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제 대통령-96화 (96/135)

< -- 재계 서열 1위에 등극하다 -- >

410월 9일은 마침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나들이를 나갔다가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하고 당혹해 한다.

신문도 쉬는 날이라 호외를 발행하는 등 난리법석을 피우는 속에서 대통령은 10일 새벽 급거 버마로부터 귀국한다.

나는 아침에 뉴스로 그의 귀국을 알고 언제 부를까 대기를 하고 있는데, 졸지에 엄청 큰일을 당하다보니 김 수석과 나의 일은 작은 일에 불과해서 인지 호출이 없다. 그래서 좀 안심을 하고 있는데, 김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자신이 대통령에게 전후 사정을 말해 잘 해결되었지만, 그래도 각하께서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의 전화다. 말하는 뉘앙스가 우리의 일은 잊고 있었는데, 김 수석이 자진 출근해서 모든 사실을 이실직고한 모양새다.

'부르면 가야지 별 수 있나?'

나는 내심 투덜거리면서도 청와대로 갈 채비를 한다. 비서실장과 기획실장을 대동하고 나는 청와대로 향한다. 그리고 청와대에 도착해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니, 김 경제수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전 대통령에게 안내를 한다.

가면서 내가 묻는다.

"화가 많이 낫습니까?"

"상심이 커서인지, 별로 화를 내지 않더이다. 아니 강 회장 덕분에 당신이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오히려 나를 위안합디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큰일을 당하면 작은 일은 염두에도 없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소? 너무 걱정 말고 들어갑시다."

"그러지요."

나는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씩씩하게 대통령 집무실로 앞장서서 걸어간다. 가면서 내심 생각한다.'그러나 저러나 여기서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는 안 되는데.......... 오늘은 꼭 리비아 대수로의 견적을 제대로 한 번 훑어봐야 되는데.......... 매일 바빠 제대로 챙기지를 못했으니, 시간이 촉박한데..........

"이렇게 나는 내심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집무실 문에 잘못했으면 머리를 부딪칠 번했다. 이 모양을 보고 뒤따라오던 김 수석이 소리 내어 웃지는 못하고 작은 소리로 킬킬거린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 대통령은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혼자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가, 인기척에 흘끔 돌아본다.

"거기에 앉으시오. 강 회장!"

말을 하는데 예전처럼 박력이 없다. 기운이 많이 빠진 모습이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각하!"

나의 말에 천천히 돌아서서 내 맞은 편 자신의 자리로 향하면서 그가 말한다.

"그렇게 용한 꿈이라면 나에게도 귀띔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것 아니었소?"

"만약에 그런 일이 안 일어나면 저만 실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못했습니다."

"당신 입장에서는 잠깐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생명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인재들이란 인재들을 그 더러운 땅에........ 묻고 오지는 않았을 것 아니오?"

말을 할수록 격앙이 되는지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한 템포 늦추기도 하는 전 대통령이다.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내가 뭐라고 그러겠나. 무조건 굽히는 게 상책이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있으면 절대 각하부터 먼저 알리겠습니다."

"됐습니다. 그래도 강 회장 당신 덕분에 우리나라 경제 분야의 제일의 인재가 살아서 그만한 천만다행이 없소. 아무튼 당시에는 괘씸했지만 당신 덕에 사람 하나 구했으니, 이제는 내 더 뭐라고는 하지 않겠소. 대신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당신이 앞장서서 재단이라도 좀 하나 만들어, 유가족들이 앞으로 생계 걱정 안하고 살 수 있도록 강 회장 당신이 좀 도와주시오."

'이것이구나! 나를 부른 진정한 목적이..........!'

나는 내심 이렇게 생각하며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다. 지금 전 대통령의 말대로 해서 추진된 것이 훗날 '일해재단'이다. 그런데 이것이 5공 청문회 때 인가? 무엇 때문인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한동안 일해재단에 어느 기업의 누가, 얼마를 기부했는지 해서 말썽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 나다.

옴치고 뛸 수도 없는 처지에 빠졌음을 실감하고, 한동안 생각에 빠진다. 아니나 따를까 나의 이런 행동에 전 통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지금 싫다는 게요?"

말 하는 모양새가 벌써 날이 시퍼렇게 서있다.

"각하의 지시인데 해봐야지요."

그래도 나의 말에는 어딘가 떫은 구석이 있다.

"내가 지시라고는 하지 않았소. 성의로 잘 나가는 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우라는 거지."

엎치나, 메어치나, 그 말이 그 말이지만 만약에 청문회가 열린다면 빠져나가기 좋은 말로 나를 간본다. 여기서 정말 말 한 번 잘못 삐끗했다가는 훗날 국제그룹 꼴 나기 십상이다. '이왕 조진 몸 이럴 때는 과감하게 총대를 메고 앞장서는 게 최고다' 이런 생각 속에서 내가 말한다.

"제가 앞장서서 기업들에게 기부금을 받아, 자녀들은 학비걱정, 유가족들은 평생 생계걱정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자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는, 큰 재단을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

"고맙소! 역시 강 회장이 통이 크고, 화통하기는 하오. 그런데 말이오........."

"네, 말씀하시죠. 각하!"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와중에 김 수석은 달랑 사표를 써들고 와 설랑은, 나보고 처리해 달라니.......... 만약 강 회장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처리하겠소?"

"저 같으면 안 받습니다."

"왜?"

"그렇잖아도 인재들이 씨가 말랐는데, 저 사람까지 내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하하...........! 아주 내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고만......... 들으셨소? 김 수석!"

나에게 눈을 한 번 흘긴 김 수석이 말한다.

"그래도 저는 근무를 못하겠습니다.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그러는 이유가 도대체 뭐요?"

김 수석의 고집에 화를 버럭 내는 전 통이다.

"저 혼자 살아 비겁자가 된 기분이고, 각하를 뵐 면목도 없습니다."

"그럼, 나는 뭐요? 나도 비겁자요?"

말이 이상하게 변질되는 전 통의 말이다.

"그런 뜻이 아니옵고..........."

"듣기 싫소! 사표 반려하니 가지고 나가시오."

"저는 내일부터 출근 안 합니다. 찾지 마십시오."

끄덕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황급히 문을 벗어나는 김 재익 경제수석 비서관이다.

"저런 사람하고는.......... 끌 끌 끌.........!"

혀까지 끌끌 차는 전통이다. 나는 아무 말도 않고 두 사람의 대화만 지켜보고 있다가 비로소 입을 연다.

"이 문제는 시일을 두고 처리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네!"

"아무튼 당신 덕에 그나마 내가 제일로 믿는 경제수석이라도 살려서 천만다행이오. 앞으로 잘 좀 해봅시다."

"네, 각하!"

"바쁠 텐데, 강 회장도 이만 나가보시지요."

"네........!"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는 천천히 그 자리를 물러난다. * * *대원그룹 회장실로 돌아온 나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 견적 건 때문에 일시 귀국해 있는 마르조 쿠르치 대원엔지니어링 사장을 호출한다.

당연히 이미 내어 있는 견적을 지참하라는 내용도 함께 비서를 통해 통보한다. 잠시 후 쿠르치 사장이 앉자 나는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그가 가지고온 견적서 내용을 훑어본다.

"33억 5천만 달러네요."

"네!"

"흐흠..............!"

침음하며 나는 당시 동아건설에서 이 공사를 수주한 금액이 얼마인지 기억하려 애를 쓴다. 그러나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혹시나 대화중에 떠오를까 하고 계속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 정도 금액이면 충분한 이익이 납니까?"

"많이는 아니어도 15~6%의 마진은 될 것 같습니다."

"흐흠..........! 15, 6%라..........?"

"우리 그룹의 대한통운과의 컨소시엄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대한통운의 마진율은 얼마나 될까요?"

"제가 언급한 선에 맞추라 했으니, 아마 그 정도 선은 될 것입니다."

"그렇다 라..........?"

말을 하며 계속 수주금액을 생각해내려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은 흐릿하니 안개가 낀 듯 오리무중이다.'모든 장사에는 에누리가 있고, 끝의 숫자는 9로 끝나니..........'

"32억 9천만 달러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남기는 남지만, 그렇게 결정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니, 뭐.........."

엉뚱한 말로 변명을 하려해도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내 생각을 말 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한 다는 말이.

"조금 더 깎으면 그만큼 수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닙니까?"

"그야 물론 그렇지만.........."

"제가 많이 깎은 것은 아니지요?"

"물론 그렇습니다. 이런 큰 공사에서 6천만 달러면 많이 깎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됐습니다. 그럼, 그렇게 입찰하기로 하고, 시간 내에 제출하는 것으로 하죠."

"네, 회장님!"

"발표일이 언제죠?"

"11월 5일 현지 시각으로 오전 11시고요, 계약 체결 시간은 정오입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 금액이면 수주 가능성을 얼마나 보십니까?"

"회장님이 좀 더 깎은 관계로 70% 이상은 된다고 봅니다. 5단계까지 있는 공사로 이번에 저희들이 수주하면 앞으로도 수주가능성이 높으므로, 저희들도 애초부터 견적 가를 높게 잡지 않은 데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죠."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니, 저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별 말씀을, 제 일인 걸요."

이렇게 해서 견적은 우리 손을 떠났고, 나머지는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 * *그가 나가고 나니 전 통이 지시한(?) 성금 모금 건을 처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주찬 기획실장을 불러, 청와대에서 오고간 대화 내용의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대기업의 기획실장들 선에서 어떻게 하든 성금을 모금해보라고 지시한다.

그 결과 3일이 지나지 않아 23억5천만 원을 모금해, 아웅산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금이라며 청와대에 전달했으나, 전 통의 눈치가 영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말한다.'이것은 1차로 희생자 가족들에게 드리는 위로금이고, 2차로 기금을 조성해 큰 재단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제야 전 통의 표정이 풀린다.

할 수 없이 나는 30대 이상의 재벌들에게 연락을 취해 그 회장들과의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전 대통령의 뜻을 설명하고, 재단을 만들 것을 제의한다. 그 결과 성금을 모았으나 185억5천만 원으로, 영 내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액수였다. 그래서 나는 재 회동을 추진해 내가 자진해서 100억을 내놓으니, 타 회장들도 금액을 부풀려 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종 모금한 돈이 698억5천만 원이 되었다.

나는 이 돈과 함께 기부자 명단을 함께 전 통에게 제출한다. 그러자 전 통은 성금모금 액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주 흡족한 얼굴로 기부자 명단을 읽는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무슨 일이십니까? 각하!"

내가 철렁하여 묻는다.

"국제 그룹이 재벌 순위로 몇 위쯤 되지요?"

"음.......... 8위 정도에 랭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뭐요, 이게!"

갑자기 화를 벌컥 내며 내 앞에 기부자 명단을 집어던지는 전 통이다. 물론 나보고 읽어 보라고 던져주는 것은 아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무례하다. 속으로 확 치미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억눌린 목소리로 묻는다.

"뭐가 잘 못 됐습니까?"

"강 회장도 한 번 읽어보시오. 명색이 그래, 10대 그룹에 든다는 재벌이 쩨쩨하게 그게 뭐요. 코흘리개들에게 주는 과자 값도 아니고 말이오."

그의 말에 나도 명단을 새삼스럽게 찬찬히 들여다보니, 10대 그룹에 속한 그룹들은 최소 다 10억 이상 몇 십억을 기부했는데, 유독 국제만이 채 5억이 되질 않는다.

"그렇다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닙니까?"

"알았소!"

퉁명스럽게 한 마디 하더니, 지그시 어금니를 악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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