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지 마세요, 팀장님!
일련번호: KAC-W-004245
안전 등급: 경고(W)
[개체 특징 개요]
외형: 인간형 27세 남성. 키 172cm, 체중 65kg, 뿔테 안경 착용
성명: 최은재
거주지: 서울시 영등포구 당산동
능력: 여성과의 신체 접촉으로 성적 흥분 및 각인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함
[발견 경위]
20XX년 4월 10일 오전 8시경, 마포 대교에서 자살 소동을 벌인 남성이 경찰에 의해 진압됨. 남성은 전 여자 친구들의 극심한 스토킹으로 직장 생활은 물론, 일상생활도 불가능하다며 ‘저주받은 몸으로 살 바에야 죽겠다’고 자살 소동을 벌임. 남성은 키스를 한 여성은 홀린 듯 자신에게 빠지고 성관계를 가진 후에는 집착으로까지 변한다며 자신에게 이상한 능력이 있다고 주장함.
이를 보고 받은 마포경찰서 김영욱 경위가 같은 날 오전 11:30경, 본청 특이생물관리3팀 조승준 팀장에게 인계 신청함. 오후 1시, 3팀 요원 두 명(차현우 주무관, 홍초원 주무관)이 마포경찰서에서 개체를 인계해 옴.
여기까지 타이핑을 마친 초원은 고개를 들어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의 녹음 앱이 제대로 켜져 있는지 확인했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자신을 인간 최음제라고 주장하는 남자와 현우가 나란히 앉아 면담을 시작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발현된 거죠?”
“정확히는 모르겠고요. 23살 때 모태솔로 탈출을 했는데, 그때 알았어요.”
“그전에는 여성과 신체 접촉을 한 일이 없었나요?”
“제가 남중, 남고, 공대를 나와서요⋯.”
“아⋯.”
“처음엔 되게 좋았는데⋯. 짝사랑했던 여자애들이 키스 한 번만 하면 막 넘어오니까⋯.”
초원은 타이핑을 하다 말고 노트북 화면 너머로 눈살을 찌푸렸다.
“근데 얘들이 절 놔줄 줄 모르더라고요. 지나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점점 수만 많아지더니, 이젠 안 만나 주면 죽을 거라고 협박을 하질 않나.”
남자는 안경을 벗고 눈을 비볐다.
“우리 집에도 쳐들어오고⋯. 부모님한테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고 엄청 혼났거든요.”
남자는 부모님 생각이 난 듯 한숨을 푹 쉬더니 오렌지주스로 목을 축였다.
“그러더니 이젠 취직하니까 회사까지 와서 난리를 피우고⋯. 진짜 어렵게 취직했는데, 회사에서 맨날 다른 여자가 와서 뒤집어엎으니까 감당이 안 된다면서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한강으로 가신 건가요?”
“네⋯. 회사도 잘리고 더는 길이 안 보여서. 경찰에 스토킹 신고도 했는데 경찰이 인기 많아 좋겠다며 그냥 웃어넘기고⋯.”
진심으로 우울해 보이는 남자 뒤로 저 멀리 책상에 앉은 병훈이 숨죽여 낄낄댔다. 초원은 조용히 하라는 듯 병훈에게 눈을 흘겼다.
“그런데 그 능력이란 건 어떻게 작용하는 거예요? 그냥 피부 접촉만으로 발현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만지는 것만으론 안 되거든요. 잘 모르긴 하지만 체액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페로몬 같은 건가요?”
“그건 저도 알 길이 없죠.”
“여자분들이 그 효과를 어떻게 묘사하던가요?”
“그게⋯. 살다 살다 이런 오르⋯, 절정은 느껴 본 적이 없다고⋯.”
남자가 머뭇머뭇 대답하자 저 멀리서 다시 낄낄대는 소리가 들렸다.
“흠, 저희가 등록을 하고 최은재 씨가 원하시는 것처럼 여자분들을 피해 숨어 살게 해 드리려면 증거가 필요하거든요.”
“증거요?”
“네, 특이 능력이 있으신 분들은 능력을 증명해 주셔야 등록이 돼요.”
“그러면 증명을 할 때까진 집에 가야 하는 건가요?”
“음, 얼마나 걸리냐에 따라 다른데, 일단 검사부터 받으시고 여자분들 연락처도 좀⋯.”
“그럴 것까지 있나요?”
남자는 벌떡 일어서더니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던 초원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무슨 일인지 깨닫기도 전에 남자의 축축한 입술이 초원의 입에 닿았다.
“웁, 미친⋯.”
초원은 반사적으로 남자를 밀치고 일어나 정강이로 다리 사이를 힘껏 걷어찼다.
“억⋯.”
호신술 수업을 열심히 들은 보람이 있는지 남자는 사타구니를 양손으로 쥐고 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현우는 쓰러져 신음하는 남자의 양손을 억지로 등 뒤로 꺾어 붙들었다.
“이 미친놈이⋯.”
밖의 소란에 팀장실 문을 열었던 승준은 바닥에 쓰러진 남자와 놀란 눈으로 입을 감싸고 서 있는 초원을 보고 팀장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초원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무릎이 후들거렸다. 온몸으로 간질간질한 느낌이 퍼지더니 다리 사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다리의 힘이 풀려 저도 모르게 주저앉는 순간, 승준이 손을 뻗어 초원의 허리를 잡았지만 실크 블라우스에 손이 미끄러졌다.
“홍 주임, 괜찮습니까? 다쳤어요?”
바닥에 주저앉은 초원은 여전히 입술을 감싸고 있었다. 엉덩방아를 찧은 곳이 아프지도 않은지 앓는 신음 하나 없이, 초점 없는 멍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런데 입술은 대체 왜 감싸고 있는 걸까?
‘물리기라도 한 건가?’
걱정이 된 승준은 초원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 고개를 살짝 드는 순간, 초원의 몸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만지지 마세요, 팀장님!’
이렇게 외치고 싶어도 초원은 입술을 뗄 수가 없었다. 입을 벌리는 순간 분명 야릇한 신음이 새어 나갈 거다. 승준의 손이 닿은 얼굴이 불에 덴 듯 뜨겁게 달아오르고, 역시나 그의 손길에 예민해진 등줄기를 타고 찌릿한 감각이 아랫배로 흐르고 있었다. 상사의 손으로 느껴선 안 될 것이 느껴졌다. 어쩔 줄 몰라 입만 틀어막고 있는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었다.
초원이 무얼 느끼고 있는지 알 리가 없는 승준은 입술을 덮은 가는 손가락을 억지로 떼어 내고 발갛게 달아오른 입술을 굵은 엄지로 쓰다듬었다.
‘다친 덴 없구나.’
안심하는 순간, 마주한 두 눈이 취하기라도 한 듯 풀리더니 온몸이 승준의 손안에서 바들바들 떨렸다. 그걸 고스란히 느끼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은 그는 황급히 손을 뗐다.
초원은 부끄러워 죽고 싶었다.
‘어떡해⋯. 팀장님이 눈치챘어⋯.’
사무실에서, 그것도 팀장의 눈앞에서 그의 손이 닿는 순간 절정을 느껴 버리다니.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둥글게 말은 초원은 흐느꼈다. 도저히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이렇게 있다가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정아름 씨, 홍 주임 내 방으로 데려가요. 마실 것도 챙겨 주고.”
몸을 일으키며 뒤돌아서니 성난 얼굴을 한 현우가 수갑을 찬 남자의 팔과 목덜미를 붙들고 서 있었다. 승준은 곧바로 놈에게 돌진했다.
쿵 소리가 육중하게 벽을 울리는 순간 남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승준은 남자의 목덜미를 쥐고 부러뜨릴 기세로 밀어붙였다.
“죽고 싶다고 했나?”
남자의 흐느낌은 어느새 끄윽끄윽 숨넘어가는 소리가 되었다.
소란을 눈치챈 다른 팀 사람들이 사무실 입구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희경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더니 문을 닫았다.
“자기들 뭐 해? 구경났어? 가서 하던 일들이나 해요. 혈세 낭비하지 말고.”
희경의 기에 눌린 직원들이 쭈뼛쭈뼛 사라졌다.
“저, 팀장님⋯. 이러다 정말로 죽으면⋯. 저희가 격리팀 부르겠습니다.”
이대로 뒀다간 위험하다 싶어 병훈이 말리자 승준은 남자의 목덜미를 벽으로 세게 밀친 후 놓았다. 눈물범벅이 된 남자가 들릴락 말락 흐느끼며 힘없이 아래로 늘어졌다.
“차현우 주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겁니까?”
녹취 파일을 다 들은 승준은 현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현우는 이번엔 정말 핑계가 없어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 핑계가 있더라도 대고 싶지 않았다. 파트너를 지키지 못한 건 누가 뭐래도 자기 잘못이니까. 차라리 팀장이 자길 한 대 쳤으면 싶었다.
“동료에게 잠재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개체 아닙니까? 거기까지 생각 못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자극할 만한 말이나 하고⋯. 개체가 지금 자살 시도를 할 정도로 불안한 상태인데 다시 집에 가야 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하면 어떡합니까?”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긴 한순간의 짧은 생각으로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곳입니다.”
승준은 잘 새겨들으란 듯 책상에 검지를 짚었다.
“경고 등급이 아니라 치명 등급이었으면 홍 주임은 잘난 파트너를 둔 덕분에 오늘 집이 아니라 영안실로 갔을 겁니다.”
본인이 뱉어 놓고도 그 말의 끔찍함에 질린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으면서 안 붙잡고 뭐 했습니까?”
“죄송합니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운동 능력은 일반 인간 수준인데 순식간이란 게 핑계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승준은 전적으로 현우의 잘못이 아니란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몰아세우는 자신이 싫어졌다.
‘안전 조치를 취하게 했어야 하는데⋯. 내가 옆에 있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까? 애초에 이 둘에게 맡긴 내가 잘못이지.’
승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앞으로 직원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개체는 수갑을 채우든 격리부대원을 불러 놓든 안전 조치를 취하고 면담을 하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가 보세요.”
짧게 고개를 숙이고 일어서서 문으로 향하는 현우의 등에 중저음이 거칠게 부딪혔다.
“아, 그리고 한 번만 더 문제 일으키면 지방으로 보내 버릴 겁니다, 차현우 씨.”
현우는 승준의 단호한 눈빛을 보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빈말을 모르는 팀장이니 이건 허울뿐인 경고가 아니라 선고였다.
“네, 주의하겠습니다.”
***
초원은 고개를 들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세면대를 잡은 손이 아직도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강제 조퇴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초원은 욕실로 직행했다.
그놈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몰라도 아직도 정신이 몽롱했다. 입을 씻고 또 씻었지만 전신을 묘하게 감고 있는 그 떨림은 사라질 생각이 없었다.
붉은 입술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랫입술을 매만지던 팀장의 뜨거운 손가락이 다시 생생히 느껴지는 순간 다리 사이 깊숙한 곳이 움찔했다.
“아아, 미쳤어. 정말!”
초원은 머리를 감싸고 욕실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겨우겨우 아랫배에서 끓어오르던 느낌을 억누르고 있었는데, 입술에 팀장의 손길이 닿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신음이라도 안 낸 게 다행이지.’
팀장은 조퇴하란 말 외엔 별말이 없었다. 초원도 도저히 이 상태론 안 되겠다 싶어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굳이 팀장이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을 때도 그저 빨리 사무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초원은 토를 달지 않았다.
집에 오는 길에도 팀장은 침묵을 지켰다. 다행이었다. 아까 벌어진 일을 두고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그대로 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까 다 봤는데⋯.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할까?’
팀장이 깜짝 놀라 손을 떼던 모습이 떠올랐다.
‘진짜 죽고 싶다.’
부끄러워 죽겠다는 이성의 외침은 안 들리는지, 초원의 몸은 다른 걸 외치고 있었다.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만져 줘, 핥아 줘, 빨아 줘, 넣어 줘.’
온 세포가 외쳤다.
초원은 더는 참지 못하고 옷을 벗어 던졌다.
쏴아아-
얼음장처럼 찬 물줄기 아래에서 오들오들 떨던 초원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찬물로 샤워하면 식는다고 누가 그랬어? 하나도 안 통하네.’
초원은 포기하고 온수로 레버를 돌렸다. 샤워를 마저 끝내야 했기에 샤워기를 손에 들고 몸 구석구석을 씻었다. 어쩐지 샤워기가 다리 사이에 오래 머무는 것 같다면 그건 착각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민감한 곳에 거센 물줄기가 닿자 다리를 움츠렸다.
“하아⋯.”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살짝 벌린 거울 속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눈을 질끈 감았다.
샤워기를 껐다. 타월을 꺼내 대충 물기를 닦은 초원은 체념한 듯 침대로 향했다.
‘그래, 혼자 있는데 알 게 뭐야.’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 초원은 민망함을 참고 한 손으로 가슴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자신의 가슴이지만 보드랍고 몽실몽실한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배를 쓸어내리면서 서서히 다리 사이 달아오른 곳으로 향했다. 촉촉하게 젖은 살을 살짝 가르자 손가락 끝에 작고 단단한 돌기가 느껴졌다. 돌기는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손끝으로 살짝만 스쳐도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으음⋯.”
초원은 젖은 손가락으로 살살 조그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르고, 손가락을 따라 엉덩이가 저도 모르게 튀어 올랐다. 벌써 발끝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해 다리를 쭉 뻗었다.
“하아⋯.”
돌기 아래로 뜨거운 열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이 열기가 어서 온몸을 뜨겁게 훑고 지나가 주길 바란 초원은 마음이 급해져 손가락을 더 빠르게 휘저었다. 잔뜩 젖은 돌기 위로 손가락이 감질나게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아,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는데⋯.’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떼어 침대 옆 서랍으로 뻗었다. 서랍 깊숙한 곳을 뒤지던 손끝에 검은 천 주머니가 걸려 올라왔다. 주머니를 뒤집자 분홍색 토이가 침대 위로 떨어졌다.
젤이 필요 없을 정도로 끈적하게 젖은 입구로 토이가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무언가 몸속에 꽉 차는 이 느낌이 오랜만이었다. 끄트머리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토이가 아랫배 속에 묻힌 채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초원은 진동을 최대로 높였다.
“아, 하아⋯.”
안쪽의 부드러운 벽을 흔드는 진동이 바깥의 돌기까지 짜릿하게 퍼졌다. 그 야릇한 감각에 온몸이 기분 좋게 떨렸다. 초원은 손가락을 부풀어 오른 돌기 위로 굴리면서 다른 손으론 토이를 앞뒤로 움직였다.
“아, 하아, 아아⋯.”
내벽의 은밀한 스팟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실리콘이 안쪽을 오가며 내는 젖은 소리가 자극적이었다. 부풀어 올라 한껏 예민해진 속살을 스치는 감각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간만의 침범이 반가운 듯, 속살이 굵은 물건을 꽉 물어댔다. 초원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두 손을 멈추지 않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속살이 강하게 조여드는 순간, 찌르르한 느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퍼지더니 다리 사이에 잔뜩 고여 있던 열기가 팡 터졌다. 초원은 허리를 한껏 젖힌 채 눈을 감고 신음했다.
“하아아아⋯.”
온몸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끈적하게 녹아내리는 이 몽롱한 기분. 이 순간만은 모든 걸 잊고 희열에 몸을 내맡길 수 있었다. 절정에 취한 초원은 고개를 한껏 젖히고 신음을 내뱉었다.
“아아, 팀장님⋯. 뭐? 팀장님?!”
초원은 제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지금 왜 여기서 팀장님이 튀어나와?’
그녀는 젖지 않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마구 때렸다.
“아, 나 정말 미쳤나 봐.”
초원은 눈치 없이 움찔대는 절정의 여운을 느끼며 사무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들지 못했다.
창밖은 슬슬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다시 샤워를 하고 누운 초원은 눈을 감고 낮잠을 자려고 애썼지만 간간이 머리만 쥐어뜯게 될 뿐, 잠은 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제는 아무 죄 없는 베개를 끌어안고 주먹으로 때리는 데 가방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렸다. 초원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확인했다.
[홍 주임, 며칠 더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됩니다. 필요하면 정아름 씨한테 얘기하세요.]
팀장이었다. 괜히 얼굴이 달아올라 팀장이 핸드폰 너머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붉어진 뺨을 가렸다. 다시 침대로 가 눕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더 쉴까? 아니지, 아픈 것도 아닌데 뭐 하러⋯.’
갑자기 사무실 밖을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아, 내일 가서 회사 사람들 보기 민망한데⋯.’
팀장 외에 다른 사람들은 그 순간을 못 본 것 같지만, 그래도 그놈이 걸어 다니는 최음제라고 벌써 소문 쫙 퍼졌을 텐데⋯.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볼 게 분명했다.
‘회사 가지 말까?’
‘아니지, 계속 안 나타나면 괜히 더 이상한 소문만 날 수도 있잖아.’
회사를 아주 관두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었던 초원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팀장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내일 뵐게요.]
‘내일 뵐게요⋯. 좀 이상한가? 너무 친근한가?’
갑자기 평소엔 신경도 안 쓰던 문구가 일일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초원은 마지막 문장을 다시 쳤다.
[팀장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내일 출근하겠습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이불 위에 내팽개쳤다. 내일 출근해서 사람들, 특히 팀장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미칠 것 같았다.
‘아니지, 팀장님은 별문제가 아니지.’
원래 입 무겁고 돌부처 같은 사람이라 그냥 뻔뻔하게 아무 일 없었던 듯이 굴면 괜찮을 터였다. 팀장 생각을 하자 저도 모르게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지만 말이다.
띠링.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팀장님 아니면 좋겠다.’
초원은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현우였다.
[초원 씨, 괜찮아요?]
[네, 집에 일찍 와서 쉬니까 천국이 따로 없네요.]
[^^ 저녁 아직 안 먹었죠?]
[네, 아직 안 먹었죠.]
[그럼 이따 퇴근하고 집 앞에 차돌박이 먹으러 갈래요? ^^]
[둘이서? 딴 사람 달고 오면 난 안 가요. -_-]
[당연히 둘이서지. 이따가 버스 탈 때 메시지 보낼게요.]
[네.]
현우의 얼굴을 보는 것도 조금 민망했지만, 내일 아침의 예행 연습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게다가 현우는 초원을 잘 아니까 불편한 소린 안 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초원은 침대에서 일어나 헤어드라이어를 들었다.
***
기름기를 잔뜩 머금은 차돌박이가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 갔다.
초원은 살면서 오늘만큼 욕망에 충실했던 하루도 없을 거라고 속으로 웃었다. 낮에는 성욕, 밤에는 식욕이라니.
‘어라, 순서가 바뀐 것 같은데⋯.’
“괜찮아요?”
‘아까 메신저로 물어 놓고 또 묻네.’
초원은 귀찮아서 고개만 끄덕했다. 정말 괜찮긴 했다. 온몸에 몽롱하게 감돌던 묘한 느낌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 끝이 안 괜찮아서 문제였지. 그런데 그러고 보니 낮에 엉덩방아를 찧었던 데가 살살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왜 지금까지 몰랐지?’
“아까 쓰러질 정도로 안 좋았는데⋯.”
“쓰러진 건 아니고⋯. 그냥 잠깐 멍했어요. 집에 와서 한숨 자니까 괜찮더라고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미안해요, 나 때문에⋯.”
초원의 눈가가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그게 왜 선배 때문이에요? 그놈이 미친놈이지. 그놈 또 마주치기만 해 봐라.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 줘야지.”
초원은 생양배추가 놈이라도 되는 듯 잘근잘근 씹었다.
“그 자식은 이미 태어난 거 후회하고 있을걸요?”
“왜요?”
“초원 씨가 제대로 찬 모양이던데?”
현우가 어떤 느낌인지 상상도 하기 싫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초원은 깔깔 웃었다.
“그러고 나서 나한테 얻어맞고 박 주임님한텐 발로 차이고⋯.”
초원은 경황이 없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질 못했다.
“초원 씨가 팀장실 들어가고 난 다음엔 팀장님이 완전히 폭주하셨는데⋯.”
“네?”
“팀장님이 죽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면서 그 자식을 벽에 밀쳐놓고 목을⋯.”
현우가 목 조르는 흉내를 내자 초원이 더는 못 듣겠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 미안. 하여튼 박 주임님이 안 말렸으면 그놈 격리부대가 아니라 저승사자가 데려갔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어디 있는데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현우가 흠칫하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마 진짜 각인⋯.”
“으아, 선배 미쳤어요? 됐어요. 그냥 말하지 마요.”
발끈한 초원은 고운 말을 포기했다. 그놈한테 미쳐서 찾아가려는 줄 알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초원은 기분이 상해 말없이 양념장만 젓가락으로 뒤적였다.
“여튼, 정말 미안해요. 내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초원 씨한테 위협이 될 수 있는 건 생각도 못 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개체를 괜히 도발한 꼴이니까요. 바로 옆에 있었으면서 막지도 못하고⋯.”
“괜찮아요. 선배 잘못 아니라니까요.”
초원은 차디찬 맥주를 들이켜다가 풋 하고 웃었다.
“선배, 팀장님한테 혼났죠? 지금 팀장님이 지적하신 그대로 읊은 느낌이 드는데.”
아니라고 할 수 없었던 현우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맞는 말이니까⋯.”
“혼나는데 나 없어서 눈물 나게 슬펐겠어요.”
초원은 놀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어째 현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거 말고, 초원 씨 빈 자리가 눈물 나게 슬펐어요.”
“내가 좀 존재감이 어마어마하죠.”
초원은 오해하기 쉬운 그 말을 여느 때처럼 장난스럽게 웃어넘기고 차돌박이를 양념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걱정 마요. 내일 출근할 거니까.”
“더 안 쉬고?”
“아픈 것도 아닌데 뭐 하러요.”
현우는 멍하니 맥주잔을 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참, 팀장님이 나 한 번만 더 문제 일으키면 지방으로 보낸대요.”
“하하하!”
초원은 한참 먹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 아닌 것 같던데⋯.”
“당연히 농담 아니죠. 그동안 팀장님이 많이 참으시긴 참으셨지.”
“와, 초원 씨는 내 파트너면서 왜 팀장님 편을 들어요? 섭섭하다.”
현우가 풀이 죽은 척 흘겨봤다. 초원은 그것보단 팀장님 편을 들었다는 말이 더 뜨끔했다. 다시 기억의 수면 위로 떠 오르는 망측한 실수를 격렬히 내리누르며 맥주를 한 모금 삼켰다.
“흠, 내가 팀장님이었으면 현우 선배는 이미⋯.”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자 현우가 코를 찡그리며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초원은 고기 몇 점을 집어 현우의 앞 접시에 놓았다.
“얼른 먹어요. 선배가 사는 거니까.”
초원이 다시 장난스럽게 씨익 웃자 현우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 웃더니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팀장님이 나 진짜 지방으로 보내면 초원 씨도 같이 갈래요?”
팀장이 현우를 지방으로 보내겠다고 한 건 초원과 떨어트려 놓겠다는 뜻인 걸 두 사람은 꿈에도 몰랐다.
“사고를 안 치면 되지 왜 벌써 지방으로 쫓겨 갈 생각을 해요?”
내심 좋으면서도 아닌 척하며 고기를 뒤적였다.
“혹시 모르는 거니까⋯. 나랑 같이 갈래요?”
초원은 같이 가자는 그 말이 너무나 달콤해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 없었다.
“유배지에 따라오라니⋯. 나는 참 파트너 복도 지지리 없지.”
“약속한 거예요.”
현우가 활짝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초원이 풋 웃기만 하자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잡아 자신의 손가락에 걸었다.
두 사람은 차돌박이가 타는 줄도 모르고 눈을 마주한 채 거울처럼 미소를 지었다.
초원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그래, 지방이 대수인가? 저승이라 하더라도 같이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