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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24화 (2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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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24화>

그때였다.

“무당에서 보냈느냐?”

또 다른 차가운 목소리가 모두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그들은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혁련천후가 마차 뒤쪽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놈은 또 뭐지? 분위기가 아까 저놈하고 비슷한데.’

명보는 혁련천후와 모용단승을 헷갈려 했다.

그때였다.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말코 새끼들아!”

탁철이 성난 맹수처럼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대도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가자 섬광이 일었다.

꽝!

그의 대도를 막아 낸 고수가 휘청거렸다.

그러나 이내 자세를 고쳐 잡고서 탁철의 허리를 베어 갔다. 기습을 막아 내고 반격을 가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고수의 냄새를 풍겼다.

성난 탁철이 고리눈을 하고서 대도를 쓸어 갔다.

“이런 개 같은 새끼가!”

꽝!

또다시 검과 도가 충돌했다.

이번엔 탁철이 흔들거렸다. 하지만 놀란 것은 공격을 했던 무당의 고수였다. 두 번의 충돌에서 탁철의 힘이 보통이 아님을 느낀 것이다. 그는 무당에서도 전도가 유망한 신진 고수였다.

깡!

탁철의 옆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터져 나오며 뒤로 밀려나는 모용단승이 보였다. 그를 가장 강한 고수로 여겼던 명보의 일격을 맞받아친 것인데,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 헛소문이었군. 가소로운 놈!”

“물러서시오!”

진호와 진명이 모용단승의 앞을 막아서며 나섰다. 뒤이어 화산의 검수들이 따라 나섰다.

“귀하들이 이렇게 나온다면 본 화산도 어쩔 수가 없소.”

“죄를 지은 놈들은 너희들이다!”

“닥치시오!”

진호가 검을 겨누자 검수들이 각각의 방위를 점하며 검진을 펼쳤다.

제법 강대한 기운이 발산되자 명보는 더는 경시하지 못하고 표정을 고쳤다.

‘아무리 쇠락을 했다 해도 놈들의 검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때였다.

“으악!”

뒤쪽에서 단말마가 터졌다.

귀에 익는 비명에 명보의 고개가 황급히 뒤로 돌아갔다.

“명석!”

누군가 꼬꾸라졌는데, 바로 명보의 사제였다. 난데없는 광경에 싸움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중단되었다.

혁련천후가 명보를 향해 다가섰다.

“다시 묻겠다. 무당에서 보냈느냐?”

“감히 정도맹의 무사를 상하게 하다니, 오늘 기필코 네놈의 사지를 잘라 주마!”

“대답하지 않으면 너희들 모두는 살아서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미쳐도 제대로 미친놈이구나.”

명보는 이를 갈며 다시 명령을 내리려했다. 그때 혁련천후가 말을 이었다.

“난 내게 먼저 덤벼든 놈들은 누구든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이다. 정도맹이든 마교이든 덤빈 놈들은 그냥 두지 않는 것 또한 내 법칙이다. 그러니 똑바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적이 무당이 될지, 아니면 정도맹이 될지는 도사 네놈의 입에 달렸으니까.”

“……뭐?”

광오하기 짝이 없는 말에 명보를 비롯한 무당의 고수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실 웃었다.

“그냥 쓸어버리시지요.”

고수 하나가 재촉한다.

“나를 화나게 한 너희 무당은 개방과 자리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도사.”

혁련천후가 한 발을 내딛자 주변의 공기가 흔들리며 뜨거운 기운이 명보를 비롯한 고수들의 전신을 덮어 갔다.

흠칫!

명보와 고수들은 자신들을 압박해 들어오는 폭발적인 기운에 흠칫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물러설 그들이 아니다. 검을 고쳐 잡은 명보가 주변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외쳤다.

“쳐라!”

명보의 검이 검기를 품기 시작했다.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른 검기는 이내 검의 길이를 늘려 가는 검강으로 바뀌었다. 그것만으로 명보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이쯤에서 돌아가면 살 수 있다. 도사!”

“미친 새끼! 관에 몸을 담아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구나! 어디 네놈의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한번 보자꾸나!”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 없지.”

팟!

혁련천후가 환영을 남기고 명보와 그 뒤의 고수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절대경지에 오른 자들의 전유물인 이형환위가 펼쳐지자 명보조차도 순간적으로 혁련천후를 시야에서 놓쳤다.

퍽! 퍽!

“으악!”

비명성이 터지며 좌측을 맡았던 두 명의 고수가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그리고 연이어 터져 나오는 명보의 다급한 외침.

“조심해라!”

“쳐라!”

쐐애액!

콰지직!

혁련천후가 섰던 곳에서 흙먼지가 치솟았다. 모두가 일제히 펼친 검공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지만 혁련천후의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사라졌던 혁련천후가 뒤쪽에 나타났다.

명보가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명공! 조심해라!”

이름의 주인공이 두 눈을 부릅뜨며 뒤돌아섰다. 자신을 향해 싸늘히 웃는 혁련천후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혁련천후의 주먹이 더 빨랐다.

퍽!

“우악!”

명보의 눈이 살광을 폭사시켰다.

“이노옴!”

새파란 검강을 품은 검이 섬전처럼 허공을 가르자 주변에서 공명이 일었다.

우우웅!

그때였다.

명보는 자신의 검강 범위 안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보았다.

‘이런 미친……!’

그리고 그 주먹과 부딪힌 자신의 검이 가루로 흩날리는 것 또한 보았다.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검강이다.

그런 검강이 한낱 주먹에 사라져 버린 것은 고금을 통틀어 몇 되지 않는 고수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광경을 두 눈으로 생생히 보고 말았다.

“이, 이럴 수가!”

“이쯤 되면 꺼지는 게 좋지 않을까?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말이야.”

명보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조금 전의 한 수를 겪고도 덤빈다면 스스로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르지 않다.

“당, 당신은 누구요?”

물어가는 명보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너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살인마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

“그만 돌아가라.”

그 말을 끝으로 혁련천후는 마차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으면서 한마디 더 했다.

“너희들에게 명령을 내린 자에게 전해라. 쓸데없는 짓을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을 잘라 주겠다고 말이다.”

싸움이 끝났다.

“가자!”

혁련천후가 말에 오르자 다른 이들도 재빨리 떠날 준비를 했다.

질풍각주 진호가 떠나기 전에 명보를 향해 외쳤다.

“화산은 당가의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 맹으로 가시거든 부디 그렇게 전해 주시오!”

휘이잉!

명보와 무당의 고수들에게는 차갑기 그지없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멀어져 가는 혁련천후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섰던 명보가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섰다.

“죽은 자들을 수습해라.”

“저기,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팔 하나씩 부러진 것 외에는 별다른 상처도 없습니다.”

“……!”

그러고 보니 쓰러졌던 모두가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제 명석도 일어섰다.

명보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이것이 그자의 뜻인가?’

그때였다.

“사숙님! 이것을 좀 보십시오.”

무당의 고수 하나가 명보에게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잘려진 장포 자락이었다.

“왜 그러느냐?”

“냄새를 맡아 보십시오.”

수하의 말에 명보는 별생각 없이 장포 자락을 코로 가져갔다.

“이건……!”

“매화 향과 비슷합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무공에서 향기가 나다니 말입니다.”

부들부들…….

장포 자락을 쥔 명보의 두 팔이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설마 그가…….’

명보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영상이 저절로 떠올랐다.

살아 있어선 안 될 존재, 십 년 전, 천하를 상대로 일인전쟁을 벌이다가 죽어 간 사내.

화산이 버리고 천하가 죽였던 사내의 흔적이 지금 명보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 * *

싸움을 끝내고 달리기 시작한 혁련천후와 일행들은 섬서성의 중심인 서안과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

혹시 모를 추격을 염려하여 화산을 향하는 지름길을 포기하고 관도와 인적이 많은 곳을 택한 까닭에 먼 거리를 우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게 반나절을 더 달린 끝에 제법 번화한 고을이 나타나자 혁련천후는 그곳으로 말을 몰았다.

초저녁임에도 상당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고 곳곳엔 붉은 유등을 걸어 놓은 화려한 객잔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모두는 후각을 자극하는 음식 냄새에 시장기를 느꼈다.

하지만 선뜻 객잔으로 들어가자는 말을 못하고 혁련천후의 눈치만을 살폈다.

혁련천후의 얼굴은 제법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만약 일련의 사태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주도하고 있다면, 그자가 정도맹의 수뇌부이거나 화산을 노릴 정도의 거대 문파와 관련된 자라면 결코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전부터 수상쩍게 여겼는데 무당파의 고수들이 뒤를 쫓은 이후로는 모든 것이 의도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더 강한 고수들이 온다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혼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혼자라면 걱정할 것이 없지만 저들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혁련천후는 고개를 들어 북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석양에 넘어간 하늘은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놈들을 불러와야 하나…….’

혁련천후가 알 수 없는 말을 뇌까릴 때, 청명이 마차의 문을 열고 나왔다.

“각주님의 부상 부위에서 출혈이 재발되었습니다. 어디 의원이라도 찾아 응급처치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호민이 다가왔다.

“이대로 가면 위험합니다. 봉합한 상처가 터지기라도 하면 그땐 손을 쓸 수가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혁련천후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저잣거리의 끝에 커다란 객잔이 보였다.

“일단, 저곳으로 간다.”

혁련천후의 시선이 제법 큼지막한 객잔을 향했다. 청진과 청명이 말과 마차를 객잔의 종업원에게 인도할 동안 일행들은 객잔이 아닌 객실로 향했다.

진청을 배려해서 식사는 각자의 객실에서 하기로 했다.

잠시 후, 음식들과 술이 올라오자 모두는 비로소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이봐! 술 좀 더 가져와!”

탁철은 독한 화주를 다섯 병이나 마셨다.

영호민도 두 병을 비웠다. 식사를 마친 영호민은 청명을 데리고 진청을 치료할 의원을 찾아 나섰고, 다른 일행들은 각자 휴식을 취했다.

모처럼 여유를 찾은 모두는 밀려드는 피곤함을 떨치려 애를 썼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의원을 찾아 함께 돌아온 영호민은 혁련천후의 방으로 올라갔다가 그가 없음을 알고는 화들짝 놀랐다.

재빨리 검수들에게 물어보았으나 그가 없어진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어딜 갔지?”

때마침 모용단승이 지나갔다.

영호민은 재빨리 그에게 물었다.

“그 양반이 보이지 않는데, 혹시 어디 가셨소?”

“잠깐 다녀온다는 말씀만 남기시고 조금 전에 객잔을 나가셨소.”

“어디를 말이오?”

“모르오.”

“…….”

영호민은 객실의 복도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용단승이 객실로 들어가려다가 영호민을 응시했다.

“왜 그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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