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03화 (103/135)

< -- 제목 미정 -- >

3그들이 낸 아이디어 수준의 말을 믿고 미국 국무부 장관으로 있는 슐츠에게 전화를 건다. 이 시간이면 그들은 밤중이라 마침 슐츠가 퇴근하고 집에 있어 내 전화를 받는다.

나는 그에게 사정 이야기를 소상히 하고 도와달라고 청한다. 내 말에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한번 알아 는 보겠다고 한다.

이왕 통화를 한 김에 서울도 한 번 방문해 줄 것을 청하니, 시간을 내어 한 번 꼭 들르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하는 슐츠다. 그러고 나서 슐츠에게서 내게 전화가 왔는데, 자신들도 동독에는 뚜렷한 힘을 쓸 수가 없어서 서독 정부에 부탁을 해놨으니, 그 쪽과 한 번 통화를 해보라 한다. 확실히 그의 영향력이 대단한 것을 느낄 수 있으나, 나는 서독 정부에서도 이를 해결하기 힘들지 않을까 내심 생각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슐츠의 말대로 서독 해당 각료와 통화를 해 자세한 이야기를 한다.

서독과 동독은 비록 우리나라처럼 동서로 분단된 국가지만 편지 왕래는 물론 서독 TV를 동독주민이 볼 수도 있는 형편이고, 돈을 들이면 포로나 유해도 반출할 수 있는 관계라 일말의 기대를 했지만, 말하는 어투가 그쪽도 개인 범법자까지 빼내기는 힘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힘써보겠다는 각료의 말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기다렸으나 종내 무소식이었다.

마냥 이 일에만 매달릴 수만은 없어 나는 정 태순 씨의 일은 이제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 완전히 잊고 있은 지 어언 8개월 만에 나에게 희망을 주는 소식이 슐츠로부터 날아든다. 고르바초프를 사적으로 만나 정 태순 씨의 이야기와 함께 대원그룹의 협조를 받으면 개혁개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더니, 그 또한 아주 흔쾌히 응하면서 나를 모스크바로 초청까지 했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로부터 듣고 사업 협력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정 태순 씨 문제도 자신이 직접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슐츠가 고르바초프에게 내 이야기를 언급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것이 순리일 것 같아 잠깐 언급하면 이렇다.

올 11월 그러니까 83년 11월에 마침내 미소정상회담이 워싱턴에서 열렸는데, 정상회담이 끝나고 슐츠가 고르바초프를 국무실로 초청해 그 자리에서 양국의 현안에 대해서 못 다한 이야기도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그 끝자락에 잠깐 나의 이야기를 언급하고 그런 결론을 얻어냈다고 나에게 전화를 준 것이다.

아무튼 아무리 내가 한 때는 회장으로 그를 부리는 입장이었다지만 그때까지 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해결해주려 애쓰는 것을 보니, 고맙기도 하고 또한 그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가 이번 건을 계기로 더욱 깊어진다. 미수교국인 우리나라와 소련의 상황을 감안해 미국에 진출해 있는 미국법인 명의로 나에게 고르바초프의 초정장이 정식으로 날아든 것은 그로부터도 보름이 더 지나서였다.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출영준비를 서둘러 마침내 모스크바의 크레물린 궁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가졌다. 내가 그를 만나라 간 것은 이럭저럭 올해도 마지막 달로 접어든 12월 초였는데 모스크바에 도착하니 벌써 모스크바는 눈이 내렸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중무장(?)을 하고 있었다.

12월 5일 오전 11시 정각.

나는 크레물린 서기장 접견실에서 고르바초프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는다. 내가 가볍게 목례를 건네자 초면임에도 10년 지기마냥 환하게 웃으며 살짝 나를 포옹하는 고르바초프다.

잠시 그러고 있다가 서로 뜨거운(?) 악수를 나누고 그가 권해 나는 장방형의 탁자에 딸린 의자에 앉는다. 물론 내 옆에는 소련 어 전공인 통역이 앉아있고, 그의 곁에도 또한 통역이 앉아있다.

그 외에도 우리 측에서는 정 운수 비서실장을 비롯해 두 명의 기획실장이 내 양 옆으로 앉아 있고, 고르바초프도 통역 외에 3명이 더 배석한 상태에서 우리는 통역을 통해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다.

"슐츠 국무장관이 귀사에 재직했을 정도면 그룹이 꽤 큰가봅니다."

고르바초프의 말에 내가 답변한다.

"한국에서는 제일 큰 기업이지만, 세계로 말하면 이제 100대 기업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정도의 그룹입니다."

"아직 나이도 젊은 사람이 당대에 그만한 정도의 부를 이루었다면 남모를 수완이 있다는 소리인데, 그 비법을 우리에게도 전수해 우리 국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일조를 했으면 좋겠소이다."

"하하하.........! 비법이란 게 뭐 따로 있습니까. 열심히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견지에서는 우리 그룹과 더 나아가 한국과 소련은 모든 분야에서 협력할 여지가 많을 것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원개발 분야라든가 군수분야, 또 경공업 분야에서 여러모로 협력할 사업이 무궁무진할 것으로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 문제는 개괄만 나와 타협을 보시고 나머지는 각부 장관과 의논해서 세부적인 사항은 타결을 보는 방향으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서기장 각하!"

"그런데 동독에 당신의 직원이었던 사람이 무슨 문제로 억류되어 있다고요?"

직원인지 동업자인지 나와 정 태순 씨의 관계는 좀 애매하지만, 여기서 그런 것까지 세밀하게 왈가왈부할 자리는 아니기에 나는 곧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사업을 하려고 동독으로 갔다가 스파이 및 외환관리법 혐의로 동독 비밀경찰에 의해 구금되어 있다는 소식을 근 8개월 전에 들었는데, 그 후로는 그의 신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의 이름은 정 태순이고 당연히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의 신상에 대해서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을 하려하니 고르바초프가 손을 흔들어 나를 만류하더니, 옆에 배석한 비서실장에게 지시해 곧 KGB국장을 부른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서기장 각하! 저는 한국과 가까운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나 사하 또 사할린 등의 가스나 석유 여타 광물자원을 저희 그룹에서 개발하고 싶습니다. 이 외에도 삼림이나 여타 자원도 저희들에게 맡겨주신다면 개발해서 소비에트연방이 부국이 되는데 크게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아니 동시베리아를 아예 저희에게 100년이고 200년이고 조차해주시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여기서 나오는 부로 인해 소비에트연방은, 경제면에서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하고 있고, 그런 웅대한 구상을 실천할 비전과 실력도 있습니다."

"하하하...........! 강 회장은 보기보다 참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군요. 조차야 함부로 다룰 문제가 아니니 아예 이 자리에서 언급을 않는 게 좋겠고, 지하자원이나 삼림 및 여타자원은 우리의 형편이 나아지려면 개발을 하긴 해야 하니, 누구의 손에 맡기긴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 상대로 대원그룹이 나서준다는 데 대해서 나는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확답은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추후 자주만나 이런 저런 문제도 한 번 진지하게 검토하는 방향으로 합시다."

나의 열띤 웅변이 전혀 헛수고는 아니었는지 일단은 고르바초프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는데 나는 크게 만족을 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런데 마침 KGB국장이라는 사람이 들어온다.

"부르셨습니까? 각하!"

"거기 잠시 앉아 내 말을 들어요. 여기 이 사람은 코리아에서 사업을 제일 크게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의 부하가 동독에서 봉변을 당하고 있는 모양 이예요. 그러니까 강 회장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블라디미르 푸틴 KGB동독지부장에게 지시해서, 그 사람을 일단 모스크바로 빼내오도록 하세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요?"

"네, 각하! 바로 조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바로 일어서려는 국장을 고르바초프가 웃으며 제지한다.

"이 사람 성미 한번 되게 급하군. 전말은 듣고 가야 어떻게 조처를 할 것 아니오?"

"제가 긴장을 하는 바람에........."

나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여기까지 듣고 정 비서실장에게 지시해 두 사람이 나가서 해결하도록 한다. 나의 뜻을 전해들은 고르바초프도 찬성해 두 사람이 나가자 다시 우리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강 회장은 모스크바에 며칠 머물 예정이지요?"

"3일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러지 말고 아예 이틀을 더 묵을 생각을 하세요. 그 정도 시일이면 아마 당신의 부하를 모스크바에서 볼 수 있을 것이오."

"서기장 각하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고르바초프의 호의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조아리자 고르바초프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저으며 말한다.

"내 호의에 강 회장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슐츠 국무장관에게 나와 우리 소련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어, 두 나라가 앞으로 더욱 가까워지는데 일조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각하의 호의 잊지 않고 꼭 각하의 명대로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의 아부성 발언에 더욱 입이 찢어진 고르바초프가 말한다.

"자원개발 문제는 내 슐츠 장관의 낯을 보아서라도 근간에 성의를 보일 테니 일단은 대원 쪽에서 마스터플랜을 작성해 오세요. 그러면 그때 가서 그것을 가지고 서로 좋은 방향으로 논의해 봅시다."

"감사합니다! 서기장 각하!"

"근일에 반드시 훌륭한 계획안을 가지고 각하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각하! 이 일을 원만히 진행하려면 아무래도 모스크바에 대원 그룹의 지사 하나 정도는 있는 것이 연락이나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은데, 각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그 것에는 나도 강 회장의 생각에 동의하오. 언제라도 좋으니 모스크바뿐만 아니라 편리한 곳이라면, 여러 곳에 지사를 두어도 좋아요!"

"각하의 흔쾌한 동의에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나라의 수출 대행은 물론 수입 또는 각하께서 필요로 하는 물건이나 사람, 여타 비밀리나 공식적으로 필요한 것을 살짝 연통만 주신다면, 이 지구를 다 뒤지는 한이 있더라도 각하의 뜻에 보답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좋아요! 은근 슬쩍 우리나라의 무역업에까지 손대시겠다는 속셈도 좋고, 당신의 열성과 진지함, 아직 젊어서 인지 그 패기가 아주 나는 마음에 들어요. 아무튼 우리 오늘은 오늘만 날이 아니니 이쯤에서 끝내고, 때가 때이니 만큼 점심이나 함께 하러 갑시다!"

"감사합니다! 서기장 각하! 제가 오늘처럼 이렇게

'감사하다!'

는 말을 많이 사용해보기는, 제가 세상에 태어난 이래 처음입니다. 각하!"

"하하하..........! 앞으로도 계속 그런 관계로 내가 남았으면 나 또한 더 한 바람이 없겠습니다."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런데 각하! 혹시 한국과는 수교할 의향이 전혀 없으십니까?"

"내 강 회장의 면을 보니 한국도 아주 좋은 나라 같아요. 솔직히 내 강 회장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관심을 가졌지, 전에는 별로........... 그래요. 그래서 일단은 한 번 알아보고, 생각해보겠다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싶군요."

"역시 현명하십니다. 각하! 저라도 선뜻 동의하기에는 두 나라가 아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죠. 거리가 아니라 양국 국민의 마음이 말입니다."

"강 회장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좀 더 알바 본 후에 답을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우리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오찬장으로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이로써 우리의 중요한 대화는 모두 끝났고, 이 후는 우리 그룹의 이야기며, 소련의 장래에 대한 나의 견해와 조언,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 까지 나누며 두 사람 사이에 진실로 따뜻한 오찬이 된다.

그 후 나는 모스크바 관광을 하면서 3일을 보냈는데, 하루는 소련의 KGB에서 나를 부른다. KGB의 호출에 내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내심 짐작하는 바가 있어, 나는 곧 평상심을 회복하고 요원의 안내로 그들만의 안가로 찾아간다.

거기에는 정말 정 태순 씨는 물론 훗날 러시아의 '현대판 짜르'라 불리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젊은 모습이 함께 있다.

"회장님! 흑흑흑...........!"

나를 보자마자 기쁨인지 서러움인지 급하게 달려들며 나를 얼싸안는 정 태순 씨다. 나는 그런 그의 등을 토닥이며 말한다.

"먼 이국땅에서 고생이 많으셨죠?"

"이제는 회장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흑흑흑.........!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도 울음 끝에 잠긴 목소리로 연신 내게 감사를 표하는 그를 나는 따뜻하게 토닥이는 것으로 대신 할 뿐 금방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우리의 산통을 깨는 인물이 있다. 아주 냉정한 모습의 푸틴이다.

"이곳에서 바로 신병을 인도해 가겠소?"

"네, 그런데 귀하는 바로 임지로 돌아갑니까?"

"아니오, 온 김에 나도 보름 휴가를 얻었소."

"혹시 연락처를 주실 수 없습니까? 감사의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인사는 서기장 각하께 드리고, 할 말이 없으면 이만 이 사람을 데리고 나가주시오."

"잠시 만요. 우리 한국에서는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보은을 못하면 인간 취급도 안 할뿐만 아니라, 오년 동안 내리 재수가 없습니다. 사업을 크게 하는 저로서는 절실한 문제니, 연락처만이라도 주십시오."

"허허..........! 세상에 그런 일이 다 있소. 좋소, 종이나 한 장 주시오. 내가 머물 집의 전화번호를 적어드리리다."

"감사합니다!"

나는 진실로 고맙다는 듯이 푸틴에게도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고 그가 다 작성해 넘겨준 연락처를 아주 신주단지 모시듯 경애한다. 이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는 푸틴의 모습도 마냥 차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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