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귀환무사 53화>
“…….”
황당한 상황에 둘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동시에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들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낡은 장포에 뛰어온다고 잔뜩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개방도나 다름없었다.
“얼른 이 돈을 가지고 가시오. 그러고 이곳은 도적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니 행여 다시는 이 길로 다닐 생각일랑은 마시오.”
되레 걱정까지 해 주는 강도.
바닥에 떨어진 은자를 집어 든 혁련천후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인근에 도적들이 많소?”
“말이 도적이지 모두가 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도적 짓을 하고 있다오. 그러다 무사들을 몰라보고 죽은 사람들도 꽤…….”
말을 잇지 못하고서 끝을 흐린다.
뒷말이야 들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들을 보니 그저 평범한 민초들, 운이 없어 무림의 삼류 무사에게라도 걸리면 살아날 방법은 전무한 허약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얼른 돌아가세.”
대화를 나누던 이는 뒤에 섰던 동료가 역정을 내며 재촉을 하자 재빨리 돌아서 뛰어갔다.
그런 그들을 향해 관산악이 불쑥 소리쳤다.
“이봐! 일자리가 있는데 거기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볼 생각은 없냐!”
황급히 걸음을 옮기던 둘이 그 자리에 멈췄다.
“이보시오. 정말 일자리가 있소?”
“이 친구들이 속고만 살았나. 아주 죽여 주는 일자리가 있다니깐. 그렇지 않습니까? 주공!”
관산악의 의도를 알아챈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산악은 품에서 철전을 꺼내 반으로 접었다. 망치로 두들겨도 좀처럼 찌그러트리기 힘든 철전이 종이처럼 구겨졌다.
지켜보던 둘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관산악은 구겨진 철전을 그들에게 내밀며 말을 해 주었다.
“저쪽으로 하루를 걸어가면 요렇게 생긴 장원이 있을 거다. 이것을 장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면 당신들을 받아 줄 거야. 그러니 여기서 어슬렁거리다가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얼른 가 보라고.”
혁련천후가 거들고 나섰다.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않겠소. 그리고 우리는 나쁜 사람들이 아니니 믿어도 좋소.”
“그럼 나중에 보자고. 흐흐흐!”
어설픈 강도들은 바람처럼 사라져 가는 둘을 지켜보면서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가…… 볼까?”
“일을 하면 돈을 준다니 가 봐야지 않겠느냐.”
“그런데 인상이 좀…….”
“그렇긴 하지?”
“그래.”
둘의 발목을 잡는 것은 관산악의 험악하기 짝이 없는 인상이었다.
* * *
금옥장(金玉莊).
황금의 제국이라 불리는 그곳의 주인 금치문(金治紊)의 얼굴이 화로 인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황제도 부럽지 않다는 그가 화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중독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어야 할 그녀가 갑자기 사라졌다니! 대체 그곳을 지키던 놈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사라진 뒤에 보고를 올린단 말이냐!”
어지간한 왕궁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대전이 쩌렁쩌렁 울린다.
머리를 조아리고 선 장한은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만년삼왕이 아니면 절대로 해독할 수 없는 극독에 중독된 그녀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냐는 말이다! 천하의 만년삼왕은 모조리 내게 있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십지신검과 정체를 모르는 젊은이와 함께 마차를 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멍청한 놈들! 마차로 이동을 하는데도 빠져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단 말이냐!”
쾅!
탁자가 흔들리며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퍼석!
금치문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검후를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여 꾸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생겼다.
지금쯤이면 자신에게 만년삼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난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니.
“고수들을 보냈으니 조만간에 행적을 찾아낼 것입니다. 하니 그만 노여움을 푸십시오, 장주.”
“내가 지금 화가 안 나게 생겼느냐! 자칫 잘못되면 그녀가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입게 생겼지 않느냐!”
금치문의 오공에서 뜨거운 김이 흘러나온다.
“돈을 더 달라면 더 주고서라도 확실히 믿을 만한 자들을 고용해서 당장에 그녀의 행적을 찾아내어 내게 보고해라! 알겠느냐!”
“그리하겠습니다.”
장한이 빠져나가자 금치문은 손으로 미간을 짚었다.
“시간이 지체되면 얻어도 얻은 것도 못한 꼴이 될 수도 있다. 독으로 인해 그녀가 크게 상하기 전에 무조건 데려와 만년삼왕을 복용시켜야 한다.”
독고혜에게 푼 독의 양은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크나큰 장애를 입을 수가 있다.
금치문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아무리 천하제일 미녀라고는 하지만 장애를 입으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고작 이런 일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다니, 멍청한 것들 같으니! 천금을 들여서라도 뛰어난 자들을 더 고용해야겠어!”
금옥장에는 수많은 무림의 고수들이 있다.
대부분이 돈을 주고 고용한 자들이었다. 그중에는 전직 정도맹의 수뇌를 지녔던 자도 있고 구대세가의 중진을 지냈다가 파면을 당한 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면에서 활약을 해 줄 머리가 뛰어난 이는 거의 없다.
금치문 스스로가 자신의 머리를 믿었던 터라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구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당장에 실패를 경험하니 강호에서 필요한 머리와 돈을 버는 데 필요한 머리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여봐라!”
금치문이 누군가를 부르자 바람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장주.”
“지금 강호에서 머리가 비상한 자를 찾아내어라. 천금이 들어도 상관없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무조건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예, 장주.”
스스슥!
실내에 다시 금치문 혼자만이 남았다.
불현듯 검후 독고혜의 아름다운 자태를 떠올린 금치문의 낯빛이 다시금 벌겋게 붉어졌다.
“어떤 일이 있어도 멀쩡한 상태로 나의 여자로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 * *
정도맹주 나백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뇌부들과의 회합을 주제한 그는 배석한 인물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다.
좌중에 함께하고 있던 정보 책임자 육승이 침중한 어조로 의견을 내놓았다.
“진정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하나가 거대 문파 한 곳과 맞먹는다는 삼왕이 한 곳에 소속이 되었다니 말입니다. 게다가 그 엄청난 자들에게 주인이 있었다니……. 솔직히 듣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신마성이라는 곳에 또 어떤 자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아니겠소. 또한 그들이 정도를 추구할지, 아니면 마도를 추구할 지조차 모르니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외다.”
유난히 눈이 큰 중년인의 말에 나백은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화산파를 도왔다고 하니 적어도 마도나 사파를 지향하는 자들은 아닌 듯한데…….”
그때 장대한 체격의 노인이 좌중을 돌아보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섰다.
“그들이 비록 하나같이 강력한 고수들이라고는 하나 본 맹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소이다! 하물며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역시 과거와 비할 바 없이 강성하니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게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그들이 만에 하나 마교나 사련과 손을 잡으면 그땐 힘의 균형을 깨어질 수도 있습니다.”
육승의 말에 대부분이 수긍하는 빛을 보였다.
맨 끝에 앉아 있던 초로의 노인이 일어섰다. 청성파의 장문인 소진걸이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맹주 나백을 보며 물었다.
“그들을 수하로 부리는 자가 있다는 나 공자의 말이 진정 사실입니까?”
그 말에 다른 인물이 답하고 나섰다.
“천하에 누가 있어 그들을 수하로 부릴 수 있단 말이오? 분명 나 공자가 잘못 본 것일 게요. 당치도 않소이다!”
대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무림맹의 호법들 중 한 명인 광도(狂刀) 순우진이었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든 성정이 불같고 화가 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인물인데, 그는 맹주를 비롯해 모두가 침통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매섭게 부라렸다.
나백이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호법의 말이 맞소. 천하에 삼왕을 동시에 수하로 부릴 자가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하겠소. 삼왕이 미치지 않고서야 다른 자의 수족 노릇을 할 리는 없을 테니, 그 부분은 다시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좋겠소이다.”
나백의 말에 지금껏 침묵을 보이던 수석 장로 적용세가 나섰다.
“당장은 화산파와 그들이 어떤 관계인지 그것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만에 하나 그들이 계속해서 화산파와 한 배를 타게 된다면 구대문파의 질서는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될 것이오.”
“삼왕이 뭐가 아쉬워 다 쓰러져 가는 화산에 몸을 담겠소. 화산을 구해 준 것은 필시 청부에 의한 것일 게요. 신흥 문파가 가장 어려운 것이 뭐겠소? 바로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오? 필시 돈을 받고 나선 것이 맞을게요.”
순우진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자 적용세는 눈살을 찌푸렸다.
“순호법은 화산파가 삼왕에게 청부를 할 정도로 자금이 충분하다고 보는 게요?”
“당장에 멸문을 당하게 생겼으니 기진이보라도 팔았지 않겠소!”
순우진이 지지 않고 맞서자 적용세는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 그의 뇌리에 불현 듯 혁련천후가 떠올랐다.
‘설마 그 젊은이가 삼왕의 주인이라고 의심되는 그란 말인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당문성을 한 방에 기절시켰던 혁련천후. 뒤늦게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그가 전왕과 함께 이동하고 있다고 했었다.
적용세는 혁련천후의 존재를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맹에 당가와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괜히 번거로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던 것이었다.
좌중을 둘러보던 나백이 육승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아이들을 더 풀어 그들의 거점과 소속 문도들의 숫자, 그리고 그들의 수장이 누구인지부터 보다 자세히 알아보시게. 자금이 부족하면 내가 결제를 해 줄 것이니 비영전 전체가 움직이도록 하게나.”
“그리하겠습니다.”
육승이 모두에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서 대전을 나가자 적용세 또한 몸을 일으켰다.
“이 몸도 그만 가 보겠소.”
더 있을 이유가 없었던 순우진과 소진걸도 각자의 거처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나백은 손으로 미간을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문제까지도 의견이 갈라지다니. 장차 맹의 앞날이 걱정이로다. 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