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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7화 (1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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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 17화>

제7장 악연의 시작

혁련천후는 경공을 펼치지 않고 걸어서 이동했다. 그는 지금 조금은 귀찮은 일을 하러 가는 중이다.

‘추격하는 자들이 있겠지.’

사천당가라면 반드시 자신들의 뒤를 추격해 올 것이 뻔했다. 누가 오든 두려울 것 없었지만 다른 일행들은 달랐다.

탁철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당가의 독에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을 다치게 놔둘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러한 감정이 솟구치는 자신이 여전히 이해되질 않음은 어쩔 수 없었다.

반 시진 정도를 걸어가자 고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나타났다. 그는 언덕 위에 솟아 있는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고을에 전단을 붙였다면 당가의 인물들은 지척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이곳으로 올 것이 분명했다. 나무에 등을 기댄 그는 이내 눈을 감고 기다림을 시작했다.

혁련천후가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을 때, 당문칠기는 인근의 객잔에서 막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문칠기의 맏형 당충은 자신의 독문암기인 파혼침을 소맷자락 안에 갈무리하며 이를 갈고 있었다.

“감히 화산의 조무래기 따위가!”

당문성을 암습한 혁련천후의 흔적을 찾아 며칠을 헤맨 그는 우연히 만난 팽무철과 단리소 일행을 통해 혁련천후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동한 경로 또한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말을 들어 보니 부상을 입은 일행이 있다고 했다. 당연히 혁련천후의 이동 속도가 느릴 것이라 판단하고선 서둘러 추적에 나섰다.

“큰형님! 저쪽으로 핏자국이 있습니다.”

일곱째 당조가 소리를 질렀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보아 상당히 성질이 급한 듯 보였다.

과연 당조가 가리키는 곳에는 핏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당충은 허리를 숙여 자세히 살피더니 얼굴 가득 짙은 살소를 지었다. 피가 응고된 상태를 보니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핏자국이 이어진 곳을 쳐다보던 당문칠기의 눈에 제법 높은 언덕이 보였고, 그 언덕 옆에 솟아나 있는 커다란 나무가 눈을 찔러 왔다.

당충은 싸늘히 웃었다.

“끝장을 볼 때가 되었군. 후후후!”

“큰형님. 이번에 소제에게 맡겨 주십시오. 단숨에 작살을 내 버리겠습니다.”

당문칠기 중 가장 잔인한 손속을 지닌 셋째, 당복기가 살소를 흘리며 말하자 당충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문의 대공자를 건드렸으니 고통스럽게 죽여 줘야지. 그렇지 않느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흐흐흐!”

당충이 언덕을 향해 몸을 날리자 나머지 여섯 또한 일제히 뒤를 따라 경공을 펼쳤다. 표홀한 신법은 그들의 수준이 어떠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일곱인가?’

혁련천후는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날아드는 기척을 느끼자 감았던 눈을 떴다.

백색 장삼을 입은 일곱 인영들이 비호처럼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그들을 쳐다보던 혁련천후는 나뭇잎 두 개를 손안에 쥐었다.

‘살고 죽고는 너희들 판단에 달렸지.’

얼음장 같은 냉소가 피어오르며 나뭇잎 두 개가 그의 손을 떠났다. 활엽수가 공기의 저항을 무시하고 송곳처럼 날아갔다.

놀라운 장면이다.

퍽!

“커억!”

“으악!”

언덕 위로 몸을 날리던 당문칠기 중 두 명이 허공에서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막내 당조와 여섯째 당필이었다.

난데없는 상황에 당충이 두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무슨 일이냐!”

“암습입니다! 근처에 자색이 숨은 듯합니다!”

“자객이라니! 대체 누가 우리를 노린단 말이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문칠기는 일순 혼란에 빠져버렸다.

땅바닥에 처박힌 당조와 당필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황급히 상세를 살피러 달려간 당복기가 대경하며 신음성을 토했다.

“나, 나뭇잎!”

“허억!”

뒤를 따라 다가온 나머지 인물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변해 버렸다. 당조와 당필의 어깨에 꽂혀 있는 나뭇잎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늘하늘한 나뭇잎이 마치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워 반 이상이 살 속으로 박혀 있었다.

“초고수입니다. 큰형님!”

모두의 얼굴이 경악을 보인다.

무게가 거의 나가지 않는 활엽수를 날려 당조를 이 지경으로 만들 자는 세상에 몇 없다. 더구나 당한 상대는 절정을 바라보는 자신의 동생이었다. 아무리 창졸간에 당한 것이라 해도 이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설, 설마.’

당충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당조와 당필을 이렇게 만든 인물이 만약 자신들이 추적하던 자라면?

‘만약 그놈의 소행이라면 문성이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건데…….’

팽무철에게 들은 바로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인다고 했었다. 그 정도 나이에 이와 같은 절대경지에 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금을 통틀어 그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조차 없었다.

그렇다면 상대는 반로환동의 경지를 지닌 개세 고수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고수가 낭인처럼 다니는 법은 없었다.

‘그래, 그놈은 아닐 거다. 어쨌거나 당장의 적부터 처치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버린 당충은 눈빛을 내고선 주변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사천당가의 사람들, 냉큼 정체를 밝히지 못하겠느냐!”

가진 재주와 당가의 힘을 믿고 있는 당충은 흉수를 끌어내고자 마음을 먹었다. 당한 것은 반드시 갚아 주어야 하는 것은 당가의 철칙이다.

자신이 고함을 질렀음에도 나타나는 자가 없자 당충의 눈이 돌아갔다.

날카롭게 주변을 살피던 당충이 언덕 위의 거목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몸을 은신할 만한 곳은 저기뿐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당충은 즉시 명령을 내렸다.

“저, 나무 위쪽을 향해 모조리 암기를 퍼부어라.”

당문칠기 모두는 자신들의 독문암기를 빼어 들었다. 당충의 파혼침이 뿌려짐과 동시에 수십 발의 암기들이 나무를 향해 날아갔다.

슈슉!

혁련천후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저들의 경공으로 보아 자신이 보여 준 수법 정도면 스스로 판단하고 물러설 정도의 안목을 지닌 자들로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암기를 날려 자신을 찾고 있었다.

‘지독한 성정은 여전하군, 당가!’

따다다당!

수십 발의 암기 중 몇 발이 혁련천후의 몸으로 날아들었지만 자연스레 형성된 강기에 의해 모조리 튕겨 나갔다.

암기들은 당충의 파혼침이 대부분이었다.

만약 당충이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입에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파혼침은 절정을 넘어선 고수들을 상대하려 만들어진 비장의 암기였다.

당연히 어지간한 강기 정도는 종이를 뚫듯 쉽게 뚫어 버리는 것이 그것인데 모조리 재로 변하며 튕겨 버렸으니…….

“어리석은 자들이군.”

차가운 음성이 당문칠기의 귓속을 때렸다.

나무 위에서 혁련천후가 모습을 드러내자, 당문칠기는 일제히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무의 모든 방위를 향해 암기를 퍼부어 댔음에도 멀쩡한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나이가 너무나 젊었다.

놀란 표정을 지워 낸 당충이 물었다.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어 암습을 가한 것이냐!”

당충의 오른손엔 벌써 파혼침 몇 발이 들려 있었다.

나머지 인물들도 남은 자신들의 독문암기를 손에 쥔 채 혁련천후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암습?”

혁련천후의 싸늘한 표정이 더욱 차갑게 굳어지며 당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당충과 형제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흠칫거리곤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당가에 내가 암습할 정도의 인물이 있었나?”

당충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건방진 새끼, 네놈이 감히 당문을 모욕하다니.”

“모욕은 강자들만이 논할 수 있는 것, 너희 당가는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뭣이!”

혁련천후의 그 말이 당문칠기를 성나게 만들었다.

당충이 오른팔을 힘껏 휘둘렀다.

“쳐라!”

말과 함께 당충의 오른손이 벼락같이 휘둘러졌다. 워낙 가까운 거리였기에 당충과 당문칠기의 얼굴에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이 정도 거리면 천하제일 고수라는 무존(武尊) 관요(冠堯)라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건 그들만의 착각이었다.

따다당!

암기는 혁련천후의 몸에 닿기도 전에 모조리 튕겨 날아갔다. 뒤이어 퍽 하는 소리가 울렸다.

“으아악!”

또 한 명의 당문칠기가 꼬꾸라졌다.

불행하게도 그는 대형 당충이었다.

“혀, 형님!”

남은 자들이 쏜살같이 당충을 향해 날아갔다. 오 장 밖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당충의 전신에는 당문칠기의 암기가 그대로 박혀 있었다.

호신강기에 튕겨서는 고스란히 그의 몸에 박혀 버린 것이었다.

“크으…….”

고통에 신음하는 당충의 얼굴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암기에 발려진 독 때문이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살아나기는 글러먹은 것으로 보이자, 당복기와 나머지 인물들은 망연자실 넋을 놓고 말았다.

“형님!”

혁련천후의 목소리가 울렸다.

“해독을 하면 목숨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

그 말이 들리자 당복기의 표정이 아차 하는 듯 보이더니, 황급히 자신의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빨리 각자의 해독약을 풀어라. 어서!”

당복기의 말에 나머지 인물들이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자신들의 품 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지금 당충은 자신들의 암기에 당한 것이다.

칠보장독을 발라놓은 자신들의 암기를 수십 발이나 맞았으니 빨리 해독하지 않으면 창자가 녹아내리며 죽음을 면치 못한다.

“대형! 조금만 참으십시오!”

허겁지겁하는 당문칠기의 모습에 혁련천후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모조리 쓸어버릴 작정을 했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이 또다시 약해지고 있었다.

그들의 목숨 줄을 손에 쥔 자신이 앞에 있는데도 그들은 자신들의 대형을 살리고자 난리를 떨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손을 쓰면 저들은 모조리 황천길로 가야 한다.

저들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당충을 살리는 것만이 전부인 듯 그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사문의 형제라…….’

어쩌면 가장 큰 상처라고 할 수 있는 사형제 간의 정이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버렸는지도 몰랐다.

슬쩍 올라갔던 손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결국 살려 주기로 마음을 바꾼 것이었다.

“다시 나타나면 그때는 당가를 세상에서 지워주겠다.”

차가운 목소리가 당문칠기의 귓속을 울렸지만 아무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다.

그들에겐 당장 당충을 살리는 것만이 지상 과제였다. 퍼렇게 변해가던 당충의 낯빛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이미 혁련천후는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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