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무사-5화 (5/425)

# 5

<귀환무사 5화>

창가에 앉아 있는 당문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절색의 미소녀에게 뜨거운 시선을 한 채 손짓까지 해 가며 신 나게 입을 놀리는 당문성, 그를 쳐다보던 영호민은 벌레를 본 듯 인상을 찡그렸다.

‘재수 없는 놈!’

십지문에서의 일을 떠올린 그는 내심 욕을 퍼붓고선 시선을 돌렸다. 굳이 거기서의 사건이 아니더라도 그는 당문성 같은 부류의 인간들을 싫어한다.

그때 진청이 창가의 당문성 일행을 발견하고서 차가운 안광을 발했다. 검수들 또한 진청과 마찬가지로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건방진 새끼!”

진청이 나지막이 욕설을 흘리자 눈을 감고 있던 혁련천후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움찔!

마침 그를 응시하던 진청은 그의 눈빛을 접하고서는 슬그머니 눈을 깔았다. 마음속에서 들끓는 반항심과는 무관하게 이미 그는 혁련천후에게 압도되어 있었다.

“당가의 대공자 때문에…….”

진청이 말끝을 흐리자 혁련천후는 창가에 앉아 있는 당문성 일행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다시 눈을 감았다.

영호민이 진청을 보며 여인처럼 붉은 입술을 놀린다.

“당가와 화산은 사이가 좋지 않기로 소문이 났던데, 괜찮겠습니까?”

“…….”

“저자의 평소 성격을 감안하면 각주님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가만 안 있으면 제깟 놈이 어쩔 텐가.”

진청이 눈에 힘을 주며 영호민의 말을 받았다. 당문성이 자신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고수라는 걸 알고는 있지만 오기로 똘똘 뭉친 진청은 주눅 들지 않았다.

감겼던 혁련천후의 눈이 다시 떠졌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그의 시선이 진청의 어깨를 넘어 다시 당문성을 향했다.

오만하고 교활함이 묻어나는 인상. 거기에 입꼬리를 타고 흐르는 탐욕스러움은 혁련천후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다.

[오늘 밤 나와 함께 뜨거운 밤을 보내지 않겠소? 그러면 모용세가의 부족한 자금은 내가 몽땅 채워 주겠소.]

십지문에서 모용미에게 은밀하게 건네던 당문성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때 그는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도 당문성이 모용미에게 했던 말을 다 들을 수 있었다. 모용조가 상을 뒤집기 전부터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기에 그때부터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혁련천후의 무심한 눈길이 진청을 향했다.

“당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진청이 그를 보며 머뭇거렸다. 대답을 하려니 자존심이 상했고 안 하려니 혁련천후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검수 하나가 대신 대답했다.

“언제부턴가 사사건건 화산의 일에 간섭하고 맹에서 공공연히 화산을 비방까지 하고 다녔습니다. 사문에서 항의를 했지만…….”

검수가 말을 잇지 못했다.

혁련천후는 뒷말을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갔다.

쇠락한 화산이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당가를 어찌할 순 없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강자가 판을 주도하는 무림이니, 다른 문파들도 당가의 편을 들고 나올 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화가 난다.

과거에는, 아니 불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사천당가는 화산의 상대가 못 되었다.

“진유의 명성이라면 화산을 보다 강하게 발전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놈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더냐?”

진청의 눈빛이 다시 돌아갔다. 진유의 진 자만 꺼내도 눈이 돌아 버리는 고질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인가? 혁련천후를 노려보는 눈빛이 어제 덤벼들 때와 비슷했다.

매섭게 노려보는 진청에게 혁련천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난 두 번 덤비는 놈은 절대 살려 두지 않는다.”

“……!”

싸아아!

진청은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한기에 화를 누르고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조만간에 과거의 영화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왜 자꾸 사문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겁니까? 그게 실례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투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거칠고 사납다. 혁련천후는 진청의 오기에 그만 실소를 머금었다.

그때 영호민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 가볍게 놀란 소리를 냈다.

“어! 저자가 이쪽으로 옵니다.”

“오호! 이거 화산의 자하각주가 아니시오.”

당문성은 진청을 내려다보며 다분히 깔보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당가의 대공자가 여긴 어쩐 일이시오?”

진청의 시큰둥한 반응에 당문성이 입꼬리를 슬쩍 비틀며 말을 받는다.

“객잔에 오는 이유가 달리 있겠소. 아름다운 여인들과 술 한잔 기울이려 왔소이다. 허면 각주께서는 어쩐 일로 이 비싼 객잔을 찾으셨소?”

이 비싼 객잔이라는 말에 진청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쇠락한 화산을 빗대어 비꼬는 말이 아니겠는가.

“왜? 불쌍해서 대신 술값이라도 내주려고 나를 찾아온 거요?”

진청의 말투가 슬슬 거칠어진다. 불안한 기색으로 진청과 당문성의 눈치를 살피는 두 검수에 반해 혁련천후와 영호민은 당문성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당문성의 입꼬리가 슬쩍 더 올라갔다.

“강호의 동도로서 술값 한번 내주는 게 뭐가 그리 대수겠소. 허면 오늘 술값은 본인이 내줄 것이니 마음껏 들고 마셔도 좋소. 하하하!”

짐짓 호탕하게 웃는 당문성. 그와 합석했던 청년과 여인들이 따라 웃었다.

“화산이 어찌 사천당가의 술을 얻어먹을 수 있겠소. 내가 산다면 모를까.”

“……!”

당문성의 눈빛이 돌연 악독하게 변했다.

지금 진청의 말은 화산을 큰 문파로, 사천당가를 작은 문파로 지칭한 것이었다.

사실 진청과 당문성은 둘만의 역사가 있었다. 언젠가 무림맹에서 당문성이 신진 고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쇠락한 화산파를 더 이상 구대 문파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우연히 그 자리를 지나가던 진청이 그 말을 듣고는 충돌을 했었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맹의 호법이 말리는 바람에 결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렇듯 말속에 칼을 담고 서로를 자극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

찌릿!

진청과 당문성이 서로를 노려보자 영호민이 슬그머니 혁련천후를 응시했다.

당문성이 바로 지척에서 비아냥거리고 있음에도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혁련천후의 무관심한 태도에 유난히 큰 동공이 살짝 빛을 머금는다.

‘자하각주가 당문성의 상대가 될 리가 없는데……. 만약에 둘이 여기서 충돌하면 이 사람은 과연 어떻게 나올까?’

그때 혁련천후의 시선이 느릿하게 당문성을 향했다. 찢어져 올라간 눈매와 얇고 붉은 입술, 그리고 겸손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태도는 버르장머리 없는 명문세가 자제들의 전형이었다.

‘오래 살 관상이 아니군.’

관상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저 오만함이 많은 적을 만들 것이며, 적은 곧 생사결투가 많아진다는 것을 뜻하니 죽을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오늘 이렇게 만났으니 끝을 보는 것이 어떠냐?”

“무엇을 말이냐?”

진청이 차갑게 되물었다.

당문성이 탁자에 두 손을 턱 얹으며 진청의 코앞에 얼굴을 디밀었다.

“영웅단의 일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 두렵다면 잘못을 빌어라. 그러면 용서해 주마.”

“입 냄새가 지독한데 좀 치워 주면 안 될까? 내가 비위가 좀 약해 놔서 말이야.”

“뭐?”

당문성의 얼굴이 썩은 감자라도 먹은 것처럼 일그러졌다.

“큭큭!”

호기심 어린 빛으로 주시하던 영호민이 저도 모르게 키득거렸다.

그의 그 태도가 당문성의 화를 더욱 부채질했다.

“나와라!”

“밥 시켜 놓았으니 밥은 먹고 싸워야지 않겠냐.”

진청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속내는 전혀 여유롭지 못했다.

당문성은 자신보다 강하다. 하물며 내상을 입은 상태이니 싸우면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

‘젠장!’

난감했다. 그때였다.

“무슨 일이냐?”

혁련천후의 무심한 목소리가 모두의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진청을 죽일 듯 노려보던 당문성이 혁련천후를 돌아본다.

키가 작은 검수, 청명이 재빨리 대답했다.

“각주님께서 영웅단에서의 서열이 당가의 대공자보다 높은 것이 못마땅한 모양입니다.”

“왜?”

짤막하게 물어보는 혁련천후의 시선은 진청을 향해 있었다.

진청은 자존심 때문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명색이 화산의 각주이다. 하대로 물어 오는 혁련천후에게 대답을 하자니 도저히 속이 뒤틀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청의 속내를 짐작한 혁련천후가 이내 당문성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화산에 대한 불만이라면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이 좋아. 다만 둘 사이의 개인적인 은원이라면 밖에 나가서 싸워.”

“……!”

기가 차면 넋이 빠진다고 한다. 지금 당문성의 표정이 딱 그 모양이었다. 그의 옆을 지키고 섰던 청년들도 서로를 돌아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저 낭인처럼 생긴 작자가 사천당가의 대공자에게 하대로, 그것도 명령조로 말을 하다니.

‘흠! 멋진데.’

영호민이 새카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혁련천후를 바라보았다. 강호의 영웅담 중에 이런 장면이 가장 많았다. 곧 있으면 싸움이 벌어질 것이고 악당은 피를 뿌리며 쓰러질 것이다. 어릴 적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던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질 것 같자 그는 이어질 결과를 기대하며 침을 삼켰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새끼가 여기 또 있었군.”

영호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거친 말이 당문성에게서 흘러나왔다.

목소리가 제법 컸던 탓에 객잔 안은 순식간에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입구에 섰던 왕삼은 사색이 되었고 손님들 중 당문성의 신분을 알고 있던 자들은 서둘러 객잔을 빠져나갔다. 짧은 시간에 객잔 안은 그들 외에 몇 명만이 남게 되었다.

당문성의 거친 말에 혁련천후의 눈빛이 당문성보다 두 배는 더 살벌하게 변했다.

“너, 그러다 죽는다?”

“크크! 내가 살다 보니 별 희한한 새끼를 다 보는구나.”

챙!

더 참을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당문성이 검을 뽑아 들었다. 독과 암기로 세상에 알려진 당가는 검 또한 제법 날카롭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때였다.

“그만들 하지 못하겠느냐?”

창노한 음성이 모두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을 향해 돌아갔다.

한구석에서 백발백염(白髮白髥)의 노인이 일어서고 있었다.

일순 당문성을 비롯한 청년들이 크게 놀라며 허리를 숙였다.

“적용 호법님을 뵙습니다.”

진청과 검수들 또한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렸다.

“네놈들은 전생에 견원(犬猿)의 삶을 살았더냐? 어찌 그리도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인고. 쯧쯧쯧!”

“호법님께서 계신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세상 무서울 것 없어 보이던 당문성이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노인은 천하가 알아주는 고수이자 정도맹의 수석호법이라는 신분을 지닌 적용세라는 위인이었다.

당문성 정도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로 볼 수 있다.

적용세의 시선이 혁련천후를 향했다.

“이보시게. 그냥 이 정도에서 끝내는 것이 좋지 않겠나. 보아하니 화산의 인물 같으니 나를 봐서라도 그만 하시게나.”

“호법님!”

“어허!”

나서려던 당문성을 향해 눈을 부라린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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