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튀김 해 주는 오빠
초원은 아일랜드 카운터에 허리를 기댄 채 눈앞의 예술 작품을 감상했다.
‘으음, 저 너른 등짝 매우 마음에 들어.’
‘심지어 이름도 잘생겼어.’
‘거기다가 맛있는 것도 잘 해 주잖아.’
‘내 거라니 좋아, 아주 좋아.’
가스 불 앞에 서서 무언가를 분주하게 튀기고 있던 승준의 허리에 가느다란 두 팔이 착 감겼다.
“기름 튀어요.”
뜨거운 기름이 튀어 데기라도 할까 걱정됐던 승준은 왼손으로 초원의 두 손을 감쌌다.
“다 내 거야, 새우튀김. 여기 있는 새우튀김 다 내 거야.”
바삭한 새우튀김을 먹을 생각에 초원의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건 알겠는데 튀김을 해 줄 때마다 도대체 저 요상한 노래는 왜 부르고 있는지 승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거 안 불러도 아무도 안 뺏어 가는데.”
“헐, 이 노래 몰라요?”
“뭐? 그거 있는 노래야?”
지금까지 초원이 제멋대로 지어 부른 노래인 줄 알았던 그는 정말 있는 노래라는 말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헐, 이 명곡을 모르다니.”
초원은 새삼 건널 수 없는 세대 차이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원래는 새우튀김이 아니라 감자튀김이에요.”
“어⋯.”
승준은 딱히 뭐라고 대꾸해 줘야 할지 몰랐다. 감자튀김이어도 요상한 건 매한가지였다. 다행히 초원은 별말 없이 아기 원숭이처럼 매달려 등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근데 인간적으로⋯.”
“네?”
“새우튀김 해 주는 남자랑은 혼인신고부터 하는 게 도리 아닌가?”
또 튀어나온 혼인신고 타령에 초원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계절 하나 지났어요.”
“내가 장담하는데, 초원 씨 사계절 못 채우고 나랑 혼인신고 한다. 내기할래요?”
“아뇨.”
이 남자와 내기를 하면 혼인 신고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무슨 짓이든 벌일 것 같아 초원은 재빠르게 거절했다.
“영양제는 먹었어요?”
눈 뜨자마자 뜨겁게 불태웠던 밸런타인데이 후, 승준은 종합 영양제를 사 오더니 매일 출근 전에 하나씩 챙겨 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게 오늘은 주말이라 잊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생각이 난 것이었다.
“⋯네.”
“거짓말은⋯.”
승준은 튀김 젓가락을 놓고 찬장 문을 열었다. 영양제 한 알을 꺼낸 그는 물 한 잔을 따라 같이 내밀었다.
초원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망설이다 마지못해 영양제를 받아 삼켰다.
임신이 될 리가 없다는 걸 아직도 털어놓지 못했다. 말할 타이밍을 좀처럼 찾지 못한 탓이었지만 사실 말해도 좋을 타이밍이란 건 애초에 없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면 망치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라며 미루는 건 다 저 좋자고 하는 비겁한 핑계일 뿐이었다.
‘그냥 이렇게 시간 끌다가 ‘어이쿠, 안 생기네. 그냥 딩크족이나 합시다!’ 이래야 하나?’
이 남자가 떠나지 않을 걸 안다 해도 실망시키는 건 역시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끌다 늦게 말할수록 초원은 비겁한 거짓말쟁이가 되는 거였다.
새우에 빵가루를 묻히느라 바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초원은 결심한 듯 냉장고 문을 열었다.
‘술의 힘이라도 빌려야지.’
치익, 캔 따는 소리에 휙 고개를 돌린 승준은 초원이 맥주 캔을 입에 가져가기도 전에 낚아챘다.
“제정신이에요?”
초원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승준이 맥주 캔을 단숨에 비우더니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걸 부루퉁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이거나 먹어요.”
그는 떼쓰는 세 살짜리라도 달래듯 적당히 식은 새우튀김을 손에 쥐여 주었다. 초원은 허무한 한숨을 내쉬곤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흠, 맛있네.”
“누가 한 건데.”
꼬리까지 다 먹어 치우자마자 접시에서 하나를 더 집어 들었다. 아직 뜨거운 튀김을 호호 불던 초원의 시선이 마치 무언가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기라도 한 듯 움직였다.
‘배고픈가?’
초원은 적당히 식은 튀김의 꼬리 쪽을 입에 물고 까치발을 들었다. 승준을 향해 고개를 내밀자 그의 얼굴에 환하게 미소가 번졌다. 새우튀김의 양쪽 끝을 물고 있던 두 입술이 서서히 겹쳐지고 쪽쪽 소리가 이어졌다. 그 순간 초원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아까만 해도 옆에 서 있던 지박령이 못 볼 꼴이라도 본 듯 휙 나가 버렸다.
“승준 씨, 전 여친 중에 귀신 된 사람 있어요?”
“응?”
초원이 깜빡이도 켜지 않고 헛소리를 불쑥 들이밀자 승준은 황당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또 무슨 근거 없는 헛소리야.”
“아님 귀신이랑 사귄 적 있어요?”
헛소리의 기어가 1단에서 바로 6단으로 훅 들어오고, 이건 아무리 그라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볼 수가 있어야 사귀지. 참 나⋯.”
“흐음⋯.”
이번엔 어떤 기가 막힌 헛소리를 하려나 싶어 기다리는데 초원은 말없이 찬장에서 접시 하나를 꺼내더니 새우튀김을 몇 개 옮겨 담았다.
“이거 내 거 맞죠?”
“네, 여기 있는 새우튀김 다 홍초원 씨 겁니다.”
초원은 피식 웃더니 타르타르소스를 접시 한구석에 짜 올리곤 아일랜드 카운터 위에 놓았다.
“따뜻할 때 먹어요.”
초원이 허공에 대고 오라는 듯 손짓을 하고, 그 모습을 본 승준의 목 뒤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귀신은 음식의 주인이 먹으라고 허락을 해 줘야만 먹을 수 있었다. 멀찍이 서 있던 귀신이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재빠르게 접시 앞으로 다가왔다. 나눔의 뿌듯함을 만끽하며 뒤로 돌아보던 초원의 얼굴에 온갖 의문과 걱정이 섞인 시선이 와 닿았다.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승준 씨 귀신 붙은 거 몰랐죠?”
승준은 침대에 누운 채로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는 초원을 끌어안고 그 고른 숨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었는데, 오늘은 아무리 애를 써도 정신이 점점 맑아지기만 했다.
그의 눈이 어두컴컴한 방 곳곳을 훑었다.
‘여기 있으려나?’
귀신을 볼 줄 아는 사람을 한 번도 부러워해 본 적 없었다. 오히려 저주라고 생각했으면 했지. 그런 그였는데 지금은 보진 못해도 느끼기라도 할 줄 아는 초원이 부럽다 못해 속이 타들어 갔다.
‘왜 진작에 몰랐을까?’
오래전이라 이미 이승을 떠났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옆에 있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 영매를 찾아가든 심령관리팀 사람들에게 부탁이라도 하든 했을 텐데.
‘한이라도 남은 건가?’
초원이 느끼기에 원한이 있는 건 아니라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승을 떠돌고 있는 걸까?
암흑 속을 한없이 응시하며 망설이던 그는 결심한 듯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죽은 사람의 한은 못 풀어도 혼자 살아남은 자신의 한은 풀고 싶었다.
승준은 식탁 앞에 앉아 맞은편에 놓아둔 딸기 케이크 한 조각에 시선을 고정했다. 손에 든 위스키 잔은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승아야, 맛있니? 초원 씨는 이 집 케이크가 제일 맛있다고 하더라.”
자신을 따라다니는 귀신이 승아라는 건 보지 못해도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은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셨으니 새우튀김 옆을 서성일 리가 없었다.
“너도 딸기 좋아했잖아. 오빠 이제 딸기 사 줄 돈은 많은데 네가 없네.”
쓰디쓴 입에서 긴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퇴근할 때 즈음이면 올 때 야식 사 오라는 동생의 문자가 와 있었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귀찮았는지, 사다 주면서도 군소리를 했던 게 이젠 평생 후회할 일이 됐다.
“미안하다. 그깟 일이 뭐라고⋯. 그날 내가 집에 일찍 왔으면⋯.”
어쩐지 그날만은 동생의 문자가 와 있지 않았다.
“⋯내가 아니었던 거 이젠 다들 알지?”
긴 세월 매일같이 그를 괴롭혔던 질문을 어렵사리 꺼냈지만 답을 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범인은 잡았지만 만천하에 공개해 심판대에 세울 순 없었다. 그 탓에 그 사건은 공식적으로는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범인이라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살인마라고 손가락질하는 건 상관없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그렇게 오해하고 떠난 건 죽어도 풀리지 않을 한이었다.
자신을 보고 공포에 새하얗게 질리던 승아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때 내가 널 안 깨웠더라면 살 수 있었을까? 그냥 편히 보내 줄 걸 괜히 깨워서⋯.”
승준은 그 끔찍한 기억을 떨쳐 버리려 고개를 흔들다 잔에 남은 위스키를 비웠다.
“난 너 살리지도 못했는데⋯.”
뱀파이어 사건 때 살아남은 게 다 승아의 덕이었다니 미안함에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눈앞의 의자가 사실은 텅 빈 게 아니길 바라며 그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내가 정말 혼자는 아니었구나. 고맙다.”
주말은 어김없이 다시 찾아오고 초원은 오늘도 소파에 누워 팝콘을 먹으며 밀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집주인의 발소리가 현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웅얼거리는 말소리에 이어 문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승준이 제법 무거워 보이는 박스 하나를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뭐 샀어요?”
박스에 찍힌 온라인 서점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만화책.”
“만화책?”
저렇게 인문학책같이 생긴 얼굴로 만화책이라니. 초원은 보던 드라마를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별다른 설명 없이 다시 거실 밖으로 사라졌던 승준이 색이 바랜 만화책을 한 아름 안고 돌아왔다.
“초원 씨 오늘 할 일 없죠?”
“할 일 없는 게 오늘 할 일인데요.”
커피 테이블 위에 책을 내려놓고 박스를 뜯던 승준이 피식 웃었다.
“그러지 말고 승아랑 만화책 좀 같이 봐줘요.”
말도 안 통하는 귀신과 같이 만화책을 보라니. 다른 사람 부탁이었다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했을 거다. 하지만 이 남자가 누군가? 오늘 저녁에 스테이크 구워 주기로 한 남자 아닌가. 초원은 군말 없이 승준이 건네주는 1권을 받아 들었다.
어느새 소파는 승준의 차지가 됐다. 누워서 책을 읽던 그는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책에서 시선을 뗐다. 바닥에 앉은 초원의 어깨가 들썩였다. 처음에는 “다 봤어요? 다 봤어요?”하고 승아에게 물으며 책장을 천천히 넘기더니 이제는 저도 빠져들었는지 숨넘어가게 웃고 있었다.
“아우, 답답해. 말을 해, 그냥.”
이제는 만화책 속 인물에게 훈수까지 두고 있었다.
초원의 앞, 커피 테이블에는 상큼한 향을 풍기는 딸기 두 접시가 놓여 있었지만 바닥을 듬성듬성 보이는 건 하나뿐이었다.
딸기를 포크로 찍어 들던 초원은 승준이 아닌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아, 진짜 고구마 장난 아니다. 그쵸?”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허공에 대고 얼굴을 찡그리는 초원이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보는 승준의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