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구려 공화국 -- >
나와 패트릭 크론은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결국 23억5천만 달러에 알톰스의 지분 51%를 대원그룹에서 인수하기로 최종합의하고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이로써 우리 그룹은 철도 운송부분은 물론 발전설비 부분의 전 분야를 소유하게 되었지만, 조기에 이 회사를 나는 안정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해, 여전히 알스톰을 맡게 될 패트릭 크론에게 몇 가지 강력한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첫째 불요불급한 분야를 제외한 부분의 매각지시다.
이로 인해 알톰스는 해양조선 부분을 노르웨이의 기업 아커야즈에게 매각을 단행한다. 또 우리와 중복되는 원자력발전분야는 아레바에 매각하였고, 가스터빈 부분도 일부를 매각하였다.
둘째 불필요한 부분의 철수와 함께 인원구조 조정을 지시한 것이다.
이로 인해 알톰스사는 70여 개국에 진출해 있는 76,000명의 종업원을 대폭 줄여, 54개국 48,000명으로 감원하였다. 이에 반해 대폭 보강된 곳도 있는데 TGV연구 부분으로, 1981년 380 km/h를 달성한 이래, 1990년에는 515.3 km/h로 세계 철도 속도 신기록을 갱신한다. 또 2001년에는 칼레에서 마르세이유까지 1067.2km를 3시간 29분 동안 달려 가장 오랫동안 정차하지 않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고, 2007년 4월에는 TGV 속도 574.8 km/h 기록을 달성하여, 또 한 번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 외에 나는 뉴욕에 체류하는 동안 두 건의 안을 더 처리한다. 하나는 우리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 사하공화국의 차얀다 가스 및 원유개발권을 세계 유수의 에너지기업 엑슨 모빌에 지분 49%를 매각한 것이다.
장차 돈이 될 개발권을 매각하는 것이 아깝기는 했지만 나는 정치적 요소를 고려해 계속 조르던 엑슨 모빌에 반의 지분을 양도한 것이다. 우리의 예상을 밑도는 거대기업의 참여에 우리 기업의 힘으로 해결 곤란 사유 시, 미국 정부의 개입을 유도하기 위해 마지못해 판 것이다.
또 한 건은 록히드사가 지속적으로 민항기를 개발하는데 애로사항이 되는 엔진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결국 파산하는 영국의 롤스로이스사의 항공 및 선박 엔진제조 부분만 별도로 떼어내, 나의 매각대금 일부로 인수케 한 것이다. 나의 강력한 주장에 마지못해 록히드사가 인수했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참으로 잘한 결정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이후 파리에서 개최한 유럽 투자설명회, 일본 동경에서 개최한 아시아 투자설명회에서 큰 건은 비록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경공업 분야에서는 100여 건 이상의 투자 실적을 올렸다. 이는 법인세 10%라는 유래가 없는 세율에, 공단조성비만 받는 공장용지의 원가분양, 거기에 현지의 저렴한 인건비를 감안한 투자유치였다.
비록 거대기업들이 고려자치주의 정치적 미래 불투명성으로 인해 투자를 꺼렸지만, 200여 개가 넘는 중소기업들의 투자로 인해 하바로브와 나홋카 배후도시로 조성될 공단 조성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근 이 개월 만에 귀국한 나는 기획실에서 그동안 타당성 검토를 끝낸 당진 및 블라디보스토크의 일관제철소 건설을 참조하여 최종 단안을 내린다.
각각 당진과 블라디보스토크에 연산 50만 톤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 파이넥스 공법이 불충분하므로 안전을 기하기 위해 나는 중간단계인 코렉스공법으로 제철소를 건설하도록 했다.
철이 환원용융로를 거치는 것은 파이넥스 공법과 마찬가지지만, 이는 가루가 아닌 괴의 형태이므로 우리가 최종 지향하는 바의 중간단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청와대로 향해 팬암의 인수를 설명하며, 한국에도 복수의 항공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끝에 그룹 내에 대원항공사를 출범시킨다. 이어 나는 등소평과 김일성과의 전화 통화로 중국의 동북3성의 풍부한 노동력과,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을 고려자치주에 동원할 수 있게 된다.
빠른 것이 세월이다.
그동안 10년 세월이 살 같이 흘러, 1994년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그룹에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가장 큰 변화는 뭐니 뭐니 해도 고려자치주가 1991년에 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고려자치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그 실적을 고르바초프로부터 인정받아 모스크바 심장부에 진입한 보리스 엘친은, 1990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 소비에트 의장이 되었고, 다음 해 6월에 시행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에서 57%라는 지지율로 고르바초프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엘친은 그 해 8월에 보수파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저지하였으며, 12월에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지도자와 만나 소비에트 연방의 공식해체와 독립국가연합의 결성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나 또한 보리스 엘친을 설득하여 고려자치주가 '고구려공화국'으로 탄생하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는 또 사실상 소련연방으로서는 관리가 어려운 사할린도 고구려공화국 영토 내에 포함시켜 일본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또 소련연방으로서는 경제난으로 관리가 어려운 기존 시베리아 및 태평양상에 전개된 모든 군사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고구려공화국의 안전을 도모했으며, 또한 러시아공화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 유사시 긴밀히 도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대륙간탄도탄을 발사할 수 있는 핵잠수함이,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는 최신예기인 SU-27 100여 기가 실전 배치되어 있고, 육군은 35군단 아래 3개 사단이 기동화 되어있다. 더욱 특기할 만한 사항은 구소련의 경제난으로 탈주하는 핵과학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학자 2,000여 명을 엘친의 협조아래 고구려공화국이 수용한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콤소몰스크에 건설한 지하5층 지상 7층의 대규모 연구실에 수용함은 물론 34평의 최신 맨션을 제공하여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조처했고, 월급도 소련에서 받던 두 배인 월 340만 원씩을 지급하고 있다. 나는 장차 이들이 우리 그룹의 진로에 중대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그룹차원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주도록 요청한 상태고, 실제로 그렇게 대우를 하고 있기도 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게 한국은 중국은 물론 소련과 동구권과 이미 모두 수교를 한 상태고, 나 또한 고구려공화국의 실세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그동안 고구려공화국도 괄목상대할 변화를 이루어 인구가 1,500만 명으로 늘었고, 세계의 많은 자본과 공장들을 유치한 상태다.
나의 직함은 통령(統領)으로서 명목상은 국가의 수반이지만 거의 국정에 관여를 않고 있다.
실제 국정은 총리인 신 선우와, 부 총리인 아이아코카가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총리인 아이아코카는 3년 전 항공과 자동차 회장에서 물러난 이래 고구려 공화국의 부총리로서 경제를 총괄하고 있다.
그 후임으로 항공은 부회장이었던 제임스 맥너니가 회장이 되었고, 자동차는 김선홍 사장을 회장으로 임명해 전 자동차부분을 총괄하도록 했다. 그리고 89년 레이건 정권에서 물러난 슐츠는 이후 우리 그룹의 고문으로 재직하며 음으로 양으로 다시 우리 기업을 돕고 있다. 5월북방은 이제부터가 봄이다.
나는 모처럼 휴일을 맞이하여 따사로운 햇빛을 받으며 검은 흙을 밟고 있다. 내 나이 어언 38살로 이제 한창 원기 있게 사업에 전념할 나이이나 너무 이른 나이에 사업 전선에 뛰어드는 바람에, 온갖 풍상을 다 겪어 하는 짓은 40대의 중년보다도 더욱 노련하고 원숙하다.
내 곁에는 나와 동갑내기로 완연히 중년 티가 나는 아줌마 정희와 올해 일곱 살 난 딸이 따르고 있다. 물론 정희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우리는 정식으로 결혼을 했고, 79년에 태어난 원전이는 올해 벌써 14살로 한국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아무튼 딸 이름은 '나래'다 강 나래. 이제 막 파종이 끝낸 봄밀의 드넓은 경작지를 바라보면서 나는 잠시 가족들의 생각에 잠긴다. 할아버지는 그러니까 원생보다는 10년을 더 사시다가 86년에 77세를 일기로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92년에 82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전히 청주에 사시고 계시고, 내 바로 밑의 여동생은 공무원에게 시집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그 밑으로 남동생이 그래도 사업적 재능이 있어 지금은 대원알미늄을 맡아 꾸리고 있고, 막내는 사업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해서 경찰 계통에 근무하고 있다.
참으로 소박한 우리 집안이다. 다른 재벌 집안 같으면 사돈의 팔촌까지도, 하다못해 그룹의 납품권을 따내 하청회사라도 하나 꾸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자기네 적성대로 잘 살고 있으니 되었다.
애초부터 내가 하청이니 뭐니 해서 어린 나이 때부터 꿈도 꾸지 말라고 했으니 제 갈 길을 찾아서 갔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박정한 사람이지만 나는 행복은 결코 많은 물질의 소유에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누구 하나 배곯고 살지 않으면 되었지 더 이상 뭔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 외에도 라니아에게도 여섯 살 난 딸아이를 하나 두고 있고, 윤희에게도 5살 난 딸아이를 하나 두고 있으니 나는 딸부자이기도 하다. 둘 또한 나와 함께 하바로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때로 서울을 오가기도 하고, 라니아는 가끔 자신의 고향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 외에 장인 장모님은 아직도 한남동 우리 집에서 사시고 계시다. 아무튼 나는 가족 생각에서 깨어나 얌전하게 제 어미의 손을 잡고 따르고 있는 아지에게 묻는다.
"나래야! 모처럼 밖으로 놀러 나오니 어떠니?"
"엄마 아빠와 놀러 나온 것은 좋은데, 이런 흙바닥은 싫어."
"왜?"
"신발이 더러워지니까, 엄마한테 혼나!"
"그래? 아빠가 미처 그런 생각은 못했는걸. 오빠하고 할머니 보고 싶지?"
"네, 어서 빨리 한국에 갔으면 좋겠어요."
"얼마 안 있으면 갈 텐데 뭘 그러니."
옆에서 정희가 끼어든다.
"그래도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놈 참.........!"
나는 예쁜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흐뭇한 웃음을 머금고 있다. 아니래도 나는 내일이면 몽골을 시작으로 장기 외유를 떠난다.
몽고에서 2박3일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고, 다음은 중국의 장쩌민 주석과 3박4일, 다음은 한국에서 김영삼 대통령과 3박4일, 다음은 미국의 빌 클린턴과 4박5일의 공식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주변이웃들과 선린 관계를 다지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일본만은 안 간다.
그들이 수차례 나를 초청했지만 꼭 정상회담의 의제로 사할린 문제가 언급되므로 내가 좋은 말로 누차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날 나는 하바로브에서 내 전용 비행기를 타고 바로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직항한다.
두 도시는 대원항공에서 취항하는 정기 직항노선이 개설되어 있어 하루에도 두 번씩 운항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120여 국에 정규 비정규 노선을 운행하고 있는 대원 아메리카항공의 왕회장인 내가 전용비행기 없이 일반 여객기를 이용할 리는 만무고, 나는 L-1001의 개량형인 L-1010번 점보제트기를 타고 수행원과 함께 울란바토르 직항해 공항에 내린다. 공항에는 이미 현 몽골의 대통령인 바가반디가 각부 장관들을 이끌고 환영 나와 있다.
"어서 오시오! 형제여!"
그의 따뜻한 환영에 나 또한 같이 포옹하며 화답한다.
"반갑습니다.
대통령 각하! 이렇게 따뜻하게 영접을 해주시니 영광입니다."
"하하하.........! 겸손하시기는......... 새롭게 동양의 패자로 떠오르는 통령 각하를 뵐 수 있어 제가 더 영광입니다. 하하하..........!"
"각하의 영도로 몽골이 더욱 발전하리라 믿고 있고, 저 또한 기대가 큽니다."
나의 립 서비스에 입이 귀에 걸린 바가반디가 자신의 전용차를 가르키며 말한다.
"어서 오르시지요. 함께 타고 궁에 가서 못 다한 이야기는 하시고요."
"네!"
나는 짧게 대답하고 그의 안내로 뒷좌석에 오르고 그 또한 내 옆자리에 앉는다. 우리를 태운 차량이 곧 양 국기가 나란히 내걸린 포도 위를 질주하고, 나는 그와 사소한 주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통령 각하께서 고구려 공화국에 기 진출해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로써는 몽골공화국이 둘도 없는 이웃인 동시에 형제국가로 생각하기에 더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지요."
"하하하..........! 하여튼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이런 가운데 우리는 정상회담이 예정된 대통령궁에 도착한다. ============================ 작품 후기 ============================이번 주도 즐겁고 유쾌한 한 주 되세요!
^^3종 셋트로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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