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생물3팀의 3포녀
“이야, 이제 특이생물3팀도 막내다운 막내가 들어왔구만.”
그 말을 들은 막내답지 않았던 구 막내, 초원은 마주 앉은 박병훈 주임에게 눈을 흘겼다.
“우리 신입은 어떻게 들어오셨나?”
병훈이 옆에 앉은 신입에게 물었다.
“네, 전 해병대에 있다가 추천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 평범하네.”
“선배님들께선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나는 원래 연구직으로 들어왔다가 옮긴 거고 차 주임이 진짜 골 때리는데, 어릴 때 장산범 보고 인터넷에서 장산범 추적 카페 운영하다가 청에 스카우트 당했잖아.”
“그럼 장산범이 진짜로 있는 겁니까”
막내, 이으뜸은 귀가 솔깃해졌다.
“있는 건 확실한데 아직 포획은 못 했어요.”
“아, 그리고 홍 주임은⋯.”
현우가 밑도 끝도 없는 장산범 추적기를 쏟아 내기 전에 병훈은 말을 잘라 버렸다.
“신병 누르려고 들어왔고⋯.”
“오, 그럼 영능력자세요?”
“아뇨, 거기까진 아니고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밖에 못 느껴요.”
“와, 그래도 대단하신데요.”
“그래서 홍초원 주임은 들어오자마자 심령관리팀으로 발령 났잖아.”
“오, 거기 들어가기 엄청 힘들고 꿀보직이라던데. 근데 왜 특이생물팀으로 옮기신 겁니까?”
“너무 꿀만 먹었더니 질려서요.”
초원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곱창 하나를 간장 소스에 찍어 입에 넣었다.
“배가 불렀지. 아, 그리고 사무 보는 정아름 씨는 아버지가 연구실장이시고 안 사무관은 뭐랬더라? 기억나는 사람?”
현우와 초원은 동시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 조승준 팀장님은 저승사자란 소문이 있던데 진짭니까?”
그 말에 으뜸을 뺀 모두가 크게 웃었다. 특이현상관리청에 도는 농담인데 그걸 진짜로 믿다니. 애초에 저승의 공무원이 이승에서 겸직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 아닙니까?”
초원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팀장님 사람 맞아요. 그냥 워낙 무뚝뚝하고 칼 같은 분이시라 우리끼리 염라대왕이 심은 간첩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조승준 팀장님 대단한 분이시지. 국정원 다니다가⋯. 아, 이 이야긴 팀장님 앞에서 모르는 척해.”
팀장이 곱창집 안에 있는 것도 아닌데 병훈은 목소리를 더욱 죽였다.
“변신 능력자한테 가족이 몰살당해서 그놈 잡으려고 여기로 옮기셨잖아.”
으뜸은 생각도 못 한 끔찍한 사연에 경악했다.
“그래서 그놈은 잡으셨습니까?”
“응, 잡기까지 한 2년 걸렸다던데. 청에서도 20년을 못 잡아서 골치 썩던 놈인데⋯. 그래서 저 나이에 벌써 팀장 달고 잘나가잖아.”
“근데 그놈은 왜 그런 짓을 했답니까?”
“싸이코지. 어릴 때 자기 형이 식구를 죽이고 자살했는데, 그다음부터 잊을 만하면 가족 하나를 찍어 놓고 그 집 장남으로 변신해서 다 죽였대. 그러고 장남은 자살한 것처럼 꾸며서 다 뒤집어씌우고. 지금은 전라도 어딘가 섬에 격리돼 있을걸?”
“무시무시하네요.”
“근데 그건 최악의 케이스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초원은 신참이 겁먹고 도망갈까 봐 걱정됐다. 팀에 온 지 3년 차 말에 겨우 막내를 벗어났는데 으뜸이 관두면 또 기약 없는 막내 노릇을 해야 했으니까.
“그래, 평소엔 그냥 시답잖은 민원처리가 대부분이니까⋯.”
병훈이 소주를 입에 털어 넣자 옆에 앉은 으뜸이 재빨리 잔을 채웠다.
‘박 주임님 임자 만나셨네.’
여기서 합이 잘 맞는 파트너를 만나는 건 삼대가 덕을 쌓아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초원은 옆에 앉은 자신의 파트너에게 눈길을 주었다. 생각을 읽은 듯 현우가 싱긋 웃고, 초원도 따라 입꼬리가 올라갔다.
“신참, 결혼은 아직 안 했나?”
“네, 할 사람은 있는데 자리 좀 잡고 할 생각입니다.”
“자리는 무슨⋯. 그냥 해 버려. 여기 오래 다니면 결혼 못 해. 여친이고 남친이고 다 도망간다고⋯. 여기 차 주임이랑 홍 주임이 산 증인이잖아.”
그 말에 현우는 멋쩍은 듯 웃고 초원은 익숙한 듯 들은 체도 않으며 병훈의 앞에 있는 곱창 두 조각을 집어 쌈에 올렸다.
“자기 생활이 힘들다곤 들었습니다.”
“근데 우리 팀은 무슨 저주라도 걸렸나, 팀장까지 죄다 싱글이야. 아, 안 사무관은 돌싱이지만.”
“그럼 박 주임님부터 솔선수범해서 솔로 탈출하시지 그래요?”
병훈에게 핀잔을 준 초원은 소주잔을 비웠다. 아깐 소주가 달았는데 갑자기 썼다.
현우가 초원 앞에 놓인 양파절임 그릇을 가리키더니 말없이 입 모양으로 물었다. 초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우는 그릇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어, 선배님 제가 하겠습니다.”
“냅둬, 자기 파트너 자기가 챙기겠다는데⋯. 부추도 좀 더 갖다줘, 차 주임.”
현우가 자리로 돌아오자 병훈은 마주 앉은 둘을 지그시 쳐다봤다.
“왜요?”
“홍차 주임은 그냥 둘이서 식 올려.”
현우가 아직 싱글인 이유를 아는 초원은 이 소릴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근데 우리가 결혼하면 파트너 바꿔야 하잖아요. 난 홍 주임이랑 떨어지기 싫은데⋯.”
“얼씨구, 닭살 돋게. 집에 가서 보면 되지.”
“선배는 내가 없으면 팀장님한테 깨질 때 막아 줄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죠?”
현우는 초원을 보고 들켰다는 듯 활짝 웃었다. 미워할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저 미소에 몇 번이나 넘어가서 귀찮은 일을 떠맡아야 했던지.
12월의 밤공기가 시렸다. 초원은 지하철역을 나서며 몸을 웅크렸다.
“진짜 춥다, 그쵸?”
현우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한강로를 사이에 두고 겨우 5분 거리에 사는 그는 이렇게 회식한 날이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초원을 자취방까지 데려다주었다.
초원은 얼굴이 얼어붙어 떨어지기 전에 빨리 따뜻한 집으로 들어가고 싶으면서도 천천히 걷고 싶었다.
“그럼, 잘 자고 내일 봐요.”
아쉽게도 지하철역과 집은 고작 200m 거리였다.
“네, 선배도 잘 자요.”
뛰어가는 현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대로 가는가 싶던 그가 갑자기 뒤로 돌더니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초원은 웃으며 건물 입구로 향했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이제야 오늘 일과가 다 끝났구나 싶었다. 몸이 노곤노곤해진 초원은 침대에 대자를 그리며 누웠다. 이대로 잘까 싶었지만 그건 또 어쩐지 억울했다. 눈 뜨면 또 출근이라니⋯.
다리 사이로 잠시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오늘은 좀 귀찮았다.
대신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 둔 핸드폰을 찾아 손을 더듬었다. SNS에서 밀린 지인들 소식이나 볼 생각으로.
아기 사진, 결혼식 사진, 맛집 사진, 여행 사진⋯. 다들 그녀보단 재밌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그거 같은 사진들을 한참 스크롤하다 초원은 익숙한 이름이 태그되어 있는 사진을 보고 멈추었다.
[민혁이 아들 돌잔치]
헤어진 지 3년 반도 넘었지만 여전히 이 이름에 가슴이 철렁했다.
‘결혼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애도 있는 줄은 몰랐네⋯.’
사진 속의 첫사랑은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 옆에 서서 아이를 안고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초원은 핸드폰을 끄고 옆으로 치웠다.
밉다, 정말 미운데 누가 미운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어 결국 초원은 자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다. 어릴 땐 교과서에 나오는 딸 하나, 아들 하나, 그런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 당연히 자신의 미래가 될 줄 알았다. 그 당연한 일에 얼마나 많은 조건이 붙는지 알았으면 꿈도 안 꿨을 텐데⋯. 너무 늦은 후에야 알았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어도 그의 고백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빠, 나 불임이래.’
사귄 지 1년이 넘어서야 알았다. 어릴 적 소아암 병동에서 같은 병실을 쓰던 아는 언니가 뒤늦게 불임 진단을 받고 이혼했단다. 그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던 엄마의 성화에 마지못해 검사를 받아 보았는데⋯.
‘하하⋯.’
결과를 받아 든 순간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이 망할 지뢰밭 같은 인생. 뇌종양에 신병도 모자라 불임까지. 이쯤이면 신이 그녀를 끔찍이도 싫어하나 보다.
남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면서도 내심 기대했다. 나는 너 하나면 돼. 이렇게 말해 주길. 그리고 그의 대답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초원아, 난 너 하나면 돼.’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말을 순진하게 믿어 버린 과거의 자신을 쥐어박고 싶다. 다시는 그런 사탕발림 따위 믿지 말아야지.
초원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남자 친구가 결혼을 서두를 때까지만 해도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지만 알고 보니 결혼을 서두른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곧 퇴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장 결혼하자는 이유가 지금까지 뿌린 축의금 회수라니. 좀 빈정이 상했지만 어차피 할 결혼, 조금 일찍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 보면 잘된 일이었다. 일찍 매를 맞고 미련한 시간 낭비를 멈출 수 있었으니까.
결혼 이야기가 오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한 건 상견례 후였다. 갑자기 난임 치료 이야기를 흘리더니 술에 취해 ‘나도 아빠가 되고 싶긴 한데 아쉽다.’는 소리를 중얼거리지 않나.
‘설마 내가 먼저 포기해 주길 바라는 건가?’
그리고 그 의심은 그의 어머니가 초원을 찾아왔을 때 확신이 됐다. 배신감에 치가 떨려 속으로는 피눈물이 흐르는데 이상하게도 겉으로는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오빠한테 5년이란 시간은 뭐였어? 5년만큼의 의리와 예의는 있어야 할 거 아냐. 적어도 파혼하자는 말은 직접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미안, 입이 안 떨어져서. 내가 너무 비겁한 것 같아서 괴롭기도 하고⋯.’
‘그럼 이건 안 비겁해? 다 큰 어른이 엄마의 입을 빌려서 헤어지자는 거.’
‘미안하다.’
‘그냥 솔직히 평범한 가정 꾸리고 싶다고 하면 내가 이해 못 해 줄 줄 알았어?’
그가 결혼을 망설이는 진짜 이유는 초원의 불임이면서, 초원을 탐탁지 않아 하던 그의 어머니를 통해 무속인 집안이니 신병이니 위험한 직업이니, 이런 불쾌한 소리나 듣게 하다니.
솔직히 말해 줬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프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그보다 괴로운 건 그렇게 한순간에 배신당하고도 혹시나, 어쩌면, 만약, 이런 생각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불임만 아니었어도 그 사람과 행복할 수 있었을까?
이런 설움 뒤에는⋯.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고작 임신 하나 못 한다는 것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한다니.
⋯라는 울분이 뒤따랐다.
불임이 원인인 파혼과 그 뒤를 이은 주변의 딱하다는 시선. 초원이 스스로 ‘고작 불임’이라고 말해도 다른 이들에게는 ‘고작’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계기였다.
‘다시는, 다시는 그런 바보짓 안 해야지.’
그렇게 다짐하면서 또 연애를 하고 싶다니. 어차피 결말은 다 알면서.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네.’
초원은 그날 밤새도록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출근한 그녀의 퀭한 얼굴을 본 박병훈 주임은 으뜸에게 ‘좀비가 나타났으니 격리부대를 부르라.’고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하다가 팀장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
점심을 그렇게 잘 먹었건만, 3시만 되면 허기진다. 커피를 타 와서 서랍에 있는 과자랑 먹으려고 탕비실에 갔더니 다른 팀 모 주임이 결혼 턱이라고 떡을 갖다 놨다. 참, 요즘 떡은 예쁘게도 나오네.
‘떡 하나에 밥 반 공기야!’
초원은 마음의 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두 개를 집어 왔다.
‘하나는 현우 선배 주고 안 먹는다 하면 ‘어쩔 수 없네.’하고 내가 먹어야지.’
특이생물3팀 사무실로 들어오는데 어쩐지 팀장실 쪽이 소란스럽다. 열려 있는 문 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더니 팀장이 초원을 보고 이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망할, 그냥 지나칠걸⋯.’
팀장실에는 안희경 사무관과 가끔 행사 때 본 직원 둘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초자연적물체관리실 사람들 아니었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테이블에 ‘기라성’이란 새빨간 글씨가 적힌 중국집 철가방이 놓여 있었다.
“초원 씨, 이과죠?”
팀장이 허리에 양손을 짚고 물었다.
“네, 맞습니다.”
“그럼 슈뢰딩거의 고양이 알겠네요?”
“네, 안을 볼 수 없는 상자에 갇힌 고양이가 1시간이 지나면 절반의 확률로 죽거나 사는데⋯. 잠깐, 그럼 이 철가방이⋯.”
초원이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자 팀장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고양이 불쌍해서 어떡해⋯.
“이거 안 열리나요?”
“최초 발견자가 열려고 해 봤는데 안 열린답니다.”
팀장이 고개를 젓자 가만히 있던 물체관리팀 사람이 끼어들었다.
“고양이가 몇 시간마다 울다가 조용해지다 하는 걸 봐선 이 고양이 부활한다니까요? 그럼 이건 특이 생물 아닙니까? 특이 물체가 아니라.”
‘아이고 머리야⋯.’
초원은 한숨이 나오는 걸 열심히 참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람들은 이 철가방이 어느 팀 소관이냐로 싸우고 있는 거였다. 특관청 전체적으로 일손이 달리다 보니 종종 보는 풍경이었다.
“아니, 근데 이걸 우리가 꺼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물체관리팀에서 접수하셨음 그쪽에서 처리하시면 되지 여기까지 가져오세요? 저희가 한가한 것도 아니고, 진짜⋯.”
희경의 말투에 짜증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우린 다 문과라 개념을 잘 모르니까 그럼 여기 홍 주임한테 물어보죠.”
팀장의 제안에 특이물체관리팀 사람이 못마땅한 듯 중얼거리고 초원은 속으로 울었다.
‘흑, 왜 말단인 나한테 이런 시련을⋯.’
하지만 하늘 같으신 팀장님 말씀인데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음⋯, 슈뢰딩거의 고양이란 고양이만이 아니라 상자랑 장치까지 포함한 개념인데, 고양이는 초능력이 없고 이 철가방에 능력이 있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나요? 그 반대라면 말이 안 되는데⋯. 저는 그래서 이거⋯ 특이 물체라고 생각합니다.”
초원은 두 직속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쳤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그치? 맞지? 우리 홍 주임 너무 똑똑하다.”
희경이 초원에게 팔짱을 끼며 난데없이 친한 척을 해댔다.
결국 특이물체팀 사람들은 투덜대며 철가방을 들고 사라졌다.
“어휴, 정말 별걸 다 떠넘기려고 그러네요.”
“그러게요.”
안 사무관과 팀장이 푸념을 하는 사이 빨리 사라지고 싶었던 초원은 조용히 문을 향해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어머, 초원 씨 손에 그거 뭐야?”
“네?”
희경이 초원의 손에 쥐여 있는 떡을 가리켰다.
“아, 탕비실에 누가 결혼 답례 떡 뒀던데요.”
“뭐야, 다른 사람들도 입이 있는데 혼자 먹으려고?”
‘아니, 탕비실에 더 있다니까요. 누가 들으면 내가 떡 한 박스 다 가져온 줄 알겠네.’
저 얄미운 입에 떡을 꾹꾹 눌러 막아 버리고픈 충동을 참으며 초원은 얌전히 떡 하나를 내밀었다.
“안 사무관님 드실래요?”
“아니, 난 떡 안 좋아해. 내 말은, 팀장님 여기 계신데 혼자만 챙긴 거 봐.”
“아니, 난 괜찮습니다.”
팀장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 더미를 집어 들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 이거 팀장님 드리려고 두 개 가져온 거예요. 출출할 시간이잖아요.”
초원은 뻔뻔하게 웃으며 떡을 팀장에게 내밀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나?’
팀장이 잠시 초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떡을 받아 들었다.
“그럼 더 필요한 것 없으시면 전 가 보겠습니다.”
초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지만, 팀장은 눈길도 주지 않고 책상 위에 쌓인 서류 더미를 바쁘게 뒤지고 있었다.
***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겁니까?”
승준은 앞에 앉은 두 요원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은 교무실에 불려 온 학생처럼 얌전히 두 손을 모으고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한 사람은 유독 열받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게 초원은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게 없었다.
“차현우 주임,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합니까?”
“죄송합니다.”
“실험 들어가기 전에 145번 물체 주의 사항은 읽고 들어갔습니까?”
“네.”
“거기 몇 미터 이내 접근 금지라고 되어 있죠?”
“⋯2미터 이내라고⋯.”
초원은 망했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질끈 눈을 감았다. 현우는 파일을 안 보고 들어간 게 분명했다.
‘제발 팀장님도 모르고 그냥 찔러 보는 거였으면⋯.’
“홍 주임, 주의 사항에 몇 미터라고 되어 있죠?”
‘그래, 팀장님은 바보가 아니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초원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현우가 죽는 김에 같이 순장될 순 없었다.
“3미터입니다.”
현우가 ‘이 배신자!’라고 속으로 외치는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팀장님, 저는 아직 캔버스 위에 유리가 있는 줄 알고⋯. 그 방 조명이 세서 잘 구분이 안 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은 일산 연구소에서 하는 실험을 참관하러 갔다가 현우가 저주받은 그림에 빨려 들어갈 뻔한 사고 때문에 팀장실로 불려 온 것이었다.
‘저것도 거짓말이겠지.’
현우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 사고를 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아마 유리가 없는 걸 알고도 격리 반경 안으로 들어갔을 거다. 현우가 자기 목숨 걸고 위험한 짓을 하는 거야 승준의 알 바 아니지만, 옆에 있는 초원이 다칠까 봐 항상 걱정이었다.
“홍 주임, 차 주임 말이 맞습니까?”
“네. 저도 처음엔 유리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 봐라.’
승준을 더 열받게 하는 건 초원이 같이 사고 치고 교무실에 불려 온 학생들처럼 현우에게 입을 척척 맞춰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승준이 미간을 좁히며 뚫어져라 쳐다보자 초원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거짓말인 걸 아는 게 분명했다.
“두 사람 그렇게 한가합니까? 남의 팀 실험 구경하러 갈 정도로?”
“아, 저희는 위험 개체 수송하러 갔다가⋯.”
“그럴 시간 있으면 밀린 개체 등록이나 하세요.”
승준은 서랍에서 서류철 뭉치를 꺼내 책상 위로 던졌다.
“죄송합니다.”
“나가 봐요.”
“선배,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팀장님한테 뻥을 칠 거면 제발 내가 커버해 줄 수 있는 거로 쳐요.”
“미안, 하하.”
오늘 2차원으로 사라질 뻔하고도 웃음이 나오나. 초원은 어이가 없었다.
“저거 선배가 다 처리해요. 난 안 도와줄 거니까.”
현우의 책상에 쌓인 서류 뭉치를 가리키며 눈을 흘겼다.
그때 초원의 책상 위에서 전화기가 울렸다.
“특이생물관리3팀 홍초원입니다. 아, 네.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초원은 현우의 의자 등받이를 끌어당겼다.
“선배, 김창석 씨 왔대요. 오늘 내가 선배 살려 줬으니까 선배가 데리고 와요.”
“아, 그 술 마시면 개 되는 아저씨?”
현우는 등받이를 잡고 있는 초원의 손에 강아지처럼 턱을 올리고 씨익 웃더니 일어섰다.
“여기 앉아 계시면 담당자가 올 겁니다.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이고 아뇨, 선생님. 번거로우시게⋯.”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사무실 한쪽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50대 중반쯤 된 남자를 앉히고 현우가 자리로 돌아왔다. 초원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서류를 챙겨 테이블로 다가갔다.
“김창석 님? 안녕하세요. 특이생물관리3팀 주무관인 홍초원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대답 대신 초원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하이고, 새파랗게 젊은 아가씨네.”
초원은 서류철을 현우에게 넘기고 싶은 충동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기계처럼 할 일을 시작했다. 이런 인간들은 빨리 끝내고 보내는 게 답이니까.
“등록증 여기 있으니 챙기시고요. 첫해는 6개월에 한 번씩, 그다음부턴 1년에 한 번씩 여기 오셔서 갱신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받으실 거 있는데 안내는 1주일 내로 우편으로 갈 겁니다.”
“아이고, 귀찮게스리⋯.”
“그리고 잘 아시겠지만 김창석 님 능력이나 저희 청에 대해서는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이랑 있을 때나 집 밖에선 술 드시지 마시고요. 다른 사람들이 개로 변신하시는 거 목격하면 저희가 골치 아파지거든요.”
남자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테이블에 손가락을 딱딱 두드리며 사무실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특이생물관리팀⋯. 참 나, 나는 사람도 아닌가? 거, 남들 없는 능력 좀 있다고 이렇게 괴물 취급을⋯.”
초원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사람도 생물 아닌가요?”
“아니, 내 말은 왜 도매금으로 묶어서 취급하냐는 거야. 아가씨라면 기분 안 나쁘겠어?”
“아가씨 아니고 주무관입니다. 아까 남자 요원한텐 선생님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아니, 아가씨를 아가씨라 부르지 아저씨라 불러? 생긴 건 반반한데 성격이 영⋯.”
뚝,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김창석 씨 말조심하세요.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제가 담당자라는 건 제 마음대로 김창석 씨를 위험 등급으로 분류해서 격리소로 보내 버릴 수 있단 겁니다. 지금 여기서 두 발로 걸어 나가고 싶다면 예의를 지켜 주세요.”
농담 아니라는 듯이 노려보자 남자가 눈을 내리깔았다.
“아니, 내 말은⋯.”
“궁금한 점 있으세요?”
“아뇨⋯. 없습니다.”
“그럼 가 보세요.”
남자는 등록증과 서류를 주섬주섬 챙겨 일어났다. 초원은 뒤돌아 이쪽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파트너에게 눈짓을 했다. 현우가 군말 없이 일어서더니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
초원은 서류철을 책상 위에 던지고 자리에 앉았다.
“홍 주임, 괜찮아?”
병훈이 칸막이 너머로 물었다.
“네, 그냥 저 아저씨 매너가 너무 없어서, 그러면 안 되는데 저도 발끈해 버렸네요.”
“특이 사항에 ‘술 안 마셔도 개’라고 써버려.”
“하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병훈의 위로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초원은 술 마시면 개 되는 남자의 교육 장소를 악귀 많기로 유명한 곳으로 찍었다.
‘처녀 귀신한테도 한번 아가씨라고 반말해 봐라.’
“와, 근데 홍 주임 진짜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거짓말 잘한다. 팀장님 승인 없으면 등급 못 올리는 거 알면서⋯. 아님 팀장이 홍 주임 말은 들어줄 거란 근거 있는 자신감인가?”
저 멀리서 희경이 불난 집에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초원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웃었다.
“에이, 팀장님 여기 안 계시니까 한 소리죠.”
팀장이 진짜 내 말대로 다 해 주면 너부터 자르라고 했겠지.
초원은 속으로 이를 박박 갈았다.
술 마시면 개 되는 아저씨를 배웅하러 간 현우는 한참 소식이 없었다. 아저씨랑 시비라도 붙었나 걱정이 될 때쯤 초원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홍 주임, 몰래 탕비실로 와요!]
사무실로 안 오고 메시지를 보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싱글벙글 얼굴에 퍼지는 미소를 감추며 빈 머그잔을 들고 일어섰다.
“어, 커피 내가 사 왔는데⋯.”
초원의 손에 들린 머그잔을 본 현우가 말했다.
“아니, 이건 누가 물어보면 핑계로 쓰려고 가져온 거예요.”
“아⋯. 앉아요.”
테이블에는 초코케이크 하나와 커피 두 잔이 놓여 있었다.
“홍 주임, 스트레스받았으니까⋯.”
그 싱긋 웃는 낯을 마주하니 저도 모르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초원은 애써 붙들었다.
“잘 먹을게요.”
꾸덕꾸덕한 초코케이크가 혀에서 살살 녹으면서 스트레스도 덩달아 살살 녹아내렸다.
“아까 그 아저씨 내가 맡을까?”
“왜요?”
“반년 뒤에 또 올 거잖아. 그냥 내가 맡을게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 나 오늘 나름 잘 처리했다고 생각하는데⋯. 저런 사람들은 강약약강이라서 내가 힘이 있다는 걸 보여 줘야 꼬리를 내려요.”
“하긴 나는 내가 나서야 하나 했는데 초원 씨가 알아서 잘하더라고요.”
“아, 근데 또 안 사무관이⋯.”
희경의 뒷담화를 시작하려는 찰나 탕비실 문이 열렸다.
“어, 팀장님.”
머그잔을 들고 있는 팀장을 보고 두 사람은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팀장은 고개를 대충 끄덕이더니 커피 머신으로 향했다. 갑자기 탕비실 분위기가 시베리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싸늘해졌다.
커피를 기다리던 팀장이 인상을 쓰고 케이크가 놓인 테이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킨 일은 안 하고 농땡이 친다고 또 혼날까 봐 초원은 조마조마해졌다.
“팀장님, 피곤하시죠? 케이크 좀 드세요.”
초원이 건드리지 않은 쪽을 크게 잘라 내밀었다.
“아니, 난 괜찮은데⋯.”
“드세요. 당 충전하셔야죠.”
초원은 ‘이거 드시면 공범입니다.’라고 속으로 웃으며 가까이 다가섰다. 머뭇거리던 팀장이 손을 올려 포크를 잡으려 했다.
“이거 떨어지면 안 되니까 그냥 아 하세요.”
아, 소리를 내며 팀장을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초원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지,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 팔 아픈데요.”
초원이 살짝 눈을 찡그렸다. 그제야 팀장이 고개를 숙이더니 포크에 얹힌 케이크를 받아먹었다.
“맛있죠?”
팀장은 초원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하더니 머그잔을 들고 나가 버렸다.
“초원 씨는 간도 크네.”
다시 앉아 케이크를 집중 공략하는데 현우가 혼자 큭큭대며 웃었다.
“팀장님 완전 당황하시던데⋯.”
“혼날까 봐 선수 친 거예요.”
“팀장님이 이래서 홍 주임을 아끼나 봐요. 배짱이 있잖아.”
“팀장님이 날 아끼긴 뭘 아껴요. 맨날 혼나기만 하는데⋯.”
“그건 내 탓이고.”
“하, 알긴 아네요.”
“흠, 케이크값은 나중에 계좌로 쏴 주세요.”
초원은 보란 듯이 마지막 조각을 입에 집어넣었다.
“네? 무슨 케이크요?”
‘회의 좀 퇴근 직전에 안 하면 안 되나? 물론 회의는 언제 해도 싫지만⋯. 중요한 얘기만 끝내고 딱 해산하면 좋을 텐데 쓸데없는 잡담은 왜 하는지 모르겠네.’
초원은 메모하는 척하며 이면지에 바람개비만 열심히 그렸다.
“올해 송년회는 어디서 할지 정했습니까?”
“아직이요.”
팀에서 사무를 보는 아름이 스케줄러를 펴 든 채로 대답했다.
특이생물3팀은 팀원들끼리 회식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승준과 희경은 아주 중요한 회식이 아니곤 거의 참석하질 않았다. 송년회는 그 몇 안 되는 회식 중 하나였다.
“팀장님, 추천하실 만한 곳 있으신가요?”
아름이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냥 여러분들이 가고 싶은 데로 가죠.”
“저번에 홍 주임이 소갈비 먹고 싶다 그랬는데.”
희경의 헛소리에 초원은 바람개비를 그리다 말고 고개를 벌떡 들었다.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어, 이 아줌마야!’
초원이 팀장에게 결백을 주장하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병훈이 조용히 하라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이 사람들이, 다 한통속이네. 소갈비 먹자고 합심해서 나를 팔다니. 이 사람들은 왜 맨날 곤란하면 팀장한테 나를 파는가. 하필 그것도 소갈비라니, 지금 나 보고 총대 메고 한 소리 들으라는 건가?
초원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팀장의 안색을 살폈다. 팀장은 말없이 시선을 좌우로 움직이며 팀원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예상을 뛰어넘는 팀장의 대답에 초원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아까 홍 주임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희경의 갑작스러운 소리에 팀장이 의아한 시선을 초원에게 던졌다.
아 제발, 저 인간 진짜 왜 저래?
“아, 별일 아니었는데요.”
“아까 어떤 남자가 등록하러 와서 초원 씨한테 젊은 여자라 만만하다고 시비를 걸잖아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근데 초원 씨가 뭐라 그랬는 줄 아세요? 호호호⋯.”
초원은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협박, 거짓말, 월권을 한 번에 저질렀으니 규정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팀장한테 그냥 좀 혼나는 거로는 안 끝날지도 모른다. 초원은 자존심을 꺾고 희경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예의 안 지키면 자기 마음대로 등급 올려서 격리소로 보내 버린다고 그랬어, 그치?”
희경은 주위를 둘러보며 맞장구를 강요했지만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눈치챈 팀원들은 시선을 피했다.
팀장은 말이 없었다. 질책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몇 초가 몇 시간 같이 느껴졌다.
“잘했네요.”
그 심드렁한 대답에 초원은 참고 있는지도 몰랐던 숨을 내쉬었다.
“다음에 오면 그냥 차 주임한테 넘기세요.”
“아, 팀장님⋯.”
하, 정말 남자들은 왜 이럴까? 기회를 뺏어가는 게 여자를 돕는 거라고 착각한다.
나는 용이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는 공주가 아니라 칼로 베어 버리는 용사가 되고 싶다고.
“제가 할 수 있는데요.”
초원은 최대한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이 펜을 돌리던 손가락을 멈추더니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지?’
초원은 초조함에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순간 팀장이 시선을 피하더니 입술을 꾹 다물었다.
“흠, 그럼 홍 주임이 계속 맡는 거로 하죠. 다만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제재도 있으니 필요하면 말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초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다 건너편에 앉은 희경과 눈이 마주쳤다.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