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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8화 (2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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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28화>

“앞으로 너희들과 함께할 사람들이 몇이 더 늘어날 것이다. 물론 저 친구를 포함해서.”

“……!”

모두의 눈이 동그래졌다.

영호민이 놀랐다며 말한다.

“혼자인 줄 알았는데 세력이 있었군요.”

“그냥 일행이라 생각해라.”

“이거나 그거나.”

한편, 영호민을 응시하는 왕전의 눈빛이 묘했다.

무심결에 왕전을 돌아보다가 시선이 마주친 영호민은 뜨끔했다.

마치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왕전의 시선이 상당히 거슬렸다.

“그렇게 쳐다보면 실례라는 거 모릅니까?”

“크흠. 미안하다.”

혁련천후가 말을 이으면서 영호민은 왕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단승, 진호, 진명!”

“예!”

호명을 받은 셋의 목소리가 어째 힘이 없다. 왕전이 그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혁련천후가 말을 이었다.

“앞으로 너희들을 강하게 만들어 줄 사람이다. 나를 대하듯 대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힘없이 대답하는 모용단승에 반해 진호는 혁련천후를 직시하며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화산을 사문으로 둔 저희들로서는 은인의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명분이 그렇게 중요한가?”

“명분이 아니라 사문에 대한 도리입니다. 아무리 무림에서 살아가는 저희들이라고는 하지만 때론 강한 힘보다 우선하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은인의 배려는 감사하나 받아들일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진호는 단호했다.

그를 바라보던 혁련천후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진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화산의 무사라면 당연히 저래야 한다.

‘내가 너무 쉽게 봤군.’

진호를 쉽게 본 것이 아니라 화산을 쉽게 봤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너희들이 이 친구에게 무공을 배운다고 해서 결코 사문을 욕보이는 것은 아니니 나를 믿고 따르도록 하여라. 그리고 나는…….”

혁련천후가 말끝을 흐리자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혁련천후는 진호와 진명을 번갈아 응시하며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에게 충분히 이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자세한 것은 차후 알려 줄 테니 지금은 그저 나를 믿고 따르면 된다.”

진호와 진명은 알 수 없는 전율에 휩싸였다.

문득 혁련천후가 진짜 사문의 어른 같다는 생각도 했다. 아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은 고민했다.

“너희들이 강해져야 화산이 강해진다.”

혁련천후의 그 말이 둘의 고민을 말끔히 씻어 주었다.

“은인의 배려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둘은 결국 머리를 조아렸다.

그때 진청이 나섰다.

“저는 왜 빼십니까!”

왕전이 진청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자식! 눈이 제법인데?”

반말에 가만히 있을 진청이 아니다. 대뜸 노려보자 왕전이 짐짓 인상을 그리며 말한다.

“너도 산으로 한번 가고 싶냐?”

그때 진명이 슬그머니 손을 뻗어 진청의 옷자락을 쥐고 흔들었다.

진청이 진호와 진명을 돌아본다.

얼굴 곳곳이 붉게 물든 둘이 고개를 젓는 시늉을 하자 대충 상황을 짐작한 진청이 슬그머니 시선을 깔았다.

“넌 다른 사람이 맡을 것이다.”

진청이 고개를 들어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너와 잘 맞는 친구가 있다. 그라면 너를 제법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어느 정도까지 강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진청이 격앙된 표정으로 바뀌었다.

당연히 그렇게 나올 거라 예상했던 혁련천후는 담담히 웃고 말았다. 왕전이 피식 웃으며 한마디 건넨다.

“성질머리하고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강하게 해 줄 거니까 입 다물고 기다리기나 해, 자식아.”

진청은 왕전을 노려보려다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혁련천후는 모두를 천천히 쓸어 보았다. 그리고 모두가 놀랄 만한 얘기를 꺼냈다.

“너희들을 영웅 대회에 출전시킬 생각이다.”

쾅!

모두는 머릿속에서 천둥이 치는 경험을 맛보았다.

영웅 대회에 출전시킨다니.

꿈에서도 그렸던 그것을 능력이 되지 못해 그저 꿈으로만 여겼던 그들이 아닌가.

“정말입니까?”

역시 진청이 가장 먼저 물어 온다.

“대전 방식이 바뀌었다고 들었다. 노력 여하에 따라서 셋 모두가 출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진호와 진명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어지간히 나가고 싶었나 보군.”

왕전의 빈정거림에도 셋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바빴다.

영호민이 나섰다.

“화산에서 허락을 해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셋의 표정이 대번에 우울하게 굳어 갔다.

그렇다. 사문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 혹시라도 다칠 것을 우려해 허락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어쩌면 나가 봤자 뻔한 결과를 예상하고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방법이 있으니까 너희들은 그저 수련에만 집중하면 된다.”

언제나 단호한 대답, 셋은 알 수 없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모용단승은 화가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도 출전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왕전이 대신했다.

“내가 미쳤다고 너를 가르치겠냐?”

“…….”

“싫으면 말고.”

“아닙니다!”

모용단승이 큰 소리로 대답을 하자 좌중의 모두가 웃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영웅 대회 출전이 거론되어 모두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난데없이 밖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진호는 어디 있느냐!”

진호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그는 창 쪽으로 가서 밖을 쳐다보았다.

“사숙님!”

“사숙님?”

진명과 진청, 그리고 청명과 청진도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우르르 일 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백발에 도관을 쓴 날카로운 인상의 노인이 허리를 곧추세우고서는 객잔 앞에 서 있는데 그 앞에 진호를 비롯한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창을 통해 노인을 내려다보던 왕전이 입술을 실룩거린다.

“영감탱이, 성질 한번 고약하게 생겼네.”

“듣겠습니다.”

영호민이 왕전의 옆구리를 찌르며 째려보자 왕전은 히죽 웃었다.

노인을 내려다보던 혁련천후의 눈가에 가는 주름이 생겨났다.

‘귀찮게 되었군.’

노인이 올라오고 있었다.

태홍자는 화산의 장로다.

검으로 절정의 반열에 오른 고수이지만 어지간해서는 화산을 내려오는 법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 태홍자는 눈앞의 인물들이 자신이 들어섰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자 매우 불쾌했다.

그러나 진호에게서 대략 그간의 일을 들었던 터라 내색을 하지는 못했다.

진호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사문의 어른이십니다. 이분들은 제가 말씀드렸던…….”

그제야 혁련천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호를 비롯한 화산의 인물들 때문에 억지로 일어선 것이다. 그러나 왕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혁련천후라 하오.”

평대였다.

태홍자의 눈썹이 모아지며 얼굴이 붉어졌다. 그 모습에 모두가 불안한 기색으로 바뀌었다. 화를 참은 태홍자가 억지로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화산의 태홍이오. 제자들을 위기에서 구해 주었다고 들었소. 사문을 대신하여 감사드리오.”

가늘게 떨리는 태홍자의 목소리에서 분노를 느꼈음일까?

태홍자를 응시하던 왕전의 눈동자가 섬뜩한 눈빛을 발했다가 이내 사라졌다.

마침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영호민과 탁철은 왕전의 눈빛을 보고는 전신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무서운 눈빛이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어디서 분명 본 듯한데…….’

영호민은 아까부터 왕전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지만 당최 떠오르지가 않았다.

영호민이 잡히지 않는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태홍자 역시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혁련천후의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눈에 익었던 까닭이었다.

“화산의 높으신 분께서 이곳까지는 어인 일이시오?”

왕전의 목소리에 태홍자의 아른거리던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내심 왕전의 태도가 불쾌했지만 눌러 참아야 했다.

어쨌거나 제자들을 구해 준 은인들이 아닌가.

“아이들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나선 길이외다. 은인 덕분에 이렇게 다들 무사히 만났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외다.”

분위기가 점점 어색하게 변해 가는 것을 염려한 진호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사숙님! 먼 길을 오신다고 피곤하실 텐데 그만 침소로 드시지요.”

“그러자꾸나.”

더 있어 봤자 기분만 상할 게 뻔했기에 태홍자는 진호의 말에 따랐다.

모두는 각자의 객실로 돌아갔다.

모용단승과 진청의 표정이 누구보다 밝았다.

제2장 청룡언월도를 든 사내

대정문(大正門)은 십지문과 더불어 호북성을 대표하는 정파의 세력이다.

십지문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지닌 대정문은 규모에 있어서는 십지문을 압도하고도 남았는데, 그 무엇보다 문파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고수들의 숫자에서 십지문을 압도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고수들을 끌어들인 대정문은 십지문과 더불어 차기 오대세가의 반열에 들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는데, 그러한 대정문에 호북제일검 상관명이란 고수가 있었다.

십지신검 독고무와 견줄 만한 고수로 평가받은 그는 바로 대정문의 문주임과 동시에 정도맹의 호법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다.

비록 천하오객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하였으나 세상은 그를 절대 그들의 아래로 보지 않았다.

그만큼 그의 무공과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오십 줄이 넘어선 상관명의 이마에 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천하에 남부러울 것 없는 상관명이건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 때문에 그는 지금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이었다.

독고혜!

십지문주 독고무의 여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미녀로 이름 높은 그녀가 자신의 아들과 더불어 그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주된 이유였다.

이유는 아들 상관척이 그녀에게 빠져도 단단히 빠져 버린 것이었다.

독고무의 생일 때 대정문을 대표하여 참석했던 상관척은 어쩌다가 독고혜를 한 번 보고서는 그날부터 끙끙 앓아 대기 시작했다.

서른이 되도록 숱한 미녀들의 구애도 마다했던 아들이 고작 한 번 본 독고혜 때문에 불치병이라 불리는 상사병을 앓자 상관명은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독고무에게 직접 찾아가 둘의 혼사를 거론했지만 돌아온 것은 싸늘한 거절뿐이었다.

아들 상관척에게 그러한 사실을 알려 주고 마음을 돌리려 무진 애를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각설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상관명의 입에서 한숨이 끊이질 않는다.

“어리석은 놈, 한낱 여인 때문에 그 지경에 이르다니.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구나. 허어…….”

무림을 이끌어 갈 차세대 주자들 중 하나로 꼽혔던 아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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