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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56화 (56/425)

# 56

<귀환무사 56화>

뒤를 쫓으려던 자들의 앞에 사공진무가 내려섰다. 그런 그의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지금부터 미로 찾기 놀이를 한번 해 볼까?”

씨익!

사공진무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동시에 손에 쥐었던 막대기를 여러 방향으로 힘껏 던졌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콰우우우!

굉음이 일더니 사공진무가 연기처럼 사라지면 그 자리에 거대한 암벽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으앗!”

“크악!”

난데없는 변화에 허둥대던 몇 명이 피를 뿌리며 꼬꾸라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광이 번뜩이면 어김없이 머리 하나가 잘려 날아갔다.

“진법이다! 모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라!”

뒤늦게 진법임을 깨달은 누군가가 크게 외쳤지만 짧은 시간에 열 명에 달하는 자들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게 건드릴 사람을 건드려야지. 멍청한 자식들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공진무의 목소리.

그러나 괴한들의 눈에는 그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암벽뿐이었다.

번쩍!

“큭!”

또 한 명이 목이 날아가며 꼬꾸라졌다.

“저곳이다! 일제히 저곳을 쳐라!”

누군가의 외침에 남은 자들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지지직!

그러나 요란한 소리만 울릴 뿐, 암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사술입니다! 이곳을 벗어나야 합니다!”

“병신! 누가 그걸 몰라서 이러느냐!”

괴한들이 혼란에 휩싸여 갔다.

사공진무를 찾는 것보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더 급했다. 그러나 아무리 움직여도 주변 환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 죽었어, 자식들아.”

* * *

두두두!

독고무는 연신 말의 엉덩이에 채찍질을 가했다.

지금의 속도로 한 시진가량만 더 달리면 정도맹의 본진에 다다를 수 있다.

초조함에 뒤를 돌아보는 그의 머릿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나를 알면서도 덤볐다. 도대체 누가, 왜 나와 혜아를 노렸단 말인가?’

쫓아오는 자들은 없었다.

불현듯 사공진무가 걱정이 되었다.

그가 보통이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두두두!

마차는 계속해서 달렸다.

그렇게 얼마를 더 달렸을까. 백아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곳만 돌아가면 정도맹의 본진이 그리 멀지 않다. 독고무는 낙수 강변으로 마차를 몰았다. 백아산의 측면을 돌아 정도맹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쐑!

허공을 가르는 파공성이 들리며 자신의 어깨에서 묵직한 통증이 피어났다.

피할 수 없음을 알고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는데 놀랍게도 호신강기를 찢어 내면서 어깨에 박혀 버린 것이었다.

‘고수들…….’

허공에 적색 무복에 검은 피풍의를 걸친 자들이 바람처럼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또다시 섬광에 이어 암기가 날아들었다.

따다다당!

독고무는 검을 휘둘러 검막을 형성해 암기들을 모조리 쳐 냈다.

찌이잉!

반탄력이 올라오며 하마터면 검을 손에서 놓을 뻔했다.

마차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차의 속도로 추적자들을 따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독고무는 마차를 강변에 세우고서 검을 쥐고 땅으로 내려섰다.

처척!

독고무의 지척에 내려선 자들의 수는 다섯. 하나같이 칙칙한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자들이었다.

유일하게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자의 유리알 같은 눈동자가 독고무를 향했다.

“역시 십지신검의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군.”

“나를 노리는 거라면 정체부터 밝혀라!”

“후후후.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네가 아니다, 독고무.”

복면인은 싸늘히 웃으며 턱으로 마차를 가리켰다.

‘역시 혜아를 노린 놈들이었구나.’

적포인 두 명이 마차의 뒤쪽으로 접근했다.

“멈춰라!”

독고무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둘의 머리를 베어 갔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쉽게 막혀 버렸다.

깡!

독고무의 검을 막아 낸 병기는 해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원반을 반으로 쪼갠 것처럼 생긴 일종의 철륜(鐵輪)이었는데 시퍼렇게 선 날의 중간 중간에 송곳니처럼 생긴 돌기가 튀어나와 있었다.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독고무.”

꽈악!

독고무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제3장 위기에 처한 검후

섬서 북쪽의 분타를 책임지고 있는 개방의 취걸개는 모처럼 배터지게 포식을 하고 있었다.

“크! 역시 술안주엔 개고기가 최고란 말이지.”

쩝! 쩝!

한 손에 개다리를, 한 손엔 술병을 쥔 취걸개는 게걸스럽게 먹어 댔다.

덜컹!

문이 열렸다.

행여나 제자들이 들어올까 허겁지겁 고기를 뜯던 취걸개가 일순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맛있냐?”

자신의 코앞에 나타난 두 사람, 취걸개는 너무도 놀란 나머지 생명처럼 아끼는 술병까지 떨어트렸다.

퍼석!

“누, 누구시오?”

“누구긴, 네게 볼일이 있어 온 사람들이지.”

관산악은 취걸개가 앉은 의자를 빼앗아 혁련천후에게 건네고는 취걸개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찾아야 할 분이 계신다. 지금부터 너는 죽을힘을 다해 그분의 행적을 찾아야 한다. 알아듣겠냐?”

“……!”

취걸개는 관산악의 살벌한 눈빛에 압도되어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왜 대꾸를 안 해?”

“누, 누구를 찾는단 말이오?”

“십지신검과 검후님!”

“……예에?”

취걸개는 몹시 놀랐다.

미처 삼키지 못한 개고기가 입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정도 거물급들이라면 이 근처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행적을 쫓았을 것이다. 지금 그분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겠다.”

당연하다.

정보로 먹고사는 개방이라서 관산악의 말처럼 거물급 인사들이 모습을 나타내면 소속을 불문하고 뒤를 쫓는다.

검후와 십지신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마도나 사파의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정파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올라 있는 그들의 행적을 정체도 모르는 이들에게 발설할 수는 없었다.

“그, 그분들을 왜 찾는 것이오?”

퍽!

“컥!”

취걸개가 저만치로 날아갔다.

먼지를 뒤집어쓴 취걸개는 벌떡 일어서다가 혁련천후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찌르르…….

온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맛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혁련천후가 물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취걸개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정도맹이 있는 백아산 쪽으로 향하고 있소.”

“언제 접한 정보지?”

“아, 아침나절에…….”

“허면 정도맹을 가려는 것인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 확실한 것은 아직 소식을 전해 오지 않아서 잘 모르오.”

콰앙!

“으헉!”

취걸개는 놀라 뒤로 자빠졌다.

혁련천후와 관산악이 지붕을 뚫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취걸개는 뻥 뚫려 버린 지붕을 쳐다보며 넋을 놓았다. 그곳을 통해 서늘한 바람이 들이쳤다.

휘이잉!

“사람의 눈빛이 어떻게 저리도 무서울 수가 있지. 으…….”

* * *

까가강!

번쩍!

콰지직!

독고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적포인들을 상대했다. 그러나 하나하나가 예사롭지가 않은 고수들이었던 까닭에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마차 안의 독고혜까지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두 배의 내공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벌써 호흡이 가빠졌다.

“후후후. 대단하구나, 독고무. 너 같은 자가 우리와 함께했더라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

지금껏 전장에 뛰어들지 않고 물러서 있던 복면인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의 감탄사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우우웅!

뒤쪽에서 공명이 이는 소리에 복면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순간 복면 밖으로 드러난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하늘을 가득 덮은 수백 개의 검이 자신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번쩍!

복면인의 검이 섬광을 일으켰다. 그러자 폭우처럼 쏟아지던 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술!’

가슴을 쓸어내리던 복면인의 귀에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크악!”

수하 하나가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것을 본 복면인은 재빨리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독고무 말고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썩 나서지 못하겠느냐!”

휘이잉!

들리는 거라고는 바람 소리가 전부였다.

난데없는 상황에 독고무와 적포인들도 싸움을 중단하고 떨어졌다.

그때였다.

[검후님은 제가 정도맹으로 모시겠습니다.]

독고무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공진무의 목소리였다. 그는 이내 눈빛을 고치고는 전음을 날렸다.

[부탁하네.]

[죽지 마십시오. 죽으면 제가 혼납니다.]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사공진무의 전음은 더 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그때였다.

쏴아악!

또다시 파공성이 울렸다.

복면인은 자신을 향해 또다시 날아드는 검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흥! 가소로운 수작이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엇!”

복면인이 두 눈을 부릅뜨며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간발의 차이로 검들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뒤이어 마차가 산산조각이 나며 부서졌다.

콰지직!

“……!”

“오늘은 이만 돌아간다만 나중에 다시 보면 그땐 가죽을 하나하나 벗겨 줄 거다. 망할 자식들아!”

독고혜를 안고 날아가는 사공진무.

정신을 차린 복면인은 이를 갈며 바닥을 차고 올랐다.

“검후는 내가 맡겠다. 너희들은 그놈을 죽여라!”

쾅!

* * *

사공진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독고혜의 혈도를 제압한 그는 전방의 백아산을 향해 곧장 달렸다.

‘마차가 파손될 때의 충격으로 인해 독이 다시 혈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서둘러 혈맥을 막지 못하면 천추의 한을 남길 수도 있다.’

초조했다.

뒤를 돌아보니 만만찮은 복면인이 바람처럼 쫓아오고 있었다.

그 때문에 독고혜의 혈맥을 막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정도맹으로 곧장 가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의 변수만 없다면 독이 뇌로 올라가는 것을 막을 시간은 충분했다.

휘이익!

산의 협곡을 들어선 사공진무는 쉬지 않고 질주했다.

독고혜의 향긋한 체향이 후각을 자극했지만 그것을 느낄 겨를이 그에겐 없었다.

“참아야 합니다. 검후님의 상태에 따라 제가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쾅!

바닥을 차고 오르려던 사공진무는 일순 휘청거렸다. 하필이면 이끼가 잔뜩 달라붙은 바위를 밟는 바람에 미끄러진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균형을 잡은 사공진무는 협곡의 끝을 향해 맹렬히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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