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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32화 (3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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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32화>

“그대들에게 내려진 맹의 체포령이 철회되었음을 알려 주러 왔소. 단, 사건의 진상이 완전하게 밝혀질 때까지 그대들의 신변을 화산에서 보장하라는 지시가 있었소. 질풍각의 각주인 당신이 그것을 보증해 주었으면 하오.”

“철회? 체포령? 그게 무슨 말이오?”

진호가 되물었다.

단순히 오해를 사서 쫓기는 줄로만 알았을 뿐, 맹에서 그러한 지시가 내려진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당문칠기의 살해범으로 지목되어 추포령이 내려졌음을 몰랐단 말이오?”

“누가 누굴 죽였단 말이오?”

진호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때 왕전이 밖으로 나섰다.

“추포령이 철회되었으면 좋은 거지, 뭔 말이 많아! 대충 보증을 하고 끝내라, 애송이.”

진호는 어쩔 수 없이 무사들이 내민 서류에 직인을 찍었다.

왕전이 무사들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이봐 너희들. 잠깐 나 좀 보자.”

“…….”

왕전의 살벌한 기세에 무사들은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안 와? 그럼 더 맞아야지.”

왕전이 유령처럼 미끄러져 갔다.

“기본이 안 된 새끼들아! 날이 밝으면 조용하게 전해 주고 갈 것이지 한밤중에 소란을 떨어 잠을 깨워? 좀 처 맞자!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퍽! 퍽! 퍽!

왕전의 손짓 한 번에 무사들이 저만치로 나가떨어졌다. 그저 훈계를 할 요량으로 가볍게 친 것이라 무사들은 금방 벌떡 일어섰다.

“감히 맹의 무사들에게 손을 쓰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칼을 뽑아 든 무사 하나가 왕전에게 고함을 질렀다.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알면서도 두려움 없이 대드는 무사, 지켜보던 혁련천후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조직이란 저런 무모한 용기까지 생기게 하는 것인가?’

그는 무사의 태도에서 정도맹을 생각했다.

정도맹이란 조직에 속하지 않았다면 무사는 겁을 먹고 벌써 도주했을 것이다. 자신이 몸담은 조직에 대한 믿음이 나약한 무사에게 용기를 주고 상대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넣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파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고 있었다.

퍽!

그가 생각하는 와중에 무사는 한 방을 더 맞고서는 실신해 버렸다.

왕전이 눈을 부라리자 다른 무사들이 황급히 혼절한 무사를 업고 달아났다.

한밤중의 소란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 *

나웅은 창을 열어 건너편 객잔을 주시했다.

그곳에 자신이 데려가야 할 대상이 있다.

이른 아침이지만 주변에 상점이 몰려 있어 거리는 상점의 문을 열려는 사람들로 인해 꽤나 부산했다.

나웅은 내공을 끌어 올려 눈에 힘을 주고서는 객잔의 동태를 살폈다.

‘아직까지 자고 있는 건가?’

일 층 객잔에 아직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이면 아침을 먹기 위해서라도 내려와야 정상이다.

‘죄를 짓고도 늦잠을 자다니. 배짱 하나는 두둑한 자들이군.’

나웅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마음먹고는 시선을 고정시켰다.

사실 나웅은 그들에 대한 체포령이 철회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 객잔을 찾았던 무사들이 그에게도 소식을 전해 주어야 했지만 왕전에게 놀라 도망가기 바빴던 나머지 나웅을 깜빡 잊어버린 것이다.

‘이제야 내려오는군.’

나웅이 눈을 빛냈다.

험상궂기 짝이 없는 청년이 일 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뒤를 이어 화산 복장을 한 청년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그 낭인이라는 자는 아직인가?’

상당한 고수라고 들었던 낭인이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자 나웅은 혹시라도 그가 저곳에 없을까를 염려했다.

그때였다.

‘억!’

나웅이 크게 놀라 숨을 들이마셨다.

맨 뒤쪽에서 내려오던 험악한 인상의 장한이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시선이 마주쳤다.

나웅은 보고 있으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창가에서 머리를 멀리했다.

그는 요즘 들어 자주 이런 현상을 겪었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장수와 낭인에게도 지금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내가 요즘 왜 이러지?’

나웅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슬그머니 다시 창가로 다가섰다.

모두가 일 층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맹에서 잡아 오랬던 대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나백의 눈에 뒤돌아 앉은 장한의 귀에 걸려 있는 귀걸이가 보였다.

‘생긴 것하고 달리 특이한 취향을 지녔군.’

불행하게도 나웅은 그 귀걸이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모르고 있었다.

나웅은 이 층에서 일 층을 향하는 계단을 주시했다. 그러나 여전히 추포 대상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꼬르륵!

시장기가 동했다.

‘저들도 식사를 하려면 꽤 시간이 걸릴 테니 그 전에 나도 배나 좀 채워야겠다.’

나웅이 돌아서려 할 때였다.

“……응?”

일 층에 앉았던 모두가 일어서고 있었다. 나웅은 안력을 키웠다.

그러나 이내 실망을 해야 했다.

한 노인이 내려왔는데 곧장 객잔 밖으로 나오더니 모두의 배웅을 받으며 북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노인이 떠나자 모두는 다시 객잔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헛물을 켠 나웅은 미련을 접고 자신도 객잔의 일 층으로 내려갔다.

“이봐! 빨리 좀 가져오라고!”

음식이 늦게 나오자 왕전이 걸쭉한 목소리로 재촉을 했다.

마침 점원 두 명이 음식을 들고 나왔다.

“밥 먹자, 밥!”

젓가락을 쥐어 가던 왕전은 이내 자리를 비켜 줘야 했다.

혁련천후가 내려오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자리를 내어 준 왕전이 모용단승을 툭 치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난 모용단승은 식탁의 끝자리에 앉아야 했다.

“무슨 말씀을 그리 오랫동안 하셨습니까?”

“전해 줄 것이 있어서.”

“화산에 말입니까?”

“그래.”

혁련천후는 조금 전까지 태홍자와 대화를 나누었었다. 화산으로 곧장 가야 한다는 태홍자에게 장문인에게 전해 주라며 서찰 한 통을 주었다.

모두들 아침을 들기 시작했다.

식사가 다 끝나 갈 무렵에 혁련천후가 대뜸 왕전을 돌아보며 물었다.

“돈 좀 모아 둔 것 있느냐?”

“돈은 왜…….”

“쓸 곳이 있다.”

“얼마 정도…….”

알고 보니 천하의 왕전은 자린고비였다.

머뭇거리는 왕전을 향해 혁련천후는 단호히(?) 요구했다.

“있는 대로 다 털어 봐.”

“소나 잡던 놈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습니까?”

“다 들었다. 네가 그 동네에서 제일 알짜배기 부자라고 하던데.”

“대체 어떤 새끼가 그런 헛소리를!”

왕전이 고슴도치처럼 머리털을 곤두세우자 괜히 옆에 앉았던 검수들이 움찔했다.

혁련천후는 그런 왕전을 무심히 응시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견디지 못한 왕전이 한숨을 푹 내쉬며 체념하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지켜보고 앉았던 영호민이 눈빛을 발하며 묻는다.

“돈은 갑자기 어디다 쓰려고 그럽니까?”

“함께 머물 곳을 찾아볼 생각이다.”

“함께 머물 곳이라니요? 그럼 여기 있는 모두가 함께 지낼 거라 이 말입니까?”

혁련천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치뜨며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갑자기 동거라니.

“당분간 함께하면서 너희들을 지도할 생각이다. 그리고 너희 장로에게 미리 말을 해 두었으니 사문에 알릴 필요는 없다.”

“예.”

왕전이 영호민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도 함께할 거냐?”

“다녀올 곳이 있어 당장은 힘들 것 같은데…… 조만간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 말에 왕전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머금으며 씩 웃었다.

[돌아올 때 네 본모습을 기대하마.]

[……무슨 소립니까?]

[자꾸 그러면 확 까발린다.]

[알고 있었어요?]

영호민의 전음이 돌연 여인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왕전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알겠냐? 주공도 당연히 알고 계시지.]

영호민은 혁련천후를 돌아보았다.

그는 차를 마시느라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영호민은 다시 왕전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알면 다친다.]

[쳇!]

잠시 후, 식사가 끝났다.

영호민은 당장에 함께하지 못한다는 점을 아쉬워하면서 먼저 객잔을 나섰다.

다른 이들이 머물 곳을 찾아 떠나려 할 때 객잔으로 일단의 무리가 들어섰다.

하나같이 날카로운 표정을 지닌 그들은 객잔 안을 둘러보고서 객잔의 입구 쪽으로 몰려가 앉았다.

황색 장삼에 영웅건을 두른 그들의 가슴엔 금(金) 자가 붉은 수실로 수놓아져 있었다.

중원에 이러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인물들은 오직 한 곳뿐, 바로 천하제일의 재력 단체인 금옥장 소속의 무사들이었다.

대부분이 황금을 주고 고용된 금옥장의 무사들로 총 인원이 이천 명을 넘어간다.

그들 중 당금 강호의 무력 서열 백 위권을 넘나드는 고수들도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재력과 무력을 동시에 지닌 역사상 초유의 단체가 금옥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금옥장의 섬서지부장 두견은 지난밤 총단에서 날아온 전서를 받고 호북성으로 가기 위해 수하들과 길을 나선 지 반나절이 되었다.

제법 먼 길을 가야 했기에 배를 채울 요량으로 객잔을 들른 그는 제법 사나워 보이는 거한이 자신을 힐끔거리자 내심 불쾌했다.

거한은 탁철이었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던 두견은 거한이 덩치만 컸지 별다른 기운이 느껴지지 않자 노골적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눈깔하고는.”

그때였다.

객잔의 문이 열렸다. 동시에 음식을 들고 옆을 지나가던 점원이 문에 부딪히며 휘청거렸다.

“어억!”

우당탕!

음식과 뜨거운 국물이 죄다 두견에게로 쏟아졌다.

“어뜨뜨!”

두견이 요상한 비명을 지르며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점원과 부딪힌 인영은 빠른 몸놀림으로 자신을 덮쳐 오던 음식물을 피해 냈다.

꽤나 민첩한 신법에 두견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탁철의 눈이 동그래졌다.

“부단주님!”

두견의 수하들이 황급히 음식물을 손으로 치워 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 앞에서 점원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었고 한쪽으로 몸을 피했던 인물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두견과 점원을 번갈아 응시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가!”

두견의 눈이 양옆으로 찢어졌다.

“죄, 죄송합니다!”

새파랗게 질려 버린 점원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자 그와 부딪혔던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잘못은 앞을 미처 보지 못한 내게 있으니 점원을 나무라진 마시오.”

정중한 어조로 말하는 인물은 바로 나웅이었다.

두견의 찢어진 눈이 그를 향해 돌아갔다.

“그래? 그렇다면 네놈이 사과를 해야겠군. 어디 정중하게 사과 한번 해 보시지!”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에 나웅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점원을 생각해서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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