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24화 (124/135)

< -- IMF와 고구려 연방공화국 -- >

북한이 고구려공화국과 일본이 상호 군수지원협정까지 체결하게 된 것을 알게 된 것은, 그 해도 다 저물어가는 12월 15일 일본 양원에서 고구려공화국에 대한 100억 달러 차관 공여가 통과된 후다.

상을 당해 은인자중하고 있던 김정일이 대사관을 통해 나와의 통화를 요청했고, 내가 승낙함에 따라 그와의 통화가 이루어진다. 화를 내고 싶으나 낼 수도 없는 절박한 처지에 빠진 김정일이 나를 애원하다시피 초청하나 나는 이를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한다.

맥없이 전화를 끊은 그가 이틀 후의 재 통화에서는 고구려공화국을 자신이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한다. 마지못한 척 나는 이를 승낙한다.

다음 해 그러니까 1995년 1월 15일 김정일이 급거 고구려 공화국의 수도인 하바로브를 공식 방문한다. 총리를 영접 사절로 기차역에 내보낸 나는 통령 궁에서 그를 맞이한다.

옛 조선의 궁궐모양에 현대식 건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통령궁의 현관에서 나는 손수 김정일을 영접한다.

"어서 오시오. 주석 동지!"

"아직 저는 주석이 아닙니다. 국방위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습니다. 통령 각하!"

"하하하..........! 이거 실례했습니다. 오시니까, 어떻습니까? 상당히 가까운 거리죠?"

"진짜 지척지간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곳 날씨가 춥기는 춥군요."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영하 30도로 내려가는 것은 추위도 아니니, 항상 보온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북조선도 겨울이 춥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비하니 평양은 봄날이군요."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귀중한 것과 장점들을 잘 모르고 지냅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그것을 잃고 나면 그때 가서 알고 후회하죠."

"맞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죠."

둘은 이층의 내 집무실로 걸어가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그곳에 도착한다.

"자리에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통령 각하!"

오늘 따라 더욱 예의범절에 밝은 김정일이다.

훗날 현대의 정주영 회장이 평양을 방문해 촬영을 할 때도, 셋이 사진을 찍으면 정 주영 회장을 가운데 세울 정도로 깍듯한 면이 있는 김정일이다. 기호에 따라 내온 차를 들며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둘은 본격적인 회담으로 들어간다.

김정일이 먼저 입을 연다.

"저는 그래도 남조선과 달리 전 주석님의 서거 당시 조전을 보냄을 물론 조문단까지 파견해주신 귀국을 맹방으로 생각했습니다만, 금번 일본과의 상호 군수지원협정 체결 사실을 알고 는 당혹감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넋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요, 아주 얼얼합니다."

돌연한 김일성의 죽음을 놓고 조문단을 파견하느냐 마느냐 하다가, 결국 일체의 조문을 하지 않은 한국과는 달리, 한국마냥 전쟁을 치른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북한과 경협이 강화되고 있는 고구려 공화국은, 재빨리 조전은 물론 조문단까지 파견해 김정일의 환심을 산 바 있다.

이로 인해 양국 사이에 훈풍이 불고 있다면, 반대로 남한과는 이 때문에 지금 아주 냉랭한 관계다. 김정일이 지금 그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공화국도 위원장 동지가 생각하는 만큼 아주 넉넉한 처지가 아니라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단은 그네들의 자금이 필요했으니까요."

"우리는 곧 굶어죽어도 그딴 짓은 안 합니다."

"글쎄요.............! 그것은 생각 나름이고, 관점의 차이겠지요."

"정말 고구려 공화국마저 미제원쑤놈들은 물론 왜놈들과 한편이 된다면 우리는 생각을 달리 할 겁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꺼낼 카드가 한정되어 있다. 북방은 내가 꽉 쥐고 있으니, 무엇을 더 어찌 하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남한 밑으로 기어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쉽게 말하면 지금 북한의 처지는 우리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사면이 꽉 막힌 형국이라 옴치고 뛸 수도 없는 아주 난처한 처지다. 그런데 뭘 어찌 한단 말인가? 이런 말을 내면으로는 직설적으로 뱉고 싶지만 예의가 아니라서 나는 단지 빙긋이 미소를 띠고 말한다.

"다 고구려 공화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방편의 하나지, 더 이상, 더 이하도 아니니,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제나 내일이나 일관되게 북조선과의 경제협력이 심화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도 좋지만 우리와도 동맹을 체결할 수는 없습니까?"

"허허.......... 그것 참.............!"

난처한 듯이 웃고 있던 내가 계속해서 말한다.

"아시다시피 양국이 동맹을 체결하면 북방4국의 대륙 세력과 남방3국의 해양세력이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는 모양새니, 이는 우리는 물론 귀국에도 결코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차라리 양국이 경제협력을 더욱 강화하여 하루라도 빨리 그네들 보다 경제력으로 앞서야만 길이 보이는 궤이니 이를 어찌 합니까?"

"상식적으로는 각하의 말씀이 옳으나 북조선 만으로서는 너무 외롭고 힘듭니다. 도와주십시오!"

간절히 청하는 김정일을 보니 안됐기는 했지만 이것은 사감에 의해 좌우될 성질이 아닌 관계로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말한다.

"차라리 귀국과 우리가 연방 공화국으로 거듭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네에...........?"

깜짝 놀라는 김정일이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맴돌기 시작한다. 나와 고구려의 공화국의 의중을 이제는 확실히 알았다는 뜻의 미소다. 그러나거나 말거나 나의 말이 이어진다.

"일단은 쉬운 분야부터 통합하는 것으로 해서, 일국이체 제에 경제 분야부터 통합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글쎄요.............?"

이제는 김정일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 국가이니, 방위조약이고 뭐고, 아무 필요가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좋은 말씀입니다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서..........."

이렇게 얼버무리던 김정일이 곧 표정을 수습하고 말한다.

"일단은 내각에 지시해서 검토를 한 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결론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긍정적으로 말한다.

"각하의 뜻은 알겠습니다만, 지금 저로서는 당장 답변 드리기 곤란한 사안이니, 나선청진자치시에나 좀 더 투자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식량과 기름도 지원해주셨으면 고맙겠고요."

김정일이 내 앞에서 자존심을 죽이고 애걸을 할 만한 요즈음의 북한경제다.

90년부터 94년까지 내리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데가 앞으로, 3년은 훗날 '고난의 행군시대'라 해서 유례가 없는 궁핍을 경험한다. 어쨌든 4년의 마이너스 성장만으로도 김정일은 오늘 내게 자존심을 굽히고 식량과 에너지의 원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적 견지에서 내각에 검토를 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나 또한 밑으로 일임을 하되, '인도적 견지'라는 단서를 단다.

인도적 견지라는 것은 식량이나 기초의약품 등이지, 기름은 해당 사항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회담이 계속되지만 당장 합의를 본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훗날 성과 없는 회담으로 양자 회담은 기록되게 된다.

아무튼 나는 김정일을 보내고 범 정부차원은 물론 내가 운영하는 회사 모두 2년 동안 긴축 운영을 지시한다. 신규 인수합병을 금하는 것은 물론 내핍경영으로 회사내부에 자산을 쌓아놓도록 특별 지시를 한 것이다.

북한을 보아서 알 수 있듯이 국가나 기업이나, 잘 돌아갈 때 아끼고 부를 쌓아놓지 않으면, 어려움이 닥쳐서는 해결난망이고, 거지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1997년이 되었다.

그것도 하반기 중에서도 4/4분기다. 동남아 각국에 외환 위기가 발생하고 한국도 빠르게 기업들이 쓰러져갔다.

삼미특수강을 비롯해 진로, 대농, 한신공영, 부산 태화백화점 등이 부도를 내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국정부는 외환위기 대책을 발표하고 수습에 안간힘을 쓰나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나 S&P 등에 의해 한국시중은행들에 대한 신용평가를, 투자부적격 단계인 정크본드 수준이나 바로 그 위 수준으로 하향 조정하자, 외국 자본이 일제히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이때 한국정부는 그나마 좀 쌓아놓았던 달러도 환율을 방어하느라 거의 다 소진하고, 실제 가용 외환보유고는 채 9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외국자본의 철수는 증시폭락과 함께 환율을 천정부지로 솟구치게 했다.

이렇게 되자 돌아오는 단기 외채도 막을 수 없는 그야말로 국가부도 사태 직전에 이른 한국정부요, 경제였다. 다급해진 한국정부는 IMF 구제 금융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일본과 고구려 공화국에도 돈을 빌려달라고 애걸을 했다.

일본은 11초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일본 수상에게 보낸 서한에서, '아시아 각국의 금융 위기는 양국 간에 처리하지 말고, IMF에서 지원을 받아 처리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서한 내용을 들어 한국정부의 요청을 거절했다. 나 또한 고구려 공화국으로 찾아온 강경식 부총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거절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첫째는 한국경제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기업가는 아직도 관치금융에 의존해 대대수의 업체가 자기자본 비율 대 500~600%의 부채가 기본이고, 정치인은 선거철만 되면 아니 수시로 기업체에 갖가지 명목으로 손을 내미는 후진적 관행이 만연하고 있어, 이번 기회에 확 뜯어 고칠 필요성이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나 역시 만약 돈을 빌려준다 해도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는 물론 금융계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청할 것인 바. 이는 돈을 빌려주고도 대대로 욕을 먹을 일이라 차라리 안 빌려주는 것이다. 금융권 구조조정을 하다보면 당연히 금융기관은 채권회수에 노력하게 되고, 다음 수순으로는 은행의 빚 독촉에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내거나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음으로는 이 기업에 몸담던 근로자들이 실직을 하게 되고, 실직의 고통은 이혼이나 가정의 파탄 내지 자살 등 사회적 충격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대수의 국민은 원망할 대상을 찾게 되는데, IMF사태 때는 IMF가 당연히 이 욕을 먹었지만, 우리가 돈을 빌려주고 구조조정을 요구하게 되면, 그 욕은 당연히 고구려 공화국이나 나에게 쏠리게 마련이다.

뭐 주고 뺨 맞는다고, 나와 고구려 공화국이 그런 짓을 왜 하는가! 이런 이유로 총리 선에서 이를 거절했지만 이를 그대로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우리도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억지 핑계로 강 부총리를 돌려보낸 바 있다. 그 여파는 결국 한국정부로 하여금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했고, IMF는 결국 다급한 한국정부와는 달리 시간을 질질 끌며 자신들의 입맛대로 시장경제에 편입을 요구했다.

말이 시장경제의 편입이지 모든 것을 다 개방하고 미국의 경제우산 아래 들어오라는 요구에 약자인 한국정부는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IMF의 캉드쉬 총재인지 카드깡인지 하는 놈하고 새로 부총리에 임명된 임창렬은 양국 최종 합의안에 서명하는 것으로 한국정부는 IMF관리 체제에 들어가는 수모를 겪는다.

이렇게 했으면 IMF측에서는 돈이라도 제때 풀어야 하는 데 그게 아니고, 3년이나 5년 등 미래자금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575달러 라 외국과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이 와중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씨에 의해 한국정부는 IMF와 재협상을 벌여 약 200억 달러를 2년 내 조기 집행하기로 합의를 보고서야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러나 종금사와 기업 시중은행들이 외국으로부터 들여온 단기악성 외화차입금이 또 다시 발목을 잡아 외환의 유동성은 여전했고,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의 특사가 또 한 번 고구려 공화국을 방문해 나와의 접견을 요구한다. ============================ 작품 후기 ============================또 주말이 되었네요.

즐거운 주말되시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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