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계 서열 1위에 등극하다 -- >
3연말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김 경제수석의 제의로 황제룸싸롱에서 비밀리에 단둘이 회동한 바, 내년 초에는 우리 경제의 전면적인 개방화·자율화 방침에 따라, 외국자본과 합작에 의한 은행설립지침이 발표될 예정이니, 미리 준비하라는 언질을 받았다.
나는 기쁜 마음에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기획실에 철저한 준비를 당부한다. 아니나 다를까 해가 바뀌어 81년 4월이 되자 시중은행의 민영화 촉진의 일환으로 은행설립지침이 발표되었다.
이에 따라 그 해 5월에 설립준비 위원회를 구성하고, 2년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합작대상을 국내의 5개 사와, 미국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 정하였다. 국내 5개 사는 대원, 대우, 삼성, 현대, 대한전선 등으로 결정되었다.
이름은 <한미은행>으로 하고, 출자비율은 국내 50.1%, 미국 49.9%로 결정되었다. 여신·수신 등 은행법상의 모든 업무와 신탁 업무를 영업종목으로 하여, 고객별 전담심사역제도, 자동화된 무역금융, 종합창구 서비스제도 등을 도입,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출자 지분은 대원 30.1%, 나머지 국내 4개 기업이 각각 5% 해서 국내 기업이 50.1%의 지분을,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49.9%의 지분으로 최대 주주가 되었지만, 국내 5개사가 의견 일치를 보면, 뱅크 오브 아메리카를 이길 수 있는 묘한 구조로 결정되었다. 이 외에 정부에서는 신한은행 역시 설립 허가를 내주어 재일교포를 중심으로 출자한 은행도 설립되었지만, 우리 그룹과는 상관없으니 논외로 치자.
아무튼 이후 한미은행은 계속 성장하여 1996년 8월 납입자본금을 2150억 원으로 증액하였다.
1996년 10월 한미파이낸스(주)를 설립하고, 12월 총 수신 8조 원을 돌파하였다. 1997년 11월 IMF경제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단행하였으나, 1998년 6월 경기은행을 부채 외 자산인수 조건으로 합병하여, 그 동안 부족했던 지점수를 크게 늘려 사세를 확장하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2004년 4월 시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주식 공개매수방식으로 인수하여 시티은행 서울지점에 합병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때는 내가 모종의 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을 때였다.
훗날 이 사실을 알고 나는 매우 분개하였다. 와신상담 복수를 다짐하고 있던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2007년~2009년의 세계 금융위기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 사태에 따른 시티은행의 투자손실이 크게 발생하여, 미국 정부는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제시된 방법이 하나는 순리대로 시장에 맡겨 공개 매각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정부의 구제 금융을 실시하는 방안이었다. 이런 판단에 따라 미국 정부는 구제 금융을 실시하기에 앞서, 전 세계를 상대로 정식 시티 그룹을 매수할 자본을 공개 입찰에 붙였다. 그러나 너무나 덩치가 거대해서 어느 누구도 선뜻 달려들지 못했다. 그러던 것을 우리 대원그룹에서 전격적으로 달려들어 입찰에 응했다.
인수금 1,200억 달러를 포함하여 향후 3년간 시티은행이 정상화 될 때까지, 총 3천 600억 달러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시티그룹 인수 승인을 받았다. 이 여파로 미국과 한국의 언론은 물론 세계의 언론들이 난리가 났다.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랭킹 1위의 대원그룹 드디어 진가를 보이다><미국이 황색기의 맹폭격을 받은 것은 진주만 기습 이후 처음이다><대원제국 드디어 미국 본토까지 삼키나?><오리엔트 특급 상륙 미국 초토화><동방으로 넘어간 세계의 경제>등의 아주 자극적인 문구들로 기사를 작성하여, 미국 3대 은행에 속하는 시티은행이 대원 그룹에 편입된다는 사실에 따른 불편한 심정을, 아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왜 이렇게 불편한 심기를 노정하는지는, 다음에 소개하는 시티은행의 위상에서 잘 나타난다.
전 세계에 560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종합금융그룹의 하나로, 특히 크레디트카드는 개수로 환산하면 6500만 장이나 된다. 1928년 무담보대출과 투자신탁 도입, 1977년 자동은행거래기 서비스 등을 세계 최초로 시행하는 등, 세계금융 발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세계적인 종합금융그룹이다.
특히 1998년 10월 8일 모회사인 시티코프(Citicorp)와 보험·증권업의 트래블러스(Travelers)가 합병되면서 초거대 금융그룹으로 탄생하였는데, 이를 흔히 세계금융의 빅뱅으로 칭하기도 한다. 2008년 현재 미국에만 1400개의 지사를 갖고 있으며, 전 세계 110여 개국에 3400여 지점을 운영 중이다.
이로 인하여 미국에서는 대사관 다음으로 많은 나라에 진출해 있는 법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부의 신문을 벌써부터 보다 온건한 문구로 우리의 환심을 사려는 언론도 있지만 그들은 아주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튼 이것은 단지 대원그룹이 이후 세계를 상대로 터트릴 대형 뉴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래도 그 당시까지만 해도 대원그룹이 터트린 뉴스 중에서는, 비중이 큰 뉴스임에는 틀림없었다. 위의 사항은 은행이야기가 나온 김에 금융부문에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한 토막을 미리 보여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80년대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진행하기로 하자.80년 말 나는 지금까지 질질 끌기만 하고 지지부진하던 물류 유통 분야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벨 헬리콥터와 세스나에서 각각 10대의 다목적 민수용 헬기와 경비행기를 도입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나는 그들의 코브라 헬기와, 세스나 172D형 경비행기를 대원항공에서 조립생산하기로 최종 합의를 보았다.
평균 200만 달러씩 총 4천만 달러가 투입된 우리의 하늘 유통망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대여는 물론 화물 운송, 산불진화, 구급용, 국내와 VIP 및 바이어 운송용 등 다목적 사업을 펼치기 시작한다. 또 여기에 물류체계를 종합적으로 갖추기 위해, 동아그룹에 소속되어 잘 나가고 있는 대한통운의 인수 제의를 해, 당시 돈으로는 거금이라 할 수 있는 800억 원이라는 돈을 들여, 이 회사를 인수하였다.
물론 이 인수가격은 대한통운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장비는 물론 물류유통망에 영업권까지를 포함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이렇게 되어 나는 항공 분야에서 이제 걸음마를 시작함은 물론 공중과 육상 해상에서 일관된 물류 유통체계를 갖추는 한 해가 되었다.
이런 와중에 정희는 뒤늦게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원전이가 점차 커져감에 따라 그녀의 손길이 덜 필요해지자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이에 나는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서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강사라는 강사는 모두 섭외해 그녀의 단독 가정교사로 붙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오코리노강 유전에서는 하루 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내기 시작했고, 추후 120만 배럴까지 생산할 예정으로, 현장에서는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 *무정한 세월은 거침없이 흘러 어느덧 1983년 하고도 10월 달을 맞이하였다.
그간 우리 회사의 부 회장으로 열과 성을 다했던 슐츠는 레이건 행정부의 부름을 받고, 1982년 7월 전격 사임한 국무장관 A.
헤이그의 후임으로 국무장관에 발탁되어, 외교의 사령탑이 되어 당분간 우리 그룹을 떠났다. 그간 우리 그룹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벌써 대학교를 졸업했고, 정희는 늦깍기 대학생이 되어 이제 이화여자대학교 가정교육학과의 1학년 학생이다.
2년을 대학입시에 전적으로 매달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 그룹으로서도 그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지만, 여전히 계속 성장하고 있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우리 그룹에서 프로야구 구단을 하나 가지게 된 것이다.
81년 12월 프로야구 창단되고, 1982년 3월 27일 역사적인 개막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 그룹은 내 고향인 대전과 충청도를 본거지로 대원 베어즈로 팀명이 결정되었다.
참고로 출범 당시의 프로야구팀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서울을 본거지로 하는 MBC 청룡(초대 감독 백인천), 부산과 경상남도지역을 본거지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초대 감독 박영길),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을 본거지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초대 감독 서영무), 광주와 전라도 지역을 본거지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초대 감독 김동엽), 대전과 충청도를 본거지로 하는 대원 베어즈(초대 감독 김영덕), 인천과 경기·강원도 지역을 본거지로 하는 삼미 슈퍼스타즈(초대 감독 박현식) 등 총 6개 팀이다.
전 후기로 나누어 우승팀이 결정되고, 전기 우승팀과 후기 우승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그해의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경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만약 한 팀이 전후기 통합 우승을 하게 되면 한국시리즈가 없고, 자연적으로 우승이 되는 방식이다.
아무튼 오늘이 1983년 10월 7일로, 내일이면 전두환 대통령이 역사적인 아시아 태평양지역 6개국 순방길에 오른다. 오늘 오전 나는 6개국 순방 준비로 바쁜 김재익 경제수석을 잠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대원호텔로 불러낸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그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는 바로 강제로 납치하여, 내 전용헬기로 부산까지 날아가, 거기서 미리 대기시켜 놓은 밀항선을 타고, 아예 제주도로 날라버린다.
물론 82년도에 개통된 그와 나의 무선호출기(삐삐)도 모두 강물에 집어내버린 상태의 잠행이었다. 나와 나의 경호원들에 의해 제주도의 한 호텔에 감금된 그가 화를 내다가 이제는 하소연하지만 나는 그를 아웅산테러 현장에서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 눈도 꿈쩍 않는다.
그 대신 늦어도 10월 9일 이후에는 풀어주겠다는 말로 그의 울화를 달랠 뿐이다. 나중에는 포기한 김 수석이 나와 술 한 잔을 하자고 청해 나는 그와 함께 술 한 잔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
그 말끝에 내가 농담 삼아 웃으며 묻는다.
"내가 만약 당신의 생명을 구해주면 어찌 하겠소?"
"그야.......... 생명의 은인인데 웬만하면 당신의 청은 다 들어주고 싶군요."
"그래요? 그 말 진정으로 하는 소리요?"
"그럼, 비싼 술 얻어먹고는 하릴 없이 농담이나 한단 말이오."
"그 말 내 꼭 기억하리다."
이렇게 말을 마친 내가 빙그레 웃자 영문도 모르는 그도 빙그레 따라 웃는다.
그 시간 청와대와 우리 그룹에서도 김 수석과 나를 찾느라 난리가 났지만, 나는 이에 대비해 사전에 보안조치를 철저히 해놨으니, 단 시일 내에 우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이 소동 속에서도 8일이 되자 전 대통령 내외 및 21명의 공식 수행원들은 특별기편으로 축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에서는 22명이지만 김재익 경제수석이 빠지는 바람에 21명이 된 것이다.
아무튼 이런 가운데에서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9일 오후가 되자, 한국시각으로 12시 55분에 발생한 아웅산 테러 사건에 대한 전모가 속속 방송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한다. 묘소에 늦게 도착한 대통령 내외는 무사, 공식 비공식 수행원 중 현장에서 15명 사망, 16명 중경상 등의 보도가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보도되고 있다.
당시 벌써 북괴의 소행일 것이라고 전 대통령은 추측하고 있다. 나는 호텔에서 평소 여간해서는 보지 않던 텔레비전을 일부러 켜서 이 장면을 김 경제수석과 함께 보고 있다.
나의 예상대로 그는 아연 놀라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
"어떻소?"
"당신은 이 일을 예상한 거요?"
"내 꿈에 당신이 피를 철철 흘리며 나를 보고 살려달라는 꿈을 꾸었소. 그 바람에 나는 한숨도 못자고 그 밤을 뜬눈으로 새우며 고민을 했소. 왠지 아시오? 내 꿈은 너무도 잘 맞아 나조차도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소. 그래서 나는 내가 대통령에게 추후에 욕을 먹더라도 당신만은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이런 무리수를 두게 된 거요. 그러나 저러나 이를 대통령에게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 중이오."
"사실 그대로를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더 있소. 허, 허, 그러나 저러나 이제 각하가 귀국하면 무슨 낯으로 그를 보겠소? 많은 사람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갔는데, 비겁하게 나 혼자 살아남아.........."
"어찌 그것이 당신 탓이오. 내가 납치해서 그렇게 된 것을.........."
".............."
나의 말에도 여전히 대꾸도 없이 한동안 넋을 잃고 망연히 서 있는 그다. 종당에는 어깨까지 들먹인다. 그런 그가 한참 후 진정이 되었는지 축축한 눈으로 입을 연다.
"아무튼 당신 덕분에 덤의 인생을 살게 되었소. 그래서 묻겠는데 당신에게 나는 필요로 하는 존재요?"
"지난번에 내가 농담처럼 묻지 않았소?
'당신의 목숨을 살려주면 어찌 할 것이냐고?'
그때부터 나는 이런 날이 온다면 당신에게 우리 그룹의 기획실장 자리를 제안하고 싶었소. 물론 대우는 이사 대우 밖에 안 되지만, 그룹 내에서의 위상은 최소한 3인자 자리는 될 것이오."
"내게는 그런 자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에게 크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오. 아무튼 더 이상 청와대 근무는 못하니, 그룹에 한 자리 마련해 놓았으면 좋겠소."
"고맙소!"
나는 갑자기 그의 손을 덥석 잡고는 마구 흔들어 댄다. --------------------------============================ 작품 후기 ============================과거의 역사를 배경으로 해서 쓰려니 자료조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군요.
시간 할애 비중을 보면 쓰는 시간보다 오히려 자료조사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듯........ 판타지 같은 경우는 자신이 구상한 것을 그대로 쓰지만........ 아무튼 이런 회귀물은 작가가 고생 좀 해야하는 장르인듯.........!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내내 행복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