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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47화 (4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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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47화>

문제는 그들이 그것을 빌미로 내세운 조건이었다. 당가주 당효는 쌍방 간에 고수 셋을 뽑아 대결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들이 지면 향후 전쟁을 중단하고 철수를 하겠다는 것과, 반대로 화산이 지면 향후 십 년간의 봉문(蓬門)을 요구한 것이었다.

연무장에 모인 화산의 제자들은 그 같은 장문인 태허의 발표에 술렁거렸다.

대부분은 목숨을 걸고 싸우자는 강경한 의지를 보였지만 후일을 도모하자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화산이 중재안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전해들은 당가주 당효는 쾌재를 불렀다.

맹의 중재안이 차라리 더 잘되었다고 여겼다.

쓸데없는 피를 흘리지 않고도 화산을 구대문파에서 끌어내릴 수가 있게 되었지 않은가. 팽린과 팽가의 고수들은 썩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오후가 될 무렵 당가와 오대세가의 고수들은 드디어 화산의 산문을 넘어 본관으로 들어섰다.

화산이 생긴 이래 외부 세력이 불온한 뜻을 품고서 본산을 밟은 것은 최초의 일이었다.

전운이 순식간에 화산을 감돌기 시작했다.

양측의 고수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살기를 드러냈는데 당가와 오대세가의 고수들은 화산제자들의 기세가 의외로 강렬했던 까닭에 적잖이 놀랐다.

영호찬이 다가왔다.

“출전할 사람들은 정하셨소?”

“우리야 이미 정해 놓았소. 헌데 저자들은 왜 이리 꾸물거리는 것이오!”

“곧 명단을 준다고 했으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흥! 혹시라도 시간을 끌 요량으로 수작을 부리는 것이라면 중재고 뭐고 우리 식으로 처리를 할 것이니 가서 서두르라고 전해 주시오!”

당효의 오만한 태도에 영호찬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천하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으니 경거망동은 삼가시는 게 좋을 것이오, 가주!”

“맹의 체면은 세워 줄 만큼 세워 주었으니 호법께선 이쯤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당효의 여전한 태도에 영호찬은 내심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맹이 그들의 의지를 강제할 순 없다.

무림 문파 간의 싸움은 세간의 그것과는 다르다. 명분이 없더라도 싸우고 말고는 그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다.

비록 명분 없는 싸움을 일으킨 쪽이 세간의 비난을 받겠지만 당사자들이 그것을 무시하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때 팽린과 장로 당곽이 당효의 옆으로 다가왔다.

화산이 중재안을 허락하면 그들 셋이 대표로 나서기로 이미 결정이 난 상태였다.

“화산파가 아닌 외부의 인사를 대신 내세우면 이 책임은 모조리 맹에게 전가가 될 것이오! 하니 호법께서는 그 점을 보다 확실히 해 주어야겠소!”

“화산파가 아닌 사람이 출전을 할 리가 있겠소이까?”

“저자들이 승산이 없음을 알고도 중재안을 받아들이니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외다.”

당곽으로서는 당문성을 나뭇잎 하나로 기절시킨 정체불명의 인물이 마음에 걸렸다.

해서 확실하게 선을 그어 놓을 심산으로 영호찬에게 경고를 한 것이었다.

“후후후. 드디어 나올 모양입니다.”

팽린이 비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태청각의 문이 좌우로 벌어지고 있었다. 뒤이어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때였다.

영호찬의 옆에 서 있던 나웅은 태청각을 나서는 이들을 보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저자들이 왜 저곳에 있단 말인가!’

혁련천후와 왕전을 본 나웅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왜 저곳에서 나온단 말인가. 그것도 화산파의 복장을 하고서.

당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들이 나선다는 말이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소이다.”

영호찬도 뜻밖의 인물들이 나오자 내심 크게 의아해하던 터였다.

당연히 나올 것으로 예상했던 장문인 태허와 매화무적 진유는 맨 뒤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무복도 아닌 예복을 입은 채.

영호찬의 의구심 어린 눈이 혁련천후와 왕전 등을 향할 때, 나웅은 당효 등을 돌아보았다.

그의 속내는 이랬다.

‘이 싸움은 화산이 무조건 이긴다. 그런데 저들이 화산파 소속이 아니라면 이 대결은 의미가 없는 것인데…….’

제8장 감히 감당할 자, 없었다

태청각을 나선 혁련천후와 왕전 등은 연무장을 천천히 가로질러 당효의 앞에 섰다.

[오랜만이다, 애송이.]

왕전의 전음에 나웅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비쳤지만 굳이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영호찬이 장문인 태허에게 물었다.

“출전을 할 분들은 정하셨소?”

태허를 바라보는 영호찬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태허는 당효와 팽린 등을 천천히 쓸어 보았다.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둘을 매섭게 노려본 태허는 다시 영호찬을 응시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깜짝 놀랄 만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본 화산은 맹의 중재안을 거부하기로 했소.”

“뭣이!”

“장문인!”

영호찬과 나웅 등은 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당효 등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장문인! 그게 진심이오?”

영호찬이 다시 물었다.

그는 화산의 결정이 믿기지 않았다. 만족할 만한 중재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피해는 줄일 수 있는 방도라고 여겼던 그로서는 화산파의 거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뜻은 변함이 없소이다. 단 당가에서 중재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렇게 할 용의는 있소이다.”

그야말로 당효의 입장에선 주객이 전도된 형상과도 같았다.

당효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나온다면 어쩔 수 없지. 저들이 맹의 중재안을 거부했으니 이제 맹은 빠지시오!”

당효는 영호찬 등을 향해 싸늘히 외쳤다.

“흥! 뭘 믿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만 자초했으니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태허!”

팽린은 뒤에 서 있는 매화무적 진유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얼어 죽어도 자존심인 있다 이건가? 후후후! 어쨌든 나로서는 반가울 뿐이지. 이젠 아주 합법적으로 화산을 무너뜨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당효와 팽린이 돌아서려고 할 때였다.

“이쯤에서 물러나면 목숨은 구할 수 있다.”

“……뭐?”

당효와 팽린이 돌아섰다.

혁련천후는 둘을 향해 다시 말했다.

“난 두 번의 기회를 줄 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다. 하니 돌아가서 머리를 맞대고 잘 생각해 보도록.”

팽린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아이고, 그러셔요? 이거 어디 무서워서 서 있을 수가 있겠나.”

“너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각이다. 그 안에 뜻을 정확하게 전하지 않으면 그 이후에 어떻게 될지는 너희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그 말을 끝으로 혁련천후는 돌아섰다.

왕전과 담대소천, 그리고 흑야는 돌아서기 전에 당효와 팽린을 향해 비웃음을 날려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꼬마. 너 그러다 뒈진다? 흐흐흐.”

“꼬마치고는 덩치가 좋은데.”

“팽가의 꼬마들은 다 저렇더라.”

셋의 비아냥거림에 팽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영호찬은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대체 화산파가 무엇을 믿고 저렇게 나오는지 그들은 당최 혼란스러워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다만 나웅만은 연무장을 걸어가는 혁련천후와 왕전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전면전이라도 승부는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혁련천후와 왕전의 가공할 무력을 본 적이 있었던 그로서는 저들이 저렇게 나오는 것도 크게 무리가 아니라 여겼다.

당가와 팽가의 연합군이 들끓기 시작했다.

중재안 결렬이 전해지자 그들은 차라리 잘되었다며 당장에 쓸어버릴 듯 전열을 정비하며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때마침 단리세가의 고수들이 올라오자 그들의 사기는 한층 배가되었다.

영호찬과 나웅이 그들에게 한 번 더 생각할 것을 종용했으나 그들은 들은 척도 않았다.

“남해검문이 너무 늦는 것 같소.”

당곽의 말에 팽린이 화산파의 검수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들이 없어도 무조건 우리가 이깁니다. 당장에 공격을 해 버리시지요!”

당효도 팽린과 생각이 같았다.

뒤늦게 와서 사정을 잘 모르는 단리세가의 고수들은 왜 지금껏 싸움이 끝나지 않는지, 오히려 그 점을 의아해했다.

당가와 팽가만으로도 충분히 쓸어버렸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당효는 싸늘히 웃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는 꼬락서니하고는. 좋소! 지금 당장 공격을 할 것이니 다들 전투태세를 갖추시오!”

스르릉!

팽린이 대뜸 대도를 뽑으며 왕전 등을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발했다.

“너희들부터 죽여 주마.”

화산의 제자들은 바람에 장포 자락을 날리며 서 있는 혁련천후의 뒷모습을 보고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장문인과 장로를 비롯한 사문의 어른들이 그를 지나치게 깍듯이 대하고 있었으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혁련천후 등이 온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고 있었던 진청을 비롯한 다섯 명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편, 중재안을 거부한 것이 전해지면서 모두는 이내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왕전이 연무장 건너편에 포진하고 있는 적진을 바라보며 씩 웃는다.

“이쯤에서 시작을 해야지 않겠습니까?”

혁련천후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담대소천은 이미 청룡언월도를 손에 쥐고 있었다.

흑야는 언제 나처럼 팔짱을 하고서 무심히 적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공.”

왕전의 재촉에 혁련천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왕전이 히죽 웃으며 칼을 뽑았다.

스르릉!

“모조리 다 죽입니까?”

“그럴 필요 없다. 스스로 물러가게 만들면 그 자체로 놈들은 얼굴을 들 수 없게 될 테니 적당히 겁만 주도록 해.”

“예? 놈들 때문에 죽어 간 화산의 제자들이 몇 명인데 그런 말씀을…….”

왕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혁련천후의 성격을 감안하면 직접 나서서 모조리 죽여도 시원찮을 거라 여겼는데 죽이지 말라니.

담대소천과 흑야도 같은 표정으로 혁련천후를 응시하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말이 이어졌다.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진정한 두려움은 차후, 절실히 느끼게 해 줄 것이다. 하니 군말 말고 지금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셋이 느릿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진유가 혁련천후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저분들만 나서는 것입니까?”

“신성한 사문에 더러운 피를 흘리게 할 순 없다.”

“……예?”

“알아서 할 테니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기나 하거라.”

진유는 더 나서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는 도무지 혁련천후를 이해하지 못했다. 중재안을 거절하더니 대뜸 세 명에게 적을 물리치라는 명령을 내리다니.

진유는 연무장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셋을 응시하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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