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25화 (125/135)

< -- IMF와 고구려 연방공화국 -- >

특사는 의외로 철강 왕으로 부르는 박태준 씨였다.

훗날 국무총리 직에도 오르는 그는 당시 자민련 총재로 김대중 출범 시, DJT연합 즉 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합을 통해 김대중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는데 상당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김 대통령의 특사로 내정되어 나와의 만남을 요구해, 나의 수락에 그와의 회담이 통령 궁에서 열린다. 그의 기호대로 차는 믹스 커피가 준비되었고, 나 역시 같은 차로 함께 목을 축이며 대화를 이어나간다.

내가 입을 연다.

"IMF의 지원으로 한국 경제에 숨통이 트이지 않았습니까?"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당장의 국가부도 위기는 막았지만 총 외채 2,000억 달러 중 올 한해에 갚아야할 단기성 외채만 300억 달러가 넘습니다. 그런데 외국은 아직도 한국 경제를 신뢰하지 않아 상환 연장을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올 1월만 해도 대기업을 제외하고도 100개 넘는 중소기업이 도산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같은 민족 출신인 고구려 공화국의 총령 각하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흐흠.........! 얼마를 지원해드리면 되겠습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최소 300억 달러는 되어야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은 곤란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여유가 많지 않아요. 100억 달러를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의 지원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밖에 안 됩니다. 좀 더 지원이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제가 알기로 어쩐 여유인지는 몰라도 2년 전부터 내핍경영을 한 대원그룹은 전보다 재무고조가 더욱 건실해졌습디다.

국내의 기업도 이번 기회에 많이 인수하여 실직자를 좀 구제해주시고, 국부가 외국인 손으로 유출되지 않게 해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좋습니다.

최종적으로 200억 달러를 금년 상반기 내에 지원해드리도록 하고, 부도가 난 기업에 대해서는 선별적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력 각하!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모국의 환란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셔서 더욱 감사하고요, 이번 기회에 한국을 한 번 방문해 주셔서 팍팍한 살림살이에 찌든 국민들과 한국 경제를 한 번 응원해주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여기 김대중 대통령의 정중한 초청 서한도 가지고 왔습니다만...........?"

"알겠습니다. 가급적 금년 상반기 내에 자금 집행과 함께 다녀가는 것으로 하죠."

"감사합니다. 통력 각하!"

거듭 사의를 표하는 박 태준 씨다.

나는 빙그레 웃은 것으로 그의 인사에 화답하고, 그 외에 자잘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의 회담이 마무리 되었고, 나는 약속대로 98년 4월 안에 200억 달러를 한국 정부에 공식 지원함은 물론, 부도가 났거나 화의 신청 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인수전에 뛰어든다.

결국 우리의 자금 지원은 97년 초 800원 선을 오르내리던 환율이 연말에는 2,000원 선까지 폭등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던 환율이, 김대중 정부의 적절한 대응 즉 IMF자금의 조기 집행,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 여기에 고구려 공화국의 200억 달러 지원이라는 결정적 기여에 환율 시장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외국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긍정적 시각으로 바꾸어 외채의 만기연장에 동의해준다. 또한 대원그룹은 그동안 쌓아 놓았던 대규모 자금을 풀어 한국기업의 인수전에 뛰어들어 도산한 기업 대부분을 인수하다시피 한다. 인수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상당히 눈이 익은 기업들이 많을 것이다.

그 기업을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진로그룹, 삼립식품, 한신공영, 쌍방울그룹, 해태그룹, 뉴코아, 한라그룹, 고려증권, 청구그룹, 극동건설, 한일그룹, 쌍용그룹, 동아그룹, 고합그룹, 신호그룹, 우방그룹, 강원산업, 청보그룹 등이다.

이 외에도 나는 그룹의 전 자금을 동원해 98년 6월 종합주가지수가 300선 밑으로 떨어지자 대규모 주식매입에 돌입한다. 그 결과는 반짝 주식이 상승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저평가된 주식이 시장에 넘쳐 우리는 그것을 고르는데 애를 먹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대원그룹은 명실공이 한국 기업의 근 4할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거대그룹이 되어, 일부는 '대원공화국'이라는 말로 대한민국을 평하기도 한다. 우리의 활약은 여기서만 끝나지 않는다.

98년 4월이 되자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엘친 대통령이 극비리에 고구려 공화국의 통령 궁을 찾아든다. 러시아 공화국 또한 모라토리엄 직전까지 몰려, 내게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다.

유난히 붉은 혈색의 엘친의 얼굴은 그 좋은 혈색은 다 어디다 두었는지, 상당히 지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와 대좌하고 있다. 자세 또한 당당한 모습이 아닌 상당히 비굴한 모습이다.

"각하 도와주십시오. 아니면 국가 부도 사태를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만나자마자 죽는 소리로 읍소하는 엘친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러시아공화국의 경제는 국제 자원시세의 등락에 따라 엄청난 영향을 받는데, 85년의 G7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일본의 환율은 대폭 즉 배 가까이 절상되어 20년 장기불황에 빠지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석유류를 필두로 한 국제 원자재 값은 하향안정세를 지속함에 따라 엘친의 시대에는 계속해서 침체일로를 걷는다. 이것이 운 좋게도 푸틴이 등장하는 시대 즉 2,000년 대 전후에는 자원시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니, 그러고 보면 대통령도 운대가 맞아야 하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아무튼 계속된 이런 추세에 정말 러시아 공화국은 한국마냥 모라토리엄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이 되어 급히 나를 찾아온 엘친이다. 그러니 엘친이 애초부터 고자세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라 하겠다. 엘친의 말에 이어 내가 대답한다.

"아시다시피 우리도 어렵습니다. 한국에 200억 달러를 지원함으로써 그마마 일본에서 온 차관의 2/3가 집행되었으니..........."

다급한 엘친이 나의 부정적인 말을 끊고 들어온다.

"세계에서 그나마 우리나라를 도와 줄 국가는 고구려 공화국 외에는 없습니다. 각하! 도와주십시오!"

논리보다는 감정을 앞세워 무조건 내 앞에 호소하는 엘친이다.

마지못해 내가 묻는다.

"얼마면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최소한 300억 달러는 되어야 간신히 국가 부도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요구에 생각을 달리한 내가 넌지시 엘친에게 권한다.

"그러지 말고 IMF에 지원요청을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내 말에 급히 손을 저으며 급격하게 톤이 높아지는 엘친이다.

"그 날강도 놈들에게요. 한국의 예를 보았지 않습니까? 명목이 좋아 지원이지 한 나라 경제를 거저, 날로 잡아먹으려는 도둑놈들에게는 지불유예를 선언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지원요청은 안 할 겁니다.

"흐흠...........! 참으로 곤란하군요. 100억 달러는 어떻게든 지원해 줄 수 있겠는데, 더 이상은............."

내가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자 한 무릎 다가앉으며 엘친이 울 듯한 얼굴로 말한다.

"그럼, 당장 급한 대로 200억 달러라도 융통을 좀 해주세요. 각하!"

그의 말에 나는 내심 희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억지로 쥐어짜면 200억 달러까지는 지원이 가능하나 거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세요. 웬만하면 다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엘친이 이런 말까지 하는 것을 보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그럴수록 나는 표정관리를 하며 나의 요구조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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