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귀환무사 39화>
“헉! 간 떨어질 뻔했잖소.”
“그 간 내가 다시 붙여 줄 테니 대답해 보시오. 독에 대해 아시오?”
“허 참! 떨어진 간을 붙일 정도의 의술을 지닌 분이 독을 묻다니요?”
“내겐 목숨만큼 중요한 일이라서 그러오. 그러니 어서 대답해 보시오.”
독고무의 눈이 절박함을 담은 것을 본 청년은 더 이상 농을 하지 않고서 정색을 했다.
“조금 배운 적이 있소만,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토록 사람을 다그치는 것이오?”
“도와주시오. 내 누이가 지금 중독이 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소이다.”
청년의 눈이 빛을 발했다.
‘중독? 설마 그 독물에 중독이 되었단 말인가?’
자신의 후각을 자극하는 냄새는 천하에 그 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독성을 지닌 독물이다.
그 같은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당한 자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란 말과 같았다. 그 독은 아무에게나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귀했고 그 값이 천금을 호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한번 봅시다.”
청년의 말에 독고무는 방향을 바꿔 독고혜가 누워 있는 객실로 향했다. 침상에 죽은 듯 누워 있는 독고혜를 본 청년이 미간을 찌푸렸다.
‘틀림없군.’
청년은 자신이 생각한 독물임을 확신했다.
침상 옆에 걸터앉은 그는 거침없이 독고혜의 맥문을 잡아 갔다. 독고무는 청년이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보이자 청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기를 일각이 지났을까? 청년이 잡았던 손을 풀고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독고무가 재빨리 물었다.
“알아내었소?”
“도대체 신분이 뭐요?”
“…….”
뜬금없는 물음에 독고무는 미처 대답을 못했다. 청년이 다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어지간한 집 수십 채는 사고도 남을 만큼 귀한 독이 사용되었소. 이건 필시 당신들의 신분이 대단하다는 말과 같소. 세상에 누가 이런 귀한 것을 아무에게나 사용하겠소. 그러니 신분을 말해 주시오. 치료와 직결된 문제라오.”
“치료할 수 있단 말이오?”
“신분부터 말해 주시오.”
“독고무라고 하오. 그리고 저 아이는 나의 누이 동생이라오.”
순간, 청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억! 그, 그럼 이분이 검후란 말입니까?”
“그렇소.”
청년은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청년의 뇌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자신의 주인이 떠올라 있었다.
주인은 눈앞의 여인을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존재다.
‘아이고 주공! 제가 일부러 잡은 게 아니라 진맥 때문에 그런 것이니 나중에라도 뭐라 하지 마십시오.’
청년은 독고혜의 완맥을 쥐었던 손을 옷에다 박박 문질렀다.
그러고는 독고무를 향해 그보다 더 절박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저분의 손을 잡은 것은 의원으로서 환자를 대한 것일 뿐, 아무런 사심조차 없었음을 증명해 주셔야 합니다, 대협.”
독고무는 청년의 뜬금없는 행동에 미간을 좁혔다. 청년의 행동이 장난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보시오. 내겐 목숨 같은 아이요. 그러니 혹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어서 말해 주시오.”
“방법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좀…….”
“진정 치료 방법을 알고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대신 저분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말투는 어느새 지극히 공손하게 변해 있었다. 태도 또한 좀 전의 장난기라곤 손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쿵쾅!
독고무의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천우신조(天佑神助)가 따로 없었다.
“알겠소. 내 귀하가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제발 저 아이를 해독을 해 주시오!”
“그거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니까…….”
제6장 전운이 감도는 화산
사천당가가 분노했다.
당문성의 부상에 이어 당문칠기의 죽음, 그리고 흉수들을 잡으러 섬서로 길을 떠났던 장로와 일행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당가는 동일한 자의 소행이라 여겨 화산에 전면전을 선포했다.
정도맹의 만류를 뿌리친 그들은 막강한 전력을 이끌고 당장에 화산을 향했다. 끝장을 보기로 작정을 했는지 은거했던 전대의 고수들마저 죄다 화산행에 동참시켰다.
소문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화산에까지 이르렀다.
소식을 접한 화산은 그야말로 초비상 사태로 접어들었다. 장문인 태허는 각지에 나가 있던 모든 제자들에게 귀환령을 내렸다.
그리고 소식은 혁련천후에게도 전해졌다.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며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화산의 검수들이 오늘은 수련을 하지 않고서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모두가 심각한 표정들이다.
왕전과 담대소천, 흑야는 묵묵히 그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혁련천후는 보이지 않았다.
왕전이 검수들을 향해 핀잔을 늘어놓는다.
“사내놈들이 고작 그런 일로 죽상들하고는, 쯧쯧쯧!”
진청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사문의 존망이 걸린 일입니다. 말씀을 삼가십시오.”
“존망? 지랄하고 자빠졌네. 독물을 가지고 노는 놈들 정도를 감당하지 못하면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낫지.”
“그만하십시오!”
진호까지 격분해서 나서자 왕전의 눈썹이 올라갔다. 하지만 이내 안색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혁런천후가 들어오는 것을 본 까닭이다.
진호를 비롯한 모두가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사문을 향한 당가의 선전포고를 들은 그들로서는 혁련천후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사천에서 화산까지 오려면 며칠이나 걸리지?”
“복수에 눈이 먼 놈들이니 불알에 땀이 차도록 달려오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워낙에 먼 거리라 한 달 이상은 더 걸릴 것입니다.”
왕전의 대답에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야가 물었다.
“명령을 내려 주시면 도중에서 요격을 해 버리겠습니다. 대가리만 잘라 내면 다시 사천으로 돌려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다.”
“안 그러면 화산이 큰 피해를…….”
흑야가 말을 잇다가 입을 다물었다.
화산을 입에 담으면 혁련천후가 싫어한다는 것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둘에 비해 신중한 성격을 지닌 담대소천이 전음으로 말했다.
[소문에 단리세가와 남해검문까지 올라온다고 했습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혁련천후는 말없이 왕전이 마시던 술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탁!
쪼르륵!
화산의 검수들은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는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그냥 한번 도와주시지요. 어차피 당가 놈들은 한 번쯤은 작살을 내줘야 할 놈들이 아닙니까.]
왕전의 전음에도 혁련천후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때 진호가 돌연 혁련천후의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으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사문을 도와주십시오.”
다른 검수들도 그의 좌우에 무릎을 꿇었다.
처처척!
혁련천후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는 화산의 제자들을 무심한 눈으로 응시했다.
“나완 상관없는 곳이다.”
차디찬 대답에 모두는 절망했다.
막내 청명이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간곡히 청하고 나선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사문만 살릴 수 있다면 평생 대협의 시종이라도 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도와주십시오! 대협!”
청명이 눈물을 쏟아 낸다.
청진이 그런 청명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했지만 그의 얼굴도 눈물로 범벅이 된 지 오래다.
그때 진청이 고개를 들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저희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습니다.”
혁련천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지켜보고 앉았던 흑야등도 이채를 발하며 진청을 응시했다.
“대답을 해 주십시오!”
진청이 언성을 높인다. 확실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흑야가 중얼거리듯 대답하고 나선다.
“고작 한 달을 배웠을 뿐이다, 애송이.”
애매모호한 대답에 진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고는 혁련천후를 노려보며 말했다.
“살아난다면 다시 볼 수 있겠지요.”
진청이 몸을 돌리자 진호와 진명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둘은 혁련천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는 이내 진청의 뒤를 따랐다.
“나라면 놈들이 올 때까지 이곳에 남아 수련을 더 할 것이다.”
혁련천후의 말에 걸음을 옮기던 화산의 검수들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혁련천후가 말을 이었다.
“한 달이 더 걸린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그 시간이면 너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금보다 두 배는 더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이다. 어떻게 사문에 도움이 될 것인지 스스로 판단을 하여라.”
담대소천이 거들고 나섰다.
그가 일어서자 왕전과 흑야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담대소천이 말을 이었다.
“돌아서라. 내가 너희들에게 죽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
화산의 검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본다.
옳은 말이었다.
당장에 오지도 않을 적을 걱정해서 사문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 그동안에 한 수라도 더 배우는 것이 결국 사문을 위하는 길이 아닌가.
진호가 먼저 돌아섰다.
진명은 여전히 성난 얼굴로 혁련천후를 노려보고 선 진청의 팔을 끌어당겼다.
진청이 마지못해 돌아설 때, 혁련천후는 술잔을 내려놓고 자신의 거처로 들어갔다.
장원의 이 층 창가, 혁련천후는 수련을 하느라 여념이 없는 화산의 검수들을 응시했다.
‘사문을 구해 주십시오.’
‘살아난다면 다시 볼 수 있겠지요.’
청명과 진청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뒤이어 또 다른 환청이 들려왔다.
‘제자야. 네 어찌 사문을 부정하려 하느냐. 이 사부는 결코 사문을 원망하지 않는다. 하니 너 또한 그래야 하느니라. 천 년, 만 년이 지나도 너와 나는 화산의 사람이 아니겠느냐. 허허허.’
꽉!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눈동자가 흔들리며 숨이 가빠진다. 자신의 심장을 찔러 오던 검과 창들이 환형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그 위로 자신을 키워 준 사부의 얼굴이 흐릿하게 나타나더니 자신을 향해 한없이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화산을 지켜 주지 않겠느냐.’
‘사부님…….’
자신을 위해 죽어 가던 사부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사부의 육신을 관통한 수많은 검들이 선홍빛 피를 콸콸 흘려 내고 있다.
“화산을 보호할 수 있겠냐고 물으셨습니까?”
‘허허허. 이놈아, 당연히 그래야지 않겠느냐.’
피를 흘리며 죽어 가던 사부가 다시 웃고 있다.
“사부와 저를 죽음으로 내몬 자들입니다. 그래도 제가 그들을 지켜 줘야 합니까!”
‘그게 너의 숙명이라 하지 않았느냐.’
“싫습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꽉!
이빨이 파고든 입술이 피를 흘린다.
‘이 사부는 너를 믿는다. 석수야…….’
사부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