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41화 (41/425)

# 41

<귀환무사 41화>

당효의 질책에 당문성은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 장대한 체구를 지닌 이십 대 후반의 장한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하하하! 무슨 말씀들을 나누고 계십니까?”

“허허! 별것 아닐세. 그나저나 술도 마시고 좀 쉬지 않고서…….”

“아닙니다. 죽일 놈들을 눈앞에 두고는 술이 넘어가질 않습니다. 놈들의 목을 베어 버린 후에 그때 제대로 마셔야지요.”

청년은 하북팽가의 맹호도(猛虎刀) 팽린이란 인물이었다.

하북팽가의 후계자이자 팽무철의 형으로서 그는 천하오객에 버금가는 대단한 고수로 알려져 있는데 곧 있을 영웅 대회의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는 자이기도 했다.

당효가 흡족한 표정으로 팽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를 보니 내 마음이 다 든든하네. 허허허!”

“과찬이십니다. 범 같은 문성이가 옆에 있는데 어찌 그런 말씀으로 부끄럽게 하십니까. 하하하!”

“제가 감히 형님께 견줄 수가 있겠습니까? 듣기 민망합니다.”

당문성이 성정에 어울리지 않는 겸양을 보인다.

그가 아무리 독과 검으로 절정을 밟은 고수라고 해도 팽린에겐 한 수가 모자라는 수준이었다. 같은 절정이라도 시기에 따라서 그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클 수밖에 없다.

“공격 시점을 언제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팽린의 물음에 당효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해가 밝으면 그때 총공격을 할 생각이네. 밤에 야습을 한다면 천하인들이 우리를 비웃지 않겠는가.”

“옳습니다. 과연 가주님답습니다! 하하하!”

껄껄 웃는 팽린.

생사대전을 앞두고도 그들은 전혀 긴장의 빛이라곤 보이질 않았다. 모든 면에서 자신들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태도라 할 수 있었다.

한편, 산문을 내려온 진호는 진명의 매화각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초 질풍각과 매화각만이 협곡에 진을 치기로 했던 화산은 당가의 고수들이 한꺼번에 총공격을 할 거라는 첩보를 접하고는 기존의 생각을 바꿔 매복지를 변경했다.

화산의 최고수 매화무적 진유는 조금 뒤에 쳐져서 전체 상황을 아우르는 임무를 맡았고, 전방은 질풍각과 매화각의 고수들이, 그리고 가장 후방은 상대적으로 무공이 약한 사대제자들이 포진했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며 어두웠던 협곡을 서서히 비추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일출은 희망보다는 다가올 피의 전투에 대한 막중한 긴장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일출이 핏빛을 띠어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협곡의 중턱에서 산 아래를 주시하는 매화무적 진유가 옆을 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확실히 이곳으로 모조리 몰려온다고 했느냐?”

“정찰을 간 제자들이 분명 그렇게 전해 왔습니다.”

매화검수 하나가 대답하자 고개를 진유의 눈빛이 가늘게 흔들린다.

“우리 화산쯤은 그냥 정공으로 밀어붙여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분노가 치민다.

사천당가가 암습과 독, 그리고 암기술로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대규모 싸움이든 개인 간의 싸움이든 그들은 정면 대결보다는 기습 위주로 전투를 벌여 왔다.

당연히 그들의 기습과 암습을 염려했던 진유는 그들이 정면으로 한꺼번에 치고 오는 전술을 펼친다고 들으니 조금은 수월해졌다는 안도감이 드는 동시에 자신들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에 분노가 치밀었다.

‘당가는 그렇다고 쳐도 팽가와 단리세가에선 누가 온 것일까?’

그것이 매우 궁금했다.

합동 작전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가주나 장로 정도의 인물들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맹호도 팽린이 왔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그였다.

자신과 비슷한 연배에 비슷한 무위를 지닌 팽린은 자신을 비롯해 몇 명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고수이다. 싸움을 즐기는 팽린의 성정으로 보아 저 아래에 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말 그가 왔다면 이 전쟁은 더욱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대사형!”

협곡 아래에서 고수 하나가 몸을 날려 진유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무슨 일이냐?”

“놈들이 움직였습니다.”

“거리는?”

“반 시진 후면 협곡에 이를 것 같습니다.”

진유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협곡을 지키고 있는 사문의 제자들을 천천히 쓸어 본 그는 몸을 날려 질풍각의 고수들이 매복한 곳으로 갔다.

질풍각주 진호가 그를 맞았다.

“왔소?”

진호가 뜻밖에 담담함을 보이자 진유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넸다.

“두렵지 않느냐?”

“두려워한다고 안 될 게 되겠소. 그냥 죽으면 죽는 거고 살면 좋은 거고. 뭐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소.”

진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진유는 빙그레 웃었다.

“수련을 했다고 하더니 간을 키우는 수련을 했구나.”

“흘흘! 그러게 말이오. 쓸데없이 간덩이만 부은 건 아닌지 걱정이오.”

진호가 씨익 웃어 보이자 진유는 왠지 마음이 든든했다.

자신과 같은 배분을 지닌 진호는 나이도 한 살 차이밖엔 안 되었기에 사형제 간을 넘어 친구처럼 지내왔었다.

“싸우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이선으로 물러나야 한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본관까지 유인해서 그곳에서 결판을 낼 것이다.”

“알겠소.”

척!

진유는 진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죽지 마라.”

“뭔 재수 없는 말씀을…….”

“나중에 보자.”

진유가 몸을 날려 사라졌다.

“나도 안 죽을 테니 사형도 죽지 마시오.”

고개를 돌리는 진호의 얼굴은 조금 전과는 달리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진유가 오는 것을 보고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일부러 태연한 척을 했었다.

휘이잉!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숲을 내려다보며 진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디 올 테면 와 봐라, 개자식들.”

* * *

청명과 청진은 가장 뒤쪽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대부분이 막내라 할 수 있는 사대제자들인 까닭에 전투에 투입되기보다는 본관과 협곡을 오가며 상황을 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모두 오십여 명에 이르는 그들은 다가올 싸움에 대한 긴장감으로 벌써부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나마 청명과 청진은 좀 나아 보였다.

수련의 덕분이리라.

“물리칠 수 있을까?”

“…….”

청명의 물음에 청진은 답을 하지 못했다.

“하늘이 우리를 돕는다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갖자.”

“하늘이 언제 우리 편인 적이 있었어야 희망을 갖지.”

청진의 대답에 청명은 씁쓸히 웃었다.

“하긴…….”

그때 둘의 뒤쪽에서 누군가 내려섰다.

진청이었다.

“오호! 이놈들 여기 있었군.”

“오셨습니까.”

진청은 애써 태연한 척을 하려 드는 청명과 청진을 보며 내심 울컥했다.

‘두렵겠지. 온몸이 굳어지고 정신이 흐려질 정도로 두려울 것이다. 나 역시 그러니까…….’

속내와는 달리 진청은 일부러 활짝 웃어 보이면서 둘의 머리를 한 대씩 쥐어박았다.

“무섭냐?”

“아, 아닙니다.”

“무서워할 것 없다. 여기 화산은 지금껏 그 누구의 침입조차 허락한 적이 없었다. 하물며 당가 따위가 어찌할 수 있겠느냐.”

“예!”

둘의 어깨를 어루만져 준 진청은 품속에서 큼지막한 과일 두 개를 꺼내어서 둘에게 건네주었다.

“먹어.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지? 싸움이 일어나면 본관까지 뛰어다녀야 할 테니 먹어 둬.”

둘이 머뭇거리자 강제로 손에 쥐여 준 진청은 그 자리에 털썩 앉더니 뒤로 벌러덩 누웠다.

“각주님은 본관에 계시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냥 와 봤다. 기왕 싸울 거면 먼저 싸워 보고 싶기도 하고…….”

“두렵지 않습니까?”

“두렵지. 도망가고 싶을 만큼.”

“…….”

과일을 먹던 둘이 서로를 돌아보고는 이내 진청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그냥 가짜 사부들하고 수련을 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설마 저 밑에 있는 당가 놈들이 그분들만 하겠냐?”

“…….”

잠시 우두커니 섰던 청명이 돌연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저는 그분들이 반드시 저희들을 도우러 오실 거라 믿습니다.”

“믿지 마라. 믿어서도 안 되고.”

“왜 믿어서도 안 됩니까?”

“우린 충분히 도움을 받았다. 몇 번이나 구해 주신 것도 그렇고, 수련까지 받았지 않느냐. 그러니…….”

진청은 말끝을 흐렸다.

말을 하다 보니 그 역시도 혁련천후가 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제길, 또 약해지네.’

진청은 벌떡 일어섰다.

“나중에 보자.”

둘을 보며 웃어 준 진청은 질풍각이 배치된 곳으로 몸을 날렸다.

“오늘따라 굉장히 부드러우신데?”

“그러게.”

칼날처럼 날카롭던 평소의 진청이 아니자 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제7장 격돌

만년삼왕(萬年蔘王)은 이름 그대로 삼의 제왕이다.

만 년 동안 대지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온 삼(蔘)이라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천고에 드문 영약으로 알려진 만년삼왕은 그저 전설로만 전해져 올 뿐이었다.

그런데 그 귀한 만년삼왕을 반드시 구해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십지신검 독고무였다.

“만년삼왕만 구할 수 있다면 완쾌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말을 들은 독고무는 결코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전설로만 전해 오는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단 말인가.

상심을 달래려 술잔을 기울이던 독고무는 맞은편의 청년을 보며 침통한 어조로 물었다.

“진정 만년삼왕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오?”

“독을 쓴 자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당연히 해독약이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만년삼왕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독고무의 낯빛은 이내 어둡게 가라앉았다.

상심한 독고무는 독한 화주를 연거푸 마셔 댔다.

청년은 그런 독고무를 보며 내심 고민에 빠졌다.

‘이거 나의 신분을 밝혀야 하나? 나중에 주공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밝혀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잘못되면 맞아 죽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신분은 절대 세상에 드러내선 안 된다.

몰론 주인의 일이 끝이 나면 그때는 문제 될 것이 없지만 그 전엔 무조건 신분을 감추고 살아야 한다. 주인이 그렇게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밝히지 않으려니 후환(?)이 두려웠다.

중독이 된 검후를 치료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중에라도 밝혀지면 그 주인에게 맞아죽을지도 모른다.

‘어쩌다가 이 사람들과 만나 가지고는…….’

내심 한숨을 내쉰 청년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말을 늘어놓았다.

“범인은 검후님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중독된 상태는 신경과 뇌를 부분적으로 마비시켜 실신만을 목적으로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놈이 노리는 것은 검후님의 목숨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독고무가 술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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