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101화 (101/135)

< -- 제목 미정 -- >

1여기서 잠시 우리 그룹이 인수한 국제그룹의 연혁과 규모를 살펴보고 넘어가기로 하자.

비운의 국제그룹은 1947년 창업자 양정모 회장이 부산 동구 범일동에 세웠던 고무신 생산 업체 국제고무공장에서 출발했다. 이 공장의 고무신 브랜드는 '왕자표 고무신'이었다.

1962년 국내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신발을 수출하기 시작한 이래 수출확대와 해외시장 개척에 계속 주력하였다. 1960년대 말경에는 매출총액에서 수출비중이 내수판매를 앞지르게 되었고, 1970년대에 중화학공업 분야로도 진출하였다.

1975년 모회사(母會社)인 국제상사(주)가 종합상사로 지정을 받은 이래, 수출실적은 1981년에 8억 6000만 달러를 기록하기도 한다.

계열기업으로는 국제상사(주)·연합철강공업(주)·국제종합기계(주)·풍국화학(주)·국제방직(주)·원풍산업(주)·조광무역(주)·성창섬유(주)·국제제지(주)·연합물산(주)·국제종합건설(주)·국제종합엔지니어링(주)·국제토건(주)·국제통운(주)·동서증권(주) 등 21개 회사를 거느리며 운영되다가,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의 일환으로 85년 3월, 대원그룹에 전격적으로 흡수·통합되었다 원래의 역사인 1986년 7월보다 1년 4개월 앞당겨진 갑작스런 조처였다.

한편 불행을 당한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은 그룹의 해체 사실을 발표되기 30분 전에야 전격적으로 통보를 받는다. 당시 양정모의 부인은 국내 의술로 치료가 불가능한 녹내장 수술을 미국에 예약한 상태였는데, 전두환 정권은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라는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양정모의 가족들과 국제그룹의 경영인들도 모두 출국을 금지시킨다.

이 소식을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한 기획1실장의 보고에, 나는 급히 청와대로 달려가 부인의 출국을 도와주는 한편, 비밀리에 양 회장에게 회동을 제의해 부산의 한 횟집에서 우리는 극비리에 회동한다. 자리를 잡자마자 나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으로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양 회장에게 위로의 말부터 전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그간의 분노와 허탈감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요즘 건강은 어떠십니까?"

"당신의 도움으로 그나마 내자가 출국을 할 수 있어, 다행이오."

나의 극진한 위로에도 그는 내게도 맺힌 것이 많은지 쉽게 나의 접근을 허락지 않는다. 하긴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어쩌면 그의 그룹을 인수한 내가 더 미울 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에게 어설픈 위로보다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풀어놓는 것이 낫다 싶어서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아 상심이 크시겠지만.........."

이렇게 운을 뗀 내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다음 할 말을 잠시 생각하다가 묵묵부답인 그에게 내 의사를 전한다.

"저는 훗날 정권의 비호아래 국제그룹을 삼켰다는 비난을 듣기도 싫고, 그렇다고 당장 정권에 밉보이기까지 하면서 국제그룹을 인수하지 않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처지가, 제가 처한 저의 솔직한 입장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일부의 계열사들은 아무 조건 없이 회장님에게 다시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단 하나의 조건은 있군요. 지분도 모두 돌려드릴 수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 5공화국의 정권이 다 끝나고 안정적일 때 돌려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자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가? 여전히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나만 바라보고 있는 양 회장에게 나의 말이 이어진다.

"예를 들면 국제그룹의 사옥인 국제빌딩, 국제종합기계, 국제방직, 원풍산업, 조광무역........ 아니 몇 개 계열사만 내가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군요. 원래부터 회장님의 소유가 아니었던 연합철강 등 연합계열과 동서증권 그리고 국제상사에서 신발부분만 제 소유로 하고 나머지는 전부 다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외람되지만 제게 나머지는 있으나마나 별 의미가 없는 기업이라서 말이죠. 크게 돈 들어간 것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당신의 저의가 무엇이오?"

여전히 나를 곡해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나를 대하고 있는 양 회장이다.

"좀 전에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고요."

"정권에서 거저주다시피 하는 것을 안 받겠다는 당신이 이상하지만,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하니 안 믿을 수도 없고........... 그런데 주려면 다 주지 몇 몇 기업은 왜 빼는 것이오?"

"연합계열이야 회장님도 권철현 씨로부터 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취한 것이니, 제외해도 크게 억울하지 않을 것입니다만, 두 부분 즉 동서증권과 국제신발은 제가 한 번 세계적으로 키워보고 싶어서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뭐요? 그럼, 내 손 안에 그것이 있으면..........."

갑자기 흥분하는 그의 말을 나는 급히 손을 저어 끊고 내 말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신발만 해도 아디다스나 나이키를 능가하는 세계 제1의 메이커로 키우고 싶습니다. 물론 회장님 손에 있다고 해서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본격적으로 거대 자금을 들여 단숨에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흐흠..........! 이보시오, 강 회장! 그러지 말고 내가 소유했던 기업을 전부 내게 그대로 돌려줄 수는 없소? 내 이 정권이 끝나면 헌법소원도 제기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할 작정이오만?"

"하하하..........! 회장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저는 하나도 돌려드리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 정권이 끝나고 소를 제기해도 좋고 무엇을 해도 좋습니다. 왜냐? 비록 헌법소원에서는 정권의 횡포로 인한 위법 판결이 나더라도, 막상 민사로 들어가면 개인이 맺은 계약은 절대 무효화할 수 없다는 취지로 회장님이 백전백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주 양 회장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실제 역사적인 판례가 그러 했으니까.

"흐흠...........!"

내 말에 주춤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는 양 회장이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제가 회장님의 기업 중 일부를 돌려드리겠다는 것은 이런 재판이 두려워서가 아닙니다. 첫째 내 마음이 편치 않고, 둘째 정권의 비호를 받아 남의 기업을 송두리째 집어삼킨다는 것이, 같이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아서이지,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이 시점에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회장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엄선해서 제게 보내주시면 그들이 그 사업의 중추에 앉아 경영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랬다가 훗날 이들을 기반으로 해서 인수하시다면 전혀 낯설지 않고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만?"

"좋소! 내 강 회장의 고마운 뜻에 따르리다 만은.......... 이를 말로 할 것이 아니라 법적인 효력이 발생할 수 있도록........."

"물론 그렇게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가 말한 대로 문서로 작성해주고, 친히 친필로 사인을 한다. 양 회장과의 회동이 끝나자 나는 다음 수순을 밟는다.

이제는 국민을 상대로 고도의 정치 행위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나는 세계의 유수한 통신과 국내의 전 언론을 초청해 기자회견을 갖는다.

그 전에 힘꼴깨나 쓰는 작자의 공연한 트집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그의 신임이 두터웠던 김 기획실장을 파견해 이 내용을 브리핑한 다음이다. 내 청에 의해 대원그룹의 대회의실은 UPI니 로이터통신은 물론 일부 미국 및 일본 심지어 서방기자들까지 초대된 가운데 국내에 있는 전 신문과 방송의 기자라는 기자는 모두 모여 있는 속에서 나는 회견문을 낭독한다.

"우리는 금번 그룹 내의 반도체 연구소에서 64메가 DRAM은 물론 256메가 DRAM을 세계 최초로 성공리에 개발을 완료했음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또한 이와 함께 플래시메모리 분야에서도, 노어플래시메모리와, 낸드플래시메모리까지 동시에 개발 완료했음을 세상에 알립니다. 이 까닭은 이로써 인류의 문명이 한 걸음 더 발전하고, 우리의 제품이 세상에 밝은 빛으로 기여하길 간절히 원하는 까닭입니다.

참고로 비트선과 접지선 사이에 셀(cell)이 병렬로 배치된 코드 저장 형이 노어플래시메모리이고, 셀이 직렬로 배치된 데이터 저장 형이 낸드플래시메모리다. 아무튼 잠시 쉬었던 나의 발언이 이어진다.

"또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우리 그룹의 정보통신연구소에서, 비록 바(bar) 형태지만 그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여, 손 안에 쏙들어오는 휴대전화를 발명했음을, 전 세계의 유수의 언론을 통해 세상에 실물과 함께 공개합니다. 이는 하루라도 빨리 전 세계가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우리 그룹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나의 발표가 끝나고 실물이 공개되자 방송과 신문은 이를 카메라로 찍어 전송하기에 바쁘다. 이어 주요 신문과의 일문일답이 잠시 진행되었지만 이는 생략하고 그 내용을 지면에 잠시 언급하겠다.

지금까지는 1983년 모토로라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 휴대전화로 개발한 다이나택(DynaTAC))이 유일했으나, 그 크기가 벽돌 크기만 해 사용자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휴대폰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쿠퍼 박사가 83년도에 우리 연구소에 합류하고 연구원들도 대폭 보강한 결과, 다이나택의 1/3크기 즉 한 손안에 쏙들어오는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을 세상에 선보여, 단번에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는 우리 그룹에서 플래시메모리를 발명했기 때문에 가속도가 붙어 이루어낸 쾌거였다.

그 전까지는 휴대전화에 들어갈 변변한 칩조차도 변변히 없던 형편이었으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 조만간 접었다 폈다할 수 있는 폴더 형의 제품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우리에 의해 더욱 세련되고 경량화된 제품인 디지털카메라와, 디지털캠코더를 비롯해, 녹음 기능이 추가된 워크맨 외에 MP3플레이어 등 신제품을 세상에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

아무튼 나의 이 기자회견 소식은 전파는 물론 신문 보도를 통해 지금까지 반도체 분야의 선도자요, 선진국으로 자처했던 미국, 일본은 물론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서도 크게 보도되어 국민들의 자긍심을 크게 고취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이로서 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대원그룹이 이런 그룹이다. 세계 첨단을 달리는 기업이고 인류의 문명발달사에 이바지하는 기업이니, 어설픈 잣대로 우리의 기업을 함부로 농단하니 말라는, 정권에 대한 나의 소리 없는 항의를 전단할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내가 기자회견장에서 선보인 이 제품들을 대원전자반도체에서 대거 생산하기 시작했고, 미국과 일본 시장에 수출함은 물론 국내시장에도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 우리는 우리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대원이동통신에 과감한 설비투자를 감행해, 우선 서울에서만이라도 작은 휴대폰을 통해 고품질의 통화가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아직 지하철이나 산 속에서는 제대로 통화가 되지 않는 단점은 초기 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전국 어디에서나 고품질의 통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기지국 건설에 오늘도 우리 그룹은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세상을 바꾸는 소리 없는 혁명이었다. 빠른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은 독재를 어렵게 하고, 지구촌 곳곳에 민주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정권에 대해 노리는 바였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민도가 더 높아지고, 점점 빨라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박종철 고문비리 사건이 터지고, 6.10항쟁 속에 우리 위대한 국민은 급기야 직선제개헌을 이루고 그렇게 염원하던 민주화를 기필코 쟁취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개발한 휴대폰과 기기들이 일조했음은 부인 못할 사실일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첨언한다면 훗날 나는 청문회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제그룹의 양 정모 회장과 내가 맺은 계약내용을 계약서 사본 째 보여주는 형식으로 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제그룹을 원상 복구시킨다.

비록 몇 개의 기업이 누락되긴 했지만, 나의 이 양심적인 행위가 국민들의 우리그룹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져 제품 판매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 작품 후기 ============================200회 까지 갈 수 있도록 님들의 많은 성원부탁드립니다!

^^3종 세트야 말로 작가를 격려하는 지금길이죠!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