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3화 (13/425)

# 13

<귀환무사 13화>

웅성웅성!

초대형 만두의 등장으로 객잔 안의 모든 시선이 만두를 향해 있었다. 엄청난 반응에 왕필의 얼굴이 뿌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혁련천후 일행을 보고 있던 남궁소미가 모용단승을 발견하고는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저 사람은 무공을 구걸하고 다닌다는 모용세가의 후계자가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모용 공자가 맞군요.”

“공자는 무슨. 그나저나 다시 봐도 참 멋진 소협이지 않아요?”

남궁소미가 영호민을 가리키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자 황보수란이 맞장구를 친다.

“저도 저렇게 잘생긴 소협은 처음 봤어요. 어느 문파에서 오셨는지 궁금해 죽겠는걸요.”

“호호호!”

두 여인이 맞장구를 치자 팽무철도 뒤늦게 모용단승을 발견하고선 비웃음을 짓는다.

“저 병신, 이젠 저놈을 물은 모양이군.”

명문세가의 자제들이라 서로 알고 지냈던 그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탄탄대로를 달리는 그로서는 무공을 구걸하고 다니는 모용단승이 하찮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은연중에 오대세가의 명예를 더럽힌다고 손가락질까지 하고 있었던 터다.

팽무철의 표정을 본 단리소가 물었다.

“저놈들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말해 봐. 우리가 해결해 줄 테니.”

“단리 형 말이 맞다. 무슨 일이냐?”

전진이 거들었다.

남궁소미와 황보수란의 태도 때문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 단리소는 당장에라도 혁련천후 일행들을 때려눕히고 싶었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던 터라 화를 누르고만 있었다.

평소부터 황보수란을 연모했던 그로서는 영호민의 낯짝을 갈아 버리고 싶었다.

보는 시선만 없었으면 명분이고 뭐고 그냥 엎어 버렸을 그의 성정이지만 그렇게 하기엔 객잔과 바깥쪽 모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곳은 정도맹의 본 단이 있는 섬서다. 만에 하나 명분 없는 싸움을 하다가 맹의 수뇌부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자신의 출셋길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

“전에 우리하고 시비가 붙었던 놈들입니다. 당 형이 다친 것도 저자 때문입니다.”

팽무철이 턱으로 혁련천후를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

“그래?”

단리소의 눈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두들겨 팰 명분을 찾은 것이다. 단리소와 전진의 시선이 부딪혔다. 서로를 향해 웃어 보인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당문성이 방심을 했다가 당했을 것이다. 허나 우리에겐 통하지 않아!”

“별걱정을 다 하네. 걱정 말고 술이나 시켜 놔.”

단리소와 전진은 자신만만했다.

팽무철의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문성이 한 방에 나가떨어지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래도 둘이 합공을 하면 제 놈이 무슨 재주로 견뎌 내겠어.’

둘의 합공을 생각하자 불안했던 마음은 눈 녹 듯 사라졌다.

단리소와 전진의 무공 수준은 당문성보다 조금 강하다. 단리세가와 남해검문의 절기를 한 몸에 탑재하고 있는 그들이라면 혁련천후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너 이제 죽었다’라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겠는걸? 후후후.’

일행들은 난감했다.

만두의 크기도 문제였지만 객잔 안의 모든 시선이 자신들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만두 먹는 원숭이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쩝, 먹긴 먹어야겠는데, 쳐다보는 눈들이 많으니 졸지에 원숭이가 된 기분이네. 쳇!”

영호민이 투덜거렸다.

그때 탁철이 대도를 뽑았다.

스르릉!

“뭐 하는 짓이오!”

영호민이 화들짝 놀라며 탁철의 손목을 잡았다. 자신의 말에 객잔의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뭐 하긴, 먹으려면 썰어야지.”

“도로 집어넣어요. 사람 잡을 일 있어요?”

탁철이 만두만큼이나 넓은 대도를 꺼내 들자 일행들과 만두를 번갈아 쳐다보던 객잔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탁철이 꺼낸 대도(大刀) 또한 만두만큼이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넓적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도집은 도를 꺼내기 전엔 병풍을 접어 놓은 형상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것을 칼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꺼내고 보니 모두가 그 크기에 놀랐다.

진청이 신경질적으로 주방을 향해 외쳤다.

“이봐! 먹을 수 있게 썰어 줘야 할 것 아니야.”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왕팔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경험이 많은 왕팔은 자신을 싸늘하게 쳐다보는 진청이 무림의 고수임을 대번에 눈치채고는 재빨리 다가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소인이 미처 그 생각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인이 드시기 좋게 썰어 드리겠습니다.”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간 왕팔이 넓적한 칼을 들고 나왔다. 또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만두로 몰렸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웅성웅성!

객잔 안의 모든 시선이 왕팔의 손에 들려 있는 넓적한 칼과 만두에 모아졌다.

왕팔이 만두의 가운데를 자르려 칼을 가져갈 때쯤 차갑고도 오만한 목소리가 그의 손길을 막았다.

“그 만두를 내게 팔아야겠는데.”

단리소와 전진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일행들을 쓸어보며 다가오자 진청의 눈썹이 역팔 자로 휘어졌다.

‘이것들이.’

영호민이 두 손을 어깨 위로 올리는 시늉을 하며 입술을 삐죽인다.

“밥 먹긴 또 글렀네.”

한편, 단리소는 혁련천후를 빠르게 훑었다. 당문성을 한 방에 쓰러뜨렸다는 그에게서 특별한 기운이라고는 조금도 느낄 수가 없자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그는 평소 과장된 꾸밈을 좋아하던 팽무철을 떠올리고선 비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쉽게 끝낼 수 있겠군.’

질투는 이렇듯 무섭다.

고대의 어떤 나라는 왕의 질투 때문에 나라가 망한 적도 있었다.

단리소는 묵묵히 차를 마시던 혁련천후를 향해 싸늘히 물었다.

“당신이 당 소협과 싸웠소?”

혁련천후가 비로소 단리소에게 눈길을 주었다. 무심하기 짝이 없는 그의 눈빛에 단리소는 일순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입을 놀렸다.

“사람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게 예의가 아니겠소?”

“어이! 너희들! 지금 시비 거는 거냐?”

탁철의 거친 태도에 전진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우리가 뭐가 아쉬워서 무공을 구걸하는 놈 따위가 섞인 무리에게 시비를 걸겠냐?”

전진의 그 말에 모용단승의 얼굴이 붉어졌다. 창피해서가 아니라 모욕에 화가 치민 까닭이었다.

“그렇게 노려보면 뭘 어쩔 수나 있냐?”

“놔둬라. 제 눈깔로 노려보는데 어쩔 수 있겠냐. 하하하!”

단리소와 전진이 큰소리로 웃자 모용단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보다 진청의 독설이 먼저 날아들었다.

“아주 지랄을 해라. 너희 세가에선 칼 뽑는 것만 배웠나 보지? 툭하면 시비 걸고 칼이나 뽑아 들고, 배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설쳐대기는.”

“뭐?”

“귓구멍에 뭘 처박았나. 다시 한 번 말해 주랴?”

진청은 자신이 있었다.

절대적으로 믿음이 가는 혁련천후와 탁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소환단을 먹은 이후로 부쩍 강해진 힘을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더 강했다.

“화산의 자하각주께서 뭘 잘못 쳐드신 것 같군. 설마 저 낭인을 믿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것은 아니겠지?”

“사형의 줄로 각주가 된 놈이 주둥이는 천하고술세.”

둘의 빈정거림에 진청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바로 사형 진유의 배경으로 자하각주에 올랐다는 말이었다.

분위기가 일촉즉발로 변해 가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조리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아는 명문세가의 인물들은 자비심 따위는 없는 존재들, 일이 터지기 전해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개자식들이!”

진청이 검파에 손을 가져갔다. 전진이 그런 진청을 다시 한 번 비웃는다.

“화산의 자하각주가 낭인의 꽁무니를 따라다닌다더니 입도 낭인처럼 걸레가 되었군.”

분위기가 이렇게까지 흘렀어도 혁련천후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영호민이 그런 혁련천후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슬슬 더 재밌어지는데, 과연 저 사람은 어떻게 나올까?’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혁련천후의 입에서 무심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싸우려거든 밖에서 싸워라.”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를 주목했다.

혁련천후는 진청과 모용단승을 한차례씩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강호의 무사라면 받은 모욕은 부조건 갚아 줘야 한다.”

그 말에 진청이 기다렸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성큼 객잔 밖으로 향하며 전진과 단리소를 향해 도발했다.

“주둥이는 그만 놀리고 밖에 나가서 끝장을 내는 게 어때?”

전진과 단리소는 어이가 없어 서로를 돌아보며 웃었다.

혁련천후는 모용단승을 직했다.

화는 났지만 감히 나설 엄두가 나질 않았던 모용단승은 그의 눈빛을 받고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일어섰다.

“이봐! 저 허약한 놈 대신에 당신이 나오지그래?”

전진은 혁련천후가 나서기를 기대했다.

모용단승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붉어졌다. 그는 전진을 향해 씹듯 말했다.

“너는 내가 상대해 준다. 나와라!”

“그러다 뒈진다, 모용단승.”

“닥쳐! 개자식아!”

“……뭐? 개자식?”

이번에는 전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오냐! 그래도 명색이 한때는 오대세가여서 참아 주려 했는데, 네놈이 그렇게 나온다면 거절하지 않으마. 넌 오늘 뒈졌어. 병신 같은 새끼!”

전진이 성난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가자 단리소는 혁련천후의 얼굴을 슬쩍 노려보고서 뒤따라 밖으로 나갔다.

영호민이 걱정스럽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저자들은 오대세가의 자제들인데 상대가 될까요?”

“강해지려면 한 번쯤 죽어 보는 것도 괜찮아.”

“그러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고요.”

“흐흐흐. 여차하면 내가 돕지 뭐. 그러니 만두나 먹자.”

탁철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영호민이 그런 탁철을 향해 빈정거렸다.

“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제때 도울 수나 있겠어요? 하여간에, 쯧쯧.”

“흐흐흐. 걱정 마라.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까.”

탁철이 혁련천후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히죽 웃자 영호민은 코끝을 찡긋거리고는 젓가락을 쥐었다.

한편 청명과 청진은 진청이 해를 당할까 걱정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런 그들을 향해 혁련천후가 물었다.

“강해지고 싶다지 않았나?”

“…….”

“앞으로 강호를 살아가려면 이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수도 없이 처하게 될 것이다. 한데 고작 이런 상황에서 똥이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려서는 절대 고수가 될 수 없다.”

“……예.”

둘은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밖으로 나온 진청과 모용단승은 단리소와 전진을 마주 보며 대치했다. 모용단승이 자신의 검을 느릿하게 빼 들며 중얼거렸다.

“저놈들은 제법 강한 놈들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잘 아는 놈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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