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17화 (117/135)

< -- 고구려 공화국 -- >

내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가급적 언급이 없기를 희망했던 화제가 드디어 김 대통령의 입에서 떨어진다.

"정말 영변의 소형 원자로 하나가 그렇게 위협이 되는 것입니까? 각하!"

'참으로 우문(愚問)이다.

이러니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나중에 바가지를 옴팡 쓰지.'이것은 내심의 내 생각이고, 일국의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어 내가 점잖게 말한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듯이, 저들이 핵을 개발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문제가 심각하죠. 그래서 제가 클린턴과 긴급 회동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 사안 때문이기도 합니다.

"커 흠...........!"

헛기침과 함께 머쓱해진 그가 한동안 입을 닫고 있다가 다시 말을 한다.

"우리의 입장이야 나보다도 각하가 잘 알고 있으니 미국 조야에 잘 전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내가 그의 입에서 또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일부러 시계를 보며 말한다.

"각하!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못 다한 이야기는 제가 미국을 방문한 후에 전화상으로 나누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회동을 끝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야 좀 더 유익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벌써 예정시간보다도 10분이 지났으니, 바쁘신 각하의 시간을 더 빼앗을 수는 없군요."

말을 끝낸 그가 먼저 일어나자 나도 덩달아 일어나 그의 뒤를 따른다. 정상회담이 끝나자 우리는 바로 오찬장으로 향해 나는 정말 칼국수 두 그릇을 거뜬히 비우고 간만에 포만감으로 배를 두드린다.

이어 김 대통령의 작별 인사를 받은 나는 곧장 한남동 자택으로 가, 장인 장모님께 모처럼만에 인사를 드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안온한 휴식을 취한다. 다음 날 나는 청주로 내려가 부모님과 동생들을 만나고, 거기서 하룻밤을 묵은 후 상경해 곧장 그룹의 총회장실로 출근하다.

이제는 부분 별로 회장제가 도입되어, 그룹 내에 회장이 상당히 많으므로 나는 총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으나, 직원들은 대부분 나를 '왕회장'이라 부른다. 그곳에서 나는 기다리고 있던 부분별 사업장 회장들에게 간단하게 브리핑을 받는다. 그리고 나는 격려 차원에서 그들에게 금일봉을 전달하고 오찬을 함께 하는 것으로, 바로 퇴근을 한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전용기에 올라 나는 제주도로 향한다.

이때는 제주도에도 '대원호텔'이라는 5성급 호텔이 있어, 나는 이곳에 들른 후 두문불출하며 하루를 보낸다. 바로 이어 예정된 클린턴과의 정상회담 대책과 고구려 공화국의 진로 그리고 대원그룹의 장래를 놓고 간만에 긴 사색에 잠긴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나는 찬물로 샤워를 해, 빠른 시간 안에 세포 하나, 하나를 일깨운 다음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곧 배달된 신문을 펼쳐들고 읽는데, 중간쯤의 전면광고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국의 젊은이여! 그대의 힘으로 우리의 고토를 개발해 보지 않겠는가!]하는 문구와 함께 사원모집 광고가 났는데, 모집하는 회사를 보니 대원실업이다. 나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린다.

'최 병열 사장이 아주 열심히 하고 있군!'

그런데 갑자기 누가 급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화장을 하고 있는 와이프를 힐긋 보고는 문을 열어준다.

딱 보니 고구려 공화국에 남겨두고 온 정보부장 이 주찬이다. 전의 안기부 차장 출신으로 우리그룹에서 1기획 실장이었던 사람이다.

그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토해낸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미국의 클린턴이 하와이와 괌에 있는 미군을 일본으로 전개하는 것은 물론, 본토의 미군병력과 함께 항공모함을 비롯한 최신예 전투기들까지 아시아로 향하고 있습니다."

"무슨 소리야? 우리에게 사전 통보는 있었소? 도대체 어디를 공격하겠다고 그 난리를 피우는 거야?"

나의 연이은 질문에 오히려 침착해진 그가 차분하게 답변을 한다.

"위성사진을 분석해 본 결과 궁극으로는 북한의 영변 핵 원자로를 폭격할 심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무력을 동원해요?"

"반발할 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심산이겠죠."

"허허..........! 이것 참 기가 차지도 않군. 저희들이야 불꽃놀이 하듯 미사일이나 쏘고 폭격을 해대면 북한의 미사일은 어디로 향하겠소. 사정거리가 크게 미치지 못하니 남한을 상대로 불장난을 하지 않겠소?"

"그렇습니다. 한국정부의 움직임을 보면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함은 물론 전혀 이를 인지하지도 못하고 있는 듯 조용합니다."

"허허...........! 큰일은 큰일이로군!"

"그래서 제가 공군1호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잘 하셨소!"

사실 이번 순방을 가급적 언론의 조명을 덜 받기 위해 나는 내 민용 기를 타고 왔는데,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정식 고구려 공화국의 통령 전용기인 공군1호기를 가지고 왔다는 소리다. 전쟁을 지휘하려면 모든 보안통신시설과 미사일 요격시스템 까지 갖추어진 공군1호기가 적격이기 때문에, 정부부장이 긴급사태에 대비해 이 비행기를 제주공항으로 가지고 왔다는 말이다.

핵 가방은 물론 항상 내 곁에 있다. 러시아어로 '오페라토르(operator)'라고 불리는 2명의 특수요원이 핵 가방을 들고 항상 그림자처럼 나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공화국에 핵 가방은 모두 세 개가 있다. 통령인 내가 하나를 갖고 있고, 하나는 국방장관이, 하나는 비상용으로 총참모부에 한 개를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통령이지만, 통령은 국방장관, 총참모장이 모두 동의해야 핵 발사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미국이 북의 영변 핵 원자로를 폭격하고, 이에 북한이 반발한다면 미군이 개입된 남한과 전면전이 벌어지기 직전 까지 일이 진행된 경위를 보면 이렇다. 북한은 1986년 일 년에 약 6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5MW의 소형 핵 원자로를 영변에서 가동하기 시작한다. 또한 플루토늄을 탄두에 장착할 수 있는 물질로 전환하기 전에 필요한 단계인 고폭 실험과, 플루토늄 분리를 위한 공장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정찰위성에 포착된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는 북한에 핵사찰을 받으라고 요구한다. 결국 서방의 압력에 굴복한 김일성이 1992년에 핵사찰을 받는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핵사찰 결과는, 북한이 은밀하게 플루토늄을 얼마나 생산했는지에 대한 의문만을 증폭시킨 결과가 된다.

이에 다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는 북한에 대해 은밀하게 추출한 플루토늄을 폐기하고, 영변의 핵 원자로 가동의 중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김일성이 강력 반발하여, 안보리 결의만 하여도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유야무야 지속되다가 클린턴의 임기가 1년을 지나고 시리아 사태가 진정되자, 그는 다시 북핵에 눈을 돌려 지금과 같은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예정시간에 맞추어 공군1호기를 타고 태평양 상공을 횡단한다.

당연히 미국의 대통령 빌 클린턴과 회담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워싱턴 내셔널공항에 도착하니, 크리스토퍼 국무장관과 레이크 안보보좌관이 나를 마중 나와 있다.

굳게 악수를 나눈 셋은 곧장 알링턴 국립묘지로 향해 헌화분양을 한다. 비공식 비밀 회담이므로, 공식행사는 당연히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의전행사 없이 알링턴으로 향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토퍼와 레이크는 나에게 영변 핵 원자로를 공격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내 대답 왈

'그렇게 해서라도 이번에는 북한의 핵 위기를 완전히 해소해야지요.'

다.

나의 대답에 강경파인 둘은 아주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알링턴에서 헌화분양을 끝낸 나는 일정대로 시차적응을 위해 곧장 이들이 제공한 영빈관에서 여장을 푼다.

이 과정에서 정보부장 이 주찬과 통령 비서실장 정 운수는 물론 경제 수석인 김 재익까지 한시라도 빨리 클린턴을 만나, 이 위기를 해소하길 바라는 진언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급할수록 돌아간다고, 내가 클린턴을 예정시간 보다 빨리 접촉하길 원하면 저들의 페이스에 끌려들어갈 것 같아, 나는 예정대로 시차적응을 한다는 명목으로 저들의 영빈관에서 느긋하게 여장을 풀고 쉬고 있다. 워싱턴과 한국은 원래 14시간 시차가 난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썸머타임제를 실시하는 기간이라 13시간의 시차가 난다.

이들의 시간으로 낮 12시는 곧 한국시각으로 새벽 1시라는 이야기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취침에 들었어야할 나이다. 그러기에 원래 예정이, 나를 배려해 다음날 10시 까지는 공식일정을 잡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여장을 풀고 잠시 쉬고 있는데, 예정에 없던 엘 고어 부통령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나는 희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와 대좌한다. 그가 하는 말 왈 '북핵 사태는 이런 강경 작전이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어 협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통력 각하도 동의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나는

'그렇다!'

라고 답변한다. 졸지에 황희 정승이 된 나는 다음날 10시 정각에 예정대로 백악관을 찾는다.

빌 클린턴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며 나는 그의 집무실로 향한다. 클린턴의 주지사 시절부터 아칸소 주에 자동차 공장을 짓는 등의 인연으로 인해 친분이 두터운 둘이기에, 만남이 아주 자연스럽다.

각자 자리를 잡은 우리는 옛 추억 등의 이야기로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본격적인 대화로 진입한다.

"아시겠지만 나는 북한의 핵 원자로를 폭파하기 위해 5만 명의 추가병력과 함께 대규모 함정과 전투기들을 한국의 해상으로 급파했소. 이렇게 해서라도 이 위기를 빨리 해소하고 싶은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있다가 굳은 표정으로 묻는다.

"사전에 아국에 통보조차 없었다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그건 그렇고 그들이 반발을 하면 어떻게 됩니까?"

"미안하게 되었습니다만, 볼게 뭐 있습니까? 일전불사죠."

"남의 나라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결정하면 안 되죠.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남한 아닙니까?"

"그야........."

말을 얼버무리며 확실한 답변을 못하는 클린턴이다.

"협상으로 해결합시다."

"뭐요? 당신도 고어 부통령과 같은 의견이오?"

"그 사람의 의견은 내가 모르겠고, 잘 달래서 이 위기를 넘겨봅시다."

"달랜다고 그 놈이 들을 놈이요?"

"아무리 작은 나라지만 다 자존심은 있는 법입니다.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면 틀림없이 협상테이블에 앉아,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특사로는 누가 좋겠소? 고어는 카터를 추천하던데?"

"제가 직접 김일성을 설득하죠."

"하하하..........! 그래주시겠소? 내 통령 각하라면 믿을 수 있지요. 카터는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라, 내 고어의 안을 비토한 것이오."

"고맙습니다."

"그럼, 병력은 물려야겠소이다?"

"아닙니다. 양수겸장이라고, 한손에는 당근을 한 손에는 채찍을 드는 것이 협상 전략상 유리하지요."

"하하하...........! 이래서 내가 통령 각하를 좋아하고 존경한단 말이지요. 전략 사고에 아주 능해요."

그의 칭찬에 빙긋이 웃고만 있는 내게 그가 다시 말한다.

"그런데.......... 요즘 통령 각하의 행보를 보면 너무 북방 국가와 긴밀하게 지내는 것 아니오?"

"요즘 아무리 해빙무드라지만 러시아가 언제 그 우람한 북극곰의 정체를 드러내 세계를 위협할지 모르고, 중국 또한 십여 년의 개방정책의 성공에 힘입어 부쩍 발언권을 높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그들을 제가 잘 달래서 지구촌이 한 가족처럼 오순도순 살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나의 이런 행보가 각하의 뜻에 결코 배치되지는 않는다고 보는데요. 어떻습니까?"

"각하의 말씀대로라면 더 이를 말이 없지만, 뭔가 찜찜합니다. 그들에게 최신 기종의 전투기를 판매하는 것도 그렇고."

"각하도 아시지만 절대 최신 기종은 아닙니다. 아시는 대로 이제 막 배치를 시작한 SU-35가 최신기종이지요."

"아무튼 너무 그들에게 좋은 무기를 많이 쥐어주진 마세요. 잘못하면 세계가 혼란스러우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각하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만.........?"

"말씀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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