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귀환무사 7화>
“휴!”
쓰라림을 숨에 채워 가슴 밖으로 밀어낸 그는 몸을 일으켰다. 마침 고기가 익었는지 청명이 그에게 고기를 내밀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진 고기가 식욕을 불러 일으켰다.
“천천히 드십시오, 각주님.”
“여기 물을 놓아 두겠습니다.”
언제나 자신에게 깍듯한 사질들, 진청은 괜히 미안함이 들었다. 미래가 없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욱더 암울할 수도 있었다.
괜히 그동안 그들에게 짜증을 부리며 못되게 군 것이 미안했다.
“많이 먹어라.”
“각주님도 많이 드십시오. 헤헤!”
청진과 청명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고기를 한 점 입으로 가져간 청진은 혁련천후를 힐끔 쳐다봤다.
마침 자신을 쳐다보던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고기는 내상에 좋지 않다.”
식욕을 떨어뜨리는 차가운 목소리.
‘젠장!’
퉤!
몇 번 씹었던 고기를 뱉어 낸 진청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혁련천후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졌다. 자신의 모습, 사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화산의 산문을 오르던 자신의 모습이 진청에게서 투영되었다.
스슥!
혁련천후는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작은 물체를 꺼내어 진청에게 던졌다.
“툭!”
진청은 자신의 앞에 떨어지는 작은 물체를 보았다. 금박에 싸여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는 그것은 한눈에 보아도 환약임을 알 수 있었다.
“씹어서 먹고 운기를 해라. 내일이면 예전처럼 설칠 수 있을 것이다.”
진청은 환약과 혁련천후를 번갈아 응시했다.
“이걸 왜 내게 주는 것이오?”
“먹으라면 먹어라. 그리고 내일부터는 말투도 공손하게 바꾸는 게 좋을 거다.”
던지듯 말을 끝낸 혁련천후는 고개를 돌려 술병을 입으로 가져갔다.
청명과 청진이 다가왔다.
“각주님, 어서 드십시오. 향이 좋은 걸 보니 꽤나 비싼 환약으로 보입니다.”
“금박까지 둘렀습니다!”
청명이 재빨리 환약의 금박을 벗겨 내려다 청진에게 한 소리 들었다.
“바보야! 금박은 통째로 먹는 거야.”
“헤헤! 그래? 몰랐다. 각주님, 어서 드십시오.”
청명이 환약을 내밀자 마지못해 입에 넣은 진청은 꼭꼭 씹어 넘어가기 쉽게 만들어 삼켰다.
그때 혁련천후의 무심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참아라.]
‘참아? 뭘 참아?’
진청은 무슨 뜻인지를 몰라 혁련천후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술병을 든 채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신비한 척하기는.’
투덜거린 진청은 다시 두 팔을 뒤로하고 누웠다.
그러다가 문득 배 속이 조금씩 화끈거린다는 것을 느꼈다.
뒤이어 지독한 통증이 올라오더니 오장육부가 끓는 물을 마신 것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인간! 미리 말을 해 줬어야지.’
꽈악!
자존심 때문에 진청은 티를 내지 않으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러나 통증은 그렇게 해서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한 식경을 더 버티지 못하고 기어이 정신을 잃어야 했다.
제3장 늘어나는 일행들
흉흉한 기색을 한 일단의 무리들이 빠르게 숲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나같이 험악한 인상에 각종 병장기를 든 그들은 섬서의 숲을 지배하는 녹림채의 무리였다.
선두를 달려가는 장한의 입에서 곰이 울부짖는 듯 거친 소리가 튀어나왔다.
“감히 화산의 새끼들이 본채의 인물을 건드렸다니, 내 이 새끼들의 꼴통을 쪼개 버리지 못하면 성을 갈고 만다!”
엄청난 크기의 대부(大斧)를 양손에 쥔 그는 녹림의 서열 십 위에 올라 있는 고수이자 섬서지부를 책임지고 있는 쌍부살마(雙斧殺魔) 형찬이라는 위인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가장 아끼던 수하가 화산의 인물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보고를 받고는 만사를 제쳐 두고 화산의 제자들을 추격하는 중이었다.
“두목! 저쪽입니다.”
수하 하나가 손으로 전방의 먼 곳을 가리켰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형찬의 눈에 보였다.
“서둘러라! 복수도 복수지만 어렵게 구한 소환단을 놈들이 먹어 버리기 전에 회수해야 한다.”
소환단은 소림의 대환단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꽤나 귀한 영단이다.
한 알을 복용하면 일정량의 내공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무림인들에게는 상당히 귀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형찬이 거금을 들여 어렵게 구한 그것을 자신의 수하가 본채로 가져오던 도중 그만 죽임을 당한 것이다.
형찬은 화산의 제자들이 그것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뭐 하느냐! 더 빨리 달리지 않고!”
휘이잉!
흉흉한 살기를 품은 형찬이 이를 갈며 속도를 내자 스물에 가까운 수하들도 그의 뒤를 쫓아 빠르게 질주했다.
대도를 어깨에 둘러메고 길을 걷고 있던 탁철은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거칠게 달려오는 무리들을 보고서는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저놈들은.”
좁은 산길은 그가 혼자 걷기에도 벅차 보일 정도로 좁았다. 저런 식으로 달리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비켜라!”
선두에서 달려오던 도끼를 쥔 형찬이 외쳤으나 탁철은 길 한가운데를 묵묵히 걸었다.
“죽여 버렷!”
형찬이 좌우를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녹림도 두 명이 자신을 향해 곧장 달려오자 탁철은 비로소 돌아서며 대도를 어깨에서 내렸다.
“녹림의 잡종이라면 봐줄 필요가 없겠는데?”
탁철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오르더니 장정의 등짝만 한 넓이를 자랑하는 대도가 허공을 갈랐다.
퍼퍽!
달려들었던 녹림도 두 명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서 허공에서 두 쪽이 나 버렸다. 뒤를 따르던 다른 자들이 쏟아진 핏물을 피하지 못하고 흠뻑 뒤집어썼다.
“엇!”
형찬은 크게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탁철의 전신을 쓸어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방금 죽어 버린 수하들은 자신의 산채에서 제법 강한 축에 드는 고수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칼질 한 번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서 황천길에 든 것이다.
“나를 죽이라고 한 놈이 네놈이지?”
탁철은 형찬을 보며 히죽 웃었다.
형찬이 눈을 부라리며 도끼를 어깨에서 내렸다.
“이런 쌍놈의 새끼가 감히 누구더러 이놈 저놈이냐!”
“뭐! 쌍놈의 새끼? 으흐흐! 이 새끼 너 이리로 와라!”
탁철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는 대도를 움켜쥐고 성큼 형찬을 향해 다가갔다. 형찬 또한 지지 않고 도끼를 들고서 마주 걸어 나갔다.
“감히 나 쌍부살마에게 덤비다니, 네놈의 골통을 두 조각으로 쪼개 주마.”
순간 탁철은 놀랐다.
‘이거 이제 보니 상당한 거물이었군.’
쌍부살마는 단순한 녹림의 무리로 보기엔 지나치게 강한 인물이다.
그의 대부에서 펼쳐지는 무지막지한 부법(斧法)은 살상력과 파괴력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어지간한 문파의 수뇌들도 상대하기를 꺼리는 그가 도끼를 휘두르며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자 탁철은 절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표정과 입술을 뚫고 나가는 말은 거침이 없었다.
“누구의 골통이 쪼개지는지는 두고 봐야겠지.”
“어디 뒈지고도 그 주둥이를 놀릴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망할 새끼야!”
형찬이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탁철도 도를 잡은 손에 힘을 담고는 맞서 달려들었다.
까가강!
둘이 이내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자들이 슬그머니 거한의 주변을 에워싸며 달려들 기회를 노렸지만 날카로운 기운이 사방을 몰아치는 바람에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자칫 서둘다간 근처에 가기도 전에 자신들이 작살날 것이 뻔했다.
꽝! 꽝!
“개자식! 대갈통을 부숴 주마!”
“어디 한번 해 봐라. 도둑놈의 새끼야!”
둘은 거친 욕설을 주고받으며 맹렬히 싸워 댔다. 대도와 대부가 부딪히며 요란한 쇳소리가 주변 숲을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혁련천후의 휴식을 방해했다.
“어딜 가시는 거지?”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휴식을 취하고 앉았던 혁련천후가 느닷없이 일어서서는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영호민이 물었다.
“어딜 가십니까?”
대답이 없다. 샐쭉한 표정을 지은 영호민이 슬그머니 일어서자 이내 무심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따라오지 마라.”
“심심한데 따라가면 안 됩니까?”
“안 된다.”
“…….”
혁련천후가 단호하게 자르고 나오자 영호민은 그의 뒤통수를 지그시 노려보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똥이라도 마려운 거야, 뭐야.”
투덜거린 영호민은 한쪽 구석에 앉아 운기조식을 취하고 있던 진청에게로 눈을 돌렸다.
“운기 한번 더럽게 오래한다.”
목소리가 컸던 까닭에 청진과 청명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냥 그렇다고.”
히죽 웃어 준 영호민은 혁련천후가 사라져 간 숲을 힐끗 돌아보고는 벌떡 일어섰다.
‘여긴 심심해. 확실히 그 사람이 있어야 재밌어. 몰래 따라가 봐야지.’
영호민이 숲 속으로 사라졌을 때, 진청이 드디어 눈을 떴다.
“효과가 있습니까? 각주님!”
청명이 물었다.
자신의 몸을 쓸어본 진청이 고개를 돌려 혁련천후를 찾았다.
“잠시 어딜 가셨습니다.”
청진의 대답에 진청은 눈빛을 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소림의 대환단이라도 되는 건가? 이렇듯 몸이 가벼워지다니…….’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몸에 놀랐다.
‘그자가 왜 줬을까?’
혁련천후를 떠올렸다.
자신에게 이렇듯 대단한 영단을 주는 이유가 뭘까? 정말 화산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진청은 많은 것이 궁금했다. 이 정도의 효과를 내는 영단을 아무에게나 쉽게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슬쩍 인상을 찡그린 진청은 청명에게 물었다.
“어디로 갔느냐?”
“저쪽 숲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잠시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진청은 청명이 가리키는 곳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왜 저러시지?”
“글쎄다.”
“얼른 따라가 보자.”
“멍청아.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셨잖아!”
“그래도 가 보자!”
휘익!
먼저 몸을 날리는 청명, 청진이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그를 쫓아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 * *
쌍부살마 형찬은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녹림에서 서열 십 위에 올라 있는 자신이 수하들과 합공을 하고서도 이름조차 들어 보지도 못한 탁철을 아직껏 쓰러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동안에 죽어 나간 수하들의 숫자만 열을 넘어 버렸으니 두 눈이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으드득!
“대단한 놈이구나. 하지만 네놈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인 이상에 더 이상은 버티기가 힘들 것이다!”
형찬의 말처럼 탁철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미 곳곳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난 탓에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안색까지 밀랍처럼 창백했다.
형찬 하나라면 몰라도 녹록치 않은 그의 수하들이 아직 열이 더 남아 있었다.
“아가리 그만 놀리고 얼른 덤벼, 새끼야!”
지친 기색과 달리 탁철의 입은 여전히 거칠고 사나웠다.
퉤!
핏덩이를 한 모금 내뱉은 탁철은 대도를 들어 올려 형찬의 두 눈을 겨냥했다. 다른 놈은 몰라도 저놈만은 죽이겠다는 의지가 철철 넘쳐 났다.
그것을 모를 형찬이 아니다. 그는 수하들에게 달려들라는 눈짓을 하고서는 자신은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