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21화 (121/135)

< -- 고구려 공화국 -- >

94년 10월.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이곳 관광특구 추미칸은 벌써 눈과 얼음의 세상이 되었다.

제 81대 일본 수상 무라야마 도미이치와의 정상 회담을 이곳에서 열기로 함에 따라, 사전 준비 차 나는 미리 이곳에 와 준비를 하고 있다. 사회당 당수이며, 한일 간 '무라야마 담화'로 유명한 그는, 일본의 역대 수상 중 그래도 가장 역사에 근접하게 한국과 중국에 사과를 한 연성 기조의 인물 중 하나다.

하얗게 센 긴 눈썹(白長眉)이 특징인 무라야마 수상은 자민당이 과반수에 못 미치자 연립내각을 구성해 수상에 오른 인물로, 내가 일본 초정을 수차례 거절하자 이제는 방문을 하겠다고 떼를 써서 마지못해 나는 정상회담에 응하고 있다. 정상회담 의제에 오른 가장 큰 이슈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이제 한창 석유와 가스를 쏟아내고 있는 사할린 섬의 석유와 가스를 파이프라인을 통해 소야 해협을 거쳐 일본의 홋카이도 섬으로 연결하는 문제와, 한국의 부산까지 내려간 이르쿠츠크의 가스 파이프라인을 일본의 기타큐슈로 연결하는 문제를 협의하는 것이 가장 큰 현안이다. 두 번째로는 일본의 중소기업들이 북한의 나선청진자치시를 비롯해 나홋카와 하바로브에 건설된 경공업단지에 투자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 측에서는 사할린 섬을 정상회담의 원탁에 올리려 끝까지 기로를 했다, 이에 아예 내가 초청 자체를 무산시키려하자, 마지못해 의제에서 배제한 곡절도 있다. 아무튼 나의 준비와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 정상회담 예정일인 10월15일이 되었다.

오전 9시 30분이 되자 하바로브 국제공항에는 무라야마를 태운 민항기 한 대가 착륙을 한다. 이에 신 선우 총리가 이를 영접하고 함께 의장대를 사열한 후, 둘은 곧장 방탄 차량에 올라 잠시 정부종합청사에 들러 환담을 나누곤 작별을 고한다.

10시 10분 정부청사를 떠난 무라야마 일행은 삼엄한 경호 속에 추미칸 행 4차선 고속도로에 올라, 1시간여를 달린 끝에 마침내 정상 회담 장소인 대원호텔에 도착한다. 현관에 미리 마중 나와 있던 내가 그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그를 인도해 36층에 있는 특별 룸으로 향한다.

가면서 둘이 환담을 나눈다.

"오면서 보니 고구려 공화국의 발전상을 가히 짐작할 만합니다. 또 이곳에 와보니 잠시도 시선을 돌리지 못할 정도로 얼음조각상과 등불이 어우러져 과히 별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아주 멋진 곳 이예요!"

무라야마의 칭찬에 내가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공무를 떠나 가끔 놀러 오시죠?"

"내가 수상을 관두면 가끔 이곳에 와 꼭 휴식을 취하고 가겠소."

"하하하...........! 좋습니다. 수상 각하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그 때도 이렇게 환대를 해줄 런지요?"

"열일을 젖혀놓고라도 수상 각하를 모셔야지요."

"고맙습니다."

둘이 이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엘리베이터가 36층에 멎는다. 나는 그를 창가로 안내하며 커튼을 젖혀 밖의 풍경을 보게 하며 말한다. 마침 그의 방문을 축하라도 하듯 찌푸렸던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하하하...........! 서설(瑞雪)입니다. 각하의 방문을 축하하는 듯합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그런데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얼음 성(氷城)과 어우러져 아주 몽환적인 분위기군요."

"칵테일 한 잔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건 또 무엇 있습니까? 다 나라나 개인이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요."

"그럼, 그럽시다."

둘은 미리 준비된 핑크빛 각테일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신다. 그러면서도 대화는 이어진다.

"왜 그렇게 각하를 뵙기가 어렵습니까?"

"사할린 섬을 자꾸 의제에 올리려 하니 그렇지요."

"정녕 반환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각하!"

내가 구실을 만들어준 셈이지만 나는 짐짓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내가 대마도가 옛날에는 조선 땅이었다고 대한민국에 돌려주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당치 않은 소리!"

표정이 굳어지며 크게 소리를 내지르는 무라야마다.

"저도 각하와 똑같은 답변이 나갈 것은 불 보듯 환한 일을 굳이 입에 올려 무슨 득 됨이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두 나라 사이에 이 현안만은 하루아침에, 아니 어느 누가 정권을 잡아도 쉽게 해결될 현안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런대로 묻어두고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우호선린 관계로 나가는 지름길이라고 봅니다. 각하 그렇게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는 저도 전적으로 동감하고, 그랬기에 제가 이곳에 온 것 아닙니까?"

"좋습니다. 나는 가끔 비행기를 탈 때나, 이렇게 높은 곳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참으로 인간 자체가 하잘 것 없어 보입니다.

마치 개미같이 작은 군상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다투는 것을 보면, 참으로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 백년, 천년을 사는 것도 아닌데, 너무 근시안으로 앞만 보고, 눈앞의 이익과 일에 메몰 되어 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허망하기도 합니다.

각하는 그런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나라고 왜 그런 생각을 안 해봤습니까? 우선은 내가 맡은 직책이 있으니 충실할 뿐이죠."

"아주 교과서적인 답변이십니다만, 아이고......... 노 정객을 모시고......... 다리 아프시겠습니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고맙습니다!"

나의 권유에 그가 창가에 마련된 좌석에 앉는다. 그러나 긴장을 했는지 상체를 꼿꼿이 세운 채 잠시도 방심한 태도가 아니다. 아무튼 다시 나의 발언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이라! 달팽이 뿔 위의 싸움 같은 하찮은 다툼은 서로 지양하고, 호혜평등의 원칙 속에서 앞으로 두 나라의 발전과 인류공영을 위해서, 서로 노력해 갑시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할린 가스와 석유를 금번에 저희 일본에 공급해주시는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주시니 오히려 제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죠."

"하하하.........! 그런가요? 그렇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우리 입장에서도 사할린 가스를 확보함으로써, 일관되게 중동에 편향된 에너지를 분산해서 좋고, 또한 저가의 운송비로 인해 가격마저 저렴하니 반가워해야 할 일이죠."

"하하하..........! 그러고 보니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이 많은데, 작은 다툼은 지양하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사양화되어 가는 일본의 경공업이라든가 전통산업을 이번 기회에 일본에서도, 새로 조성되는 청진자치시의 공업단지와 고구려공화국 내로 많이 옮기고 투자를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그것은 아마 각하께서 너무 걱정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간 두 나라가 국교를 수립하고 우호관계를 맺었으나 정상 간의 방문이 한 번도 없었던 까닭에, 의구심으로 투자를 미루었던 기업들이, 금번 본인의 방문을 기화로 아마 대대적인 투자와 이전에 나설 것입니다.

저는 일본이 이러다가 공동이 되지 않을까 오히려 그것이 더 걱정입니다."

"설마요?"

"아니, 정말입니다!"

정색을 하는 무라야마를 보며 나는 웃으며 말한다.

"저렴한 공장용지와 10%의 부가세는 매력이 넘칠 것입니다.

거기다가 사회간접자본도 충실히 갖추어 놓았으니, 어느 기업이라도 사업하는데 큰 애로사항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양국이 체결하는 투자보정협정과 이중과세방지협정은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일본 기업을 너무 빼내가지는 마십시오."

"하하하..........! 오히려 저는 일본 정부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규제할까봐 걱정인데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저임금을 찾아서 공장과 사업체가 이전되는 것은 순리인데, 이를 법으로 막아서 될 일이 아니죠."

"각하의 상식(常識)에 경의를 표하면서 이번을 기회로 고부가가치사업에도 양국이 손을 잡고 공동 진출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떤...............?"

"예를 들면 우주항공분야라든지 고속철 또는 원자력발전 사업 등 양국이 협력할 분야가 무궁무진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우리가 감히 청하지는 못해도 원하던 바올시다. 미국 유수의 방산업체에다 구소련 거기에 세계적인 두뇌들을 총집결시켜 놨으니.......... 세계가 지금 두려운 눈으로 귀국을 지켜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협력이라니요! 저는 쌍수가 아니라, 두 손, 두 발 다들 고라도, 환영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하하하...........!"

나의 속셈도 모르고 아주 좋아하는 무라야마다. 일찍이 나와 클린턴이 밀약을 맺은 바가 있다.

우선의 주 타킷은 중국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일본을 회유 아니 슬쩍 소매를 잡아끌어 우리 편으로 만드는 작업 중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각하!"

"당장이라도 협정을 체결합시다."

서두르는 무라야마를 향해 손을 저어 만류한 내가 말을 잇는다.

"우리 두 정상 간에 합의를 했으니, 이는 실무선에서 정리하기로 하고, 나머지 더 한 것도 한 번 내밀히 의논해봅시다. 모든 것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각하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 두 나라가 진정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적극 환영합니다! 각하!"

갑자기 내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절을 하다시피 하는 무라야마다. 나는 이를 비릿하게 웃으며 그의 절을 받는다.

일의대수(一衣帶水)란 중국 고사에서 비롯됐다. 이 말의 뜻은 '옷을 묶는 띠처럼 폭이 좁은 강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거리가 아주 가깝다'는 의미로 흔히 사용되는데, 여기서 진정한 내 말의 뜻 즉 군사교류까지 가능하다는 것을, 무라야마는 간파하고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 작품 후기 ============================비가 하루 종일 은근히 오는 군요.

오늘 같은 날은 얼큰한 안주에 소주 생각이 절로 나더이다.

감사하고요!

^^ 오늘도 작가를 3종 세트로 격려해주시면 더할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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