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8화 (1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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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18화>

약가촌은 의원들이 모여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뛰어난 명의는 없었지만 의술을 천직으로 알고 돈보다는 인명을 귀하게 여기는 진정한 의원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었다.

전체 가구가 오십을 넘어가지 않는 조그만 마을이었지만 인근 고을에서 몰려든 환자들로 인해 항상 사람이 넘쳐 났다.

약값과 진료비가 다른 곳에 비해 상당히 저렴했기에 환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 약가촌의 끝자락에 활인당(活人堂)이라는 작은 의원이 있었고, 그 의원의 가장 바깥쪽 방에 진청이 누워 있었다.

그리고 진청의 옆에는 육순이 넘은 듯 보이는 의원이 진청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는데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진청을 바라보는 청명과 청진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

“치료는 다 되었으나,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당분간은 절대적으로 안정이 필요하니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진청의 신분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의원은 청명에게 허리를 굽히고선 밖으로 나갔다.

청명이 물에 적신 헝겊으로 진청의 얼굴을 닦아 주며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나는 혹시라도 각주님께서 잘못되시면 어쩌나 싶어서 물도 한 모금 못 마셨다.”

“이상하지? 솔직히 이전까지는 너무 거칠고 사나우셔서 밉고 싫었는데, 피를 뿌리는 것을 보니 눈이 뒤집히더라고.”

“너도 그랬냐?”

“일어나시면 잘해 드리자. 사문에서도 친구가 없는 분이잖아. 어쩌면 항상 혼자였기 때문에 성정이 날카롭게 변했을 수도 있잖아.”

“그래. 우리라도 각주님의 편이 되어 드리자고. 그리고 대협도 각주님을 달리 보시는 것 같기도 하고.”

둘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진이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각주님을 보는 대협의 눈빛이 조금 이상해.”

“뭐가 이상하단 말이냐?”

“며칠 전에 각주님이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때 그분의 표정을 우연히 봤는데, 마치 친동생을 보는 듯한 그런 눈빛이었어. 따뜻하면서도 왠지 쓸쓸해 보이는 그런 눈빛 있잖아. 그리고 뭔가를 회상하는 듯, 각주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보시더니 각주님의 옷소매를 고쳐 주시지 뭐냐? 평소의 얼음장 같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시더라고.”

“진짜?”

청명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청진이 그런 청명의 머리를 쥐어박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진짜라니까.”

“하긴 나도 이상하게 보고 있었어. 느낌에 그분이 사문과 정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나도 그랬는데, 뭐.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그건 그렇고 이분들은 다 어딜 가신 걸까?”

지금 약방에는 진청과 둘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이곳 약방에 데려다주고선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었다.

나중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했지만 세 시진이 지나도 돌아오질 않자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모용단승의 말을 빌리자면 당가의 고수들이 자신들의 뒤를 쫓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만 있을 때 그들과 맞닥뜨리면 그야말로 큰일이 아닌가.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곧 오시겠지. 그만 하고 밖에 나가서 뭐라도 먹자. 배고파서 정신이 다 없다.”

둘은 진청을 덮은 이불을 만져 주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진청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의식은 벌써 돌아왔었지만 청명과 청진의 대화에 그냥 누워 있었던 그는 사질들의 대화를 들어 버렸다. 혁련천후의 행동에 대한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이는 것을 느꼈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한없이 따뜻했다고? 그 인간이 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의구심도 들었다.

‘정말 사문과 관련이 있는 걸까?’

돌이켜 보니 다짜고짜 사문과 진유를 거론하는 것부터 모든 게 수상했다.

자신에게 미련 없이 소환단을 준 것도 이상했다.

진청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약기운이 몰려든 까닭이었다.

* * *

영호민은 자신의 앞에 앉은 모용단승의 얼굴을 힐끗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신기하네.’

모용단승은 혁련천후와 막상막하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고 말수 또한 누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절대 먼저 말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적었다.

저런 성격에 어떻게 생면부지의 고수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했는지 당최 믿기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양반은 왜 안 오는 거지?”

모용단승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비슷하게 생겨먹은 혁련천후의 얼굴이 떠오르자 영호민은 코를 찡긋하며 기지개를 켰다.

불현듯 걱정이 된다.

‘설마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

혁련천후가 고수라는 건 안다.

그래도 혹시 뭔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닭다리를 열심히 뜯고 앉았던 탁철이 물어 온다.

“걱정되면 나가서 찾아봐.”

“고기나 드시오.”

“걱정 마라. 장담하건대 그 양반을 건드릴 자, 적어도 당가엔 없다. 가주가 직접 온다면 몰라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소?”

“그냥 느낌이다.”

“망할.”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린 영호민은 객잔의 창밖을 응시했다.

의원들만 살고 있는 마을치고는 제법 사람들이 많았고 간혹 칼을 찬 무림인들도 보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앉아 있는 객잔에도 상당수의 무림인들이 있었다. 마을에서 하나밖에 없는 객잔인지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몰려든 까닭에 실내는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창밖과 객잔 안을 두루 살펴보던 영호민이 순간 크게 놀란 표정을 했다.

‘악!’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탁철과 모용단승이 그런 영호민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봐요, 나 먼저 가요. 나중에 봅시다.]

영호민은 탁철과 모용단승에게 전음을 보내고선 슬쩍 객잔의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뭐라 말을 하려고 일어서려던 탁철에게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시늉을 해 보이고선 객잔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저게 미쳤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벅이던 탁철이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탁철은 모용단승에게 가자고 말을 하려다 흠칫했다.

객잔의 입구 쪽을 쳐다보고 있는 모용단승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탁철의 시선도 그쪽을 향하게 되었다.

객잔 입구의 좌측 탁자엔 방금 들어온 인물들이 앉아 있었다.

이십 대 중반의 청년 한 명과 사십 대 정도로 여겨지는 중년인이 객잔 안을 둘러보며 물을 마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모용단승의 시선은 중년인을 향해 굳어져 있었다.

‘뭐야, 이거…….’

중년인을 본 탁철 또한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의도적으로 기세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중년인의 전신에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이 풀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긴장하게 만드는 그것은 칼 밥을 먹고 살아가는 무림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형의 기운만으로 적을 압도하는 절대기도, 바로 그것이었다.

객잔 안의 많은 무림인들이 자신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지만 중년인과 청년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태도가 여유로웠다. 오히려 자신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가볍게 웃어 주기까지 했다.

탁철이 모용단승에게 전음을 날렸다.

[그만 봐라. 그러다 죽을 수도 있다.]

“…….”

“기다리겠다. 그만 가자.”

“예.”

둘은 객잔의 입구로 향했다.

무심결에 청년과 눈이 마주친 모용단승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옥같이 잘생긴 청년의 눈동자가 자신의 내부를 모조리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던 까닭이다. 어딘가 낯이 익은 듯한 청년은 미소를 보이고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들이 객잔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고 나갈 때였다.

“십전무제 영호 대협 아니십니까?”

약간 떨리듯 들려온 음성이 탁철과 모용단승의 걸음을 붙잡았다.

그리고 급격하게 변하는 얼굴과 쿵쾅거리는 가슴을 느껴야만 했다.

십전무제 영호도성!

칼 밥을 먹고 살아가는 무림인들의 정점에서 군림하고 있는 오인의 절대 고수들, 무림인들은 그들을 가리켜 오성(五星)이라 칭송했고, 십전무제 영호도성은 바로 그 오성의 일인이자 영호세가의 전대 가주였다.

십전무제란 별호는 검과 도, 그리고 권각과 장법까지 모든 무공에서 절대의 경지에 들어선 그를 보고 세인들이 붙여 준 것이다.

칠순을 넘어선 나이였지만 가진 강력한 내공 때문에 불과 사십 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알아보고 인사를 해 오는 인물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영호도성은 요리가 나오자 묵묵히 식사를 시작했다.

객잔 안이 일순 술렁거리고 있었지만 영호도성에게 더 이상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영호도성은 인사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호도성과 청년을 쳐다보던 탁철과 모용단승은 이내 진청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형하고 저 양반하고 붙으면 누가 이길까?”

탁철이 눈을 크게 하고서 물어 왔지만 모용단승은 앞만 보고 걷고 있었다.

탁철은 모용단승이 대답을 하지 않자 객잔을 한 번 돌아보고선 다시 물었다.

“내가 한번 붙어 볼까?”

탁철의 말에 모용단승의 걸음이 엄청 빨라졌다. 그리곤 아예 경공을 펼쳐 날아갔다.

“어! 얼음, 같이 가자.”

탁철이 몸집과는 달리 재빠르게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마침 밖을 쳐다보고 있던 영호도성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탁철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그의 얼굴에 가벼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허허허. 그 늙은이가 제자를 하산시킨 모양이구나.”

청년이 물었다.

“파천도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잘 봐 두어라. 장차 너와 각축을 벌일 경쟁자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니.”

“예, 조부님.”

* * *

청명과 청진은 식사를 하려고 객잔을 찾고 있었다.

약가촌에서 하나밖에 없는 객잔은 상당히 붐비고 있었지만 마침 빈자리가 있어 그곳에 앉을 수 있었다. 수중에 은자가 적었던 그들은 간단한 소면과 만두를 시키고선 주변을 돌아보았다. 서른 명 정도가 식사를 하고 있었고 대부분이 칼을 찬 무림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가끔 객잔의 입구 쪽을 힐끗거렸다. 영호도성과 청년의 정체를 모르는 그들은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왜 아직 오시지 않지?”

“그러게. 뭐, 별일이야 있으시겠어?”

“그렇지?”

둘은 혁련천후를 걱정하고 있었다.

수십 일을 함께해 오는 동안 혁련천후에 대한 감정은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었다.

왠지 화산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남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청진과 청명이 혁련천후를 떠올리고 있을 때, 그들의 뒤쪽으로 다가서는 인물이 있었다.

청명의 뒤쪽에 다가선 인물이 우장을 들어 올렸다.

그때까지도 그들은 전혀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한껏 올라갔던 우람한 손이 청명의 뒤통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퍽!

“으악!”

뒤통수를 가격당한 청명이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청진의 고개가 황급히 뒤로 돌아갔다.

“힉!”

청진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청명의 머리를 움켜쥐고 있는 인물이 청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가, 각주님!”

“이놈들! 사문으로 돌아오지 않고 여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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