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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가 갑이다-203화 (203/203)

< -- 집으로... -- >

창민과 민재의 결투는 이제까지 그 어떤 결투보다 화려했다.다만 그 화려함이 가지는 의미는 좀 달랐다.

잭 그랜트와 창민의 대결은 그야말로 신화 시대의 재현 같았다.세계를 부술 듯이 날뛰는 신수들과 그 신수에 홀로 맞서는 창민.그 모습은 지금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에 빙해서 창민과 민재의 대결은 그야말로 무공의 극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아니 기분이 아니라 그것은 틀림없이 무의 극치 그 자체였다.

둘의 공방 하나하나에 산과 같은 무게와 바다 같은 거대함이 있었다.바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경쾌하면서 물이 흐르는 것처럼 군더더기가 없는 둘의 움직임은 무공을 익히는 사람이라면 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눈에 보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동작들이었다.

그런 둘의 공방은 순식간에 천합이 넘고 이윽고는 수를 세는 것을 그만둘 정도로 무수한 격돌을 교환했다.

“·····후우···.”

“후우······.”

거의 한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마치 서로 댄스라도 추는 것처럼 바짝 붙어서 격렬한 공방을 나누던 둘이 떨어졌다.보통 고수들이 한 시간에 나눌 수 있는 공방은 기껏해야 100합에서 200합 정도다.

하지만 이 둘은 그 짧은 시간 안에 거의 10만번은 넘는 공방을 나눈 것 같은 기분이었다.그것은 이 둘의 그 물 흐르는 공방이 그야말로 시간을 역행이라도 할 것처럼 초고속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다.마치···. 언젠가 연극의 종막이 찾아오는 것처럼.혹은 바둑판의 끝이 다가오는 것처럼.둘의 대결은 이제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누가 유리한거지?’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서왕모는 군침을 삼켰다.사실 이 둘이 싸우는 와중에 뭔가 이상한 수작을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그녀가 보기에 저런 장절하고 화려한 결투를 일부러 꾸미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저것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다.그리고···. 그녀도 이제 저 결투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 계속해서 공격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자신의 밑천이 드러나는 법이다.고수들 간에 그 밑천이 바닥을 드러낸다면···.그 후로는 오로지 힘대 힘의 정면 대결 밖에는 남아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그 마지막 한 수를 위해서 창민과 민재가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죽이기 전에 하나만 말해두마.”

“뭘요?”

“···난 고아라서 가족이 없이 자랐지. 하지만···. 가끔씩 너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종종 들고는 했다.

“·············.”

“싸가지 없는 동생이 하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라고 말이야.”

창민의 말에 민재도 콧 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은 했습니다.”

“··············.”

“실업자에 인생의 루저에 집안의 짐 덩어리 같은 나이 많은 형이 하나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라고요.”

“말을 해도!!!”

“먼저 한게 누군데!!!?”

콰앙!!!두 개의 섬광이 격돌했다.자욱한 먼지가 걷히고····. 한참 후에 결과가 드러났다.

“·····후우····.”

호흡을 고르며 쓰러진 창민을 내려다 보고 있는 민재를 보고 서왕모는 이를 악물었다.‘빌어먹을····.’이 둘이 싸우는 와중에 몇 번인가 도망갈까 말까 생각하던 서왕모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망가지 않은 것은 여기서 창민이 이겼을 경우 자신이 자리에 없으면 다시는 이렇게 완벽한 찬스가 다시 올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결과가 반대로 나와 버렸다.

이긴 것은 창민이 아니라 민재였다.그리고 승리한 민재는 창민을 내려다 보고 슬쩍 한숨을 내쉬다가 서왕모를 향해서 다가왔다.

“이제 정말로 각오는 됐겠지?”

“잠깐···. 잠깐만···.”

“들을 말은 없다.”

민재의 눈은 무섭도록 차가웠다.서왕모는 잔 머리를 최대한 굴리고 또 굴렸다.

창민이 진 이상 이제 살 길은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 하백의 후예인 민재의 냉혹한 눈동자를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날 구석이 보이지를 않았다.

여기서 보통 무인들이라면 이판사판으로 싸워 보기라도 하련만···.서왕모의 경우는 무인으로서의 멘탈이 많이 부족했다.오로지 안전한 상황 속에서 이기는 싸움만 한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용감하게 싸움을 해 나가는 무인의 멘탈을 이해 할 리가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하는게 옳을 것이다.그러니 지금 이렇게 싸우려고 하지도 않은 것이고 말이다.

“하다 못해 대항도 하지 못하는 건가?”

“···············.”

“그럼 이제 죽어라.”

민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서왕모를 끝내려고 했다.그때····.

“잘 했다. 피카츄.”

서왕모의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것과 동시에 서왕모는 아차 싶었다.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그녀의 마음은 까마득한 암흑으로 가라앉아 가기 시작했다.

“····사람 애 먹이기는····.”

민재는 눈에서 초점이 사라져 가고 있는 서왕모, 아니 세레이나의 몸을 추슬러 주면서 중얼 거렸다.그 세레이나의 몸의 뒤에는 창민이 마찬가지로 초점이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그런 둘을 보고 민재는 중얼 거렸다.

“이번에 형이 실패하면····. 그때는 정말로 내가 형수님을··· 손은 못 쓰겠고 어떻게 해야 할 텐데 말이야.”

애당초 민재의 말은 허풍이었다.그렇다. 천하의 불여우 서왕모도 속을 정도로 리얼한 연기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세레이나를 죽이는 것은 민재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창민이 시아를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창민과 민재의 사이에 암묵적인 절대 약속.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에게 있어서 소중한 이들을 위협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 룰은 이 둘이 자신들의 영혼을 걸고서라도 절대로 지키기로 맹세했던 룰이었다.그랬기에···.서왕모를 속여 넘길 정도로 과격한 연기를 연발 했음에도 불구하고 창민은 민재를 이길수 있었다.

그리고 시아를 걸고 넘어져서 나 역시 너에게 장단을 맞춰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둘은 싸우는 사이에 전음을 이용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서로에게 전달했다.

서왕모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냥 전음을 보내면 옅들을 가능성도 있었다.하지만···. 창민과 민재 정도의 초고수들의 격렬한 격돌 속에서 전음을 엿 듣는 다는 것은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태퐁 속에서 흩날리고 있는 실오라기 한올을 잡아 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그렇게 해서 작전을 짠 민재와 창민은 서왕모의 허점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이런 연극을 했다.

창민이 ‘그것’을 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를 완전히 무력화. 혹은 정신적 공황 상태까지 몰아가야 했다.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창민은 유일하게 서왕모와 정면으로 맞설 여지를 가지고 되는 것이었다.

“뭐····.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고···. 이제 남은 것은 부탁합니다.”

민재는 그렇게 중얼 거리면서 그냥 자리에 털석 주저 앉아 버렸다.

“빨리 찾아야 하는데·····.”

마치 거대한 우주와 같은 공간을 초조하게 헤메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창민이었다.창민은 지금 세레이나의 심상세계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에 자신의 심상 세계로는 들어와 봤지만 다른 사람의 심상 풍경은 처음이었다.마치 별들과 같이 무수한 구슬이 반짝이는 거대한 공간.그게 바로 세레이나의 심상세계였다.

‘그나저나···. 신권중에 이 녀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군.’지금 민재가 쓰고 있는 신권은 맥의 신권이다.맥.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악목을 먹어 버리는 이로운 요괴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전투 능력은 거의 없었다.창민은 신수들과 싸울 때 가장 손 쉽게 상대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악몽을 먹어 버리는 능력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전투 능력은 전무했던 것이다.하지만 이 녀석이 나왔을 때 창민은 가장 기뻐했다.

치우가 말한대로 서왕모가 누군가의 잠재의식 속에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그 잠재의식으로 들어가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필수였던 것이다.이 맥은 틀림없이 거기에 관해서는 최적의 능력이었다.

인간의 기억이나 혼백을 먹어치우는 요괴나 신수들은 제법 있었다.하지만 맥처럼 딱 골라서 악몽만을 먹어치우는 요괴는 거의 없다.

그것은 마치 뇌외과의가 복잡한 뇌 속에서 종양만을 정확하게 적출하는 것처럼 고난이도의 기술이었던 것이다.물론···. 신권을 손에 넣은 창민이라고 해도 그것을 정확하게 쓰기는 어려웠다.

자칫 잘못해서 창민이 이 맥의 권능을 잘못 쓰면 인간 하나가 백치가 되어 버린다.그래서 준비하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민재의 압박에 의해서 서왕모가 제대로 겁에 질렸을 때 창민이 뒤로 몰래 접근해서 세레이나의 심상 세계로 들어오는 것은 성공했다.이제 중요한 것은 이 안에서 서왕모를 찾아서 제거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냥 뒤진다고 해서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약간 고민이기는 했다.주변을 천천히 찾아보던 창민은 점점 세레이나의 시간을 거슬러서 과거로 과거로 향했다.

처음 출산한 딸 주현이.처음 창민과의 만남.영국에서 카이저를 만들기 시작할 무렵의 그녀.그리고 더욱더 어려서의 그녀까지····.그리고 거기서 창민은 찾았다.실제로 서왕모가 숨어있는 장소를 말이다.

그녀의 아주 작은 유년시절의 한 편의 기억속에 숨어 있는 서왕모는 실로 교묘하게 숨어 있었다.세레이나 정도의 고수라면 스스로를 성찰할줄 알지만 저렇게 유년 시절의 기억속에 몰래 숨어 있어서는 찾을 도리가 없다.

창민은 하얀 백발에 주름이 성성한 노파를 보고 말했다.

“서왕모. 찾았다.

“······잘도 찾았군.”

서왕모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창민에게 말했다.

“포기해라. 그럼 편하게 죽여주지.”

창민의 말에 서왕모는 얼굴을 일그러 트리면서 말했다.

“왜? 왜? 이 시대는 나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거냐? 난 그저 진정한 신이····.컥!!”

말을 하던 그녀는 그대로 창민의 일격에 심장에 구멍이 뚫려 버렸다.

“쓸데 없이 고통을 줄 생각은 없다. 물론 널 용서할 생각도 없고····.”

“커···어억····.”

점점 자신의 영혼이 사그라 들어져 가는 것을 느끼고는 서왕모는 고통에 신음했다.그런 그녀를 보고 창민이 중얼 거렸다.

“그냥 내 와이프나 내놔.”

“크··· 끄아아악······.”

서왕모는 영혼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사라져 갔다.보통 영혼의 소멸은 중죄이지만 이 경우 서왕모 자체가 이미 카르마가 워낙에 많이 쌓인 존재라서 창민의 업에 무게가 더 해질 일은 없었다.

“후우···. 끝났다. 전부····.”

창민은 그렇게 말하고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그리고, 그런 창민이 눈을 뜨자. 그 앞에는 민재가 밉살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잘 됐습니까?”

“그래. 덕분에.”

“고마운줄 알면 뭐 선물이나 줘요.”

“그래. 알았다.”

‘다음에는 라이츄 가면을 주지.’창민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일으켰다.이제···. 이제 자신의 인생에 파란은 없다.창민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뭔가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그리고 창민의 품안에서 세레이나가 눈을 살며시 떴다.

“창민····씨?”

“수고했어. 이제 집에 가자. ····우리 가족이 기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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