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계 서열 1위에 등극하다 -- >
8연말이다.
84년도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 한해가 가는 것이 아쉬운지 하늘에서는 눈 폭탄을 퍼부어 도시 교통을 거의 마비시키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가야한다. 오늘은 전 통의 초청으로 기업인들만을 위한 만찬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면 올 길을 거의 기다시피 하여 두 시간 만에 청와대에 도착하니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다가 대통령이 나를 보잔다고 하며 나를 집무실로 안내한다. 시계를 슬쩍 보니 오후 6시 40분이다.
다행히 만찬예정시간인 7시보다 20분 빠르게 도착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출발한 것이 주효했다.
내가 집무실에 도착하니 대통령 혼자 있다가 나를 반긴다. 서로 안부를 묻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대통령이 아주 노골적으로 묻는다.
"얼마 가지고 왔습니까?"
"세 장입니다. 각하!"
"아예, 채워오시오!"
"네?"
"벌써 귀먹었소?"
"아, 아닙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 돌아 나오는데, 채워오라는 말이 도저히 감이 잡히지를 않는다. 얼마를 더 요구하는지.
안 그래도 요즘 전 통은 '새 세대육영회'다, '새마음심장재단'이다, '새마을 성금'이다 해서 툭하면 기업들에게 온갖 명목을 붙여 성금을 강요하고 있는 판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동안 너무 가까이 지낸 것 같아, 거리를 둘 작정으로 조금씩 성금을 덜 냈더니 아예 오늘은 불러서 액수를 확인하고 채워오란다.
밑도 끝도 없이 채워오라니 정말 감이 잡히지를 않아 나는 장세동 경호실장을 찾아가 사실 얘기를 하니, 다섯 장을 채우는 것이 좋겠다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여기서 세 장, 다섯 장 한다고 해서, 3억 5억이 아니라 30억, 50억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미치고 팔짝 뛰지 않겠는가! 아무튼 나는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백지 자기앞수표에 50억을 써넣는다.
물론 내 개인 돈의 지출이다. 이것이 훗날가면 비자금조성이다 뭐다해서 말이 많을 것 같아 아예 내 개인 돈으로 전부 성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집무실을 찾아가 50억을 전달하니 그제야 환하게 얼굴이 펴지는 전통이다.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참고 나는 막 바로 만찬장으로 향한다.
밥 한 끼에 50억 원이라니, 해도 너무하다. 이렇게 비싼 밥, 먹어 본 사람 있으면 세계 어느 누구라도 좋다.
다 나와 보라고 해라! 아마 세계에서 내가 유일할 것이다. 어찌 됐든 만찬이 시작되고 시간이 흘러 주흥이 도도해질 때까지 아직 좌석 하나가 비어있다.
부산에 사는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 자리다. 전 통의 눈이 힐끔힐끔 그 좌석으로 눈이 갈 때마다 괜히 내가 다 불안하다.
결국 양 회장은 폭설로 인해 비행기가 늦게 뜨는 바람에 1시간가량 지각을 했다. 국제 양 회장이 만찬장으로 뒤늦게 들어서자마자 전통의 호통이 떨어진다.
"당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비행기가 이륙을 못하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흥! 잘하고 있군, 아주 잘 하고 있어!"
양 회장의 변명에도 비아냥대던 그가 뜬금없이 묻는다.
"새마을 성금은 냈소?"
"11월 달에 비서관의 독촉으로 10억 원을 냈습니다."
"그것도 석 달자리 어음쪼가리요?"
"네, 요즘 기업의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
"흥! 잘하고 있군, 아주 잘하고 있어! 어디 계속 그렇게만 해보시오,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에이, 괜히 기분만 잡쳤잖아, 어이, 뭐하고 있어? 악단! 빨리 연주 안 하고."
"네, 각하!"
다시 실내악단의 경음악이 연주가 되나,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 겉으로는 허허거려도 누구나 긴장을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늘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고 있다.
이렇게 밤이 깊어가는 것과 함께 1984년도도 역사의 장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다. * * *이런 일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85년도 새해 벽두부터 내게 기쁜 소식이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있는 반도체 연구소로부터 날아든다.
256메가 DRA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소식이다. 국내 대원전자반도체에서는 이제야 1메가 DRAM의 양산 체제를 갖춘 시점인데 말이다.
뿐만 아니다.
일본 도시바가 1987년 처음으로 개발한 낸드플래시메모리에 이어 노어플래시메모리마저 동시에 개발해 내었다고, 그 낭보를 처음 내게 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기쁜 마음에 단숨에 미국으로 날아가, 연구원들을 일일이 만나 크게 치하함은 물론 많은 포상금을 지급해 이들을 크게 고무시킨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는 스탠퍼드 책임연구원으로 갈 예정이던 매사추세츠 대학교 전자공학 박사 출신인 황창규를 비롯한 진대제 등 한국 출신의 연구원들과 100명이 넘는 박사 급 출신 연구원들은 물론, 1,000명에 육박하는 반도체 소속 연구원들이 밤잠을 안자고 이루어낸 노력의 결실이요, 땀의 결정체였다.
아무튼 이로서 나는 휴대폰의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제품을 세상에 내놓거나, 있는 제품은 그 크기를 대폭 줄여 소형화 경량화 할 수 있어, 우리 제품을 단번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여기서 잠깐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개발한 플래시메모리 반도체에 대해 설명하면 이렇다.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자료가 사라지는 D램이나 S램과 달리, 전원이 없는 상태에서도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것이 플래시 메모리반도체이다. 플래시 메모리는 칩을 연결하는 방식에 따라 낸드 형과, 노어 형으로 나뉘는데, 낸드 형은 노어 형에 비해 제조단가가 싸고 용량이 크나, 노어 형은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노어플래시메모리는 주로 핸드폰의 메모리반도체로 사용되고, 낸드플래시메모리는 MP3플레이어, 인터넷폰, 디지털카메라, 디지털캠코더, 휴대용저장장치 등 주로 휴대용 정보통신기기의 메모리로 사용된다.
아무튼 나는 귀국하자마자 대원전자반도체에 서둘러 64메가 DRAM의 양산체제를 갖추게 하는 한편 256 DRAM에 대해서도 정확한 예측을 통해 양산해 낼 수 있는 설비를 갖추도록 지시한다. 또 정보통신연구소에는 노어플래시메모리 반도체를 내장한 휴대폰에 박차를 가하도록 지시한다. * * *85년 2월 12일.
동토 하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 통이 총재로 있는 민정당은 전라도의 대부분의 선거구에서도 당선자를 냈지만, 유독 부산에서만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한 선거구에서 2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선거구제 하에서 실시된 한 겨울의 선거에서, 민정당은 전국의 대부분에서 2위나마 많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 결과 비례대표제 의석마저 과반을 가져가 원내 제1당은 물론, 원내의석 과반을 넘어 정국 안정의 구도를 확보한다. 그러나 유독 부산에서만은 한 명 만이 2위 안에 들고, 나머지 선거구에서는 모두 낙선하는 바람에 전 통의 심기가 급격히 나빠진다.
이는 바로 총선에 비협조적이었던 국제그룹의 목조르기로 연결된다. 전의 미움까지가 더 해져 바로 국제그룹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을 통해 급격히 여신을 줄이고 자금 회수를 독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국제그룹의 자금상태가 급속히 악화되는 시점에서 전통이 하루는 나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들인다.
"어서 오시오, 강 회장!"
무엇이 기분이 좋은지 모처럼 밝게 웃으며 나를 환대하는 전 통이다.
"그동안 편안하셨습니까? 각하!"
"나야 늘 그렇지요. 거기 앉으시오. 강 회장!"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내게 친절하게 자리를 권하는 전 통이다.
"오늘은 말이오..........."
여기까지 말을 하고 더 이상 말을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길게 여운을 남기는 그다.
"말씀하시죠, 각하!"
나는 긴장하며 그의 얼굴을 주시한 채 심각한 안색으로 말한다.
긴장한 내 얼굴이 우스운지 그가 크게 웃으며 말을 시작한다.
"하하하..........! 오늘은 본인이 말이오. 그간 강 회장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데 대한 보답을 할까 하오."
그래도 나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계속하라는 듯 그의 얼굴만 주시하고 있다.
"음.........! 강 회장이 그간 말썽도 많고, 탈도 많은 국제그룹 전체를 인수하는 것은 어떻겠소?"
"그건 좀............."
내가 즉답을 피하고 망설이자 그의 말이 이어진다.
"본인이 보아도 나와 정권에 대한 협조 여부를 떠나, 그만한 덩치의 거대기업을 인수해 전부 소화시킬 수 있는 기업은, 대한민국에서 사업 규모나 재정의 건전성으로 보아, 대원그룹 이 유일할 것 같소. 어떻소, 의향이 있소?"
그의 말에도 그늘진 내 표정은 펴지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10대기업에 속하는 대기업집단이 정치인의 한 마디에 하루아침에 공중분해 되다니, 이 어찌 사업을 하는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허망하지 않겠는가! 내 기업도 이 작자에게 밉보이거나 하면 이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기쁜 마음보다도 차라리 서글픈 심정이다.
여전히 펴지지 않는 내 표정에 곡해한 전 통이 좀 딱딱해진 어투로 묻는다.
"왜, 싫소? 나는 굉장히 반가워 할 줄 알았는데...........?"
나는 여기서 인상을 펴고 얼렁뚱당 변명을 한다.
"그게 요즈음 자금이 팍팍하게 돌아가는 바람에............."
"아니, 강 회장이 어렵다면 대한민국 기업은 전부 부도가 나야 정상 아니오?"
"들어오는 돈도 많지만 순수하게 지출되는 사업도 많아서 그렇습니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 있는 대원연구소의 제약이나 반도체 정보통신분야 같은 경우에는 수천 명의 인력들이 돈만 잡아먹고 있으니............."
"하하하...........! 난 또 뭐라고. 그들이야 먹었으면 토해내야지. 당연히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소?"
"...........!"
그래도 침울한 채 고개를 흔들며 여전히 말이 없는 나다.
"정 그렇다면 말이오, 강 회장! 내가 국제그룹이 정상화될 때까지 은행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라고 할 테니, 너무 근심 말고 이번 기회에 덩치를 더욱 크게 불려 세계적인 기업이 되도록 해주시오. 우리나라에도 이런 기업 하나 정도는 있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자랑할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단 말이오."
"알겠습니다. 각하!"
"하하하..........! 이제야 좀 얼굴이 펴지니 보기에도 얼마나 좋소? 자, 그 건은 그렇게 처리하기로 하고 다른 무슨 애로 사항은 없소?"
"한 가지 청이 있긴 있습니다만.........?"
나는 여기서 말을 중단하고 그의 표정을 살핀다.
"무엇이든지 말만 해보오. 내 들어봐서 가능한 한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다 줄어 줄 의향이니까.........."
"저희 그룹 산하에 대원이동통신이라고 있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각하!"
"거 뭐야......... 삐삔가 뭔가 하는 사업하는 부서가 아니요?"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희들은 그보다는 장차 전화기마냥 직접 손에 들고 다니면서 통화할 수 있는 휴대폰이라는 것을 상품화 해, 전국망을 통해 어디서나 즉시통화가 가능하도록 만드는데 주안을 두고 설립된 회사입니다. 각하!"
"세상에 그런 것도 있소!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이오?"
"작년 각하께서 주도한 가술확대진흥회의에서도 언급된 그 휴대폰이라는 것이, 작은 크기로 조만간 세계 최초로 상용화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기지국을 전국에 가설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이를 전국적으로 실용화 시키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럼, 투자를 하면 되지 뭐가 문제요?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이 정보통신분야에서는 일등 선진국이 되는 경사인데?"
"통신주파수에 관계 되는 것이니, 정부의 허가를 득해야 돼서.........."
"아, 그딴 것 골 아프게 생각할 것 없고, 당장 상품이나 개발해 내놓던지, 아니 정 자신이 있으면, 기지국인가 뭔가 건설하는 투자부터 하던지 하시오."
"감사합니다. 각하! 상황을 봐가면서 선투자를 하든지 아니면 제품부터 시장에 선보이던지 하겠습니다."
"그것은 강 회장이 알아서 하시고, 그럼, 국제 건은 이로써 해결된 것이오?"
"네, 각하! 저희 그룹이 인수해서 전혀 희생가치가 없는 것은 몇 개 도태시키더라도 나머지 기업은 더 크게 키워, 국민경제를 위한 한 단계 더 도약시킴은 물론, 일거리 창출에도 이바지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그 문제는 강 회장한테 일임할 테니 알아서 하시고, 우리 언제 옛날처럼 노 의원(노태우)과 어울려, 허심탄회하게 쓴 소주라도 한 잔 해야 되는 것이 아니겠소?"
"언제든지 불러만 주십시오, 각하! 즉각 달려오겠습니다."
"하하하..........! 이제는 내가 접대를 해도 되는 처지가 되었나?"
인생 역전에 아주 크게 즐거워하는 전 통이다. 그렇지만 내 기분은 전혀 즐거운 기분이 아니다. 전통의 한 마디 말에 국제그룹이 풍비박산이 났으니......... 아무튼 이로써 대원그룹은 대한민국의 재결 서열 2,3위 집단을 더해도, 우리 기업을 넘보지 못할 정도의 거대 그룹으로 거듭났고, 단단히 아성을 구축하여 재계 서열 제 1위로, 탄탄한 입지를 굳힌다.
------------------------============================ 작품 후기 ============================오늘이 100회 이군요.
이를 어제 올렸어야 했으나, 피곤한 관계로 쓰지를 못해서, 4월이 시작하는 첫 날 오늘에서야 올립니다. 기다리셨던 분들에게는 죄송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100회 특집이라도 좋고, 어제의 것을 오늘 올린다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한 편 더 올리는 것으로 100회를 자축하고자 합니다!
^^변치 않고 보내주시는 성원에 매 검향 다시 한 번 정중히 머리숙여 감사의 인사올립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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