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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6화 (26/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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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26화>

제1장 난폭한 스승을 만난 화산의 제자들

어린 제자는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늙은 사부는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는 제자를 보며 한없이 따뜻한 미소를 머금었다.

며칠 후면 제자는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치게 될 것이다.

영웅 대회.

그것이 곧 정도맹의 본부에서 열릴 것이고 제자는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걸음마도 채 떼기 전에 화산으로 데려왔던 제자는 이미 강호의 모든 이들이 알아주는 고수이자 거물이 되었다.

나이 열여덟이 되던 해, 강북에서 극악한 악명을 떨치던 살인귀, 혈마(血魔) 괴량을 죽였고, 주화입마로 광인이 되어 살상을 일삼고 다니던 소림의 파계승, 광승(狂僧) 무요를 베었다.

하나같이 초절정을 넘어섰던 자들인지라 천하는 제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무당의 천고기재라 평가받던 명유진인과의 비무에서 제자는 팽팽할 거라는 세간의 예상을 무참히 깨 버리면서 간단히 이겨 버렸다.

천하가 놀랐다.

약관이 채 안 된 나이에 저토록 높은 경지를 지녔던 자는 고금을 통틀어 아무도 없었다.

화산은 천하에 그 위세를 떨치기 바빴고 늙은 사부는 제자의 성장을 바라보며 흐르는 세월조차 망각할 지경이었다.

“허허! 이놈아,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

“하하! 이제 끝났습니다. 곧 씻고 올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부님!”

환하게 웃어 보인 제자의 뒷모습을 보며 늙은 사부는 자신의 삶에 이러한 행복이 있음을 하늘에 감사했다.

제자가 씻고 오면 함께 식사를 할 요량으로 느긋하게 앉아 하늘을 보던 늙은 사부의 눈에 화산의 산문을 들어서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정도맹의 장로들이었다.

그들이 산문을 넘어 태청각으로 향하는 것을 본 사부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정도맹의 장로 여럿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강호와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이 아니면 정도맹을 떠나는 법도 거의 없다. 그런 그들이 한꺼번에 셋이나 산문을 들어서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늙은 사부는 사랑하는 제자와 함께할 식사 시간이 더 소중했기에 제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날 밤, 늙은 사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제자의 영웅 대회 출전 불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늙은 사부는 사문의 장로 회의를 소집해 따지고 들었으나 어찌 된 것인지 사문의 인물들이 더욱 제자의 출전 불가를 원했다.

둘은 분노했다.

특히 사랑하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려 피나는 수련을 해왔던 제자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거셌다. 이유를 따지는 그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시선들뿐, 얼마 전까지 제자로 인해 높아진 사문의 명예를 자랑하기 바빴던 그들의 돌변한 태도에 두 사제는 실망과 더불어 분노했다.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분노를 다스리려 애쓰던 제자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암습들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사부는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시작된 일인전쟁(一人戰爭).

제자를 향한 추적은 십팔만 리 대륙을 가로질러 죽음의 대지까지 이어졌고 제자를 죽이겠다고 나섰던 오백의 고수들 중 아홉만이 살아서 돌아오는 처참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주공!”

걸쭉한 음성이 혁련천후의 상념을 깨웠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십니까? 혹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왕전의 물음에 혁련천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심장이 뛴다. 그리운 사부의 얼굴을 떠올리려 하니 다시 떠오르질 않는다.

꿈이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는 사부, 혁련천후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상념의 잔재를 지워 냈다.

“멀었습니까?”

“저 산을 넘으면 된다.”

왕전이 눈앞에 펼쳐진 산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

한때 천하제일 검문이라 불렸던 화산이 그곳에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저 화산은 자신의 주인에 의해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볼만하겠군.’

한 폭의 지옥도를 떠올린 왕전은 시선을 돌려 주인의 모습을 찾았다.

언제나 그랬듯 차디찬 얼굴에 무심한 눈빛, 거기에 태산을 보는 듯한 강인한 분위기, 왕전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불쌍한 강호.’

왕전은 문득 강호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사내를 적으로 만든 그들이 정말로 가엽게 여겨졌다.

더불어 의지를 다졌다.

주인의 적이면 자신의 적이다. 천하에서 자신의 주인만 아니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시원하게 쓸어 주마.’

천하를 질타할 자신을 상상하며 입이 실실 웃어 가던 왕전에게 혁련천후가 물었다.

“수련은 좀 했느냐?”

“소하고 씨름하면서 틈틈이 해 두었습니다. 짐이 될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다른 친구들은?”

“놈들도 죽어라 수련을 했으니 전보다 훨씬 강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 전에도 적수가 없다시피 한 놈들이니 수련이 끝난 지금이야 거의 괴물이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왕전의 확신에 찬 어조에 혁련천후는 수하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가슴 한쪽이 든든해짐이 느껴졌다. 화산이 자신이 돌아갈 고향이라면 그들은 자신이 의지해야 할 든든한 우군들이다.

하나하나가 천하를 뒤흔들 절대 고수이자 자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는 충성스러운 수하들이었다.

이제 곧 그들과 함께 강호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자신의 희생으로 강호는 평화를 만끽하며 살을 찌웠을 것이다. 그 추한 살덩이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세상을 밟은 자신이다.

‘평화는…….’

휘이잉!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간다. 뒤이어 혁련천후의 입술을 뚫고 나지막한 음성이 흘러나온다.

‘내가 깨어 주마.’

* * *

왕전과 함께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을 객잔을 향하던 혁련천후는 고을이 가까워지자 경공을 중단하고 멈추어 섰다.

뒤를 바짝 따르던 왕전이 급하게 내려서면서 돌부리에 발이 걸렸다.

푸스스!

발끝에 걸린 돌부리가 먼지로 화해 버린다.

바람에 날린 돌가루가 왕전의 얼굴을 덮었지만 그는 널찍한 혁련천후의 등을 응시하며 씩 웃는다.

‘더 강해지셨구나. 주공이 나의 적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 아니냐. 흐흐흐.’

하늘을 올려다보는 왕전.

차가운 바람을 가슴 가득 들이마신 그는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렸다.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만큼 강하고 자신만큼 거칠며 자신만큼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 그들이 무척 보고 싶어졌다.

‘꼴통 새끼들! 지금쯤 불알에 땀 나도록 뛰어오고 있겠군.’

“큭!”

절로 웃음이 나온다. 특히 자신의 주인과 닮아 있는 살수 나부랭이의 얼굴을 생각하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혁련천후의 시선을 받은 왕전이 이내 안색을 고쳤다.

“죄송합니다.”

“……!”

시선을 접고 묵묵히 걸음을 옮기는 혁련천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왕전은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얼마를 걸었을까?

혁련천후가 입을 열었다.

“네가 가르쳐야 할 아이가 있다. 최소한 빠른 시간에 최대한 강하게 만들어 줘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누구냐고 묻지도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하늘을 힐끗 쳐다본 왕전이 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시는 겁니까?”

“그래.”

“예정보다 조금 빠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었다.”

“어디부터 조져 버릴 생각이십니까?”

“글쎄…….”

왕전이 돌연 눈을 휘둥그레 치뜬다.

“주공답지 않으시군요. 계획 없이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그것도 재밌기는 하겠습니다만.”

“사소한 시비가 생겨서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시비? 천하에 주공께 시비를 거는 놈이 있었습니까?”

“정도맹.”

“아……”

왕전은 비로소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되어야 주인에게 시비를 걸 수 있지 하는 표정이다.

“그 자식들이 가만히 있어도 작살을 내줄 텐데 먼저 대갈통을 내밀다니 차라리 잘됐습니다. 놈들부터 조지고 난 뒤 차례로 쓸어버리지요.”

천하의 정도맹이 왕전에 의해 그저 마음만 먹으면 쓸어버릴 수 있는 별 볼일 없는 집단으로 추락한다.

혁련천후가 엉뚱한 말을 꺼낸다.

“문파를 세워 볼까 생각 중이다.”

“옛? 문파라니요?”

“그러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호! 그것도 좋은 생각이십니다. 꼴통 놈들 다 모이면 정도맹이 문제겠습니까. 밑에서 잡일 하는 놈들이야 뭐 적당히 모으면 될 일이고 거처는 적당한 곳 하나 처부수고 뺏으면 되는 거고. 아니면 화산을 그냥 접수해 버리면 간단할 수도 있겠습니다.”

“화산을 함부로 거론하지 마라.”

혁련천후의 음성이 싸늘한 것을 느낀 왕전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린다.

“죄송합니다.”

“……!”

왕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당하시고도…….’

화산이 자신의 주인에게 한 짓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 같으면 당장 쳐들어가서 모조리 죽일 법한 일을 당하고도 자신의 주인은 여전히 그곳에 대한 정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야 그저 주공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면 되는 거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왕전은 얼마 있으면 만나게 될 반가운 얼굴들을 떠올리며 걸음을 가볍게 했다.

조금 더 걸은 그들은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객잔에 이르렀다.

마침 밖에 나와 있는 모용단승이 보이자 혁련천후는 턱 끝으로 그를 가리켰다.

“네가 가르칠 아이다.”

왕전의 시선이 모용단승을 향했다.

표정이 이내 심드렁하게 변한다.

“약골이군요. 뭐, 눈빛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원하시는 만큼 만들어 보겠습니다.”

모용단승이 다가와 머리를 조아린다.

“오셨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안에 있습니다.”

공손하게 한다고 한 것이 왕전에게는 마지못해 하는 것으로 보였다. 왕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새끼! 표정 봐라.”

모용단승이 왕전을 돌아보았다.

걸쭉한 욕설에 이미 눈빛은 매섭게 변해 있었다.

“네 사부 될 사람이다.”

혁련천후의 말에 모용단승의 낯빛이 단박에 변한다. 이내 실망감이 드리운다.

그는 혁련천후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뒷골목의 건달처럼 생긴 자를 데려와 사부가 될 사람이라니.

특유의 오기가 치솟은 모용단승이 왕전을 향해 해선 안 될 말을 해 버렸다.

“어디 당신이 내 사부가 될 자격이 되는지 한판 붙어 봅시다.”

“…….”

움찔!

객잔을 들어서려던 혁련천후의 어깨가 슬쩍 움찔거렸다.

어이가 없어 반쯤 넋이 빠진 왕전의 귓속으로 혁련천후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당히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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