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귀환무사 23화>
“용의자?”
“그렇습니다. 관저지부를 맡고 있는 탁승이 그들을 발견하고 신병을 인도하려 했으나 그들의 저항에 오히려 해를 입었다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관승이 말을 이어 갔다.
“그들 중 하나는 상당한 고수로 밝혀졌습니다. 탁승에 일 초식에 물러섰다고 하니 그자가 당문칠기를 죽인 범인이 아닐까 모두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관승의 말에 남궁기의 백미가 꿈틀거렸다.
탁승은 그도 알고 있는 자였다. 비록 세상을 울리는 고수는 아니지만 한 수에 제압당할 만큼 녹록한 인물이 아님 또한 알고 있었다.
“당대의 화산에 그 정도의 고수가 있었단 말이냐? 허면 그자의 신분이 뭐라 하더냐?”
“아직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궁기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신분도 모르는 자를 화산의 인물이라 여겼더냐!”
“그것이, 그자와 함께 있었던 인물들이 화산의 각주들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변명을 하는 관승, 그러나 남궁기의 불호령은 그칠 줄 몰랐다.
“참으로 어리석은 놈들이로다. 화산의 각주 정도가 당가의 고수들을 참살할 수는 없는 것이거늘, 도대체 이 사건을 지휘하는 자가 누구냐? 맹주가 직접 나선 것이냐?”
“아, 아닙니다. 구천각주께서 맡고 계십니다.”
구천각주란 구파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무림맹의 사대 무력 집단 중 하나인 구천각의 수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구천각주?”
“그, 그렇습니다.”
관승의 답에 남궁기의 노안이 섬광을 발했다.
“이런 고약한 작자들을 보았나. 확실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한 문파를 곤경에 밀어 넣으려고 하다니! 당장 뛰어가서 맹주에게 이 몸이 찾아갈 것이라 전하여라.”
“그리 전하겠습니다.”
관승이 예를 취하고 물러가자 남궁기는 창가로 다가가 창을 열었다.
‘화산은 결코 그런 짓을 벌일 곳이 못 된다. 천성이 착하고 악하고를 떠나 후폭풍이 두려워서라도 그러지 못할 곳이거늘……. 이는 필시 구천각주가 개입한 것이 틀림이 없으렷다.’
구천각의 주인은 무당파의 사람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십 년 전의 그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이냐? 무당이여.”
알 수 없는 말을 뇌까리는 남궁기. 그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을 하고 있을 때, 무림맹의 한쪽에서는 인간사냥을 떠나는 고수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명수진인은 무당파의 수석 장로라는 신분을 지닌 초절정의 고수임과 동시에 정도맹의 핵심 세력, 구천각의 각주를 맡고 있는 인물이다.
무당을 대표해서 이십 년 전부터 정도맹에 상주하고 있는 그는 지나치게 손속이 잔혹해 세간의 비난에 자주 시달리곤 한다.
그런 명수진인이 자신의 앞에 늘어선 고수들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맹이 다른 조치를 내리기 전에 반드시 놈들을 잡아 와야 한다. 알겠느냐?”
“죽여도 되는 것입니까?”
무당의 고수 하나가 되물었다.
“생포는 어려울 것이다. 놈들 중 하나는 상당한 고수라고 했으니 처음부터 살수를 써야 할 것이다. 괜히 머뭇거리다가는 되레 너희들이 당할 수도 있음이야.”
“알겠습니다. 허면 처리하고 나서 곧장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무당의 고수들이 은밀하게 구천각을 빠져나갔다.
명주진인은 창을 통해 멀어져 가는 고수들을 지켜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용케 한 번은 넘겼다만 이번만큼은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파르르…….
주름진 눈꺼풀 아래에 자리 잡은 눈동자에 도인의 그것으로 볼 수 없는 잔혹함이 어렸다.
“천하가 나를 비난해도 상관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희, 화산을 멸망케 하리라.”
대체 화산파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정파의 한 축인 무당파의 원로가 이토록 강렬한 적개심을 드러낸단 말인가.
휘이잉!
바람이 불어 명수진인의 수염을 쓸고 지나갔다. 그는 명령을 받고 떠난 고수들이 정도맹의 성곽을 넘어가고서야 비로소 창을 닫고 돌아섰다.
탁!
제10장 오는 족족 꺾어 주지
북쪽을 향하는 일행들의 속도는 진청으로 인해 느릴 수밖에 없었다. 가슴의 상처로 인해 마차의 속도를 늦춰야만 했기 때문이다.
덜커덩!
“으윽!”
돌부리에 걸린 마차가 좌우로 흔들거리자 진청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괜찮으십니까?”
청진이 걱정스러운 빛으로 물어온다.
“괜찮아 보이냐?”
“많이 아파 보이십니다.”
“그런데 왜 물어?”
“…….”
청진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여튼 저 성질머리하고는. 좋다가도 이럴 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니까. 쳇!’
속내와는 달리 진청에게 활짝 웃어 보이고는 재빨리 마차 밖으로 나갔다. 마차는 청명이 몰고 있었다.
“괜찮으시더냐?”
“성질만 멀쩡하시더라.”
“큭큭큭!”
“웃기는.”
바깥의 상쾌한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신 청진이 주변을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질풍각의 한 분이 안 보이네?”
“응! 진호 사숙께서 조금 전에 사문으로 먼저 보내셨다.”
“왜?”
“급히 전하는 말씀이 있으신가 보더라고.”
고개를 끄덕인 청진은 뒤로 벌러덩 누웠다.
“잘 테니까 깨우지 마라.”
“망할 놈.”
마차 옆을 이동하는 진호와 진명은 연신 뒤를 기웃거렸다.
지금 그들은 맹의 추적을 염려하고 있었다.
성정이 사납고 독하기로 소문난 탁승이 자신이 당한 망신을 맹에다 좋게 보고할 리가 없다.
어떻게든 살을 붙여 보고를 했을 것이고, 평소 화산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맹의 수뇌부들이라면 당연히 추격대를 보내 자신들을 잡으려 들 것이다.
그래서 상황을 타파하고자 질풍각의 무사 하나를 먼저 사문으로 보낸 것이다.
장문인에게 도움을 청할 심산에서였다.
“도대체 어느 놈들이 그런 짓을 한 거야.”
“차라리 그때 맹으로 가서 떳떳하게 밝히는 것이 좋지 않았겠습니까?”
“흥! 그자들이 언제 우리의 말을 들어줬더냐?”
“그래도…….”
“뭔가 되도 되겠지. 그만하자.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진호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휘휘 가로저었다. 진명은 더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진호는 앞에서 말을 몰아가는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기분이 무겁다가도 그만 보면 왠지 걱정이 덜해지는 느낌을 요즘 들어 경험하고 있었다.
피식!
‘신분도 모르는 자에게 너무 빠진 거 아닌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고는 말을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한편,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몰아가던 혁련천후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가라앉는다.
‘벌써 온 것인가?’
빠르게 접근하는 기운이 감지되었다.
열 개의 기운이 자신들이 가는 방향의 앞쪽에서 빠른 속도로 날아들고 있었다.
만약 저들이 정도맹에서 보낸 자들이라면 자신의 예상을 훨씬 웃도는 시간이다.
‘뭔가 이상하다. 마치 정해 놓은 각본에 따라 돌아가는 느낌이다.’
이상했다.
사건이 터지고 탁승이 온 것부터가 지나치게 빨랐다. 사전에 계획을 꾸미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빨리 반응하기란 불가능하다.
“쉬었다 간다.”
그의 말에 일행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진호가 물어 왔다.
“벌써 말입니까?”
약가촌을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진청 때문에 세 번에 걸쳐 객잔에 들었는데, 세 번째 객잔을 나선 것이 불과 한 식경 전이었다.
혁련천후는 말 머리를 돌려 뒤쪽으로 이동했다. 모두는 그저 의아한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혁련천후가 진호에게 대뜸 물었다.
“검진을 펼칠 수 있느냐?”
“그거야 당연한…….”
“검진을 펼칠 준비를 해라.”
“…….”
뒤늦게 말뜻을 알아챈 진호의 얼굴이 급변했다. 진명과 검수들이 재빨리 한곳으로 모였다.
혁련천후는 영호민 등을 응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과는 상관없는 싸움이다.”
빠지라는 말이었다.
탁철이 히죽 웃으며 나선다.
“흘흘! 섭섭한 말씀, 대형을 장난으로 모신 줄 아슈?”
“한 번 싸우면 계속 싸워야 한다.”
“그럼 계속 싸우지 뭐. 흘흘흘!”
탁철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그때 모용단승이 탁철의 옆으로 걸어와 섰다.
“얼음! 제법인데. 흘흘!”
자신의 옆으로 다가온 모용단승을 보며 탁철이 웃었다.
영호민이 나섰다.
“저는 뭘 하면 됩니까?”
“…….”
“설마 저만 빠지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대는 진청을 지켜라.”
“좋지요.”
영호민이 말에서 내려 마차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청명과 청진은 이미 마차 안으로 들어가고 보이지 않았다.
혁련천후는 모두를 천천히 쓸어보았다.
검진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검수들의 낯빛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혁련천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정도에 긴장을 한다는 건 실전 경험조차 거의 없다는 것인데…….’
사문에 대한 감정이 다시금 새록새록 올라왔다. 결코 좋지 않은 감정이었다.
“내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는 절대 나서지 마라. 알겠느냐!”
“예!”
마치 사문의 어른에게 하듯 대답을 하는 검수들. 지켜보고 섰던 탁철이 신기하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치뜬다.
“뭐야. 언제부터 저런 사이가 된 거야?”
스스슥!
숲을 헤치며 모습을 드러내는 고수들. 명수진인이 보낸 구천각 소속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을 이끄는 무당의 명보진인은 담담하게 자신들의 등장을 지켜보는 혁련천후와 그 일행들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놈들!’
누구 하나 놀라는 기척이 없으니 당황스럽기조차 했다.
명보진인은 모두를 빠르게 훑었다.
‘강한 놈이 있다고 들었는데, 잘못된 보고였나?’
탁승을 한 방에 보냈다는 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정도의 고수로 볼 만한 인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고수는커녕 자신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의 인물조차 없는 듯하자 그는 괜히 긴장했던 자신을 나무랐다.
그때였다.
“나타났으면 용건을 말해야지.”
차가운 목소리에 명보진인의 고개가 돌아갔다. 차가운 얼굴의 모용단승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놈이 그 고수란 놈?’
모용단승을 노려보며 명보진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자신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설마 기운을 갈무리하는 수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명보진인은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일, 명보진인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모용단승에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정도맹의 사람들, 너희들을 압송하러 왔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덤비기나 해.”
모용단승의 거친 대답에 명보진인의 눈이 돌아갔다.
“네놈이 탁승을 꺾었다더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그깟 알량한 재주를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설치다니!”
모용단승을 노려보는 명보의 눈길이 사납게 변했다.
“죽여도 좋다!”
챙!
검을 빼어 든 무당의 고수들이 한발 앞으로 나서며 주변을 에워쌌다. 그들이 일제히 기세를 뿜어내자 일행들의 얼굴이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졌다.
억지로 긴장하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만큼 무당의 고수들이 발산하는 기운이 강력했다.
기세가 생각 이상으로 강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