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구려 공화국 -- >
내 결심은 확고부동하다.
몽골과 북한을 수중에 아우르고 중국에 속한 우리의 고토를 회복하자는 전략(戰略)에 의해 모든 외교 전술(外交戰術)이 구사되고 있다. 일본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이들을 이용해 하루라도 빨리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 활발한 외교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내 말에 성큼 일보를 내딛는 무라야마다.
"각하의 말대로 진정한 일의대수의 관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 간에 상호 군사교류 만한 것이 없습니다. 동의하시는 지요?"
"그야, 그렇지요."
무라야마의 말에 내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언잖은 투로 말한다. 비록 내가 미끼를 던졌지만, 내 입에서 군사교류라는 말은 입도 벙끗 하지 않았으니, 어디를 보아도 어색하지 않다.
"그럼, 우선 양국 간에 국방장관의 상호 방문을 정례화 하고,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을 체결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는 무라야마다. 이에 반해 나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말한다.
"글쎄요...........! 양국 간의 관계가 너무 빨리 진전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지금은 중국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에 따라 칼 빛을 어둠속에 감추고 힘을 기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이 굴기(?
起)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 전에 우리 일본은 북방의 신흥강국으로 떠오른 귀국과 선린우호 관계를 넘어, 서로 손을 잡고, 그들을 한편으로 견제하는 한편, 그 때를 대비하고자 함입니다."
"참으로 날카로운 분석과 탁견(卓見)입니다만, 그렇게 되면 우리의 외교상 많은 불이익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와 우호관계에 있는 러시아는 물론 중국 북한 등 북방 삼국이 결코 조용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고요."
먼저 불쑥 무라야마의 마음에 불을 질러 놓고는 짐짓 망설이는 척하는 나다. 아니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나며 무라야마를 아주 애먹이고 있다.
"각하의 모국이 대한민국일진데 무엇을 더 주저하십니까? 사람의 근본이 어디 간들 변할 수 있습니까?"
이제 내 조국까지 언급하고 있는 무라야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만 내 근본보다도 내게는 지금의 고구려공화국이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 각하의 말대로 하게 되면 우리 외교의 근본이 흔들리게 됩니다.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직 경제도 기반을 잡지 못했는데 외교의 근본마저 흔들리게 되면 나라 전체가 흔들립니다.
이제는 완전히 드러누울 자세다. 그러면서 슬쩍 '경제'를 끼워 넣어 나의 요구조건을 내놓는다.
"돈이라면 걱정 마세요. 그래도 아직은 일본이 아직 돈이라면 조금 있습니다.
우리 일본이 귀국의 경제를 돕겠습니다. 귀국의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얼마만한 자금이 필요하십니까?"
무라야마가 나의 한 마디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은 절대 바보라서가 아니다.
어찌 일국의 수상이 바보일 리가 있겠는가. 이는 고구려 공화국의 위치가 아주 절묘해서다.
만약 일본이 우리와 군사협정을 맺는다면, 북방3국의 목구멍에 비수를 들이대는 격이니, 돈으로 우리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무라야마가 아니더라도 돈 몇 푼에 연연할 일본 지도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비록 내 요구조건이 돈 몇 푼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서도.
"한 1,000억 달러..........."
"네에...........?"
나의 요구조건에 깜짝 놀라는 무라야마다.
"그것은 아무리 일본이 돈이 좀 있다 해도 너무 과합니다. 한 300백 억 달러면 어떻겠습니까?"
"아국의 가치와 경제개발 상황을 고려한다면 못해도 800억 달러는 되어야........."
"400억 달러는 가능합니다. 그것도 아주 좋은 조건으로, 10년 거치에 20년 분할상환 조건으로요.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이제 엉뚱하게도 군사협정이 차관금액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둘이다. 그 이후에도 둘은 계속해서 밀고 당기는 줄 달리기를 계속해서, 400억 달러를, 매년 100억 달러씩, 4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지원을 약속한 무라야마다.
지원조건은 처음 그의 말대로 10년 거치에 20년 분할 상환이고 이자는 2%다. 그간의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2%면 거저 빌려주는 돈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나도 살라만 전술을 구사해 그들의 돈이 고구려공화국에 들어와야 하나씩 군사협정의 강도를 높여가기로 최종 합의한다. 첫해에 100억 달러가 들어오면 영관급을 단장으로 한 군사고문단의 상호방문이 이루어진다.
두 번째 100억 달러가 들어오면 국방장관이 상호방문 한다. 세 번째는 처음에 언급된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이 양국 간에 체결된다.
네 번째는 상호 군수지원협정이 체결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돈을 갈구하는가?
아시다시피 3년 후 1997년도면 한국이 IMF의 직격탄을 맞는데 고구려 공화국은 솔직히 한국에 지원할 돈이 없다.
돈이란 돈은 모두 고구려 공화국의 기간산업과 첨단무기 군의 전력증강사업은 물론 국민복지에 전부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돈이 좀 있지만, 이것과는 구별되어야 하겠기에 나는 전략상으로 일본과 맺어질 것이라면, 돈이라도 좀 챙겨 한국을 IMF사태 때 구원하고 싶어서 이렇게 악을 쓰고, 무라야마와 오찬도 거른 채 장시간 설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돈을 다 한국의 지원에만 쓰느냐?
물론 아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야 말로 내가 택하고 있는 전술인 바, 고구려 공화국의 힘을 기르는데도 당연히 쓰여 질 것이다. 아무튼 무라야마와 내가 맺은 이면 계약은 당분간은 비밀이다. 그러나 그것이 올해 안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를 무라야마 혼자 집행하는 것이 아닌 내각의 추인을 받아 국회의 동의까지 받아야 하는 사항이니, 어찌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겠는가!
이런 면에서 보면 공산독재사회보다 민주사회가 참으로 불리하다. 모든 것이 언론에 까발려지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하필 올해 안인가?
올해 안에 100억 달러를 1차로 지급하기로 약정했기 때문에 그렇다.
아무튼 무라야마와 나는 중대한 이면계약을 한 채 정상회담을 마치고 기자회견까지 갖는데, 기자회견 석상에서는 절대 이런 이야기가 일체 언급되지 않는다. 설령 나중에 알려질 때 알려지더라도 당분간은 비밀에 부치기로 한 이유도 있지만, 일본의 각의에서 추인을 받지 못할 수도 있고, 국회에서 부결될 수도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걱정을 않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나는 종신 통령으로 내가 죽는 그날까지 통령직에 복무하게 된다. 내가 이 나라를 세운 이유도 있지만, 내가 없으면 이 나라 꼬라지가 안 되니, 나는 일본의 왕과 같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국방과 외교권을 행사하고, 정부의 총리를 임명할 권한이 있다.
우리가 택하고 있는 제도는 의원내각제로, 다수당이 총리를 맡는 것은 물론 조각권이 있다. 그런데 내가 창당한 민주개혁당이 절대 안정 석을 넘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 의회에서 부결 될 일은 결코 없다. 의원 300석 정원에 우리 당 출신이 285석이고, 나머지 15석은 군소정당들인데, 러시아 공산당연합이 8석으로 제 1야당이니, 고구려 공화국의 정치 현주소를 알만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몇 곳에 전화를 걸어 이해를 구하거나 급거 그 나라를 방문하기도 한다. 뭐니 뭐니 해도 세계 최강은 역시 미국이다.
나는 맨 먼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에게 핫라인으로 전화를 걸어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그런데 클린턴 왈
'축하하고 환영합니다!'
자신의 추종세력과 동맹을 맺는데 싫어할 왕초는 없는 것이다. 당연한 클린턴의 반응이고 앞으로 전개될 미국 조야의 반응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다음에 전화를 건 곳은 대한민국의 김영삼 대통령이다. 사실 이해관계로 따지면 내 입장에서는 러시아 연방에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러나 내 조국인 관계로 많은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