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97화 (97/135)

< -- 재계 서열 1위에 등극하다 -- >

5

'아이고, 이거 국제그룹에 불똥이 튀겠구나!'

나는 내심 생각하며 화제를 전환한다.

"김 경제수석은 요즘 출근하고 있습니까?"

"아니오. 그 후로 코빼기도 못 봤소. 내가 몇 번씩 전화를 해서 출근을 하라고 해도 집에만 웅크리고 있소. 아무래도 놔주어야 할 것 같소. 평양 감사도 저 싫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체념이 역력한 표정으로 말을 끝내는 전 통을 보고 나는 내심 쾌재를 부른다. 이후 둘은 사소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바로 헤어져 나는 청와대를 나온다. 그런데 청와대를 나와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찜찜한 게 기분이 안 좋다.

이렇게 거대 기업이 되도록 제대로 된 기부를 해본 적이 없는 나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남의 등 떠밀려서 마지못해 엉뚱한데다 기부를 하고 나니,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차 안에서 옆 좌석의 비서실장에게 묻는다.

"비서실장님!"

"네, 회장님!"

"우리 그룹에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병원을 지어, 치료비조차 전혀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 전문적으로 치료해주고 싶은데, 정 실장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그야 물론 그렇게 하면 좋지만, 병원유지비에다 환자들의 진료비까지 생각하면, 한 해에도 어마어마한 돈이 지출되지 않을 까요?"

"흐흠..........! 그야 그렇겠죠. 이 실장님은 요?"

내가 앞좌석에 동승한 이 기획실장에게도 의견을 묻는다.

"돈이 많이 들어도 이제는 우리 그룹의 위상으로 보아 베풀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 기업의 이미지가 한결 더 좋아질 테고, 또 우리 그룹에서 제약 회사를 운영하는 이상, 언젠가는 임상실험을 위해서도 병원은 꼭 설립할 필요성이 있으니, 그들로 하여금.........."

"이 실장님이 더 말 한해도, 실장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일단은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해서, 모든 예산을 한 번 뽑아주세요."

"네, 회장님!"

이렇게 해서 85년에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치는 아니 훗날에는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원종합병원이 서울에 탄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부를 하는 김에 하루 3천 명씩 노인들과 점심을 굶는 사람들을 위해 대형급식소를 서울의 세 곳에 세웠다. 노인들이 주로 모이는 공원 앞의 용지 등을 사들여, 매일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도록 했다.

여기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오늘의 이 성금 모금이 결국 내 예상대로 훗날 나의 발목을 잡는다. 전두환이 물러나고 1987년 노태우가 직선제를 통해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제6공화국이 시작되었을 때다.

대통령 노태우는 전두환과 함께 신군부로 12·12 군사 반란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제5공화국 동안 장관 요직을 거치는 등 사실 상 제5공화국의 인물 아닌가. 따라서 제5공화국 시대의 비리와 부정부패 검증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88년 총선을 치러 구성된 대한민국 제13대 국회는 야당 의석수가 여당 의석수보다 많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소야대 상황이 되었고, 결국 야당의 강력한 요구에 제5공화국 정권의 비리를 조사하는 5공 비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된다.

일해재단 비리,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언론기관통폐합 문제 등의 진상 조사를 위해 열린 헌정 사상 최초의 국회 청문회였다. 당시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어 국민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위원장은 당시 통일민주당의 부총재인 이 기택의원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 5공 청문회에 일해재단 비리문제에 연루되어 현대의 정주영 씨와 함께 증인으로 출석을 하게 되었다.

옛날의 정태순 로비사건 이후 두 번째로 좋지 않은 일로 국민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내심 단단히 각오를 하고 청문회에 출석한다.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에 나는 나보다 앞서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하는 증인들을 많이 보았는데, 모두 한 결 같이 중죄를 지은 양, 너무 저자세이고, 국회의원들은 너무 고압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록 좋지 않은 일로 청문회장에 출석하지만 가능한 당당하게 임하기로 각오를 다지고 증언 석에 앉았다. 그 상황을 전하면 이렇다.

질문자는 평민당의 이해찬들 의원이다. 안경테 너머 그 깐깐한 얼굴이 나를 보고 묻는다.

"일해재단을 설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지요?"

"네, 했습니다."

"재단 명칭 중 '일해'가 전 전 대통령의 호라는 것은 알고 작명한 것입니까?"

"내가 작명한 것도 아니고,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정말이오?"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내가 거짓 증언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판단하기로는 전 전 대통령이 일해재단을 통해서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준비한 재단으로 보기 때문에 명칭부터가 중요합니다. 그럼, 다른 각도로 묻죠. 일해재단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당시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런 느낌은 전혀 못 받았습니다. 제가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렇습니다."

"증인, 정말입니까?"

".............."

그의 재차 묻는 말에 나는 먼 곳만 바라보고 아예 상대도 않는다.

"증인, 이 자리는 지금 전 국민이 텔레비전의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증인이 아무리 재벌기업의 총수라지만 국민 앞에서 그렇게 오만해도 되는 겁니까?"

"이 강 모는 여태껏 살면서 국민 앞에 오만해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내가 한 말을 안 믿고 재차 질문을 하는데, 이 의원 당신 같으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래서 당신을 무시했지, 국민을 무시한 적은 없습니다."

"뭐요! 당신?"

보기보다 다혈질인 이 의원이 나를 상대로 삿대질까지 하며 퍼붓는다.

"나는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엄연한 국회의원이고, 나를 무시하는 것은 곧 국민을 모독하는 처사임을 당신은 정녕 모른단 말이오?"

"너무 국민, 국민 하지 마시오. 특히 우리나라 정치인들 말입니다. 자신들이 필요로 할 때나, 선거 때만 반짝 국민이고, 나머지는 어깨에 힘주고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당신들 눈에는 국민 아닙니까?"

"증인은 지금 너무 부적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 정치인을 심히 모독한 고로 모독죄와 함께 명예 훼손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기택 위원장의 발언이다.

"여기가 재판을 하는 사법부입니까? 물론 내 말이 지나쳤다는 것은 나도 인정합니다. 그렇지만 내 말에 대다수 국민들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속 시원해 할 것입니다. 다음 질문 안 합니까?"

"당장 사과하시오!"

"재벌이면 최고냐! 당장 사과해 아니면 집어 처넣기 전에!"

내 발언 대문에 여기저기서 소동이 벌어지고 청문회장은 난장판이 된다.

그렇게 되자 잠시 정회가 선포되고, 30분 후에 내가 정식으로 사과하는 것으로 해서, 청문회를 속개하기로 한다.

"저의 부적절한 발언에, 정말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들께는, 지나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제가 이 자릴 빌어 정식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는 정중히 고개를 조아린다.

"증인의 정식 사과에 본 청문회에서는 증인의 발언을 앞으로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하고 회의를 속개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이 의원 질문해주시죠."

위원장의 말에 이어 발언에 나서는 이 의원이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죠. 처음 성금을 모금하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됩니까? 지시에 의한 강압이었습니까? 아니면 자진해서 성금을 모으기 시작한 겁니까?"

"음..........! 전 대통령이 유가족에 대해서 그런 뜻을 넌지시 비추길례 제가 자진해서 모금에 앞장섰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많은 인재들이 북괴의 무모한 소행으로 희생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남겨진 가족들을 생각하면 뭔가 하나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1차로 성금을 모아 위로금조로 전달을 했고..........."

"잠깐! 일차 성금 액수가 얼마였습니까?"

"음......... 정확한 액수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23억 내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 조사된 자료로는 23억5천만 원이군요."

"그러고 보면 제 기억도 아직은 쓸만하군요. 하하하..........!"

"지금 웃어야 할 때입니까?"

"그럼, 울어야 됩니까?"

"두 분 그만하시고, 진정하세요."

둘의 설전에 이기택 위원장이 점잖게 말린다.

"그쯤 해두고 제게 배정된 시간이 얼마 없는 관계로 다음으로 넘어가죠."

"이차로 모금한 성금이 정확히 얼마였죠?"

"삼차까지 모금했으니 이차는 정확히 얼마인지 모르겠고, 하여튼 이차로 모금을 했으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제 개인 돈으로 100억을 내고 나머지 그룹도 내고 해서, 최종 700억 가까이 모금 된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정확히는 698억5천만 원입니다. 그런데 유독 대원 그룹만이 100억을 낸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그만큼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해서 아부한 것 아닙니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대원 그룹 돈이 아니라 정확히 제 개인 호주머니 돈을 끌러서 냈습니다. 그리고 100억을 낸 것은 다른 재벌 총수들이 짜게 노니, 저라도 시범적으로 많이 내어 본보기를 보인 거고요. 정권에 대한 아부라...........? 솔직히 뭐, 그런 측면도 아주 없다고 말 못하겠습니다.

말 한 마디에 대한민국의 아무리 날고 기는 기업이라도 한 방에 가는 나라에서, 재벌이 된 게 죄라면 죄지요."

나의 폭탄 발언에 좌중이 술렁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말이 이어진다.

"하여튼 나는 100억을 자진해서 내었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 하다가 설립된 것이 대원종합병원이고, 하루에 3천 명의 점심을 주는 무료급식소 운영입니다.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다가 간 유가족들에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정말 없어서 아파도 치료를 못 받고, 한 끼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포장지를 줍는 노인 등 여타 등등해서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운영하게 된 것이 무료급식소와 대원종합병원입니다.

"증인은 이 자리에서 너무 자기 자랑만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럼 한 가지 신상에 대해서 묻지요. 증인은 지금 살고 있는 부인 외에도, 두 명의 여자 즉 첩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여인들을 둘이나 더 데리고 사는 것으로 아는데, 맞습니까?"

"이곳이 남의 사생활도 파헤치는 곳입니까? 그것은 본 일해재단 청문회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질문 같습니다만? 그리고 남자의 아랫도리 일은 더 이상 거론 하지 않는 게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하하하...........!"

정주영 씨가 청문회 석상에서 한 대답을 내가 약간 수정해 그대로 말하니 좌중에는 때 아닌 폭소가 터진다.

"이 의원 시간이 다 되어 마이크를 끄겠습니다. 다음은 계속해서 통일민주당의 노무현 의원 질문해주시죠."

이기택 위원장의 발언에 이어 초선의 노무현의원이 발언에 나선다.

"부산 동구의 노무현입니다. 그럼 묻겠습니다. 증인은 일해재단의 성금모금에 앞장선 대가로 훗날 국제그룹을 전격 인수받은 사실이 있지요?"

'아씨 바! 이런 질문 나올 줄 알았다!'

나는 내심 투덜거리면서도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여유 있게 답변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모르겠고요.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 그룹의 재무상태가 가장 양호해서, 악성부채가 많은 국제를 저희 그룹에 제일 먼저 인수 제의를 한 것으로 압니다."

"아까 증인이 말했지요. 말은 '아'다르고 '아'다르다고,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제일 먼저 인수 제의를 했다는 자체가 벌써 특혜 아닙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특혜겠죠."

"인정하는 겁니까?"

"잠시 물 좀 마시고 대답하겠습니다."

나는 탁자 위에 있는 물을 들어, 소리 내어 한동안 벌컥 벌컥 마신다. 말을 오래하다 보니 입이 마르기도 했지만,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갖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것이 특혜인지 어쩐지는 모르겠고, 다만 제가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그룹만이 재무 건전성이 타 그룹보다 압도적으로 좋아, 그런 제의가 들어왔고, 제가 인수했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아까 정치인들을 꾸짖던 호기는 다 어디 가시고, 자꾸 말을 빙빙 돌리기만 하십니까? 인정합니까? 못합니까? 예, 아니오. 딱 두 가지로만 답해주십시오."

"허허허..........! 집요하십니다, 그려. 인정합니다."

"좋습니다. 그 바람에 부산과 인근의 35만 명에 이르던 신발을 만들던 노동자가 15만 명으로 격감했습니다. 증인의 말대로라면 재무 건전성이 그렇게 좋은 그룹에서 인수를 했으면, 부산의 경기가 더 좋아야지, 어째 실업자만 대규모로 양산해 놨습니까?"

"그것은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 그전 까지만 해도 국제의 프로스펙스가 세계의 5위권이었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잘 나가는 아디다스나 나이키를 제치고 신발 부분에서는 부동의 세계 1위 아닙니까? 그렇게 되도록 미국은 물론 유럽 전역, 한국에 이르기 까지 무차별적으로 자금을 퍼부은 나입니다. 그것은 아마 그동안 인건비가 올라 경쟁력이 잃어서 도태된 것까지 나보고 책임지라는 소리와 똑 같으니, 예를 잘 못 든 것 같습니다.

"그럴 소지도 물론 있습니다. 그럼 다른 각도에서 묻겠습니다. 앞으로 부산 경제를 위해 신발 산업 등 여타 산업을 더 키울 의향은 없습니까?"

"앞으로 생각을 좀 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묻죠. 국제가 해체된 것은 엄연히 정치권력에 의한 타살인 바, 원주인인 양정모 회장에게 다시 돌려 줄 의향은 없습니까?"

"지금 국제상사의 사장이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알아보시고, 질문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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