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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무사-12화 (12/425)

# 12

<귀환무사 12화>

맨 뒤쪽에서 걷던 혁련천후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 그곳엔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워 내는 만두가 놓여 있었다. 앞서 가던 일행들이 조금을 걷고 나서야 뒤를 돌아봤다. 영호민의 얼굴에 이채가 떠올랐다.

‘뭐야? 저 표정은.’

평소의 차가운 모습과는 다른 이질적인 기운이 떠올라 있는 그의 얼굴이 영호민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혁련천후가 만두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듯하자 청진과 청명의 얼굴이 묘한 빛을 띄웠다. 그러더니 서로를 쳐다보며 ‘씨익’ 웃는다.

“뭣 하세요?”

옆으로 다가온 영호민이 물어 오자 혁련천후는 그제야 만두에서 고개를 돌렸다.

걸음을 놓는 그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무겁다.

‘나를 원망하겠지.’

사랑했던 여인이 떠올랐다.

그녀가 가장 잘 만들었던 요리가 만두였기에 객잔의 만두를 보며 그녀를 떠올렸던 것이다.

영호민은 그가 말없이 걸음을 옮기자 입을 삐죽 내어 보이고선 뒤를 따랐다.

“저기 빈 곳이 있습니다!”

청명이 전방을 가리키며 외쳤다.

천하반점(天下飯店).

일행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선 객잔의 이름이었다.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조금 작은 규모의 반점은 무림인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빈자리가 없어 보였지만 탁철의 험악한 인상에 삼류 무사로 보이는 자들이 자리를 피해 주는 바람에 구석진 곳이나마 앉을 수 있었다.

“뭘 드시겠습니까? 대협!”

청진이 혁련천후에게 물었다. 일행들의 가장 졸자가 그들이었다. 그리고 호칭을 대협이라 하는 것은 진청 때문이었다. 청진과 청명이 대형이라 칭하면 자신과 그들은 동격이 된다. 당연히 진청의 입장에선 반대할 수밖에 없었고 계급에 눌린 청명과 청진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불러야만 했다.

“알아서 시켜.”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주문하겠습니다.”

혁련천후의 말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은 청진이 직접 주방으로 달려갔다.

“야! 길에 무림인들이 쫙 깔렸네. 역시 섬서는 무사들의 도시야.”

영호민의 탄성에 일행들은 객점 안과 밖을 쳐다보았다. 말처럼 거의 대부분이 무림인들로 보였는데 대부분은 젊은 무사들이었다. 아마 곧 있으면 벌어질 영웅 대회를 보고자 먼 곳에서 미리 도착한 무명의 무사들로 보였다. 주변을 돌아보며 신기한 듯 눈빛을 내는 대부분의 무사들은 요즘 유행하는 흑색 무복에 장검 하나를 달랑 차고 있었는데 누가 누군지 분별하기 힘들 정도로 똑같은 모습들이었다.

“유행인가?”

“그러게, 하나같이 시커먼 옷을 입고 있으니 꼭 마교 놈들이 모조리 이곳으로 온 것 같군.”

“저분도 마교 놈이오?”

영호민이 눈빛으로 혁련천후를 가리키며 못마땅한 빛으로 쏘아보자 탁철이 머리를 긁적였다. 내심 ‘마교 놈이 아니고 교주쯤 되겠지’라는 말을 하고픈 충동을 참아야 했다.

객잔 밖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모용단승은 혁련천후를 보고 있었다.

팔짱을 하고서 눈을 감고 있는 혁련천후가 그의 눈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처럼 보였다. 천하가 인정하는 고수 적용세 앞에서 당문성을 한 방에 날려 버린 것을 생각하면 언제나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적용세도 그의 기세에 눌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자꾸 뇌리를 맴돌았다.

‘저분처럼 반드시 강해진다.’

모용단승이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을 때 주문을 하러갔던 청진이 돌아왔다. 청명에게 눈을 찡긋거린 그에게 탁철이 물었다.

“뭘 시켰냐?”

“대협께서 좋아하시는 걸로 시켰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시켰다는 말에 혁련천후가 청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청진이 어떻게 알까?

진청이 불퉁하게 물었다.

“그게 뭔데?”

“조금 있으면 나옵니다. 제가 특별 주문을 해 놓았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헤헤!”

자랑하듯 대답하는 청진을 진청은 불퉁한 빛으로 쳐다보았다.

자신이 아꼈던 그들이 언제부턴가 혁련천후를 더욱 각별히 생각하는 듯 보이자 질투심을 조금은 느끼곤 했다.

혁련천후를 힐끗 쳐다본 청진의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청진과 청명은 짧은 시간에 자신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모든 것이 좋았다.

왠지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사문의 어른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 * *

천하반점의 주인이자 숙수인 왕필은 조금 전 들어온 주문 때문에 매우 짜증이 난 상태였다. 뺀질거리게 생긴 젊은 무사 하나가 대뜸 주방으로 와선 괴상한 주문을 하고 갔기 때문이다.

- 세상에서 제일 크고 맛있는 만두를 만들어 주시오.

주문판에도 없는 요리를 시키자 왕필은 화를 내려다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젊은 무사의 손에 들려 있는 화산파의 신표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있는 신표 앞에서 건방을 떨 만큼 무모한 왕필은 아니었다.

“제기랄, 도대체 어느 정도로 크게 만들어야 해?”

투덜거리는 왕필의 앞에 엄청난 양의 반죽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어지간한 만두 수백 개는 만들고도 남을 엄청난 양이었다.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은 왕필은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만두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왕필은 몰랐다.

지금 자신이 짜증을 부리며 만드는 만두가 장차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지…….

왕필이 짜증과 고민에 휩싸였을 때, 일행들은 청진을 째려보았다.

“뭘 주문했는데 이렇게 늦어!”

투덜거리는 영호민을 향해 청진은 좋은 것을 시켰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란 말을 하고는 해맑게 웃었다.

영호민이 일행들을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이번 영웅 대회에 참석할 사람은 없나요?”

그 말에 진청과 모용단승이 흠칫했지만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청진과 청명은 언감생심이란 표정이다.

“내가 한번 나가 볼까?”

탁철의 말에 혁련천후를 제외한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면 도전해 볼 정도의 실력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우승권엔 어림도 없겠지만 잘만 하면 한두 관문 정도는 넘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한번 나가 보시죠?”

영호민이 진청을 보며 말했지만 진청은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명색이 자하각주라고는 하지만 사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첫 관문을 넘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당장은 화산 내에서의 경쟁조차 뚫어 낼 자신이 없었다.

처지가 처량하니 괜히 청진에게 심통을 부린다.

“음식이 왜 이렇게 늦어? 황제가 먹는 수랏상이라도 시킨 거냐?”

“조,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사숙.”

진청이 난데없이 짜증을 부리자 애꿎은 청진이 놀랐다. 진청의 꾸지람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 청진은 주방으로 달려가 숙수를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이 인간들이 뭐가 이렇게 늦어. 그깟 만두 하나 만드는 게 뭐가 어렵다고. 쳇!’

영호민이 무심코 입구 쪽을 보다가 조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저 사람들은?”

일행들의 눈길이 일제히 입구를 향했다.

그곳엔 낯익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일전에 당문성과 함께 있었던 팽가의 팽무철과 황보수란 그리고 남궁소미였다. 그리고 그들의 뒤쪽에 훤칠하게 생긴 청년 둘이 뒤를 따르고 있었다.

“또 시비가 붙겠군.”

탁철이 중얼거렸다.

“사건이 끊이지를 않네. 귀신이라도 붙었나?”

영호민이 혁련천후를 힐끗 쳐다보며 입을 놀리자 탁철이 히죽 웃으며 말한다.

“널 보면 그냥 달려들 것 같은데.”

“쳇! 달려들면 대신 패 주시오. 내가 책임지겠소.”

“정말이냐?”

“정말이오.”

모용단승이 둘을 보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진청은 팽무철을 직시하며 인상을 썼다.

평소 화산을 우습게 여기던 팽무철이다. 환약을 먹은 후 부쩍 강해진 자신을 시험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아직 이쪽을 보지 못한 듯 서로 말을 주고받기만 했다. 내심 그들이 자신을 보고 시비를 걸어오기를 기다리는 진청이다.

“오! 음식이 나옵니다.”

“저게 뭐냐?”

“뭐야?”

청진의 말에 고개를 돌린 일행들은 일순 두 눈을 휘둥그레 치떴다.

어지간한 돼지 한 마리의 크기와 맞먹는 초대형 만두를 왕필과 다른 점원이 끙끙거리며 가져오고 있었다.

일순 객잔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다른 탁자의 사람들도 초대형 만두를 보고서 신기한 듯 손짓을 하며 소란을 떨었다.

“우와! 저게 뭐냐?”

“돼지를 통째로 넣고 반죽을 입혔나?”

“세상에 저렇게 큰 만두는 처음 보네.”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청진을 향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라는 빛이 다분했다.

“대협께서 만두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특별 주문을 했습니다. 헤헤!”

청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혁련천후를 힐끔거렸다.

시장에서 만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혁련천후의 행동이 만두를 먹고 싶어 그랬던 것으로 생각한 청진이었다.

혁련천후는 씁쓸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초대형 만두 대령이오!”

자신의 야심작을 내려놓는 왕필은 득의에 찬 표정이다.

비록 억지로 만들었지만 만들고 보니 제법 괜찮아 보였다. 뭔가 다른 말을 하려던 왕필은 험악한 탁철의 시선과 부딪히자 재빨리 주방으로 돌아갔다. 만두를 본 혁련천후는 내심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시켰다기에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엄청난 크기의 만두라니……!

‘어!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그의 반응이 별로인 듯 보이자 청진은 내심 불안했다.

다른 일행들의 반응 또한 시큰둥해 보이자 청진은 조마조마했다. 혁련천후가 좋아하면 그들의 반응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혼날 것이 뻔했다.

‘제발 맛이라도 있어라.’

청진은 속으로 만두가 맛있기만을 빌었다.

듣도 보도 못한 초대형 만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객잔 안이 소란스러워지자 팽무철이 고개를 돌리다가 초대형 만두가 놓인 탁자를 보고서는 눈빛을 냈다. 혁련천후 일행을 보았기 때문이다.

“저것들이 여기 있었네?”

팽무철은 당장에라도 칼을 뽑고 싶었지만 며칠 전에 보았던 혁련천후의 경지를 생각하자 감히 나설 수가 없었다.

팽무철의 옆에 앉았던 청년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무슨 일이냐?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닙니다, 형님들.”

“어머! 저 사람들이 여기 있었네.”

뒤늦게 혁련천후를 발견한 남궁소미와 황보수란의 새카만 눈동자가 묘한 빛을 보이자 청년들도 시선을 돌렸다.

“아는 자들이오?”

상당히 날카롭게 생긴 청년이 황보수란에게 물었다. 황보수란은 그의 말에 대답도 않은 채 혁련천후를 묘한 빛으로 응시했다.

‘뭐야? 저 새끼는.’

청년의 얼굴이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보아하니 황보수란과 남궁소미에게 딴마음이 있는 듯 보인다. 마음에 둔 여인들이 혁련천후를 흠모하는 시선으로 응시하자 질투심이 치민 그는 여우처럼 째진 눈으로 혁련천후 일행을 노려보았다.

“누구지?”

오른쪽의 잘생긴 청년이 물었다.

그 또한 분위기가 제법 쌀쌀맞아 보였다. 단리소와 전진이란 이름을 지닌 청년들은 단리세가의 장자와 남해검문의 소문주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는데 당금 후기지수들 중 가장 강한 고수 축에 드는 자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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