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귀환무사 54화>
제2장 천하가 주목하기 시작하다
천산(天山)은 마도의 종주라 할 수 있는 마교의 본산이다.
천마전(天魔殿).
천하만마의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그곳에 마도의 주인인 마교대종사 단천신마(斷天神魔) 뇌어양이 마인들과 함께 의논을 하고 있었다.
“삼왕이 신마성이라는 곳에 몸을 담았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느냐!”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과연 마도의 대종사다운 기도가 좌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당장에 소문은 그렇게 났지만 보다 자세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아이들을 풀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셋이 한자리에 나타나 당가와 팽가를 물리쳤다면 사실이 아니겠느냐. 본좌가 우려하는 것은 그들이 정도맹과 손을 잡느냐, 이것이니라!”
“중원에서 활동 중인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아직 그들은 정도맹과 사련, 그 어느 곳과도 관련이 없다고 했습니다. 또한 삼왕이 함께 움직이고는 있으나 그 세력이 지극히 미미하여 크게 걱정할 바가 못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교의 첩보를 관장하는 흑마전주 장료는 매우 신중하게 말을 늘어놓고는 뇌어양의 반응을 기다렸다.
“흠. 그렇단 말이지.”
뇌어양은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름 하나만으로 만인에게 두려움을 주는 뇌어양의 얼굴은 의외로 평범했다. 오히려 적당히 주름진 얼굴과 흰 피부는 마인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부드럽기조차 했다.
“삼왕이 함께하는 그들이 미미한 세력이라…… 숫자가 적음을 두고 그렇게 판단을 내린 것이냐?”
“…….”
“허허! 이놈아! 네놈은 삼왕이 어떤 존재인지 알기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그들 하나면 거대 문파 한 곳과 맞먹는다고 했다. 하물며 셋이라면 소림사와 견줄 만하지 않겠느냐.”
“너무 후한 평가가 아닐지…….”
“절대 후한 평가가 아니니라. 만약에 본교와 그들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치자. 작정하고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한다면 그 피해는 감히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가 아니겠느냐.”
“속하! 미처 그 점까지는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과연 주공이십니다!”
머리를 조아리는 장료. 뇌어양은 그런 장료를 보며 따뜻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련의 주인 갈무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이 제아무리 강하다고 해 봤자 고작 셋입니다. 대종사께서 마음에 담을 정도는 아니라고 감히 속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료의 말 속에는 뇌어양에 대한 무한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뇌어양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받았다.
“허어, 네놈의 눈에는 내가 칼을 맞아도 죽지 않는 귀신으로 보이는 모양이구나.”
뇌어양은 대전에 모인 모두를 천천히 쓸어 보았다. 그러고는 좌측의 장대한 체격을 지닌 중년인을 보며 물었다.
“산악의 행방은 어찌 되었는고?”
“얼마 전에 섬서 북쪽의 작은 고을에서 산악을 보았다는 목격자를 찾아내었습니다.”
“섬서? 섬서에 놈의 연고가 있었더냐?”
“그것까지는…… 죄송합니다, 대종사!”
뇌어양이 눈빛을 발했다.
매우 총애했던 관산악이 사라진 직후 그는 동원 가능한 정보력을 가동시켜 그의 행방을 찾고 있었다.
교내에서 그가 왜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졌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서 의혹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전왕이 섬서에 있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대종사!”
“흠! 놈이 그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오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과 산악, 그놈이 교를 나간 것과 지나치게 일치하고 있지 않느냐. 산악 그놈도 교에 들어온 것이 오 년 전이며, 그들이 강호에서 종적을 감춘 때도 오 년 전이지 않느냐?”
뇌어양의 말에 좌중의 모두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인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늘어놓았다.
“속하도 그 점을 수상히 여겨 아이들에게 삼왕의 거처를 면밀히 살피라는 지시를 내려 두었습니다. 혹시라도 그곳에 관대주가 나타나면 즉각 전서를 보내올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공.”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뇌어양의 시선이 좌측을 향해 돌아갔다.
“이보게, 군사.”
“하명하시지요, 주공.”
회색 장삼에 유난히 창백한 얼굴을 지닌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무릎을 꿇지 않은 채 뇌어양을 응시했다.
마도 최고의 두뇌라 일컬어지는 마교의 군사, 마뇌(魔腦) 서영이란 인물이었다.
“그들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방법은 없는 게냐?”
“그들이 비록 천하를 울리는 존재들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주류에 들 수 없는 소수 세력인데 어찌 주공께서 먼저 손을 내밀 수 있겠는지요. 정도맹과 사련 측에서 먼저 그들에게 손을 벌리고 나선다면 몰라도 지금 당장은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자존심 때문인가?”
“천하 만마의 주인이신 주공의 명예를 어찌 작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서영은 담담히 대답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말투나 분위기부터가 군사의 냄새를 풍겼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뇌어양. 그때 서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소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소한 문제라니?”
서영이 그답지 않게 살짝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뇌어양이 의아한 빛을 머금었다.
서영이 말을 이었다.
“흑영대의 아이들이 사련의 분타 한 곳을 공격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사련의 잡종들이야 보이는 족족 쳐 없애는 것이 옳거늘, 그것이 왜 문제라고 하는 것이냐?”
“그것이…… 흑영대가 사람은 해치지 않고 은자만 몽땅 털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뇌어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허면 놈들이 강도짓을 했단 말이냐?”
서영은 답을 하지 못했다. 살짝 노기를 비쳤던 뇌어양이 이내 서영을 향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아이들을 보내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거라. 악승, 그놈은 절대 그런 짓을 할 위인이 아니다.”
“예, 주공.”
서영이 제자리로 돌아가자 뇌어양이 화제를 바꿨다.
“정도맹과의 비무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느냐?”
“검마전(劍魔殿)과 도마전(刀魔殿)의 소전주들이 나서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정도맹의 나웅이란 아이가 꽤 강하다고 들었다. 마도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할 것이다.”
“예, 주공!”
“무릇 강한 고수들만큼이나 정보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는 법이니라. 하니 모두는 중원의 각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허투루 대하지 말고 최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주공!”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뇌어양은 흡족한 빛으로 좌중의 모두를 쓸어 보고는 대전을 빠져나갔다.
* * *
살문(殺門)은 청부로 먹고사는 살수들의 집단이다.
소위 밤의 지배자라 불리는 그곳의 주인 노진(盧眞)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도대체 놈이 간 지가 언젠데 아직 돌아오지 않는 것이냐?”
머리를 조아린 인물은 살막의 이인자로 불리는 총관 추홍(秋弘)이라는 자로 야월객(夜月客)이라는 멋들어진 별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지금 한 달 전쯤에 청부를 해결하기 위해 길을 떠난 홍무가 돌아오지 않는 것과 관련하여 노진의 성화를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는 중이었다.
노진만큼이나 추홍도 화가 나 있었다.
평소 일처리가 깔끔하기로 정평이 나 있던 홍무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뭔가 사고를 친 게 분명했다.
“혹시 놈이 도망간 것은 아니냐? 듣자 하니 계집이 생겼다고 하던데, 혹시 그 계집과 함께 돈을 들고 튄 것은 아니냔 말이다.”
“그럴 리 없습니다. 홍무는 누구보다 본 문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친구입니다. 분명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늦는 것일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십시오.”
평소 홍무를 아꼈던 추홍이라 끝까지 그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게 노진의 화를 더욱더 부추겼다.
“한 달이 지났지 않느냐? 그깟 삼류 낭인 새끼를 죽이는 것도 실패한 놈이 한 달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면 이는 분명 놈이 도망간 것이 틀림없다.”
노진의 단호한 어조에 추홍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들을 보냈으니 곧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려 주시면 사정이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만 노여움을 푸십시오.”
“내가 지금 화를 풀 수가 있겠느냐! 청부를 실패하는 바람에 무당에게 두 배의 돈을 물어주게 생겼지 않느냐! 피 같은 황금 천 냥이 고스란히 사라지게 생겼단 말이다. 이놈아!”
우웅!
추홍은 귀청이 찢어질 것 같아 재빨리 내공을 끌어 올렸다.
‘작작 좀 해라. 빌어먹을!’
한참을 씩씩거린 노진이 돌연 추홍에게 명령을 내렸다.
“네가 직접 가거라! 가서 그 낭인 새끼의 목을 따 버리고 홍무, 그놈도 찾아오너라!”
“그리하겠습니다.”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서는 추홍.
그 뒤에 노진의 불호령이 이어졌다.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칼을 물고 목숨을 끊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추홍은 올라오는 짜증을 애써 억눌렀다.
‘망할 놈의 새끼!’
* * *
검후의 행방을 좇아 움직이던 혁련천후와 관산악은 고을의 저잣거리로 들어섰다.
관산악이 주변을 돌아보며 탄성을 질렀다.
“역시 영웅 대회가 대단하기 대단한 모양입니다. 이런 외곽진 고을까지 무림인들이 바글바글하니 말입니다.”
거리에는 칼을 찬 무사들로 북적거렸다.
영웅 대회가 보름 남짓 남은 까닭에 천하의 이목은 섬서를 향했고 먼 곳에서 길을 떠난 자들이 미리 섬서를 찾아 머물 곳을 정하는 바람에 인근 고을들은 하나같이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거리를 오가는 무사들을 살펴보았다.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청년들이 어깨에 힘을 잔뜩 준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제법 이름난 문파의 청년들도 꽤 많았는데, 가장 눈에 띄는 자들은 무당파와 소림의 무승(武僧)들이었다.
표정에서 드러나는 자신감부터가 다른 청년들과 달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