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귀환무사 49화>
그것은 내공을 끌어 올려 일격필살을 노리는 살수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관산악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누굴 노리는지 모르겠지만 지지리도 운이 없는 살수다.
‘마교에서라면 너 같은 놈은 말 먹이나 주며 살아가야 할 거다.’
천하 만마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마교에는 패도를 추구하는 마인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파의 수뇌들을 암살할 목적으로 수많은 살수들을 양성한다.
이 정도 거리에서 자신에게 흔적을 들키는 수준이라면 살수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이다.
‘장소를 택해도 참 지랄맞은 곳을 택했군.’
관산악은 일부러 뒷간의 문을 거칠게 열었다.
텅!
악취가 코를 찔렀다. 문을 하나 더 열고 들어가니 뒷간이 나왔다.
‘직업 정신 하나는 알아줘야 할 놈이군.’
관산악은 뒷간의 벽에 세워져 있던 빗자루를 쥐었다. 그러고는 뒷간 통에다 슬쩍 던졌다.
그때였다.
번쩍!
섬광과 함께 빗자루가 삭둑 잘려 날아갔다. 뒤이어 오물을 뒤집어쓴 괴물이 튀어 올라왔다.
“욕봤다. 거서 기다린다고.”
“…….”
살수는 두 눈만 멀뚱거렸다.
잘린 빗자루를 내려다보는 그의 두 눈에 절망과 허무함이 잔뜩 묻어났다.
“누굴 죽이려고 왔느냐?”
“……!”
살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터럭이라도 하나 움직이면 그대로 목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리고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벌리면 오물이 그대로 입안으로 흘러드니까.
“설마 이 안에서 살던 사람들을 노린 것은 아니겠지?”
멀뚱멀뚱.
살수가 입을 꾹 다물고 있자 관산악의 눈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퍽!
그의 발이 살수의 복부에 정확하게 꽂혔다.
살수의 입이 벌어지면서 그 안으로 얼굴에 묻었던 오물이 고스란히 흘러 들어갔다.
“우웩!”
제9장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진청은 하늘을 보며 콧노래를 불렀다.
요즘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고 모든 것들이 즐겁게만 느껴졌다.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시시때때로 실실거리며 웃곤 했다.
“하늘빛 한번 기똥차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높고 푸르다.
“좋냐?”
옆에서 진호가 물어 온다. 진청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죽겠습니다. 그러는 사형은 좋지 않습니까?”
“나도 좋아 죽겠다.”
“하하하!”
둘은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지금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들의 뒤에 마차가 뒤를 따르고 있었다.
마차 옆과 뒤에 그들의 사부가 말의 움직임에 몸을 맡긴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진호가 말 머리를 돌려 마차 쪽으로 몰아갔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마침 출출함을 느끼고 있던 왕전이 반색을 하며 마차를 돌아봤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안에서 혁련천후의 대답이 들려왔다.
“잠시 쉬었다 가지.”
진명은 마차를 길가로 몰았다.
제법 널찍한 풀밭에서 모두는 여장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멧돼지를 잡아 오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진청이 숲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러더니 잠시 후, 커다란 멧돼지 한 마리를 등에 짊어지고 돌아왔다.
불을 지피고 돼지를 걸었다.
청명이 화산에서 가져온 술과 소금을 준비하는 동안에 청진은 먹기 좋게끔 고기를 잘게 썰어 혁련천후의 앞에 놓았다.
“많이 드십시오, 사숙조님!”
사실 청진과 청명은 사숙조라 불러선 안 되는 것이지만 혁련천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진호 등과 호칭을 통일시켜 부르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모두의 눈빛은 그저 초롱초롱했다.
아직 그가 왜 사숙조가 되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좋았다.
천하인들의 괄시를 받아 온 사문이 그로 인해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 여겼다.
천하의 삼왕을 수하로 둔 사숙조가 있는데 감히 누가 우습게 볼 수 있을까.
사천당가와 하북팽가, 그리고 단리세가의 고수들이 꽁지에 불붙은 쥐처럼 도망치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통쾌한 장면이었다.
“영웅 대회라는 것 며칠이나 남았지?”
술을 한 잔 마신 혁련천후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화산을 내려오고 난 뒤부터 그의 표정은 전과 다르게 차가운 기운이 조금 덜한 듯 보였다.
한바탕 전쟁의 기운이 쓸고 간 사문을 보면서 생각의 변화가 일어난 까닭이었다.
“듣기로 사문과 그놈들과의 일로 인해 뒤로 연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이 끝났으니 조만간에 다시 개최를 두고 논의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진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왕전이 물었다.
“진짜로 이놈들을 출전시킬 생각이십니까?”
“참가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지금 정도의 수준이라면 보나 마나 첫판에서 작살이 날 텐데, 개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수련을 시켜야겠습니다.”
수련을 더 해야겠다는 왕전의 말에도 셋의 표정은 한껏 상기되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혁련천후가 영웅 대회에 자신들을 출전시키겠다는 말을 태허장문에게 한 것을.
혁련천후는 고기를 한 점 뜯어 씹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에겐 더 큰일이 남아 있다. 시작은 지금부터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왕전 등의 표정이 변했다.
그들에게는 공통의 꿈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언젠가 혁련천후가 거론했던 천하군림의 꿈이었다.
그것을 위해 자신들은 생명을 건 도박을 했다.
충분히 강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금역에서 오 년 동안의 피나는 수련을 했다.
그 와중에 한 번의 각성과 한 번의 초월을 경험했다.
뒤늦게 합류를 할 일곱이 모두 모이면 천하의 어떤 집단과도 능히 겨룰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겐 있었고, 그 어떤 문파도 무너뜨릴 자신도 있었다.
청명과 청진이 다시 잘게 썬 고기를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혁련천후가 둘을 향해 물었다.
“환술(幻術)을 들어 보았느냐?”
“들어는 보았습니다만 본 적은 없습니다.”
혁련천후는 둘에게 환술을 가르칠 수하를 떠올렸다. 그라면 이 두 명을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너희들은 환술을 배우게 될 것이다. 천하 최강의 환술을…….”
왕전이 끼어든다.
“놈들을 노랑머리에게 맡길 생각이십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혁련천후, 왕전이 청명과 청진을 돌아보며 히죽 웃는다.
“죽었다고 복창해라. 이놈들아.”
“…….”
멧돼지는 이내 뼈만 남았다.
어둠이 어둑어둑 깔리기 시작했다. 모두는 다시 장원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청의 콧노래도 다시 시작되었다.
* * *
금발에 푸른색 눈을 가진 사내는 뒤를 돌아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제법 끈질긴 놈들이군.”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사내를 쫓아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내를 경공을 펼쳐 쫓고 있는 무사들은 하나같이 적색 전포에 방립을 깊숙이 눌러쓰고 있었다.
“치사한 놈들! 고작 구슬 하나 때문에 개떼처럼 몰려오다니.”
거리가 점점 좁아졌다.
말보다 빠른 사람이라니. 평범한 사람들이 보았더라면 기절초풍을 하고도 남을 광경이었다.
지척까지 이르렀을 때, 무리의 선두에 섰던 자가 금발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쐐액!
막강한 강기가 머리 위에서 떨어지자 청년은 말을 버리고 몸을 날렸다. 동시에 질주하던 말이 동강이 나며 피를 뿌렸다.
“쳇! 더럽게 빠른 놈들이군.”
죽립인들은 재빨리 금발 사내를 포위했다.
말을 두 토막으로 잘라 버린 자가 성큼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신물을 내놓아라!”
“그깟 구슬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런 생난리를 치는지, 나 참!”
“내놓지 않으면 사지를 하나씩 잘라 버릴 것이다!”
방립인에게서 지독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이봐, 그 구슬은 원래 내 것이었다고 알겠어? 그런데 내가 왜 네 손에 죽어야 돼?”
“미친놈.”
방립인은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청년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이거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돌아 버리겠네.”
“대주의 명으로 가급적 살생을 자제하려고 했다만 신물을 훔친 네놈은 그냥 둘 수 없으니 그만 죽어 줘야겠다.”
번쩍!
한 줄기 섬광이 일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방립인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사내는 이미 저만치 뒤에 서 있었다.
“이봐, 칼질 함부로 하면 다쳐.”
청년의 신법을 본 주변을 에워쌌던 자들이 일제히 다가들기 시작했다.
방립인이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내가 처리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는 눈빛 하나 바뀌지 않고서 뒤로 물러섰다.
금발 사내가 특유의 활발한 어조로 물었다.
“너희들 그 무식한 칼잡이 놈하고 어떤 관계냐?”
“……무식한 칼잡이?”
“그래 무식한 칼잡이. 내가 이것을 그놈에게 주었는데 어떻게 네놈들이 이걸 가지고 있는 거지? 설마 그놈을 너희들이 죽인 것은…… 아니지, 그건 말도 안 되지. 아무튼 너희들과 관산악, 그 무식한 놈과 무슨 관계냐 이 말이다.”
흠칫!
살기를 머금고 다가들던 방립인이 그 자리에 몸을 세웠다.
“대주님을 어떻게 아느냐!”
“대주님? 그럼 그놈이 너희들 대장이었냐?”
“닥쳐라!”
싸늘한 태도에도 금발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져 갔다.
“오호! 그러니까 너희들이 그놈의 부하들이라 이거지? 마침 잘됐군. 혼자서 그곳까지 가려니 꽤나 심심했는데 말이야. 엇!”
말을 하던 사내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그가 섰던 곳에 방립인의 칼이 떨어졌다.
쾅!
“그분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이런 미친 새끼! 말하고 있는데 칼질을 해 대고 지랄이야!”
“그분과 어떤 관계인지 사실대로 고해라.”
대도를 겨눈 방립인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그놈 형이다.”
“미친 새끼!”
방립인의 대도가 다시 불을 뿜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내를 베지 못했다. 방립인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렸다.
한 번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세 번을 모두 손쉽게 피하자 비로소 눈앞의 허약하게 생긴 사내가 고수라는 것을 인정했다.
“상관의 형님에게 칼질을 하는 놈들도 다 있네? 너희들 그러다가 나중에 그놈하고 만나면 어쩌려고 이러냐?”
“미친놈! 네놈 상판이나 한번 보고 그따위 개소릴 지껄여야지!”
“내가 언제 친형이라고 했냐? 의형이다, 의형!”
“의형 좋아하네.”
방립인은 사내의 말장난에 놀아날 시간이 없었다. 신물을 빨리 회수하고 대주를 찾아 강호로 나서야 한다.
청년이 결코 쉽게 볼 자가 아니라 생각한 그는 전력을 끌어 올려 대도에 실었다.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