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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45화 (45/425)

# 45

<귀환무사 45화>

당곽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따지듯 물고 나오자 당효가 말을 이었다.

“천하가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소. 비록 화산이 쇠락의 길을 걷고는 있다지만 그래도 엄연한 구대문파의 한 곳이 아니오. 이러한 화산을 본 세가가 주력이라 할 수 있는 독을 쓰지 않고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천하는 우리 사천당가를 달리 보게 될 것이 아니겠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본가는 변방인 사천을 넘어서서 중원의 명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오.”

당효의 말에 당곽과 당문성은 크게 놀라는 눈치였다.

“다들 수고했으니 해가 뜨기 전까지 좀 쉬도록 하시오. 문성이 너도 무사들에게 그리 전하여라.”

“예! 아버님!”

당효는 당곽을 물러가게 한 다음 군막으로 들어가 피에 전 옷을 갈아입고 휴식을 취했다.

한편, 당문성은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앉은 팽린에게 다가갔다.

팽가의 고수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팽린은 당문성이 다가오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맞았다.

“오늘 하루 수고가 대단히 많으셨습니다. 세가를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대협님들!”

“감사할 것이 뭐가 있겠소. 우리도 나름대로 화산에 갚을 것이 있어서 온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팽가의 무력 부대 자전대주 팽섭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팽가의 고수들은 총사를 맡은 당효의 전략 때문에 쓸데없이 하루를 더 허비하게 되었다며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팽린이 다소 차가운 어조로 묻는다.

“가주님께선 뭐라고 하시더냐?”

“내일 끝장을 보시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계십니다.”

“생각만 바꿨으면 벌써 끝났을 전쟁이다. 덕분에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입었고, 화산의 사기만 높여 주지 않았느냐!”

“…….”

팽린의 질책에 당문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보다 몇 살이 위인 데다 평소부터 친분이 막역했기에 팽린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들 수고했으니 들어가서 쉬도록 해.”

세가의 고수들에게 말을 전한 팽린은 당문성을 힐끗 노려보고는 자신의 천막으로 들어가 버렸다.

팽가의 고수들도 저마다 각자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홀로 남은 당문성이 한숨을 내쉬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난데없이 파공성이 울렸다.

쐐액!

퍽!

“윽!”

당문성이 휘청거리며 그대로 뒤로 내다 꽂혔다. 그런 그의 어깨에 나뭇잎 하나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상당한 충격에 당문성은 일어서려 꿈틀대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어 버렸다.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안광이 나타났다.

모두 여덟 개의 안광은 이내 하나만 남기고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안광은 몇 번을 깜박이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뭣 같지도 않은 새끼들인데 그냥 확 쓸어버리자.”

“주공께서 빨리 오라신다, 이놈아.”

“쩝!”

어김없이 떠오른 태양이 피에 젖은 화산을 비춘다. 천신만고 끝에 본관에 합류한 화산의 제자들은 이중 삼중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산 아래 능선을 주시했다.

화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매화무적 진유의 얼굴은 매우 굳어 있었다.

쳐들어온 적들의 전력이 예상보다 더 강했다.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하나하나가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자신에 필적하는 고수들도 여럿 있었다.

특히 자신과 직접 부딪혔던 당가의 장로는 당가주 당효를 넘어선 엄청난 고수였다.

무엇보다 그를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곧 있으면 합류를 할 남해검문과 단리세가가 어느 정도의 전력을 보내느냐 하는 점이었다.

‘오늘은 선전을 했다만 그들이 합류하면 더는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아프다.

화산이 멸문 직전에 놓였다.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마땅한 대책이 없었다.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던 진유는 시선을 돌려 세 명의 각주들을 찾았다.

한곳에 모여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들이 보이자 진유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훌륭하게 성장을 해 주었구나.’

그들 셋이 의외의 선전해 준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진유의 고개가 이번엔 다른 쪽의 원로들을 향했다.

장로들이 장문인과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짜는 모습이 보이자 비통함에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작전은 소용이 없게 되어 버렸다. 남아 있는 방법은 한곳에 끌어 모아 집단전을 펼치는 것이 유일했다.

“사형!”

부르는 소리에 진유가 고개를 돌렸다.

진호를 비롯한 각주들이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자 애써 밝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냐?”

“그냥 별다른 대책이 있는가 싶어 와 봤소.”

진호의 무뚝뚝한 진유는 미소를 머금어 보였다.

“방법이 있겠느냐? 그냥 머릿수로 붙어 보는 수밖에.”

“준비했던 화살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곧 있으면 놈들이 들이칠 텐데, 저지할 방법이 마땅찮아 걱정입니다.”

진명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살아남은 적들은 그러한 공격이 무용지물인 고수들이다. 사대제자들만 제외하고 모두가 총력전을 펼칠 수밖에.”

“여차하면 산에다 불이라도 질러 버립시다!”

진청의 과격한 발언에 진호가 놀라며 그의 입을 막았다.

“이놈아! 어른들께서 들으시겠다.”

진유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청이 너무나도 기특했다.

“그놈의 입은 언제쯤 무거워지겠느냐?”

나무랐지만 말속엔 따뜻함이 담겨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대사형.”

진명이 머리를 조아렸다.

사문을 위기로 몰아간 사건의 발단은 자신들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진유의 태도가 그들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진호도 머리를 숙였다. 진청은 일부러 다른 곳을 응시했다.

“형제간에 그런 말은 할 필요가 없다. 곧 있으면 놈들이 올 것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자꾸나.”

진유는 셋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고는 장문인과 장로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진청이 눈빛을 내며 말했다.

“전보다 확실히 강해진 것 같지 않습니까? 직접 싸워 보지 않았지만 맹호도 팽린의 움직임이 마치 느린 동작처럼 확실하게 다 보이던데 말입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진명이 진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사형은 놈과 직접 싸우셨지 않습니까? 어땠습니까?”

“정상적인 상태에서 싸운다면 오십 합을 넘기기 힘들 것이다.”

“글쎄다. 그저 한 번의 공방만 주고받아서 딱히 평가를 하긴 곤란한데……. 어쩌면 정상적인 상태에서 싸우면 백 초식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백 초식이나요?”

둘이 눈을 휘둥그레 치뜨며 놀라워했다.

하북팽가의 미래라 불리는 맹호도 팽린을 상대로 백 초식을 견뎌 낸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팽린과 비슷한 수준인 대사형 진유와 붙었을 때, 십 합을 넘어본 적이 없었던 진호임을 감안하면 거짓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진호가 말을 이었다.

“이전까지는 몰랐는데, 그분들에게서 받은 수련이 우리를 고수로 만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셋의 머릿속에 동시에 혁련천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저들과의 한 달 수련은 십 년의 수련 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진짜였어.’

진청은 상기된 표정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진명이 산 아래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안 오실 건가 봅니다.”

“이미 그분들에게 우린 충분히 도움을 받았다. 그분들이 아니었더라면 우린 어제 벌써 죽었을 것이다.”

“…….”

진호의 말에 진명과 진청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이냐!”

당가주 당효가 아침부터 크게 놀라고 있었다.

멀쩡하던 아들이 아침에 혼절한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장로 당곽의 얼굴이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맹호도 팽린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굳어 버리게 만든 것은 당문성의 어깨에 깊숙이 박혀 있는 나뭇잎이었다.

“어제 문성이와 함께 있었을 때, 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활엽을 던져 문성이를 혼절하게 만들었다면…….”

당곽이 말을 받았다.

“화산을 돕기 위해 우리가 모르는 고수들이 온 것은 아닐지 심히 우려되는구려.”

아들의 부상에 놀라고만 있던 당효의 낯빛도 어느새 둘을 닮아 굳어졌다.

당곽이 말을 이었다.

“막약 화산을 돕기 위해 고수들이 몰려왔다면 전략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오, 가주.”

“그럴 수는 없소. 하루를 더 기다려 남해검문의 고수들이 합류하기를 기다렸다 치면 되지 않겠소. 그리고 여차하면 독공이라도 쓸 수밖에요.”

당효로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었다.

중원 진출을 도모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기 때문이었다.

팽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된 이상 물러서면 되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입니다. 가주님의 말씀대로 남해검문과 단리세가가 합류하면 여전히 승산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제깟 놈들이 고수들을 불러 봤자 몇이나 불렀겠습니까.”

팽린이 호기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당곽은 좀처럼 불안감을 떨쳐 내지 못했다.

“만약 이보다 더 높은 수준의 고수라면…… 숫자상의 우위는 무의해진다고 봐야 하오. 절대 고수 한 명이면 절정 고수 백 명이 있어도 막을 수 없다는 게 정설이오. 노부는 그 점이 심히 우려되는구려.”

“…….”

묵묵부답인 당효와는 달리 팽린이 다시 한 번 호기를 드러낸다.

“천하에 절대 고수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하물며 다 쓰러져 가는 화산을 도울 존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군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사태를 너무 크게 보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당곽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팽린이 그런 당곽을 보며 내심 불만을 터트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물러설 순 없잖아, 이 양반아!’

그때 당효가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까지는 공격을 하지 않겠소. 사람을 보내어 남해검문과 단리세가의 고수들이 어디까지 왔는지부터 알아봐야겠소.”

“이놈이 아이들에게 그리 전하겠소.”

장로 당곽이 서둘러 천막을 빠져나갔다.

한편, 해가 중천에 올랐음에도 적의 움직임이 없자 화산파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연이어 빠른 무사들을 능선 아래로 급파했다.

“능선에 진을 친 채 휴식만 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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