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09화 (109/135)

< -- 고려 자치주 -- >

우리는 빅토르의 초대로 때 이른 만찬장으로 간다. 우리 일행이 올 것을 알고 미리 저녁 준비를 해 놓은 것이다.

명태 찜과 동해 바다에서 나오는 각종 해산물 그리고 이곳에서 농사지은 쌀로 지었다는 밥도 우리 입맛에 딱 맞아 모두 폭식을 했다. 크게 잘 차린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성의가 고마웠다.

나는 그에게 답례로 인사동에서 사온 산수화가 그려진 족자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우리 일행은 예약한 호텔로 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 이튿날.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호텔로 찾아온 알렉세이 빅토르 당 서기다.

아침 일찍 웬일이냐고 내가 물으니, 꼭 보여줄 곳이 있으니 기어코 가잔다. 일면 귀찮기도 했지만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우리에게 뭔가를 꼭 보여주겠다는, 그 성의와 열의에 나는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

미처 준비가 안 된 일행을 급히 서두르게 해, 그와 함께 호텔을 나선다. 그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포장과 비포장도로를 번갈아 가면서 600㎞를 온종일 차를 타고 달린다. 그리고 그가 보여 주려한 첫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홋카 북쪽의 '달네고르스크'라는 소도시다. 인구 3만 명 수준의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인데, 제법 큰 공장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달 폴리메탈사(Dal Polymetal)라는 곳으로 납, 아연과 은을 생산하는 광산회사다. 또 다른 하나는 보르사(Bor)라는 회사로, 붕소를 채굴하고 붕산염을 생산하고 있었다. 달 폴리메탈사는 114년, 보르사는 6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적절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공장전경은 아직도 러시아 초기사회주의 시절 오래된 건물 그대로다.

이런 이들 두 개 회사가 달네고르스크 주민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정체된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경영자들 모두가 한국과 협력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천연자원 가공공장 뿐만 아니라 지분참여를 통한 합작도 가능하다고 입을 모으는 것이다. 다음날 들른 곳은 인구 6,000명 규모의 플라스툰이다.

이곳에는 제재업을 하는 테르네이레스사가 있다. 종업원 수가 3,200명이 넘으니 가히 한회사가 전체 마을을 부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소 침울했던 달네고르스크와는 달리 이 마을에는 활기가 돌았다. 바로 외국기업으로 부터의 투자유치가 있었다는 사실이 그 이유였다.

플라스툰의 테르네이레스 사는 일본기업과 합작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현대화된 공장건물 뿐만 아니라 공정이 대부분 자동화돼, 제재소, 합판, 하드우드와 테크노우드 등의 생산 공정이 한곳에서 일관작업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일본 쓰미토모사가 전체 지분의 45%를 보유하고 있어 생산된 합판이나 테크노우드 등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발 빠른 일본기업은 연해주 깊숙이 숨어있는 원자재기업을 찾아내 현지여건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분참여와 공장 현대화 등의 과정을 거쳐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두 마을을 보여주면서 빅토르 당서기가 말한다.

"이 먼 곳까지 어렵게 회장님을 모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렵지만 그래도 두 회사로 인해 한 마을이 완전히 생계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보여드린 것이고, 또 하나는 모범사례라 할 수 있는 경우죠. 즉 우리 연해주가 잘 살기 위한 해법을 제시한 경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작은 기업들의 투자자 많아야 우리 연해주가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어렵게 강 회장님을 모신 것입니다. 물론 강 회장님 같은 대규모 투자를 하는 분들도 중요하지만, 이런 작은 기업들도 많이 유치해주셔서, 더 살기 좋은 연해주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썼습니다.

"좋아요. 우리 앞으로 같이 서로 노력해서 살기 좋은 연해주를 만들어 봅시다."

나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길을 장시간 탄 덕에 후덜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세우고, 그와 굳게 손을 잡고 흔든다. 그렇지만 나의 내심은 빅토르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의의가 있는 방문이었다.

"목재야 시베리아에 널린 게 삼림이라 베어서 가공만 하면 되지만, 붕소와 붕산염 같은 경우는 희귀해서 전 시베리아에서도 이곳 연해주만 나는 광물이다. 그런 것을 일본 기업들에게 목재 가공을 빼앗기듯 빼앗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또한 이런 희토류는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점점 더 하니, 하루라도 빨리 우리 기업이든, 우리나라 사람들이 와서 개발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저런 작은 기업들의 투자도 많아야 고려자치주의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은 당연한 노릇, 이에 대해서도 보다 강도 높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아무튼 이후 우리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홋카도 들려서 항구의 상태를 점검한다. 내 예상대로 훗날에 대비해서 많은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차적으로 항구 확장을 지시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방향을 모스크바 쪽인 서로 돌려 아무르 주로 향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르 주에 대해 대충 설명하면 이렇다. 1932년에 설치되었으며 아무르 강 중류지방과 그 지류인 제야 강 유역에 걸쳐 스타노보이 산맥 마루까지 뻗어 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지도상 중국의 동북쪽 가장 위로 솟구친 곳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을 시작으로 해서, 하바로브의 그 위쪽 가로로 길게 놓인 산맥인 스타노보이 정점까지가 이 주의 구역이다. 그리고 이곳 제야-부레야 평원의 비옥한 흑토 저지대에는 많은 부분이 경작되고 있으나 북쪽과 동쪽의 고지대는 거의 숲으로 덮여 있다. 주민은 대부분 러시아인 또는 우크라이나인이며, 16개 고유 종족 가운데 북쪽에 사는 야쿠트족과 에벤크족이 가장 큰 집단을 이루고 있다.

행정중심지는 블라고베시첸스크 이다. 저지대에서 곡물, 특히 봄밀이 재배되며, 콩, 해바라기, 아마 등도 주요 산업작물이다.

면적은 한반도의 1.7배 이고, 인구는 100만 명이 약간 넘는다. 세 주를 다 합하면 고려자치주의 면적은 한반도의 7배이고, 인구는 450만 명 남짓이다.

아무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이틀을 허비해 버린 우리는 일정이 촉박해서 주의 당 서기가 가보자고 하는, 제야 강에 건설 중인 제야 댐과 수력발전소의 전경은 가 볼 수가 없었다. 계획발전용량이 1,300㎿에 이르므로 1985년도에 가동을 시작할 경우, 부레야 댐과 수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을 능가함은 물론, 이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하면 당분간 아무르 주와 연해주는, 전력 걱정 없이 사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는 말에 나의 기분이 좋아진다.

발전소 대신 나는 1980년대 초부터 건설 중에 있는 바이칼-아무르(Baikal-Amur Magistral/BAM) 철도를 방문한다. 시베리아횡단철도에서 북쪽으로 스코보로디노 역에서 분기해 북쪽 지대를 관통해 콤소몰스크로 이어지는 철도다.

나는 이것이 완전히 놓여지면 우리 주의 북쪽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할 것 같아 현장을 찾아 격려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어서 더욱 투자를 바라는 라이치힌스크의 노천 석탄광과, 그 북쪽에서 발견된 금광을 방문하고 투자 약속을 한다. 그 자리에서 나는 손 인태 사장에게 지시해, 호주의 광산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고려 자치주의 광산 개발을 전담하도록 한다.

재량껏 부족한 인원도 충당하고 투자 우선순위를 정해 투자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또 강동운 사장에게는 세 곳에 호텔과 백화점을 짓도록 지시한다. 즉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브 그리고 이곳 블라고베시첸스크다.

규모는 장차를 생각해 기존의 대원호텔과 백화점 규모로 짓도록 지시한다. 그 외 초빙해간 학자들에게는 이곳 한 대(寒帶)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경제성 있는 수종과 곡물들을 개량해 줄 것을 요청한다.

당연히 연구비는 흡족할 만큼 지급할 것이다. 할 수 있으면 개량한 묘목도 대량으로 준비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 일행은 바로 모스크바로 날아와 다시 고르바초프를 면담한다.

면담 자리에서 그가 묻는다.

"무슨 일로 나를 다시 보자고 했소?"

"고려자치주의 자치위원장을 한 명 천거하고 싶어서입니다."

"아니! 당신이 왜 안 하고?"

"저보다 적임자가 있어서요."

"허허.........! 그런 사람이 누구요?"

"보리스 엘친이라고, 스베르들로프스크 주 당서기로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을 용케도 잘 알고 있구료."

"주워들은 풍문으로는 능력이 대단하다고 해서요."

"그래요?"

그렇게 반문한 그가 의아한 얼굴로 배석한 행정실장에게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자료를 뽑아오도록 지시한다.

"그 외 한 가지 청이 더 있습니다."

"말씀해보세요."

"동구권에도 대원그룹의 자사를 개설하고 싶습니다."

"그야, 강 회장 당신의 의사대로 하면 되지, 왜, 나와 협의를 하는 것이오?"

"그냥 하는 것보다는 동구권의 맹주이신 서기장 각하께 알리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걱정 마시고 어느 곳이든지 필요한 만큼 알아서 설치하세요."

"감사합니다. 서기장 각하!"

거듭 감사를 표하는 내게 고르바초프가 묻는다.

"이제 다른 부탁은 없고요?"

"기왕이면 북조선의 김일성 주석에게도 전화 한 통화를 넣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 이유로?"

"산림벌목꾼으로 북 조선인들을 채용하고 싶어서입니다."

"왜, 우리 소련인도 실업자들이 부지기수일 텐데.............?"

"가구공업이 원체 낮은 가격에 시장이 형성되다보니, 벌목부터 저임금 근로자들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부탁입니다."

"알았소. 내 전화는 한 번 해보리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하려는 순간 떨떠름한 표정의 고르바초프에게 행정실장이 들어와 모종의 자료를 건넨다.

"아니, 아직 이 자는 정치국 후보국원도 아니잖소? 이런 자를 어떻게 그런 막중한 자리에..........."

"그야, 각하께서 후보국원을 만들어 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이 사람이 그렇게 꼭 필요한 것이오?"

"네!"

나는 간단명료하게 대답하고 입을 굳게 다문다. 나의 행동에서 내 의지를 읽은 고르바초프가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마지못한 듯 대답한다.

"강 회장이 꼭 필요로 하는 인재라면 들어줘야지요. 더 한 것도 들어주는 판인데........."

"감사합니다. 서기장 각하!"

다시 일어나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는 나에게 손을 저어 만류한 그가 말한다.

"됐어요, 됐어! 이제는 없지요?"

빨리 이 자리를 끝내고 싶어 벌써 반쯤 몸을 일으킨 채 묻는 고르바초프다. 거기다가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나는 거듭 사의를 표하고 회동을 끝낸다. 아무튼 나는 이번 여행에서 절실히 느낀 것이 하나 있는데, 앞으로 고려자치주의 사업을 제대로 벌이려면 자가용 비행기는 꼭 있어야겠다는 사실이다.

워낙 소련의 땅덩어리가 넓다보니 다른 교통수단으로는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다. 또 이제 그룹의 위상이나 체면을 위해서도 있어야 필요성이 있어서이다. 내가 필요하면 다른 사람도 고려자치주나 여타의 사업을 위해서는 꼭 필요할 것이다.

이참에 그룹에 자가용 비행기를 최소 3대 이상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비서실장에게 이를 알아보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나는 북경의 등소평에도 전화를 넣어 조만간 찾아뵙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그러자 등소평은 흔쾌히 응하며 언제든지 들려 달라 한다. 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데다 어느 곳이나 이제 대우를 받는 듯해, 아주 흡족한 기분으로 소련을 떠난다.

떠나기 전 나는 전 사장단 회의를 서울에 소집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 작품 후기 ============================어제는 계속해서 직장과 글쓰기를 병행하니 너무 컨디션이 안 좋아서, 하루를 쉬었습니다. 기다리신 분들에게는 죄송하고요. 둘은 너무 힘들고, 하나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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