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35화 (3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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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35화>

“혹시 모르니 시신은 묻도록 하여라.”

“예. 장로님!”

당가의 고수들이 다가오는 장수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남해검문의 고수들은 혹시라도 장수가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말이 달릴 수 있는 공간을 막아섰다.

수상한 움직임에 묵묵히 다가오던 장수의 눈썹이 슬쩍 치켜 올라갔다.

자신을 에워싸는 고수들의 행동이 무엇을 하기 위함인지 눈치를 챘을까? 장수는 말의 옆구리에 걸어 두었던 투구를 집어 머리로 가져갔다.

당가의 고수 하나가 장수를 향해 검을 겨누며 싸늘히 외친다.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우리가 지금 당장 그 말이 필요해서 말이지. 대신 고통 없이 죽여 주는 것으로 사죄하마.”

당가의 고수들이 전마와 장수를 둘러쌌다.

군부의 장수쯤이야 손짓 한 번에 목숨 줄을 끊어 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은 전마가 도주할 것을 우려해 사방을 포위했다. 느릿하게 투구를 머리에 쓴 장수가 무심한 시선으로 자신을 에워싼 고수들을 쓸어 보았다.

이미 그의 손에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청룡언월도가 쥐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무림인들인가?”

감정 없는 목소리가 장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시간 없다. 서둘러라!”

앞을 막아섰던 당가의 고수 하나가 몸을 날려 장수를 덮쳐 갔다. 제법 날카로운 기운을 머금은 검이 장수의 허리를 향해 날아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핏물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뛰어올랐던 당가의 고수가 두 동강이 난 채 바닥으로 피를 쏟으며 처박히자 다른 이들이 두 눈을 부릅떴다.

“무림인 따위가 나라의 관리를 해하려 들다니. 그 죄를 참수로 묻겠다.”

당가의 장로가 고함을 질렀다.

“뭣들 하느냐! 냉큼 처치해라!”

“불나방 같은 놈들이로군.”

우우웅!

장수의 청룡언월도가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며 웅웅 하는 소리가 고수들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오직 전마를 빼앗을 생각으로 혈안이 된 당가와 남해검문의 고수들은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왕전에게 박살이 난 그들이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런 왕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존재이다.

대막의 혈랑단을 단신으로 초토화시킨 전설의 싸움꾼, 투왕(鬪王) 담대소천, 한 자루 청용언월도를 들고 대륙을 가르며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 낸 그를 그들은 몰라보고 있었다.

결과는 전원 몰살이었다.

당가와 남해검문의 고수들을 무참히 도륙한 담대소천은 해가 뜨기 전에 혁련천후가 머무는 객잔에 도착했다.

화산의 검수들과 모용단승 등은 파안대소를 터트리는 왕전을 보며 놀라야 했다.

귀가 쩌렁쩌렁 울렸기 때문이었다.

* * *

매화무적 진유는 매우 언짢은 표정으로 장문인 태허를 응시했다. 창로한 신색의 장문인 옆에는 장로 태홍자가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놈들이 그자와 함께 있겠다고 사문으로 돌아오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렇소이다.”

노기를 띤 태허 장문의 물음에 태홍은 굳은 얼굴로 답했다. 진유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진유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대단히 분노했다. 사문을 두고 다른 자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다니.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당장에라도 갈 듯 진유가 몸을 일으키자 태홍이 나무랐다.

“어찌 성정이 그토록 급한 것이냐? 아직 더 할 말이 있으니 다 듣고 난 뒤에 처신을 하도록 하여라.”

“죄송합니다, 장로님.”

진유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조아리자 못마땅한 시선을 주었던 태홍이 태허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자가 이것을 주었소이다.”

태홍이 건네는 첩지를 받은 태허는 의아한 빛으로 태홍을 응시했다.

“꼭 읽어 보라고 합디다. 읽어 보고 그 아이들의 거취를 화산에서 결정하라고 하더이다.”

“허어! 대체 그자가 누구이기에 이토록 무례하게 군단 말입니까! 허면 장로께서는 그런 자를 가만히 두셨습니까!”

“나중에 말해 줄 것이니 일단은 그것부터 읽어 보시구려, 장문인.”

태허는 첩지를 열어 서찰을 펼쳤다.

서찰에는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상한 광경이 벌어졌다.

서찰을 읽어 가던 태허의 손이 심하게 떨렸고 얼굴은 마치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상하게 여긴 태홍자가 물었다.

“무슨 내용이기에 그러시오.”

태허는 그저 서찰을 움켜쥐고서 전신을 떨었다.

“어허! 장문인!”

태홍의 재촉에 태허는 진유를 돌아보며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로님과 할 말이 있으니 너는 그만 나가 보거라.”

목소리조차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왜 이러는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진유는 마지못해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진유가 돌아가자 태홍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리 흥분하는 게요?”

“그분이…… 그분이 돌아오셨습니다.”

“그분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석수 사숙! 그분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순간 태홍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는 태홍의 손에 쥐어졌던 서찰을 뺏어 들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이럴 수가!”

태홍도 작살을 맞은 물고기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장문인 태허가 격동을 이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돌아가신 줄로만 여겼던 사숙께서 살아 계셨다니. 오! 원시천존께서 우리 화산을 가엽게 여기시어 그분을 보내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태홍은 반쯤 넋을 뺐다.

“내 그분을 코앞에 두고도 알아뵙지 못했다니. 이 불충을 나중에 어찌 용서를 빌꼬. 허어…….”

화산이 스스로 저버렸던 존재.

장차 천하제일인이 될 거라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불세출의 천재가 귀환을 알려 왔다.

그것은 화산과 천하에 있어 대파란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고루거각이 즐비한 거대한 장원, 황궁의 화려함과 웅장함에 버금가는 장원의 정문은 그 높이가 무려 삼 장에 이르고 너비 또한 어지간한 성의 그것과 맞먹을 정도로 대단했다.

금옥장(金玉裝).

뒤에 장자를 붙이기엔 지나치게 거대한 이곳이 바로 천하제일 거부 황금상인(黃金商人) 금치문(金治文)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곳이었다.

서른의 나이에 고금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를 축적한 금치문은 자신의 처소에서 수하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녀가 중원행을 했단 말이지?”

서른 정도의 나이에 적당한 몸집과 새하얀 얼굴을 지닌 금치문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황금 가루를 바른 부채를 만지작거리며 찻잔을 기울이는 그의 맞은편에는 날카롭게 생긴 장한이 마주하고 있었다.

“십지문주와 동행한다고 하니 아마도 영웅 대회의 참관이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웅 대회 참관?”

“그렇습니다. 십지문에서도 대회에 출전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지문주 정도면 정도맹에서 당연히 초청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대회는 한 달이나 남지 않았는가? 십지문에서 대회가 열리는 서안까지는 스무날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너무 이른 게 아닐까?”

“검후께서 오랜 시간 동안 칩거를 하셨으니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들과 동행을 원하시면 그렇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장한의 말에 금치문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부채로 자신의 이마를 건들던 그는 장한을 보며 물었다.

“인위적인 동행이야 나도 싫다. 어차피 내 여자로 만들려면 좀 더 멋지게 접근할 필요가 있겠지.”

“하오시면?”

“후후후! 방법은 출발하기 전에 일러 주겠네. 대신 자네는 일전에 부탁했던 일만 처리해 주게. 실수하면 곤란하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완벽하게 처리를 해 드릴 것이니 장주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후! 좋아. 그리고 백선녀 영호수란 쪽은 어찌 되어 가는가?”

“아직 영호세가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풀어놓은 아이들의 말로는 독단적으로 중원 유람을 갔다고 하는데, 십전무제와 영호세가의 후계자도 며칠 전에 영호세가를 나섰다고 합니다.”

수하의 보고에 금치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녀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영호세가의 자금줄을 흔들어 영호가주의 마음을 얻어 내는 것이 더 급한 일이지.”

“그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염려 놓으십시오. 올해가 가기 전에 그들이 먼저 대인께 손을 벌릴 것입니다.”

“후훗! 좋아.”

금치문은 매우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지금 그는 천하가 으뜸으로 쳐주는 두 여인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기 위해 오래전부터 공을 들여 오는 중이었다.

지금껏 원했던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었던 그라 자신이 있었다.

천하에 으뜸가는 미녀들이 곧 자신의 품안으로 들어올 거란 생각에 금치문의 눈동자는 벌써 희열의 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섬서의 버려진 장원 말입니다. 그곳이 다른 자에게 넘어갔다고 합니다.”

“어쩌다가?”

금치문이 별로 놀라는 눈치가 아니자 장한이 안도의 숨을 쉬고선 말을 이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이틀 전에 다른 자가 관을 통해 매입을 한 것으로 전해 왔습니다. 원하시면 되돌려 놓겠습니다.”

“됐어! 그 정도 낡은 장원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닌가. 그건 됐고 일단 그녀들을 내 여자로 만드는 일에나 최선을 다하게.”

“알겠습니다.”

장한이 물러가자 금치문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으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두 여인만 내 품에 안을 수 있다면 나 금치문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겠구나. 후후후.”

* * *

장원을 매입한 혁련천후는 며칠 동안 꼬박 장원의 수리에 매달렸다.

일행들 전부가 달려들었지만 장원이 워낙 넓었던 탓에 며칠이 지난 지금도 겨우 사람이 잠을 잘 정도의 진척만 이루어졌을 뿐이었다.

개인 사정으로 떠난 영호민을 제외한 모두는 낮에는 장원을 고치고 밤에는 본격적인 수련에 들어갔다.

뒤늦게 합류를 한 담대소천은 탁철을 맡았다.

물론 탁철은 그 전에 자격이 되는지 알아보겠다며 덤볐다가 흠씬 두들겨 맞아야 했다.

왕전이 맡은 셋은 지독한 수련 방식으로 인해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다만 진청만이 상처를 치료하느라 그들의 수련을 구경하고만 있었는데 누구보다 빨리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까닭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 상태도 그렇지만 자신을 지도할 대상이 아직 합류를 하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다.

자존심 때문에 언제 오냐는 말을 물어보지 못한 진청은 오늘도 죄 없는 청명과 청진을 괴롭히며 짜증을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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