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20화 (20/425)

# 20

<귀환무사 20화>

“늦으셔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무사하시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머리를 긁적이는 청명의 모습이 혁련천후의 눈을 찔러 온다.

눈을 들어 진호를 응시하자 청명이 재빨리 진호를 소개했다.

“질풍각의 각주님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저희를 구해 주셨던 대협이십니다.”

청명과 청진이 나란히 둘을 소개하자 진호가 포권을 취하며 입을 열었다.

“화산의 질풍각주 진호라 하오. 사문의 제자들을 위기에서 구해 주셨다니 사문을 대신하여 감사드리오!”

진호의 물음에 혁련천후는 고개만 끄덕였다.

순간 진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그리고 어느새 진호의 옆으로 다가선 일행들 또한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화산의 질풍각주는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아무리 제자들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라도 도를 넘어선 행동이었다.

분위기를 눈치챈 청명이 재빨리 수습하려 나섰다.

“원래 성격이 이런 분…….”

“넌, 물러서라.”

청명은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물러섰다.

“귀하의 신분을 물어봐도 되겠소?”

혁련천후를 노려보는 진명의 눈빛이 날카롭기 그지없다. 그런 진명을 쳐다보던 혁련천후가 청명을 돌아봤다. 누구인가를 묻는 것이다.

“사문의 매화각주를 맡고 계신 분입니다.”

대답을 한 청명의 얼굴은 매우 불안한 기색이다.

혁련천후가 고개를 돌려 다시 진명을 응시했다. 지금 이들은 자신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하지만 화산에 그가 머리를 숙일 존재는 없다.

모두가 그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할 뿐이다.

“화산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그대들에게 하대를 해도 되는 신분이니 더 이상 그것을 문제 삼지 말도록 하여라.”

“뭣이!”

성정이 급한 진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더불어 손이 검파에 닿았다.

그때 진호가 진명을 말리며 물었다.

“신분을 밝히시오. 그래야 대접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혁련천후는 신분을 밝힐 수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진호의 눈을 쳐다본 그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태허 장문에게 볼일이 있으니 그리 알거라.”

“……!”

모두가 다시 놀랐다.

청명과 청진은 더더욱 놀란 얼굴이다. 설마 그가 장문인에게 볼일이 있을 줄이야.

장문인을 거론하니 진호와 진명도 더는 나설 수가 없었다.

비록 혁련천후의 태도가 상당히 거슬리기는 했지만 사문의 가장 큰 어른을 찾아가는 손님에게 더 이상 무례하게 굴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혁련천후의 시선이 다시 청명을 향했다.

“다친 놈을 두고 어디를 가는 길이냐?”

“그게…… 일전에 시비가 붙었던 오대세가의 공자들과 당가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말로 혁련천후는 상황을 대충은 짐작할 수 있었다. 진청의 복수를 하고자 달려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호가 나섰다.

“너희들은 그만 돌아가도 좋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혁련천후를 사문까지 안내하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다.

청진이 나섰다.

“그자들을 찾아야 하니 제가 각주님들을 안내하겠습니다.”

그때 혁련천후가 무심히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

“나도 함께 가겠다.”

* * *

휘휙!

머리에서 발끝까지 흑색 일색으로 무장을 한 일곱 명의 괴한들이 어둠을 가로지르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단리소등이 머물고 있는 고을의 저잣거리였다.

단리소와 일행들은 혁련천후에게 입은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서 지금껏 고을을 떠나지 못하고 머물고 있었다.

휘이잉!

야심한 시각인 까닭에 저잣거리에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저잣거리로 뛰어든 괴한들은 정확하게 단리소 등이 머물고 있는 객잔으로 접근했다.

선두에 섰던 복면인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자 나머지 여섯이 산개하며 삼 층으로 날아오른 후 객잔의 주변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단리소 정도면 이 정도 거리에서의 움직임 정도는 느꼈어야 옳았지만 객실 안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것을 보아 괴한들의 경공이 대단한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창을 노려보던 복면인이 손짓을 보내자 좌우에 섰던 다른 복면인 두 명이 창을 뚫고 그대로 객실 안으로 달려들었다.

콰지직!

“뭐, 뭐냐?”

“누구냐?”

서걱!

“크흑!”

“으악!”

고함과 함께 비명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자 객실 안에선 더 이상의 소리가 들려오질 않았다.

객실의 난간에 섰던 복면인은 객실 안이 잠잠해지자 그때야 안으로 들어섰다.

객실 안은 참혹했다. 단리소와 전진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는데, 죽지는 않았는지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뒤에 팽무철이 겁에 질린 얼굴로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

그런 팽무철의 목을 겨누고 있는 두 자루 장검은 여차하면 그의 목을 잘라 낼 듯 날카로운 빛으로 번득이고 있었다.

뒤늦게 들어선 복면인이 팽무철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묻는 말에 대답만 한다. 그 외엔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 알겠나?”

공포에 질린 팽무철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전, 네놈들과 싸웠던 자의 인상착의를 말해라.”

“누, 누구 말입니까? 크악!”

팽무철의 오른쪽 귀가 삭둑 잘려 떨어졌다.

피가 철철 흘렀지만 팽무철은 신음조차 흘리지 못했다.

“대답만 하라고 했다. 다시 묻겠다. 놈의 인상착의를 말해라.”

“흐, 흑발에 흑색 장포를 걸치고 장검을 들었습니다. 그,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 키는…….”

“이름은?”

“모, 모릅니다.”

복면인의 눈동자가 섬광을 발하자, 기겁을 한 팽무철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화, 화산의 자하각주 진청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용세가의 모용단승이란 놈도 함께…….”

팽무철은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털어놓았다. 말이 다 끝났을 때 복면인이 다시 물었다.

“화산파라고 했나?”

“그, 그렇습니다.”

“허면 놈이 화산으로 가는 중인가?”

“그, 그런 것 같았습니다.”

질문을 던지던 복면인이 고개를 돌리고선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때 다른 복면인들 중 하나가 다가왔다.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에 팽무철이 작살을 맞은 물고기처럼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팽무철을 돌아보았다. 그가 눈짓을 보내자 옆에 섰던 복면인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컥!”

팽무철이 앞으로 꼬꾸라지더니 몇 번을 부르르 떨고는 이내 축 늘어졌다.

“죽이지 말라고 하니까!”

“기절을 한 것이니 걱정 마십시오. 내일 아침쯤이면 깨어날 것입니다.”

“돌아간다.”

스스슥!

복면인들이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들이 향한 곳은 저잣거리의 북쪽에 자리 잡은 또 다른 객잔이었다.

그곳은 당문칠기가 머물고 있는 객잔이었다.

“끄으으…….”

당철은 피를 콸콸 쏟아 내며 힘겹게 꿈틀거렸다.

그런 그의 옆에는 당문칠기의 다른 자들이 핏물 속에 잠겨 있었다.

미동조차 없는 것으로 보아 죽은 것이 분명했다.

“네, 네놈들은 누구냐?”

당철의 눈동자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복면인을 향해 있었다. 당철을 내려다보는 복면인의 눈동자는 지독한 마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너희들을 죽이려고 온 사람이지. 후후후.”

“감히 우리가 누군 줄 알고! 크흑!”

당철은 피를 게워 내고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러나 이내 다시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는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중상을 입은 당충 때문에 귀환을 하지 못하고 고을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들이친 복면인에 의해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

“우리에게 이러는 이유가 무엇이냐?”

“죽을 짓을 했으니 죽어야지.”

감정 하나 없는 복면인의 말에 당철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가 네놈들하고 원한을 진 것이 없거늘 무슨 헛소리냐?”

원독 어린 시선으로 복면인을 노려보며 당철이 부르짖었다. 내려다보는 복면인의 눈이 빛을 발했다.

“며칠 전, 네놈들이 화산을 노렸던 것을 잊진 않았겠지?”

복면인의 말에 당철은 이를 악물었다.

“화산과 관련이 있는 놈들이냐?”

“감히 사천의 졸자들이 화산을 넘보다니, 당연히 죽을 짓을 한 것이지.”

“그렇다면 네놈들은 화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죽은 네놈의 형제들이 알려 줄 것이다.”

복면인이 손짓을 하자 뒤에 섰던 또 다른 복면인이 앞으로 걸어왔다.

“당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이놈들!”

“기대하고 있겠다.”

스산하게 웃어 보인 복면인이 몸을 돌리자 검을 들었던 복면인의 검이 당철을 향해 날아들었다.

서걱!

“크윽!”

털썩!

“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깨어나게 했느냐?”

“예, 대주님!”

“화산이 빠져나갈 길은 없겠군.”

“이미 정도맹의 비영단 소속 무사들이 이곳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관의 포쾌들도 함께 올 것이니 화산은 완벽하게 누명을 뒤집어쓸 것입니다.”

모두가 소리 죽여 웃었다.

* * *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청명은 눈을 비비며 뒷간을 찾았다. 시원하게 볼일을 본 그는 기지개를 펴며 하품을 했다.

“으함! 날씨 좋다.”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던 청명이 돌연 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뭐지?”

수십 명의 관군이 바삐 뛰어가고 있었다.

흑색과 금색이 조화를 이룬 복장에 붉은 모자를 쓴 것으로 보아 형을 집행하는 형부의 관원들로 보였다.

“무슨 사고라도 났나? 포쾌들이 아침부터 불알에 땀나도록 뛰어가네.”

갸웃거린 청명은 일행들을 깨우기 위해 몸을 돌렸다. 관원들과 자신들이 엮일 일은 없었기에 굳이 따라갈 필요는 없었다.

“쩝! 배고프다.”

다시 한 번 늘어지게 하품을 한 청명은 혁련천후가 들어 있는 객실로 향했다. 혁련천후를 깨우러 가는 청명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다.

한편, 당가와 단리소 일행과의 일 때문에 잠을 설친 진호는 청명이 깨우러 오기 전에 이미 깨어 있었다.

얇은 한지로 자신의 애검을 닦고 있는 그의 앞에는 진명과 질풍각의 무사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저자와 함께 가시고자 합니까?”

진명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묵묵히 검을 닦고 있는 진호는 고개를 들지 않고서 되물었다.

“사문의 장문께 볼일이 있다고는 했으나 왠지 꺼림칙합니다. 그 볼일이란 것이 좋은 일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깡!

검을 닦은 진호가 손가락으로 검의 끝을 치자 맑은 검명이 울려 나왔다. 진명의 말에 답을 하지 않고 검만 쓰다듬던 진호는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서야 입을 열었다.

“나쁜 뜻이 있었다면 아이들을 구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어나지 않은 것을 미리 두려워해서야 어찌 화산의 무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

“당가와의 일에도 저자와 함께하실 것입니까?”

“스스로 함께 오는 걸로 봐서 여차하면 돕겠다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 저 정도의 고수가 함께한다면 도움이 되겠지. 사문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내겐 너희들의 목숨이 더욱 소중하니 그리하도록 하자.”

“예. 각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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