그 이후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서 당효는 남해검문을 믿었다.
‘무참히 꺾어 버려라, 남해검문.’
화산파에 대한 감정이 당가에 못지않은 남해검문이니 기를 쓰고 화산파를 꺾으려 들 게 분명하다.
당효는 내심 그 와중에 화산파의 출전자 한둘 정도는 크게 다치기를 기대했다.
화산파에서 당한 굴욕에 대한 최소한의 복수는 될 테니까.
당효의 속내와는 아랑곳없이 화산파의 사람들은 영웅 대회의 들뜬 분위기를 만끽했다.
계속된 대결에서 단체전의 승자가 세 곳이 나왔다. 그리고 개인전이 반쯤 진행이 되었을 때, 반 시진의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원래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같은 명문들은 맹에서 배려한 별도로 식당을 찾았는데, 혁련천후는 일부러 일반 무사들이 사용하는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수백 명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식당이건만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북적거렸다.
다행히 발 빠르게 움직인 청명 덕분에 제법 널찍한 탁자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일행들은 느긋하게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충분하니 맹 밖에 있는 객잔을 이용하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장문인 태허는 혁련천후가 허름한 곳에서 점심을 드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괜찮으니 그만 가 보시오.”
태허는 어쩔 수 없이 수뇌부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화산의 출전자들을 돌아보던 혁련천후는 셋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어 있자 피식 웃으며 격려의 말을 건넸다.
“술이라도 한 잔씩 마셔 둬.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거다.”
쪼르륵!
그는 손수 셋의 잔에다 술을 따라 주었다.
셋이 머리를 조아리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갈 때였다. 난데없이 식당의 구석진 곳에서 소란이 일었다.
우당탕탕!
“변방에서 온 촌놈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사천당가의 복장을 한 청년 몇 명이 백색 무복을 걸친 청년을 에워싸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여기가 너희 당가의 것도 아닌데, 무슨 권리로 나가라 말라 하는 것이냐!”
“함께 밥을 먹으려니 구토가 나와서 그런다. 왜?”
보아하니 사천당가의 청년들이 모용세가의 무사에게 무시하는 말을 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른 모용세가의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았다.
“여기서 개창피를 당해 볼 테냐? 아니면 밖으로 따라 나올 테냐!”
모용세가의 무사는 대뜸 밖으로 먼저 걸었다.
불게 물든 얼굴을 보니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모용단승이 일어났다.
관산악이 따라 나서려는 것을 혁련천후가 눈짓으로 말렸다.
“놔둬. 혼자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저러다 부상이라도 입으면 대회에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 정도도 헤쳐 나가지 못하면 설사 대회에서 우승을 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