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귀환무사 40화>
흔들리던 혁련천후의 두 눈에 지독한 살광이 떠올랐다.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왜!”
쾅!
모두의 시선이 장원을 향해 급격히 돌아갔다.
치솟는 파편의 한가운데에 혁련천후가 있었다. 모두가 크게 놀라는 가운데 혁련천후는 그들의 앞에 내려섰다.
손에 쥐어진 검에서 시퍼런 강기가 줄기줄기 뻗쳐 나오고 있었다.
치르륵!
“물러서라.”
누구를 향한 외침일까?
왕전이 화산의 검수들을 향해 물러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영문을 모른 채 모두는 멀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왕전이 히죽 웃으며 자신의 칼을 뽑았다.
“수련입니까?”
“셋 다 덤벼라.”
철컥!
스르릉!
흑야의 손에 장검이, 담대소천의 손에는 청룡언월도가 이미 쥐어져 있었다.
콰우우!
셋의 주변에서 흙먼지가 치솟기 시작했다.
우웅!
혁련천후의 검에 맺혔던 검강이 두 배는 길게 늘어났다.
“흐흐흐! 봐주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장원은 분주했다.
여기저기서 굵은 통나무를 잘라 오는 화산의 검수들은 왕전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망할 새끼들! 그러게 왜 주공의 기분을 언짢게 해서는…… 아이고, 다리야.”
왕전은 오른 다리를 절룩거렸다.
커다란 통나무 두 개를 어깨에 짊어진 담대소천은 왼 다리를 절고 있었다.
흑야만이 멀쩡했다.
모두는 흑야가 가장 강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날 밤, 생각을 고쳐먹을 수밖에 없었다.
강가에서 운기조식을 하는 흑야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해가 뜰 때까지 꼼짝을 않고 운기조식을 했다.
* * *
시간은 흐르는 물처럼 흘러갔다.
화산파를 향한 당가의 선전포고가 전해진 지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천하의 이목이 섬서로 집중되었다.
사천을 떠난 당가의 고수들이 드디어 섬서에 입성을 한 것이다.
섬서에 들어선 당가의 고수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정도맹에 알리느라 이틀을 더 지체한 후에 화산을 향해 떠났다.
가주 당효가 직접 고수들을 이끌고 있었는데, 단리세가와 하북팽가에서도 고수들을 파견해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두 세가도 단리소와 팽무철 때문에 화산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과 하루의 간격을 뒤로하고 남해검문의 고수들이 화산을 향하고 있었다.
천하를 울리는 여러 문파들의 합공을 받게 된 화산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장문인 태허는 정도맹에 당가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도움을 청했지만 대답은 중립을 지키겠다는 말뿐이었다.
맹주 나백도 어쩔 수 없었다.
정도맹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강경파를 어쩌지 못한 까닭이었다.
초유의 위기에 처한 화산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전쟁을 준비했다.
매화무적 진유자의 지인들 몇이 화산을 돕겠다고 산문을 들어선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지만 그것으로 닥쳐올 위기를 극복하기엔 어림도 없었다.
이미 천하에 나가 있던 제자들이 모두 돌아와 인원은 오백에 육박했지만 고수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못했다.
강호의 역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정도 문파 간의 전면전은 마교나 사련마저도 손을 놓고 섬서를 주목하게 만들었다.
건곤일척의 위기에 놓인 화산파는 연일 대책 회의를 주재하면서 긴장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태청관에서 장로들과 회의를 하고 있는 장문인 태허의 낯빛은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배석한 모든 장로들의 얼굴 또한 그와 같았다.
사문을 대표해서 정도맹에 상주 중이었던 장로 태송자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가 침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맹의 중재가 허사가 되었고 도와줄 문파 또한 없으니 우리 스스로 고난을 헤쳐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소. 하니 다들 죽을 각오로 싸웁시다!”
“그렇습니다. 비록 쇠락했다는 소릴 듣고는 있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면 이겨 내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만의 힘으로 저 무뢰배들을 물리친다면 천하가 우리를 다시 보게 될 것이오.”
태홍자가 거들고 나섰지만 좌중의 분위기는 그저 무겁고 침통할 뿐이었다.
다시 보게 되는 것도 살아남아야 가능한 것, 그것을 생각하던 태허 장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옆에 서 있던 매화무적 진유에게 물었다.
“그자들은 어디까지 왔느냐?”
“빠른 걸음으로 이틀 거리까지 들어섰습니다.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별동대를 보내 그자들의 시선을 흐려 놓는 것이 어떨는지요.”
“유격전을 하자는 것이냐?”
“가장 상대하기가 껄끄러운 것은 당가의 독입니다. 그들이 산문까지 들어와 독을 펼치게 되면 그 피해는 엄청날 수밖에 없습니다. 해서 이곳으로 오기 전에 당가의 고수만이라도 최대한 줄여놓는 것이 최선이라 보입니다.”
장문인 태허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될 말이다. 사문에서 유격전을 펼칠 사람은 진유, 너뿐인데 네가 산문을 비우면 이곳은 누가 방비한단 말이냐.”
맞는 말이었다.
지금 화산에서 가장 강한 고수는 진유자였다. 그가 유격전이나 암살을 목적으로 산문을 비우면 혹시 모를 적의 기습에 그대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 생각하는 유격전이나 암살을 저쪽에서도 생각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화산보다 고수들의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그들이 진유자에 필적할 만한 고수 한둘만 보내면 그야말로 일시에 대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진유가 입술을 깨물며 단호히 말하고 나섰다.
“어차피 이것저것을 다할 수가 없는 입장이라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니 저를 보내 주십시오. 목숨을 바쳐서라도 적들의 발길을 최대한 묶어 두겠습니다.”
“네 목숨은 사문의 것이거늘! 어찌 죽음이란 말을 쉽게 입에 담는 것이냐! 그건 아니 될 말이다!”
태허의 단호한 거부에 진유자는 입술을 깨물며 머리를 숙였다.
태송이 그런 진유를 달래고 나섰다.
“사문의 모든 것이 네 어깨에 달렸으니 몸을 아껴야 한다.”
그때 태홍자는 혁련천후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가 도와준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든 모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쉽사리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화산이 그에게 한 짓을 그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음모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라면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허어…….”
길게 한숨을 내쉰 태홍자는 진유를 돌아보며 물었다.
“돌아온 아이들은 어디 있느냐?”
“각자의 처소에서 쉬고 있습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라. 그래도 제 놈들 생각엔 강해져서 사문에 힘을 보태려 한 것이 아니냐? 일도 이 지경이고 하니 좋은 말로 다독거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혁련천후에게서 수련을 받았던 진청 등은 한 시진 전에 도착해서 각자의 거처에 머물고 있었다.
비상 회의만 아니었더라면 진유자에게 크게 꾸지람을 들었어야 할 그들이었다.
* * *
진청과 진호등은 질풍각에 모였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지옥의 수련을 거쳐 낸 그들은 하나같이 눈빛들이 살아 있었다.
스스로도 강해졌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에 사문의 다른 이들보다 긴장하는 기색이 덜했다.
진명이 말하고 나섰다.
“대사형의 말씀처럼 유격전을 통해 놈들을 혼란케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한데 왜 반대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대사형은 태청각을 지키셔야지 않느냐. 그곳이 무너지면 사문이 무너지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진호의 대답에 진청이 불쑥 나선다.
“그럼 우리가 유격전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진호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수련을 통해 강해진 것은 틀림없다만 그렇다고 해서 유격전을 펼칠 정도까지야 되겠느냐. 하니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좋겠구나.”
모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진청은 예외였다. 그는 유격전을 펼치면 적들을 혼란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때였다.
안으로 검수 하나가 빠르게 뛰어 들어왔다.
“각주님! 놈들이 세 시진 거리까지 들어섰다고 합니다.”
“본진이냐, 아니면 선발대라고 하더냐?”
“본진이라 합니다. 대략 이백 정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젠장!”
“이백 명이나?”
생각보다 많은 숫자에 진청조차도 낯빛이 굳어졌다. 검수가 말을 이었다.
“곧 질풍각과 매화각은 일차 저지선으로 이동할 것이라 합니다. 준비하시는 것이…….”
“우리만?”
진명이 눈을 크게 하고 물었다.
“장로님 두 분이 함께하실 것이라 했습니다.”
진명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호가 그런 진명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너라면 장로님들을 도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니 자신감을 갖거라.”
“알겠습니다.”
“서둘러 가 보자꾸나.”
진호와 진명이 밖으로 나서려고 하자 진청이 따라 일어섰다.
진호가 그를 말렸다.
“질풍각과 매화각만 간다고 하니 너는 이곳에 있어라.”
“가라고 하지도 않은 싸움터로 제가 왜 갑니까? 그냥 장문 사형과 대사형을 뵙고 싶어서 이럽니다.”
“저놈은 수련 동안 주둥이 강화에 힘을 썼나 봅니다.”
진명의 말에 모두는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그때 청명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분들은 정말 오지 않으시려나…….”
일순 모두가 그 자리에서 동작을 멈췄다. 청명은 괜히 말했다 싶어 머리를 푹 숙였다.
“나중에 보자꾸나.”
진호가 먼저 밖으로 나갔다.
진명이 그 뒤를 따랐고 진청도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남은 청명과 청진은 서로를 돌아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우…….”
* * *
당가주 당효는 화산의 초입에서 전열을 가다듬었다. 하나같이 복수심에 불타는 세가의 무사들을 쓸어 본 그는 살기 어린 시선으로 화산을 올려다보았다.
당문성이 다가왔다.
혁련천후에게 입었던 부상이 완쾌된 그는 누구보다 화산을 벼르고 있었다.
“속히 산을 오르셔야지요, 아버님.”
“서두르지 마라. 어차피 놈들이 빠져나갈 곳은 한 곳도 없으니 천천히 숨통을 조여도 충분하다.”
당효는 여유가 넘쳤다.
당문성이 재차 물었다.
“놈들을 쓸어버린 후에는 화산을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것은 차차 생각하자꾸나. 당장은 저놈들을 어떻게 쓸어버리느냐, 그것만 생각하도록 하여라.”
“제깟 놈들이 감히 얼마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저희 세가만으로도 반나절이면 놈들을 쓸어버리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지원군까지 있는데…….”
“어허!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했느니라! 장차 세가를 이끌 놈이 어찌 그리도 매사에 신중하지 못한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