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탈리아에서 -- >
이탈리아로 도착한 창민을 맞이한 것은 더 이상 얼굴을 가면으로 가리지도 않은 화이트였다.그는 창민을 향해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오셨습니까? 정창민 문주님.”
“잘도···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 용기가 있었군.”
화이트를 보는 창민의 얼굴은 싸늘했다.이 놈의 배신으로 인해서 지금 세레이나가 잭 그랜트에게 잡혀 있었다.그런데 이 놈이 창민의 눈앞에 면상을 들이밀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금 저를 죽이시면···. 안내역이 없습니다만?”
“흥, 죽기 직전까지 패서 불게 하게 난 후에 죽이면 되지.”
창민은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할 의욕이 가득했다.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제가 문주님의 상대가 될 리는 없겠죠. 하지만···. 저 역시 어느 정도는 발버둥을 칠 수 있습니다.”
지금 놈의 말은 자신과 창민의 전투가 벌어지면 공항 주변에 있는 무관한 사람들 까지 말려 들 것이라는 얘기였다.그리고 그 말은 어느정도 사실이기도 했다.
“왜 진작 못 알아봤는지 모르겠지만 네놈은 개자식이야.”
“·············.”
창민의 말에 화이트는 그저 정중하게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그 정중한 태도가 창민에게는 한층 더 열이 받았다.
“그럼 안내하겠습니다.”
그렇게 화이트는 창민을 롤스로이에 태워서 어딘가로 향하게 시작했다.롤스로이에 태워서 한 시간, 그 후에 다시 놈들이 만련한 전용기에 타고서 몇 시간인가 날아가던 창민은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약속 장소로 부르지 그랬어?”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갑자기 변경된 연출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 아무도 없다. 그거 아냐?”
“다 도착해서 흥을 깨는 것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도착이라는 말에 창민은 비행기 아래를 바라봤다.거기에는 아름다운 항구도시가 보였다.
“···여기 어디야?”
“환영합니다. 여기는 베네치아. 세계의 표준 모델입니다.”
“··········.”
창민은 속으로 이것들이 또 무슨 엿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그 생각은 전용기가 작은 활주로에 내리고 베네치아라는 도시에 도착하고 나서 깨닫기 시작했다.
베네치아··. 듣기로는 자연침하되어서 도시의 대부분이 물에 잠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끊어지지 않는 도시라고 들었다.그런데···.지금 창민의 눈에 보이는 베네치아는 약간 이상했다.
도시에 관한 풍경은 듣던 것과 다를바 없었지만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마치 아무런 표정도 없는 좀비처럼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창민은 뚜렷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거 너희들 짓이냐?”
“그렇습니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아···. 별것 아닙니다. 정창민 문주님의 협조가 이뤄지면 전 세계의 사람들을 이렇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생각이니 말입니다.”
“·····다 듣기도 전에 구역질이 나려고 하는데?”
“이제 다 왔습니다.”
놈의 설명에 따라서 도착한 곳은 베네치아의 한 카페리아였다.
“어디 좀 그럴듯한 곳은 못 마련했나? 예산 부족은 아닐테고 센스가 후지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는데?”
“하하하··. 처음 만나는 사이에 좀 너무 하는걸?”
창민의 말에 대답한 것은 이제까지 안내역을 맡았던 화이트가 아니었다.테라스에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잘생긴 금발의 남자를 본 순간 창민은 그 남자의 정체를 짐작했다.
“네가 잭 그랜트냐?”
“그래. 처음 보는군. 매제.”
“············.”
창민의 몸에서 상당한 살기가 솟구쳐 올랐다.이 상태로 바로 싸우려고 하는 창민을 보고 잭 그랜트는 피식 웃어 버렸다.
“좀 진정하지. 싸우고 싶다면 기회는 줄 테니까.”
“··········세레나는 어디 있지?”
“세레나라···. 그 아이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나만의 특권 이었는데 말이야.”
“장난칠 기분 아니다.”
창민이 천화무궁기를 뽑아 들려는 순간 잭 그랜트가 말했다.
“진정하라고. 여기서 너하고 내가 싸우면 어떤 피해가 일어날지 잘 알고 있겠지?”
“그 피해를 감수할 만큼, 난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너무 한걸? 우리는 명색이 한 가족인데 말이야.”
“그 주둥아리를 뭉게 주마.”
창민이 그렇게 말하면서 공격을 하려는 찰나···.
“세레나는 무사하다. 아직은 말이다.”
“···············.”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
“····너, 허튼 수작 부리면 내가 반드시 죽인다.”
창민은 잭 그랜트를 향해서 진지한 눈으로 살기를 표출했다.지금 잭 그랜트는 창민을 상대로 세레이나를 인질로 잡은 수를 썼다.
은유적인 표현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명백하게 인질의 표현을 한 것이다.창민에게 잭 그랜트는 서왕모에 조종당하는 일종의 꼭두각시에 명색이 세레이나의 혈육이었다.
그러니 어지간하면 목숨 정도는 살려 두려고 했지만 세레이나를 인질로 잡는다면··.그런 얘기가 달라진다.자신의 가족을 해하는 자는 그 누구라도 상관없이 징벌의 철퇴를 내리는 것이 창민의 철칙이었다.
“무서운 얼굴이군.”
잭 그랜트는 창민을 향해서 진지하게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너, 내 목적이 뭔지는 알고 있나?”
“세계를 지배하려는 중2병 미친놈.”
“글쎄··. 그렇게 말하면 좀 섭섭하지만 아주 거짓은 아니군. ·····이 도시는 봤나?”
“·······무슨 짓을 한거냐?”
“일종의 실험이랄까? 샘플의 일종이지.”
“···············.”
“넌 지금의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지? 이대로 괜찮다고 생각하나?”
“그런 전형적인 중2병 악당 캐릭터나 할 법한 생각은 해본적 없는데?”
창민의 비꼼에 상관 없이 잭 그랜트는 자기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는 지금의 세계의 원인은 아이라니하게도 인간이지. 환경을 피혜하게 하고, 국경이라는 선 하나로 인해서 환경은 천차만별. 어느 한 곳에서는 아이들이 굶어죽고, 다른 한쪽에는 산더미 같은 부를 주체하지 못해서·····.”
“시끄럽고···. 할 말만 짧게 말해라.”
창민의 말에 잭 그랜트는 눈살을 찌푸렸다.하지만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세계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천방지축의 생물을 관리할 지배자가 말이다.”
“그래? 인류에 필요한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너한테 필요한 것은 정신과 의사와 대량의 신경안정제 300년치 정도 같은데?”
쾅!!!
“이대로는 안 된단 말이다!! 이 세계는!!!”
“··············.”
자아도취해서 마침내 분노하기까지 하는 잭 그랜트를 보고 창민은 한숨을 내쉬었다.‘안 된다···.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이 새끼 미쳤어.’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잭 그랜트는 뒤에서 손가락을 튕겼다.그러자 블랙이 세레이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세레나!!!”
“내 여동생은 돌려주지. 그 대신에 나도 한가지 조건이 있다.”
“···········.”
“하루 동안 이 도시를 둘러봐라. 그 후에도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저쪽에 보이는 섬으로 찾아와라. 거기서 힘으로라도 네 눈을 뜨게 해 주마.”
보통···. 이렇게 힘들게 잡은 인질을 손 쉽게 돌려주는 일은 거의 없다.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잭 그랜트는 그 거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인질을 받은 창민이 어안이 벙벙하도록 말이다.이로서 유일하게 가장 마음에 걸리던 약점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창민은 세레이나를 안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이 새끼가 중2병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잭 그랜트는 정말로 창민에게 세레이나를 돌려주고 나서 자리를 비웠다.단 둘이 되자 창민은 가장 먼저 세레이나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어디 다친데는 없어?”
“·······없어요. 그보다···. 보기 싫은 모습 보였네요.”
세레이나의 얼굴에는 상처 입은 자존심이 보였다.그녀로서는 자신이 패배하고 누군가에게 구함을 받았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운 모양이다.
그나마 남편인 정창민이 아니었다면 도움 자체를 거절했을 것이다.뭐···. 그녀의 남편 말고는 그녀를 도울 수 있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겠지만 말이다.
‘이건····?’세레이나의 몸을 살펴본 창민은 그녀의 침울한 상태가 부끄러움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무언가가 그녀의 힘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신권으로 봉인한 거군. 무슨 신권인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예? 창민씨 무슨···. 음!!”
세레이나는 뭔가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자기 안에 뜨거운 뭔가가 들어오는 느낌에 입을 다물었다.그녀의 눈에는 자신의 단전으로 자연스럽게 파고 든 창민의 손이 보였다.
“뭐··· 하는 거에요?”
“쉿. 가만이 있어.”
“···········.”
세레이나는 뭔지 모를 뜨거운 느낌에 얼굴에 홍조를 띠었다.자신의 남편이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 자신의 몸에 걸려 있는 금제를 깨기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몸안으로 남편의 손이 들어왔는데도 고통은 물론이고 피 한방울 나지 않았다.‘나 없는 사이에 더 강해졌네·····.’세레이나는 새삼 스럽지만 이제는 자신이 남편하고 싸워도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창민이 그녀의 몸에서 손을 꺼냈다.그러자 창민의 손에는 한 마리의 작은 실뱀 같은 것이 잡혀서 꿈틀 거리고 있었다.
“창민씨, 그게 뭐에요?”
“글쎄··. 신권을 부여받은 하급 마물 같은데···. 어쨌든 이제 몸은 어때?”
“몸은··· 몸은····. 멀쩡하네요.”
세레이나는 자신의 몸에 다시 원활하게 기가 도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제까지 무슨 수를 써도 움직이지 않던 그녀의 기에 그녀는 유래 없이 풀이 죽어 있었다.
무공을 쓰지 못하는 그녀는 그냥 평범한 여성일 뿐이었다.잭 그랜트의 동생이 아니었자면 포로로서 끔찍한 일을 겪었을 지도 몰랐다.
그걸 알면서도 꾹꾹 눌러 참을 수 밖에 없었다.그 쌓이고 쌓였던 스트레스가 지금····.
“훗···. 후후후···.”
“응? 세레이나?”
“으아아아아아!!!!!!”
파지직!! 콰르르릉!!!그녀의 전신에서 황금빛 스파크가 한차례 맹렬하게 휘감았다.얼마나 강력한 스파크인지 순간 시야가 노랗게 변할 정도였다.그녀는 그 상태로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콰앙!!!그러자 항구 저편에 있던 방파제가 해일이라도 쳐 맞은 것처럼 박살이 나 버렸다.
“후우우·····.”
“워워···. 세레나. 진정해.”
“후우우····. 예. 진정했어요.”
“····빨리 식네.”
“일단 그냥 화풀이였으니까요..”
세레이나는 샐쭉하게 입을 내밀었다.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였다고 해도 지금 또 당장 잭 그랜트에게 도전할 정도로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 억누르고 있던 분노를 한 번에 폭발 시켜서 잠깐 화를 냈던 것 뿐이었다.뭐····. 보통 여자들이 배게 집어 던지는 것 하고 비슷한 정도의 화풀이였다.
베게로 항구 방파제를 부수는 여자는 없지만 말이다.진정한 그녀는 창민을 향해서 말했다.
“그래서···. 승산은 있는 거죠?”
“물론.”
“그럼 됐어요. 저녁이 되면 결착을 짓기로 하죠.”
“알았어. 그럼···. 그때까지는 베네치아에서 데이트라도···. 아얏.”
“너무 여유 부리지 마요. 내 오빠라는 사람 괴물이 되 버렸으니까.”
창민이 능청 스럽게 어깨를 두르려고 하자 세레이나가 창민의 손등을 꼬집어 버렸다.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창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도시를 한 번 둘러보라고 했었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래?”
“사람들을 모두 세뇌한 것은 보였죠?”
“그래.”
창민도 오면서 봤다. 지금 이 베네치아의 사람들은 모두들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도시의 기능은 하고 있었다.모두들 정해진 위치에서 자신의 직업에 따라서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마치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로 이뤄진 마을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도, 그냥 길을 걸어가는 사람도, 심지어는 어딘가로 향하는 아이들 까지··.모두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마치 당연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은 완수하는 기계 같았다.
“지금 이 도시의 기능을··· 전 세계로 확장 시키겠데요.”
“미친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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