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MF와 고구려 연방공화국 -- >
답변을 자청하고서도 심각한 안색으로 잠시 뜸을 들이던 김 대통령이 답변에 나선다.
"아시는 바와 같이 고구려 공화국은 저희들 보다 먼저 북한과도 통상협정을 맺었습니다. 이는 고구려 공화국은 저희와 마찬가지로 북한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로 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군사협력도 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제게 동의를 구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과도 2+2회담을 정례화 할 수 있으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나중에 우리 국민도 이를 알게 될 것인 즉.......... 환란 이후 우리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준 강 통령님께 혹여 배신감 운운하는 분이 계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 바이니, 양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김 대통령이 발언에 장내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소란스러워진다.
"아니, 그럼 고구려 공화국은 양다리를 걸치겠다는 것입니까? 아니 북한과 우리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겠다는 것입니까?"
장내의 소란 속에서 누가 불쑥 던지는 말이다. 이는 웅성거리는 장내 기자들의 심정을 대표한 질문이라 하겠다.
잠시 후 장내가 진정되자, 아까 말한 바 있던 한겨레의 이 덕만 기자가 다시 발언권을 얻어 같은 요지의 말을 내게 반복 질문한다. 할 수 없이 내가 답변에 나선다.
"못할 것은 또 무엇 있습니까? 여러 기자님들이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제가 아무리 한국 출신이라도 고구려 공화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어를 공용어로 쓰는 대한민국과 북한과 같은 공동운명체라는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는 세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며 인류 공영의 길로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고, 그런 길로 고구려 공화국은 전 외교력을 투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내가 아주 단정적으로 말하자 장내는 망연한 표정이다. 고구려 공화국이 환란이후 많은 지원을 한 관계로 형제 국 이상의 정을 느끼다가, 북한도 그렇게 동등하게 대한다니 왠지 맥이 빠지며 허탈해지는 것이다.
기자들도 아직까지는 북한이 적이지, 동포로 같은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덜 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었다. 오늘 나의 이 발언으로 한국 언론은 한동안 우리의 정체를 분석하고, 나중에는 공공연히 연방제 방안까지 토론대상으로 올리며, 공중파와 지면을 아주 뜨겁게 달군다.
그 전 단계로 벌써 예리한 질문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러면, 고구려 통령 각하께서는 지금 세 나라의 연방제를 구상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좀 전에 질문을 했던 한겨레의 이덕만 기자의 추가 질문이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답변에 나선다.
"이것은 고구려 공화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제 사견을 말씀드리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아...........!"
장내에 탄성인지 비탄인지 모를 감탄사들이 쏟아지며 장내가 한동안 이상한 적막감이 감돈다. 그런데 이를 불쑥 깨는 사람이 있다. 좀 전의 한겨레 기자다.
"통령 각하께서는 좀 전에 사견이라는 전제를 달았습니다만, 통령 각하가 곧 국가라는 항간의 말처럼, 이를 고구려 공화국의 공식입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고구려 통령 각하의 진솔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너무 과한 말씀이지만 또 어느 정도 사실인 것도 맞습니다. 국정에 제 의견이 많이 반영되다보니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중대한 사안을 저 혼자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현 시점에서는 분명히 제 사견이라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아직은 좀 때가 이르다고 생각한 나는 불만 지펴놓고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현장을 지켜보는 방관자 입장을 취한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다음 질문 하실 분은 손들고 신청해주세요."
멘붕 상태의 장내를 깨우는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동아일보의 강상만 기자입니다. 좀 전의 공동발표문에 양국 상호간에 5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조항이 있는데, 이는 솔직히 고구려 공화국에 불리한 조항 아닙니까? 아직 한국은 그럴 여력이 없으니.......... 고구려 공화국의 연방제를 감안 한 추파 같은 느낌인데, 통령 각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이제는 뭘 해도 연방제에 갖다 붙이는 군요."
하하하..........!
장내에 잠시 가벼운 웃음꽃이 핀다.
"원래 고구려 공화국의 순수한 의도는 한국이 IMF환란에서 빨리 탈출하기를 바라는 담보성 조약입니다만, 종전의 기자 분 말씀대로 그렇게 해석하면 또 그렇게 해석도 가능하군요. 저나 제 나라의 순수한 의도를 곡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질문 하실 분..........?"
"KBS의 이 약청 기자입니다. 각하의 말씀 중에 1억4천 만의 러시아 시장도 궁극적으로 한국시장 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엄밀히 따지면 조약 위반 내지는 불법 아닙니까? 무관세협정을 고구려 공화국과 러시아 공화국 사이에 맺은 것이지, 대한민국과 러시아 공화국이 맺은 것이 아닌 이상은...........?"
"KBS 기자는 내가 기자회견을 할 때마다 바뀌는 군요. 이 기자님은 장수하시기 바랍니다."
하하하..........!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장사꾼 출신 이고, 지금도 때로 업무에 관여를 하다 보니, 저 같은 경우는 이를 아주 적절히 이용해서, 그렇게 가능하도록 행동했을 것 같습니다만, 한 나라의 국가 원수로서는 부적절한 발언이지요. 이왕 말실수 한 것, 만약 한국이 원한다면, 두 나라 간에 무관세 협정이 체결되도록, 제가 적극적으로 중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연방이 체결된다면 굳이 그럴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끝까지 연방제로 몰아가거나 그곳으로 끌고 들어가는 집요한 구석이 있는 한겨레신문 기자의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답변할 필요성을 못 느껴 청와대 대변인을 쳐다본다. 빨리 진행하라는 의미를 모를 그가 아니다.
"다음 질문?"
점점 말이 짧아지는 청와대 대변인이다.
"경향신문의 정 상필 기자입니다.
대우그룹을 얼마에 인수하기로 했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특혜는 약속된 것이 없었는지, 고구려 통령 각하께 묻고 싶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으나, 누가 인수하더라도 적용될 수 있는 상식선의 에누리는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김 대통령님께 말씀 드린 바는 있습니다."
내 대답에 경향신문 기자가 이번에는 김 대통령께 질문을 한다.
"고구려 통령 각하의 답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김 대통령께서는 아주 구제척이고 솔직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에..........! 제가 생각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대우그룹의 인수에 세계의 어느 기업도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해서 제가 대원그룹 총수께 인수를 부탁드린바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통령 각하의 그런 말씀이 있었고요. 제가 내각에 지시해 보고 받은 바로는, 만약 대원그룹마저 인수를 포기할 시는, 정부에서 결국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정상화 시켜야 되는데, 이 자금이 자그마치 30조가 들어가야 할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까지 가지 않게 되니 반배급부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저는 알아들었고요. 이런 면을 고려해 볼 때 가격 협상에서 어느 정도는 이를 반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본인의 생각입니다.
"아주 헐값에 매각한다는 말씀입니까?"
경향신문 기자의 추가질문에 김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답변을 한다.
"저는 분명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닙니다."
"엎어 치나 둘러치나 그게 그것이지, 뭐가 아닙니까?"
사뭇 시비조로 나오는 경향신문 기자다.
"정상을 참작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십시오."
보다 못한 청와대 대변인이 이렇게 말하고 다음 질문으로 들어간다.
"중앙일보의 장 태웅 기자입니다. 내년에 막상 고속철이나 고속도로가 준공된다 해도, 북한과 우리나라 사이에는 아무런 협정이 없어, 북한 땅을 지나 고구려 공화국과 연결된다는 것은 너무 빠른 속단인 것 같은데, 통령각하께서는 그렇게 되도록 힘써 줄 의향이 계시는지요?"
"다 만들어 놓고 그냥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지켜보면 아시겠지만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저는 단정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물밑 교섭이 어느 정도는 진행되어 있다는 말씀으로 들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셔도 틀린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통령 각하! 한국을 위해 여러모로 애써주시는 데, 모쪼록 건강하십시오."
깍듯한 기자의 말에 나 또한 마이크를 대지 않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사적으로 한다.
"시간 관계 상 한 분만 질문을 더 받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분 질문 하시겠습니까?"
"SBS의 윤 진경 기자입니다. 공동발표문 말미에 양국의 경제협력을 더욱 증진시키기 위해 여러 말씀을 나누셨다고 들었는데, 그 가운데 한 토막을 들려주실 수는 없습니까? 두 분 가운데 어느 분이든지 좋습니다.
내가 손짓으로 김 대통령을 가르키자 김 대통령이 마이크 앞으로 나선다.
"각하와 나눈 대화중에는 이런 말도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만약 북한이 자기네 땅을 통과하는 가스관이나 석유파이프라인을 잠그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에 대한 대답으로 각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험...........!"
큰 기침으로 목을 틔운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한 김 대통령의 발언이 이어진다.
"'저는 상대와 맺은 약속에 대해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철저히 지키고, 상대에 대해서 존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절대 당하고만 있지만은 않습니다.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며, 그 상대와는 예의를 잃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듣고, 안심하고 우리도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통상협력을 강화해야겠다는 내부 결심이 섰습니다.
답변이 되었습니까?"
"네. 그렇지만 이번에는 고구려 통령 각하께 여쭙고 싶습니다. 만약 실제로 북한이 그런 조치를 취한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실 것인지요?"
"지금 이 자리에서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고, 그 때, 그때의 상황을 봐야겠습니다만, 최소한 제가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최소한 상대는 그 이상, 아니 아주 심각한 피해를 볼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코 이 자리에서 단언 드릴 수 있습니다."
"앉지도 못하고 장시간 답변에 응해주셔서 두 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으로 양국 국민께 드릴 말씀이 있으면 두 분 다 짧게 발언해주시죠."
엉뚱하게도 청와대 대변인을 제쳐놓고 문화일보 기자가 나서서, 기자들을 대표해 기자회견의 말미를 장식한다.
그만큼 한국 언론이 자유롭다는 것을 전 세계에 타전하고 있다.
"IMF환란 이후 더욱 우리 대한민국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고구려 공화국의 강 통령님께 이 자릴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올리며, 양국 간의 우의가 더욱 심화되기를 바랍니다.
김 대통령에 이어 내가 발언을 한다.
"잠시 환란으로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이 고비만 넘기면 대한민국의 국민은, 찬란히 빛나는 오천 년 역사의 저력을 살려, 웅비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제 부모 형제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좀 더 풍요롭고 복되기를 바라면서, 환대에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정중하게 한국 국민께 인사를 드리는 것을 끝으로, 나는 김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간다.
============================ 작품 후기 ============================즐거운 날들 되세요!
^^오늘도 3종 세트로 격려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