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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4화 (14/425)

# 14

<귀환무사 14화>

진청이 물었다. 그들이 오대세가의 인물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수준까지는 정확하게 모르는 진청이다.

“조금…….”

중얼거리듯 대답한 모용단승이 고개를 들어 전진을 노려보았다.

무공을 구걸하는 거지새끼 주제에.

조금 전 전진과 단리소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자신은 무공을 구걸하고 다녔었다.

스스로도 인정한다.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더 강한 것을 알면서도 싸우기로 마음먹은 것은 혁련천후의 말과 여차하면 그가 나서 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면 없던 일로 해 줄 수 있다.”

전진이 히죽거렸다.

“그건 내가 할 소린데?”

진청이지지 않고 받아치자 단리소가 검을 뽑았다.

“그냥 빨리 끝내고 낭인과 그 옆의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을 끌어내자고.”

“그거 좋지.”

챙!

전진도 검을 뽑았다.

진청이 심호흡을 하고서 검을 빼 들었다.

챙!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쇳소리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모용단승이 검을 뽑았다. 검부터가 다른 이들에 비해 형편이 없었다. 날도 무뎌진 데다 관리를 안해서인지 곳곳에 녹이 슨 자국이 선명했다.

전진이 그 검을 보고 크게 비웃었다.

“닭이라도 잡을 수 있겠냐? 하하하!”

혁련천후를 향해 있는 남궁소미의 눈빛이 매우 반짝거리고 있었다.

오대세가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남궁세가의 금지옥엽이자 신진 고수들 중에서 뛰어난 여고수들을 일컫는 삼봉(三鳳)의 일인인 그녀는 무공만큼이나 뛰어난 지혜를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보면 볼수록 근사한 사람이다.’

처음 영호민의 뛰어난 용모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던 그녀는 이내 당문성을 일초에 때려눕힌 혁련천후의 모습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차가운 표정과 강인한 무력, 그리고 적용세의 앞에서도 전혀 움츠리지 않는 배짱은 사내의 향기를 물씬 느끼게 해 주었다.

거기에 고독하면서도 차가운 분위기는 자신의 주변에 널려 있는 다른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매력이 넘쳐 났다.

‘흥! 꼬리가 아홉 개는 보인다.’

혁련천후를 뚫어질듯 쳐다보는 그녀들이 영호민은 못마땅했다. 특히 남궁소미의 눈빛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참아야 했다.

‘꼬리만 쳐 봐. 확! 꼬리를 잘라 줄 테니.’

스스로 결의를 다진 영호민이 본격적으로 만두를 먹으려고 젓가락을 집어 가려 할 때, 만두의 구수한 냄새에 갑자기 향기로운 여인의 향기가 섞였다.

정신없이 만두를 먹고 있던 탁철이 고개를 들었다.

“엉?”

남궁소미와 황보수란의 어느새 그들의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 계집애들이 진짜!’

영호민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남궁세가의 남궁소미라 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합석해도 되겠지요?”

“저도요.”

둘은 대답도 듣지 않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들이 난데없이 끼어들자 영호민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었다.

“이봐요, 아가씨들! 당신들과 우리는 이럴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남궁소미의 고운 아미가 살짝 올라갔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적대감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연적(戀敵)을 만난 것처럼…….

“소협께서 뭔가 오해를 하신 듯하군요. 저희는 그냥 그들과 함께 있었을 뿐인데요? 싸움도 당 공자와 저 사람들이 걸었고 말이죠.”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말하는 남궁소미를 영호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망할 계집애들이 낯짝에 만년한철을 깔았잖아.’

남궁소미는 이내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저희들도 이름을 밝혔으니 여러분들도 답을 해 주셔야죠.”

탁철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흘흘! 이쪽은 우리의 대형이시고. 그리고 이놈은 영호민, 나는 탁철이라 하오.”

“그러셨군요.”

가볍게 미소로 화답을 한 남궁소미는 반짝이는 눈망울을 혁련천후에게로 향했지만 그때까지도 그는 그녀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기분이 상할 법도 했지만 그녀들은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남궁소미의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화산파에서 오셨나요?”

“그렇소.”

혁련천후의 무심한 대답에 청진과 청명이 되레 놀랐다.

“혹시 매화무적 진 대협은 아니시겠죠?”

“아니오.”

영호민의 인상이 점점 더 불쾌하게 변해 갔다. 그는 꼬박꼬박 대꾸를 하는 혁련천후가 불만이었다.

‘뭐야? 처음 만났을 때, 우리한테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더니. 설마 저 계집들한테 마음이 동한 거야?’

남궁소미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값은 제가 내죠.”

“흐흐흐! 진심이오?”

탁철만 신이 났다.

제6장 복수는 꿈도 꾸지 마라

진청과 모용단승을 한 수 아래로 여기고 우습게보았던 단리소와 전진은 선뜻 달려들지 못했다.

의외로 진청과 모용단승의 기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다칠 것을 우려해서였다.

하지만 객잔에 자신들이 흠모하는 두 여인들이 있었다. 그녀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야 했기에 단리소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서 진청을 향해 다가갔다.

“후후! 매화무적의 후광을 입어 각주 자리에 오른 것을 알고 있다. 우습지 않나? 구파의 하나인 너희들이 아직도 그런 작태를 보인다는 것이.”

“똘똘 뭉쳐 몽니를 부리는 너희 오대세가보다는 낫지.”

자신의 약점을 걸고 넘어졌지만 진청은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받아쳤다.

심기를 어지럽힐 심산으로 말을 건넨 단리소는 의외로 그가 차분하게 대응하자 내심 놀랐다.

그는 다시 말을 늘어놓았다.

“너의 사문을 믿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네놈 따위를 죽여 버린다고 뭐가 어찌될 거라는 생각 또한 집어치워. 지금의 화산은 네놈조차 보호해 줄 능력이 없을 테니까.”

“어차피 그런 생각 따윈 내겐 없어. 단, 화산을 모욕하지 마라. 그곳엔 네놈 같은 것들은 한 방에 두 조각 내 버릴 괴물이 있음을 알아야지.”

단리소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다.

“잘난 매화무적을 말하는 것이냐?”

“잘났지. 네놈의 세가에서 그만한 경지의 고수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 잘난 너희들의 가주도 고작 절정을 겨우 넘어섰다고 소문이 자자해서 말이야.”

진청은 단리소의 빈정거림에도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대응했다. 오히려 단리소가 걸려들었다.

“주둥이만 살아 있는 허접한 새끼! 죽여 주마.”

단리소가 기세를 뿜으며 다가오자 진청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선 처음부터 자신의 절기를 전력으로 펼치리라 마음을 굳혔다.

‘전보다 강해졌다. 스스로를 믿고 전력을 다한다.”

사형의 후광으로 자하각주에 올랐다고 온갖 질시와 경멸을 받으며 살아온 자신이다. 그런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수많은 날을 각고의 수련을 해 왔었다. 비록 괴물 같은 존재에게 걸려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졌지만 단리소 정도에게 치욕을 당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싸우다 안 되면 무릎 꿇고 빌어라. 그럼 죽이지는 않으마.”

비웃음과 함께 단리소의 신형이 늘어나듯 진청을 덮쳐 왔다. 오른손을 직선으로 뻗어 오자 흐릿한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빠르다!’

진청은 단리소의 검이 자신의 어깨를 노리고 들자 재빨리 검을 휘둘러 측면을 후려쳤다. 동시에 회전을 하며 단리소의 옆구리를 베어 갔지만 손쉽게 피해 낸 단리소가 상당한 빠르기로 다리를 잘라 왔다.

깡!

공세를 막아 낸 진청이 절기인 태청검법을 펼쳤다. 빠르고 파괴적인 기운이 단리소의 왼 어깨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역시 허공을 갈랐다.

단리소의 얼굴이 조금은 굳어졌다. 진청의 검이 생각보다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이놈! 소문보다 강하다. 하지만 나의 적수는 아니다.’

예상보다 진청의 검이 날카로웠지만 자신의 적수는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은 단리세가의 비전가예를 십 성가량 익힌 절정 고수, 아직 절정의 그림자도 밟지 못한 진청 정도가 자신의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조심해라, 단리소. 평생을 팔 하나로 살 수도 있어.”

진청의 입가에 섬뜩한 냉소가 걸렸다. 단리소를 향해 겨누어진 그의 검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아지랑이를 본 단리소가 처음으로 조금의 놀란 빛을 보인다.

“검기!”

진청자의 검 끝에서 피어오른 기운은 바로 검기였다. 검강을 가기 전의 경지가 검기였다. 무형의 검기를 유형으로 만들어 내면 검의 파괴력과 날카로움이 몇 배는 증가한다. 그리고 검기를 품은 검은 어지간한 물체는 모두 벨 수 있는 날카로움을 지니게 된다. 지금 진청이 보여 주는 경지가 검기의 경지였다. 놀람을 보였던 단리소의 얼굴은 어느새 본연의 신색을 되찾고 있었다.

자신은 이미 오래전에 진청이 보여 주는 경지를 뛰어넘었다. 다만 놀란 것은 진청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오호, 제법이야. 검기를 보이다니, 크크!”

얼굴은 비웃음을 흘렸지만 속내는 제법 긴장했다. 자칫 스치기라도 하는 날엔 진청의 말처럼 한 팔로 평생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소문이 잘못되었군. 허나 너의 패배는 변함이 없다.”

검을 고쳐 잡은 단리소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속도와 파괴력이 좀 전보다 달랐다. 흠칫한 진청은 황급히 검을 틀어 단리소의 공세를 정통으로 막아 냈다.

꽝!

“우욱!”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진청이 주르륵 뒤로 밀려났다.

“오호, 놀라운걸. 그것을 견뎌 내다니.”

단리소가 짐짓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진청의 눈에는 비웃음으로 보였다. 속이 울렁거리며 뜨거운 것이 올라왔지만 억지로 삼켜 버렸다.

‘젠장! 더럽게 강한 새끼군.’

검을 고쳐 잡은 진청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한 수로 둘의 우열이 확연하게 드러났지만 물러설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어쩌면 그러한 투지가 진청의 가장 큰 무기라 볼 수도 있었다.

“어릴 적부터 영약으로 처바른 놈이라 확실히 다르군.”

“피해 의식에 사로잡힌 애송이 새끼. 후후후.”

“닥쳐! 개새끼야!”

진청은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검에 혼신의 힘을 담았다. 비웃음을 머금은 단리소의 눈을 보고 있자니 투기와 오기 대신 살기가 치솟았다.

까가강!

진청과 단리소의 옆에서 모용단승과 전진이 격렬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쉽게 봤던 모용단승이 의외로 오래 버텨 내자 조금은 놀란 전진이 내공을 십 성까지 끌어 올려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양상은 일방적으로 전진에게 기울어 갔다.

“제법이구나. 거지 주제에!”

“닥쳐! 개자식아!”

땅을 박찬 모용단승이 직선으로 전진을 덮쳐 갔다. 속도만을 중시한 단순한 초식이 전진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다. 삼류 무사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단순한 공격에 전진의 입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병신.”

깡!

제법 빠른 모용단승의 검초를 가볍게 쳐 낸 전진은 몸을 한 바퀴 회전시키며, 모용단승의 어깨를 베어 감과 동시에 검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모용단승의 머리를 노렸다.

실로 대단한 임기응변의 한 수였지만 모용단승을 가격하지는 못했다.

간발의 차이로 전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던 모용단승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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