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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37화 (3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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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37화>

점원이 만두를 들고 왔다.

지나치게 큰 만두여서 반 이상 남긴 일행은 이 층 객실로 오르기 위해 일어섰다.

그러다가 객잔으로 들어서는 인물들을 보고서는 눈살을 찌푸렸다. 황금색 복장을 한 금옥장의 무사들 일곱이 그들을 발견하고선 재빨리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금옥장의 진표가 문주님을 뵙습니다.”

일전에 금옥장의 총관을 수행하고 십지문에 들렀던 진표라는 자로서 객잔을 찾다가 독고무 일행들을 발견하고서 일부러 객잔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신분이 밝혀지면 번거로워질까, 모용미의 인사마저도 피했던 독고무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반갑소이다.”

“검후께서도 계셨군요.”

독고혜는 가볍게 목례만 취하고는 취앵과 함께 이 층으로 올라갔다.

“신분이 밝혀지는 것을 꺼려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시오.”

“아, 예!”

“허면 다음에 또 보도록 하십시다. 그럼.”

수하들과 객잔을 빠져나갔다.

“하아…….”

독고혜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객잔의 난간에 서 있는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상념에 젖어 있었다.

‘나를 잊으신 걸까?’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아니 지금도 여전히 변함이 없는 사내를 떠올리니 천 근 바위가 누르는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다.

모두가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오히려 그 믿음이 그녀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살아 있다면 무조건 자신을 찾아왔어야 하는데,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기별조차 없었다.

혹시라도 자신을 잊었을까 싶어 불안할 뿐이었다.

휘이잉!

서늘한 바람이 그녀의 속을 더 무겁게 만든다.

망부석처럼 멍하니 섰던 독고혜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한 것은 불던 바람의 방향이 미세하게 바뀌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였다.

독고혜의 몸이 빠르게 돌아갔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마찰음!

팟!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가늘고 긴 송곳처럼 생긴 화살이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런 송곳의 끝에는 붉은색 비단이 묶여 있었다. 저려 오는 손바닥의 느낌에 독고혜는 상당히 놀라는 중이었다. 화살이 날아오는 동안 그녀는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했었다.

시위에 올리는 끝 분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화살은 손으로 날린 것이 분명했다.

‘고수!’

절정을 훨씬 넘어선 경지, 그러한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지척까지 숨어들어 화살을 날릴 정도면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강한 고수임에 분명하다.

그런 고수가 왜 자신을 노릴까?

재빨리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어둠에 잠긴 저잣거리와 건물들뿐이었다.

눈빛을 가라앉힌 독고혜는 살의 끝에 묶인 비단을 끌렀다.

그러다가 일순 커다란 두 눈이 파랑을 일으켰다.

‘독!’

비단 조각에 글씨는 없었다.

보이지 않고 냄새조차 없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비단에서 독이 흘러나왔음을 깨달았다.

코와 목이 따끔거렸다.

재빨리 피부의 호흡까지 멈추어 버린 그녀는 이미 미세한 양이 자신의 혈관을 돌고 있음을 느꼈다.

당혹스러웠다.

수년간의 칩거 생활로 인해 무뎌진 감각이 반응을 느리게 만들어 버렸다.

독고혜는 즉시 내공을 운용하여 혈관의 흐름을 제어했다. 그러고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서 취앵이를 깨워 독고무에게 보냈다.

‘바보같이!’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물밀듯 밀려왔다. 어느 정도 독의 진행을 막은 그녀는 침착하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에게 이러한 짓을 할 자를 더듬었다.

‘누굴까? 내게 이런 짓을 할 자가…….’

강호행을 할 때 자신의 손에 죽어 간 사파의 인물들부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자신과 감정이 있을 법한 모두를 더듬어 봤지만 마땅히 떠오르질 않았다. 그녀의 아미가 좁아졌다.

‘무영지독일까?’

가슴 부근에서 통증이 생겨나고 있었다.

혈맥의 흐름을 차단했음에도 이토록 빠른 증세가 나타난다면 맹독임이 분명하다.

휘청!

현기증이 일며 전신에서 힘이 쫙 빠져나가자 독고혜는 침상의 모퉁이를 잡으며 휘청거렸다.

드러난 피부가 푸른색을 띠기 시작했다. 뒤이어 의식이 흐려졌다.

“쾅!’

거칠게 객실 문이 열리며 독고무가 뛰어들었다.

“혜아야!”

한눈에 독고혜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본 그는 재빨리 그녀의 맥문을 낚아채고서 기혈의 흐름을 읽어 갔다.

독고무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아!”

나지막한 신음성과 함께 독고혜의 육신이 휘청거리자 그녀를 부축한 독고무는 침상에 그녀를 눕히고 전신의 혈맥을 빠르게 점해 갔다.

독고무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수년을 가슴앓이 하며 힘들게 보냈던 동생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다.

그래서 강호로 나가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도 함께 나서겠다며 손수 마차까지 몰았다.

그런데 강호행을 나서자마자 암습을 받고 중독이 되어 버렸으니.

“용서치 않겠다.”

“아가씨! 흑흑!”

취앵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의원을 불러오라는 독고무의 말에 그녀는 황급히 객잔을 나섰다.

꽉!

독고무는 자신의 팔을 쥐어 오는 독고혜를 내려다보며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천후…….”

그 말을 끝으로 독고혜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싸아아!

독고무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사방으로 뻗쳤다. 그런 그의 눈에 바닥에 떨어진 화살이 보였다. 그리고 아무런 내용조차 없는 비단도 보였다.

독고무는 화살을 챙겨 품속에 갈무리했다.

현재로서는 화살만이 범인의 유일한 증거품이었다.

“용서치 않으리라.”

쩌저적!

그가 밟고 선 객실의 바닥이 균열을 일으켰다.

* * *

진청은 밤하늘을 보며 사문을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기울기 시작한 사문은 몇 년 전부터 타 문파들로부터 노골적인 수모를 당하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웠던 구대문파조차도 화산을 멀리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노골적이었고 하물며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오대세가는 대놓고 화산을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렸다.

그나마 천하오객의 자리에 오른 대사형, 매화무적 진유가 있었기에 중소문파들의 배척까지는 면할 수 있었지만 한 번 쇠락의 길로 접어든 사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쇠락을 거듭할 뿐이었다.

‘이젠 중소 문파까지도 우습게 보려 하고 있다. 빌어먹을!’

불과 십 년 이전까지만 해도 화산파의 자하각주 하면 천하가 알아주는 요직이었다.

그러나 쇠락을 하면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렇고 그런 자리가 되어 버렸다.

당대의 자하각주는 자신인데, 자신은 오대세가의 무사들조차 감당 못할 수준이다.

“빌어먹을!”

쾅!

진청은 벽을 주먹으로 쳤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자 서글픔과 더불어 분노가 치밀었다. 거의 아물어 가던 가슴의 상처에서 또다시 통증이 올라오자 진청은 홧김에 아침에 청명과 청진이 애를 써서 만들어 놓은 탁자를 부숴 버렸다.

우지끈!

“무능한 양반들!”

진청은 끓는 속을 달래기 위해 장원의 옆을 흐르는 강을 찾았다. 강이라고 해 봤자 조금 넓은 하천에 비교할 만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수량은 제법 풍부했다.

첨벙!

“푸!”

옷을 입은 채로 물에 뛰어든 진청은 그대로 누워 물에 몸을 맡겼다.

그때였다.

“물 튄다, 애송이.”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청은 재빨리 몸을 수습하고는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뒤쪽 물속에서 사람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고는 진청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심장이 멎을 만큼 크게 놀란 진청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런…….’

방에 놓고 온 검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저곳에 사는 놈이냐?”

“그, 그렇다! 헌데 너는 누구냐!”

아무리 놀랐어도 제 성격은 그대로 드러내는 진청. 사내가 그런 진청을 무심히 응시하다가 피식 웃는다.

“저곳에 볼일이 있는 사람이다.”

사내는 강가로 걸어 나갔다. 사내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을 때까지 진청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뭘 어떻게 해 보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잠시 후, 옷을 다 입은 사내가 진청을 불렀다.

“나오지 않고 뭐 하느냐.”

귀신에 홀린 것처럼 진청은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사내는 진청보다 앞서 걸었다.

진청은 사내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살폈다. 흑발을 늘어뜨리고 아무렇게나 허리에 매달은 검은 꼭 혁련천후를 연상시켰다.

두려움과 의구심으로 머리가 복잡해진 진청은 사내가 장원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자 당황해서 외쳤다.

“이, 이보시오.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면 어떡하오!”

진청의 외침에도 사내는 묵묵히 걸었다.

“이보시오!”

대답이 없다.

“이봐!”

진청이 특유의 성깔을 드러내었을 때, 장원에서 혁련천후가 모습을 보였다.

“왔느냐!”

“흑야가 주공을 뵙습니다.”

혁련천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사내. 진청은 두 눈을 휘둥그레 치뜬 채, 둘을 번갈아 응시했다.

* * *

“헉헉!”

진청은 가슴이 터질 것처럼 숨이 차오르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했다.

“그따위 정신력으로는 삼류를 면하기 힘들다, 애송이.”

퍽!

돌멩이 하나가 진청의 등을 강타했다.

사내, 흑야는 팔짱을 하고서 진청을 싸늘히 응시했다.

두 눈은 실망감, 그 자체였다.

- 놈을 최대한 빨리 강하게 만들어 놓도록.

혁련천후의 부탁으로 도착하기가 무섭게 당장에 수련에 들어갔다.

화산의 자하각주라는 말에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작 뚜껑을 열어 보니 실망을 금치 못할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흑야는 힘겹게 일어서는 진청을 향해 다시 싸늘히 외쳤다.

“아직 오백 회가 남았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다 하려면 죽어라 휘둘러야 할 거다, 애송이.”

진청은 입술을 깨물며 자세를 잡았다.

검을 쥔 손에서 피가 뚝뚝 흘렀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휘두른 까닭에 아귀가 터져 버린 것이었다.

그대로 진청은 악으로 버텼다.

- 적어도 한 분야에선 이 세상에서 최강이다.

혁련천후의 말이 그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자신도 흑야처럼 적어도 한 분야에서만큼은 최고가 되고 싶었다.

진청은 악을 쓰며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흑야는 나무에 비스듬히 기대며 눈을 감았다.

쌕! 쌕!

진청은 백 번 정도를 더 휘두르고는 다시 숨을 헐떡이며 동작을 멈추었다.

“헉! 헉!”

검의 무게가 천 근처럼 느껴지자 진청은 검을 손에서 놓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 그의 속내를 읽기라도 한 듯 사내의 싸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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