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귀환무사 51화>
제1장 사랑을 찾아서
장원의 옆을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인해 넘쳐 범람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안에 서 있기조차 힘든데도 느긋하게 그 안에 몸을 담근 이가 있었다.
실패한 살수, 홍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평소 생활보다 더 익숙해진 그는 거친 물줄기에도 불구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발밑으로 물길에 휩쓸린 돌들이 다리를 두들겼지만 그것도 홍무에겐 자장가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마침 그곳을 쳐다보다 홍무의 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관산악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났다.
“어쭈.”
휙!
관산악의 손을 떠난 돌멩이가 정확하게 홍무의 미간에 명중했다.
딱!
“크윽!”
화가 치민 홍무의 고개가 번개처럼 뒤로 돌아갔다. 관산악이 장돌 하나를 흔들어 보이면서 서 있었다. 치켜 올라갔던 홍무의 눈썹이 스르르 내려온다.
뒤이어 그가 수도승의 그것처럼 경건한 자세로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겼다.
“똑바로 해라.”
“예!”
“큭큭!”
구경하던 청명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왕전과 담대소천이 홍무를 보며 피식 웃는다.
“냄새가 사라질 때도 안 됐냐?”
“아직 멀었다.”
왕전이 이번에는 관산악에게 물었다.
“그냥 가죽을 칼로 벗겨 내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
“그럴 수도…….”
둘의 대화에 홍무는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관산악이라면 충분히 그러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에서 관산악은 싸워 죽인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소문이 난 마교의 전귀였다.
“너 이리 와 봐!”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생각에 홍무는 사색이 되었다.
홍무는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나가면 끓는 물에 삶은 돼지고기 신세가 될 게 분명했다.
“이 새끼가 얼른 안 나와!”
관산악은 홍무가 들은 척을 않자 손에 쥐었던 돌을 던졌다.
따악!
돌멩이는 홍무의 뒤통수에 그대로 작렬했다. 그래도 홍무는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 고통이야 가죽이 벗겨지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잠시 조용했다.
홍무는 뒤를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저승사자와 같았던 관산악이 공손하게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홍무는 관산악의 앞에 선 혁련천후를 보았다.
움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왔다. 그 옆에 흑야가 서 있었다.
홍무의 눈이 초롱초롱 빛을 머금는다.
자신의 이상이자 꿈인 그를 보면 그저 가슴이 뛴다. 그저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특급 살수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헉!’
흠모의 빛으로 흑야를 응시하던 홍무는 마침 자신을 돌아보던 관산악과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정자세로 돌아갔다.
“돌로 박박 문지르든가 해라. 아니면 내일 네놈의 껍질을 벗겨 버릴 테니까.”
휙!
찬 바람을 일으키며 멀어져 가는 관산악. 그의 입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히 주모님을 암습하다니.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너는 곱게 뒈지긴 글렀다. 망할 새끼.”
* * *
왕전을 비롯한 모두의 표정이 꽤나 심각했다.
휴식 시간이라 그늘에서 쉬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은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음을 느끼고는 이목을 집중했다.
“저희들이 가겠습니다. 검후님을 모셔 오고 암습을 한 놈을 찾아 껍질을 벗겨 데려오겠습니다.”
“범인은 제가 찾아내겠습니다.”
흑야도 나섰다.
담대소천은 특유의 묵직한 표정으로 혁련천후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혁련천후는 말이 없었다.
달빛을 등지고 있어 그늘이 진 까닭에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싸늘했다.
폭풍전야(暴風前夜)가 이럴까?
담대소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명령을 내려 주시면 저희들이 해결을 하겠습니다. 한데 어찌 말씀이 없으신지요?”
“너희 셋은 곤란하다. 천하가 너희들을 주목하고 있지 않느냐.”
혁련천후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관산악이 나섰다.
“그럼 제가 딱입니다. 저야 하도 비밀스럽게 놀아 놔서 얼굴을 아는 놈들이 거의 없습니다.”
“너보다는 내가 더 비밀스럽게 논 것 같은데?”
흑야가 나섰다.
“나와 산악이 가겠다. 너희들은 아이들 수련에나 신경을 쓰도록 해.”
히죽 웃는 관산악에 반해 흑야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관산악이 나무에 걸어 놓은 자신의 대도를 어깨에 둘렀다.
“가시죠!”
“너는 술 좀 그만 마시고.”
“……예.”
왕전에게 금주령을 내린 혁련천후가 걸음을 놓자 관산악이 뒤를 따랐다.
강가에 이른 혁련천후는 부동자세를 하고 있는 홍무를 발견하고는 무심히 물었다.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냐?”
“아무래도 껍질을 벗기는 것이 빠르겠습니다. 도통 냄새가 사라지질 않으니…….”
쭈뼛!
홍무의 머리털이 곤두설 때, 한 줄기 바람이 그의 머리 위에서 일었다.
물줄기를 넘어간 혁련천후는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여전하시네. 나도 슬슬 달려 볼까?”
팍!
바닥을 차고 오른 관산악도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홍무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제발 오래 있다가 돌아와라.’
* * *
관산악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는 뒤를 걸어오는 혁련천후를 돌아보며 물었다.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관산악을 비롯한 모두는 혁련천후와 검후의 관계를 알고 있다.
지금 관산악은 그녀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혁련천후가 대답을 하지 않자 다시 입을 놀렸다.
“솔직히 너무하셨습니다. 십 년간 아무런 소식도 전하지 않으시다니. 주모님께서 얼마나 애를 태우셨겠습니까?”
주모라니.
아직 혼사도 치르지 않았는데.
혁련천후는 관산악의 뒷모습을 묵묵히 응시했다.
이제는 주모라는 단어가 꽤 익숙해져 있었다. 수하들이 일방적으로 만들어 버린 둘의 관계는 스스로도 인정하려 들고 있다.
관산악의 널찍한 등판에 아름다운 얼굴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죽는 날까지 너와 함께할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언제나 자신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어 주었던 그녀였다. 그녀 때문에 금역에서의 죽음보다 더한 고통도 이겨 낼 수 있었다.
강호를 나오자마자 그녀에게로 가지 못했던 이유는 화산 때문이었다.
화산이 변하지 않았다면, 만에 하나 그들이 세상의 추악함에 절어 있었다면 자신의 손으로 세상에서 지워 버리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은 천하의 공적으로 몰릴 것이 뻔했다.
천하공적의 여인이라는 꼬리표를 그녀에게 달아 주기 싫었으며 자신 때문에 그녀가 불행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향한 발길을 억지로 화산으로 돌렸을 뿐인데, 그녀가 암습을 받고 맹독에 쓰러졌다는 것이다.
처음 소식을 접했을 때의 자신을 떠올려 보니 쓴웃음이 나온다.
그 정도의 사랑을 포기하려고 했었던 스스로가 매우 어리석었음을 비로소 깨우쳤다.
‘미안하다. 나를 용서해 다오.’
격정 때문에 호흡이 살짝 거칠어졌다.
그러나 이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화산의 제자들이 떠올랐다.
그들이 자신의 증오심을 사라지게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화산은 멸문을 피할 수 있었고, 자신은 천하공적이 되는 것도 피하고 화산의 어른이 될 수도 있었다.
“주공!”
관산악의 부름에 혁련천후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십니까?”
“무슨 일이지?”
“경공을 펼쳐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주모님께서 다른 곳으로 이동이라도 하시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랬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산악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내기를 한번 해 보시겠습니까?”
“좋지.”
“좋습니다!”
콰앙!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관산악이 먼지를 일으키며 앞으로 질주했다. 혁련천후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자욱한 흙먼지가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쿨럭!”
* * *
섬서성 정변(定邊)현을 흐르는 낙수(落水) 강변은 갈대가 많기로 꽤나 유명한 곳이다.
북쪽에서 발원하여 장강에 이르는 낙수 강변은 한가로이 노니는 새들과 주변을 뛰어다니는 짐승들이 유독 많았다.
그런 낙수 강변의 어지간한 장정의 키만 한 갈대들이 미풍조차 없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사사삭!
“젠장!”
갈대숲 속에서 사람 하나가 쑥 모습을 드러냈다.
흑영대와 일행이 된 금발 청년이었다.
청년의 뒤에 악승을 비롯한 서른 명의 흑영대가 따르고 있었다.
“시뻘건 옷이 뭐가 좋다고 단체로 차려 입어 가지고 이 난리냐, 이 난리가!”
청년의 투덜거림에 악승의 얼굴이 벌게졌다.
지금 그들은 누군가에 쫓기고 있었다.
악승이 뒤를 돌아보며 고함을 질렀다.
“모두 산으로 올라간다!”
흑영대원들은 일제히 낙수를 가로질러 우뚝 솟아 있는 백어산(白於山)으로 숨어들었다.
모두가 백어산의 수림으로 사라지고 난 뒤 얼마가 지났을까, 일단의 무리들이 낙수 강변에 모습을 드러냈다.
흑포를 걸치고 어깨에 커다란 대감도를 둘러맨 그들은 하나같이 흉흉한 기색을 하고 있었는데, 상당한 덩치에 머리통만 한 대부를 둘러맨 거한이 주변을 쓸어 보며 안광을 번뜩였다.
사련의 섬서분타를 책임지고 있는 고광(高曠)이라는 위인으로 도끼의 달인이었다.
“대주님! 놈들이 정도맹의 구역으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더 이상은 위험해서 곤란합니다.”
고광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린다.
“빌어먹을!”
눈앞에 보이는 백어산을 넘어가면 바로 정도맹의 구역이다. 섣불리 들어섰다가는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곳인 까닭에 고광은 하는 수 없이 추격을 포기해야만 했다.
“감히 마교 새끼들이 본련의 분타를 털다니.”
“개방의 지부에 적당히 정보를 흘리면 정파가 놈들을 처리하지 않겠습니까? 자신들의 구역에 마교의 마인들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면 인근이 발칵 뒤집힐 겁니다.”
“좋다! 돌아가는 즉시 개방의 지부에 놈들이 인근에 나타났다는 것을 흘리도록 해라. 돌아간다!”
사련의 고수들이 사라지고 얼마 뒤에 금발 사내와 흑영단이 그 자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갔냐?”
“갔습니다.”
금발 청년은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악승이 그를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도망을 가야 합니까?”
“그럼 싸울까?”
“덕분에 흑영대 최초로 도망이란 걸 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