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10화 (10/425)

# 10

<귀환무사 10화>

“보아하니 산적 놈들인 것 같은데 그냥 쓸어버립시다.”

“며칠 전에 맞은 곳은 괜찮소?”

영호민의 빈정거림에 탁철은 씨익 웃어 보이고선 대도를 슬그머니 어깨에서 내렸다. 형찬과의 결투에서 고갈되었던 진력은 어느새 완전하게 회복된 상태였다.

다가오는 괴한들을 지켜보는 진청이 묘한 눈빛을 머금었다.

지금 그의 속내는 이랬다.

‘내 힘이 어느 정도까지 강해졌는지 확인을 해 보려면 한판 붙어야 될 텐데…….’

그때 혁련천후의 목소리가 울렸다.

“함부로 행동하지 말도록.”

‘젠장.’

녹랑단의 단주 요삼은 자신들이 찾았던 대상이 보이자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흐흐흐! 하나같이 비루먹은 말처럼 허약한 새끼들뿐이군. 저런 놈들에게 형찬이 당했다는 게 말이 안 되지. 확실히 뭔가 있는 게 분명해.”

“어쩌시겠습니까? 모조리 베어 버릴까요?”

“일단 잡아서 족쳐 봐야지. 혹시 뭔가를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알겠습니다.”

녹림에서 촉망받는 그들인지라 눈앞에 보이는 일행들이 그저 가소롭게만 보였다.

혹시나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우람한 덩치에다 큰 칼을 든 탁철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비실비실한 것이 걱정할 것이 못 되는 듯했다.

“크흐흐! 계집애처럼 예쁜 놈이 있었군.”

성적 취향이 특이한 것일까?

요삼이 영호민을 발견하고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양측 간의 거리가 얼굴에 있는 점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다.

자신을 보고 음탕한 미소를 짓는 요삼을 발견한 영호민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진다.

“싸움이 벌어지면 저놈부터 죽여 주시오. 아주 주둥이를 콱 찢어서 죽여 주면 더 좋고.”

“너는 손발이 없냐?”

“더러운 놈의 피를 손에 묻히기 싫어서 그러오.”

“나는 더러운 피를 손에 묻혀도 되는 놈이냐?”

“때려 칩시다! 그냥 내가 죽이고 말지! 쳇!”

“흐흐! 알았다. 주둥이를 쫙 찢어 죽여 주마. 대신 나중에 한잔 쏘는 거다?”

“거야 당연히 그래야지 않겠소. 그럼 부탁하겠소?”

“걱정 마라. 아주 박살을 내 버릴 테니까.”

탁철이 음산하게 웃으니 그 험악함이 녹림도들이 울고 갈 정도는 되었다.

때마침 탁철을 주시하던 요삼이 걸음을 멈추며 탁철을 도발했다.

“인상 한번 참 더럽게 생겼구나. 꼴에 덩치는 있다고 칼은 더럽게 큰 걸 메고 다니네? 그러다 허리 뼈 휜다. 멍청한 놈아.”

“이런 튀기다 만 무같이 생긴 새끼를 봤나!”

탁철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진청이 눈을 매섭게 부라리며 나섰다.

“뭐 하는 놈들인데 길을 막고 시비를 거는 것이냐!”

몸속을 떠다니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던 그는 내심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탓에 함부로 나서지 말라던 혁련천후의 경고조차 잊고 있었다.

요삼이 진청의 아래위를 훑고는 싸늘히 외쳤다.

“네놈들 주제에 형찬을 어찌할 순 없었을 터, 형찬을 죽인 놈은 어디에 있느냐?”

모두가 내심 놀랐다.

쌍부살마의 이름을 저렇듯 거론하는 것을 보니 녹림에서 제법 높은 위치에 있는 자임에 틀림없다.

힘의 우열로만 서열을 가리는 녹림임을 감안하면 적어도 형찬보다 약한 자는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빌어먹을! 생긴 것하고는 달리 꽤 강한 놈인 모양이군.’

탁철이 눈빛을 가라앉히고 대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때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던 혁련천후가 진청을 돌아보며 한마디 건넸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물러서란 말이었다.

진청은 머뭇거리다가 이내 뒤로 물러났다.

요삼이 그제야 혁련천후에게 눈길을 주었다. 거의 존재감이 없어 보이던 그의 한마디에 기세 좋게 나섰던 진청이 뒤로 물러가자 보는 눈이 달라졌다.

“뜻밖이군. 힘을 감춘 천하 고수라도 되나 보지?”

혁련천후는 말없이 요삼을 직시했다.

‘살려 둘 필요가 없는 놈이군.’

이런 눈빛을 지닌 인간들을 그는 너무나도 많이 보고 겪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죄의식마저 없는 인간들. 바로 십 년 전, 자신을 쫓았던 자들의 눈빛을 요삼이 지니고 있었다.

요삼이 사납게 외쳤다.

“네놈들이 정도맹의 끄나풀이든 화산의 떨거지들이든 상관없다. 소환단은 어디 있느냐? 그것만 말하며 고통 없이 죽여 주는 아량을 베풀어 주마.”

혁련천후는 내심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내놓아도 죽인다는데 내놓을 사람이 있을까? 어리석은 놈이군.”

“……뭐?”

“미안하지만 죽어 줘야겠다.”

스슥!

다른 자들은 몰라도 눈앞의 요삼만큼은 죽이기로 작정한 혁련천후는 지체 없이 손을 뻗었다.

“엇!”

갑작스러운 기습에 크게 놀란 요삼이 황급히 몸을 틀었다.

간발의 차이로 혁련천후의 손은 요삼의 심장 위쪽을 스치고 지나갔다.

“쳐라!”

다른 녹림도들이 달려들려고 할 때 요삼이 그들을 저지하고 나섰다.

“멈춰!”

수하들을 제지한 요삼은 혁련천후를 노려보면서 검을 뽑았다.

“고수를 몰라봤군. 네놈이 형찬을 죽인 놈이냐?”

의외로 냉철한 태도에 혁련천후는 상대를 과소평가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고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 정도 상대는 마음만 먹으면 한 방에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도끼를 들고 설치던 놈의 이름이라면 내가 죽인 것이 맞다.”

“그랬군. 한데 그런 놈이 비열하게 기습을 하다니. 협을 목숨처럼 여긴다는 정파가 고작 이따위였나!”

“나완 상관없는 곳이다.”

“……뭐?”

“난 바쁜 몸이다. 너하고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기습이 억울했다면 네게 선공의 기회를 주마.”

혁련천후는 뒷짐을 진 채로 두 발을 살짝 벌렸다.

요삼의 눈빛이 더없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형찬을 죽일 정도의 고수라면 솔직히 자신도 장담하지 못한다. 더구나 기운을 갈무리할 정도의 고수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죽는 것은 자신과 녹랑단이 될 것이다.

[나를 남겨 두고 모두 자리를 피해라.]

요삼은 수하들에게 전음을 날렸다.

악독하기로 녹림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는 그의 악명을 감안하면 실로 뜻밖의 행동이었다.

[뭣들 하느냐! 냉큼 꺼지라니까!]

요삼의 전음이 이어지자 녹림도들은 주저 없이 몸을 날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상하게도 혁련천후는 그들이 도주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도망가게 놔둘 거요?”

탁철이 나서며 물었다.

혁련천후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쫓지 말라는 뜻이 담겼음을 깨달은 탁철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악독한 놈치고는 판단력이 좋군. 수하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을 기특하게 여겨 고통 없이 죽여 주마.”

혁련천후가 중얼거리며 요삼을 향해 다가갔다. 검을 뽑을 생각이 없는 듯 보이자 요삼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검을 뽑아라!”

“착각하고 있군. 넌 결코 그 정도가 못 된다.”

으드득!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이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요삼이 살기를 발산하며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는 벼락같은 수법으로 혁련천후의 허리를 베어 갔다.

혁련천후의 육신이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진 것은 요삼이 휘두른 검이 허리에 닿았을 때였다.

퍽!

“크억!”

요삼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튕겨 나갔다.

피가 철철 흘러나오는 가슴을 내려다보는 요삼의 눈이 불신으로 크게 흔들렸다.

검을 향해 날아드는 손을 보고 한껏 비웃던 차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검을 튕겨 내고 자신의 가슴을 마치 검처럼 베고 지나갔다.

요삼은 비로소 깨달았다.

상대가 자신이 감당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을.

“빌어먹을! 함께 죽자!”

녹림에서 한자리 했던 거물답게 동귀어진을 하기로 작정했다.

요삼은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는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퍽!

“컥!”

피를 게워 낸 요삼은 천천히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검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니 진청이 자신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었다.

“퉤! 네놈의 동료에게 당한 게 있어 놔서.”

퍽!

진청은 가슴을 관통한 검을 사정없이 옆으로 베었다. 그러자 요삼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졌다.

털썩!

요삼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으며 숨이 끊어졌다.

녹림의 고수라는 요삼이 어린아이처럼 맥없이 죽어 버리자 지켜보고 섰던 탁철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이 정도로 강했었나.’

그는 알고 있었다.

진청이 뛰어들지 않았더라도 요삼은 혁련천후를 당해 내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그때였다.

혁련천후가 진청을 향해 다가섰다. 뒤이어 진청의 머리가 사정없이 돌아갔다.

짝!

“언제부터 화산이 등 뒤에서 검을 휘둘렀지?”

“…….”

“다시 한 번 끼어들면 그땐 내가 네놈의 목을 벨 것이다.”

평소의 진청이라면 발끈하고 달려들었어야 정상이건만 지금은 입에 풀이라도 칠한 것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진청을 나무란 혁련천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걷기 시작했다.

모두가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어이없게 죽어 버린 요삼을 한 번 쳐다본 탁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혁련천후의 뒤를 따랐다.

“쩝! 적을 너무 만드는 것 아닙니까? 당가에다 녹림까지…….”

영호민이 혀를 찼다.

그러나 당사자인 혁련천후는 그저 걸음을 옮길 뿐이다. 그를 응시하는 모용단승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제대로 골랐어.’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모두가 혁련천후에게 놀라고 있을 때, 진청만큼은 달랐다.

‘자꾸 화산, 화산 하지 마라. 그러다 내가 당신의 심장에 검을 쑤셔 박을 수도 있다고!’

퉤!

진청은 신경질적으로 침을 뱉고는 혁련천후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걸음을 놓았다. 그때 혁련천후가 뒤를 돌아보았다.

움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는 진청. 혁련천후가 다시 걷기 시작하자 진청은 작아지는 자신을 깨닫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젠장맞을!’

오대세가의 한 곳인 영호세가에는 천하에 으뜸으로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가 둘 있었다.

하나는 전대 가주 영호도성이고 다른 하나는 천하가 인정하는 미녀이자 재원인 백선녀 영호수란이다.

영호도성은 당대를 주름잡는 오성(五星)의 일인이자 모든 방면에서 초절정을 넘어간, 그야말로 무공에 있어서는 달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보통의 고수들은 하나의 분야에서 극을 이루려 평생을 수련에 정진한다. 하나 그는 검과 도, 그리고 권과 각, 모든 분야에서 끝을 바라보는 절대의 영역에 든 진정한 고수라고 할 수 있다.

해서 강호는 그를 가리켜 십전무제(十全武帝)라 부른다.

그러한 영호도성이 제법 난처한 표정이다.

자신의 거처에서 영호세가의 당대 가주이자 아들을 맞은 그는 연신 실소를 흘리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 놈이 또 세가를 몰래 나갔단 말이냐?”

“말도 없이 사라지는 통에 그만…….”

“그러게 보내 달라고 했을 때 진즉에 보냈으면 호위라도 붙였을 것이 아니냐? 쯧쯧!”

가볍게 나무라는 그에게 가주 영호무는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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