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11화 (111/135)

< -- 세계적인 기업들을 사냥하다 -- >

"하하하..........! 오랜 간만이오. 강 회장! 한동안 격조했습니다."

"동감입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생각해도 딱딱한 어투로 전 통의 전화를 받는 나다.

"하하하.........! 우리 사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를 하는 사이요?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냥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읍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 싶고요."

"알겠습니다. 바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가까운 시간이라 나는 서둘러 사옥을 빠져나간다.

1시간 후 나는 청와대 식당에 도착해 전 통과 마주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옛날 같으면 긴장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이제는 관록도 붙었고, 전 통도 그렇게 무섭게 다가오지 않는지라, 식사하는 내 모습이 한결 여유가 있다.

전 통도 그것을 느꼈는지 대번에 그것을 지적한다.

"하하하.........! 이제는 나이도 들고 관록도 붙어서인지 저절로 회장의 위엄이 나타나는 군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아직도 내심은 긴장하고 있습니다.

공연히 기분 나쁘게 할 필요는 없어, 내가 말을 지어낸다.

"그래요? 그런데 강 회장, 무슨 섭섭한 일이 있었던 게요? 전 같았으면 고려자치주 건 같이 큰 사업거리라면 즉각 나와 대면하고 상의도 좀 했을 텐데.......... 본인이 먼저 전화를 해야 만날 수 있으니, 왜 그래요?"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몰라도 내가 판단하기로는 전자다. 그래서 나는 말을 빙 돌려서 이를 표현하며, 내 입장을 밝힌다.

"전에 비서실장에게 일관제철소 건으로 각하를 한 번 뵙고자 했으나 거절당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비서실장이 각하가 너무 바쁘니 그랬으리라고 이해는 합니다만, 사실은 좀 서운했거든요. 그래서 저는 한국은 포기하고 시베리아에다 제철소를 건설할까, 합니다만.........?"

"어허, 그러면 안 되지요. 국부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도 유출되는 것이지만, 슐츠 국무장관의 전화도 있고 해서 내 생각을 돌려먹었으니, 국내에다 지으세요. 국내에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언제 슐츠가 전 통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다.

이는 슐츠가 그만큼 바빠서 짬을 못내 한국 방문이 늦어진다는 소리다.

"사실 말이 나와 이 말을 합니다만, 미국만 해도 팬암 항공이 혼자 너무 비대해지니까 항공 산업도 자유경쟁 체제를 도입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고도 미국 같은 경우는 독과점이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법원의 명령으로 한 회사를 몇 개로 쪼개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우리나라의 철강 산업도 자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즉부터 경쟁체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고 봅니다."

"본인 생각도 그래요. 그래서 내 허가를 내준다하지 안읍디까? 그래 이제 오해는 풀고 소련에 갔던 이야기는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시오. 뭐, 언론에 떠들기로는 마치 고구려나 발해의 잃어버린 옛 땅이라도 되찾은 양 떠들기는 합디다만...........?"

나는 손사래부터 치며 말을 시작한다.

"그게 그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세 주를 합해 고려자치주라는 이름으로 경제특구로 지정받고, 개발권을 보장받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허, 내 생각은 그게 아닌데? 자치주 위원장 임명권도 있고 조세권과 치안권까지 확보했으면 그게 나라지, 어디 경제특구요? 물론 외교 국방이야 우리나라가 아직 힘이 없어 그들의 힘을 빌린다지만 말이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단지 저희들의 개발의 편의를 위해서 저들이 그렇게 인정해준 것에 지나지 않으니, 너무 언론이나 정부에서 앞서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확대 보도되어 괜히 저들의 귀에라도 들어갈라치면, 저들 민족주의자들에게 빌미를 주고 잘못하면 우리 그룹에 큰 피해가 옵니다.

제가 이번 여행에서도 절실히 느꼈습니다만..........."

여기서 나는 잠시 말을 끊고 쉬었다가, 전 통을 직시하며 점점 말의 열도를 더 해간다.

"하바로브의 영광의 광장이라는 곳에 가면, 그 옆에 '영원의 불'이라 해서 연중 24시간 내내, 2차 대전에서 전사한 병사의 명단이 적혀있는 동판과 위령비를 가스불이 따뜻하게 비추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혹한이고 어려워도 이곳의 가스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들은 비록 죽었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는, 국민에게 자긍심을 고취하는 민족주의의 변형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하바로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있고, 아무튼 소련 전 지역에 이런 곳이 무수히 많습니다. 이 점을 각하께서도 상기하시고, 가급적 언론과 정부에서도 우리 일을 작게 보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허허, 그럴 수도 있겠구료. 내 견해가 짧아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소. 앞으로는 좀 더 언론과 정부를 통제해서, 당신 사업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기꺼이 협조하리다."

"감사합니다. 각하!"

"그것 가지고, 뭘.......... 그런데 그곳을 개발하자면 무수한 자본은 물론 정부의 도움도 필요할 것 아니겠소? 정부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내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라할 테니, 어디 말만 해보시오,"

"아직은 크게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각하께 꼭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어려워말고 언제든지 말만하시오. 우리가 잃어버렸던 그 옛 땅이 다시 우리의 영토나 진배없이 된 것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바탕 춤이라도 추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오. 그러니 내 강 회장을 예쁘게 안 보려 해도 안 볼 수가 없소. 그간 너무 고생 많았고, 아무튼 수고했소. 이참에 내 당부 한마디 한다면, 강 회장! 꼭 그곳을 잘 개발해서 우리의 영토가 되도록 해주시오!"

"꼭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이 강 회장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먼 곳을 바라보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전 통을 보는 내 심정은 솔직히 착잡했다.84년 4월 초.

우리는 한 달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미국서부터 고려자치주의 투자유치를 위한 설명회를 갖기로 하고, 나는 이들의 경제수도라 할 수 있는 뉴욕에 와있다.

뉴욕에서도 가장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맨하튼의 팬암 빌딩에서 우리 유치단은 분주히 손님들을 맞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도 참석한 슐츠가 음으로 양으로 손을 쓰고, 거기에다가 요즘 언론에서 대통령감이라고 추켜세우는 아이아코카까지 발 벗고 나서는 바람에, 많은 미국 유수의 기업 오너들이 이곳 팬암 빌딩 현장을 찾고 있다.

심지어 유럽이나 일본에서도 그룹 회장들도 있다. 대충 꼽아보아도 이렇다.

우리의 지분을 갖고 있는 벡텔 회장, IBM 회장, GE그룹 회장, 텍스트론 시스템스 회장, RCA전자 회장, 그리고 그의 자회사인 NBC에서도 취재차 나왔다. 이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애플컴퓨터 사장, 보잉 회장, 펜암 회장, 시티뱅크 회장, 엑슨 모빌 회장, 프랑스의 테그닙 회장, 알스톰 회장, 일본의 도시바 회장 등 그 면면들이 하나 같이 유명 인사들이다.

그 외에 크고 작은 기업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와 거론할 수조차 없다. 내가 유명한 그룹 회장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친교를 다지고 있는데, 슐츠가 다가오더니 낮은 소리로 말한다.

"팬암 회장이 강 회장을 한 번 봤으면 하는데, 잠시 짬을 낼 수 있습니까?"

내가 흘깃 시간을 보니 10분 후에는, 투자설명회의 프라이머리 연설을 내가 하게 예정이 되어있어 난처한 표정을 짓자 슐츠가 말한다.

"급한 용건인 모양인데 그룹의 부회장에게 맡기고 잠시 짬을 내주지 그러시오?"

"제 연설 후에 만나면 안 되겠습니까?"

"그 후에도 계속 다른 그룹의 회장들과 미팅이 잡혀있지를 않소? 그러니 내 말대로 하시오. 아마 팬암의 지분을 인수할 의사가 없느냐고 타진할 모양입디다."

그 말에 내 귀가 번쩍 뜨인다.

항공 산업에 진출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안 되어 미루고 있었는데, 그런 건이라면 신 선우 자치부위원장에게 일임하고 만나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슐츠에게 말한다.

"신 부위원장에게 투자설명회를 주최하라 이르고 시간을 내보기로 하죠."

"잘 생각하셨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좋은 기회가 될 거요."

"알겠습니다."

나는 곧 옆에 수행하고 있는 비서관 하나를 보내 분주히 손님을 맞고 있는 신 부회장에게 내 말을 전하도록 한다. 그리고 나는 슐츠와 함께 이 건물의 주인인 팬암 회장을 만나러 45층에 있는 회장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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