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재계 서열 1위에 등극하다 -- >
1내가 오후 늦게 서울에 돌아오니 서울은 서울대로 난리가 났다.18일이 마침 일요일이라 신문들은 호외를 발행하는가 하면 방송은 방소대로 난리다.
계엄사령부의 언론 통제로 광주민주화운동사건은 전혀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정치인들의 연행이 큰 이슈를 차지하고 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현 국회의원)과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부정축재 혐의로 잡혀 들어가고, 김대중, 문익환, 고은, 김동길 씨 등은 소요조정 및 배후선동 혐의로 모두 계엄사에 연행된 사실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이때부터 전두환의 정권 장악기도가 노골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우리 그룹의 부회장으로 있던 현 국무총리 신현화 씨가 계엄령 전국 확대를 반대하며 사의를 표한다.
그 소식을 접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우리 그룹에 와서 일할 것을 제의했지만, 당분간은 조용히 쉬고 싶다면서 그는 끝내 고사한다. 와중에 전 사령관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광주는 왜 갔느냐고 추궁한다.
내가 대답하길 당신이 약속을 지키는지 확인 차 갔다고 했더니 껄껄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그의 방자한 웃음 만큼이나 배후에서 실세노릇을 하던 전두환이 정권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6월 달 부터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고 그 상임위원장에 취임하여, 실세로 정권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6월도 하순에 접어든 날이다. 이 날은 한여름의 날씨를 방불케 할 만큼 날이 더웠다.
더워서 맥주 생각이 나서인지 아니면 이제 어느 정도 정권의 기초를 잡았다고 판단했는지 몰라도, 전 위원장이 술 한 잔을 하자고 내게 청한다.
그에게 할 말이 많은 나는 흔쾌히 이에 응해 약속 시간에 약속 장소로 나간다.
장소는 황제 룸싸롱이고 시간은 저녁 7시다. 내가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나가 기다리고 있는데, 5분 전이 되자 어느 한 사람과 같이 나타난다.
두터운 뿔테 안경을 쓴 외모가 제법 준수한 사십대 초반의 사람이다.
"일찍 오셨소이다. 강 회장!"
"방금 왔습니다. 저도."
"하하하.........! 그렇습니까? 아, 서로 인사들 나누지요. 둘 다 초면일 텐데."
전 위원장의 말에 나는 그 사내를 주시한다. 왠지 묘한 느낌이다. 나와 질긴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상한 예감에 휩싸여 그를 빤히 쳐다보니, 그도 나를 아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허허.........! 이거 닭싸움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두 분에 대해 정식으로 소개하리다. 먼저 이쪽은 대원그룹의 회장 강 태민이라는 분이고, 이쪽은 금번에 상임위원회 경제 분과 위원으로 위촉된 김재익이라는 분이오."
나는 전 위원장의 말에 소름 돋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이 같이 유능한 인물이 장차 아웅산 테러 사건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안타까워서다. 나의 기분이야 어떠하든 그가 먼저 말을 한다.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도 몇 번 보았고요. 김 재익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 태민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인재를 이 자리에서 뵐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둘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손을 맞잡고 한참을 흔든다.
"그만 됐소! 예약은 되었겠지요. 어서 들어갑시다."
공연히 질투라도 나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앞장을 서는 전 위원장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특실에 자리를 잡았고, 이어 술과 안주가 나온다. 계집들은 일단 우리가 청하기 전까지는 보류다.
"요즘 우리 김 의원에게 경제에 대해서 한창 배우고 있는 중이오. 들으면 들을수록 아주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이 많소. 그런데 어떤 때는 이 사람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문득 문득 강 회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자동차 산업 하면 최소 5만 가지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므로, 산업 쪽에 미치는 여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 근시안적 안목으로 국내시장도 좁고 수출은 기술이 달려서 안 된다고 치우라니,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저 또한 강 회장님의 생각에 아주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습니다.
"흐흠.........! 자동차 산업은 키워야 된다..........?"
우리 둘의 말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전 위원장이 혼자 골똘히 생각하며 하는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둘은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저는 우리 경제가 지금 까지는 성장 위주로 플랜을 짜고 시행해 왔지만, 앞으로는 저금리를 기조로 한 안정화 정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집행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와 동시에 외국에 무역이든 자본이든 문호를 활짝 열어 기업들은 철저하게 외국과 경쟁을 시키고, 또 수입도 많이 해서 물가를 대폭적으로 낮추어야 된다고 봅니다. 또 여신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쪽으로 선회해, 그들의 자생력을 키워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 경제가 앞으로 순탄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속에 우리는 보다 견실한 체질을 구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농촌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중 곡가제로 그들을 과보호 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경쟁 대열에 내몰아 자생력을 키우는 길만이 우리 농촌이 살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필히 정보화 시대가 도래 할 것인 즉 이에 철저히 대비해야만 우리 민족의 경제가 흥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덧붙인다면 금융실명제를 바로 시행하여 지하 경제를 밝은 지상으로 내거노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또 하나 우리나라 정부의 지속적인 세원 조달을 위해서는 부가가치세를 신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견해를 강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 적으로 저도 김 박사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우리 경제가 살려면 우선 30~40%에 이르는 살인적인 물가를 잡아야 합니다.
아무리 10% 내외의 성장을 하면 뭐 합니까.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치면 다 소용없습니다. 경제가 발전했다고 월급 조금 올려줘 봐야 오히려 살림은 더 팍팍해지는 것을.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1차대전 후의 독일 짝 납니다.
시장에 장 좀 보려고 가면 리어카에 돈을 잔뜩 실고가야 하고, 도배지 사서 도배하는 것보다는 돈으로 도배를 하면 오히려 더 싸게 먹히는 기현상이, 결국은 히틀러라는 세기의 전범자를 잉태시키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이 짝 나기 전에 성장 제일주의가 아닌 안정화 시책으로 물가부터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체질이 건실해지면 성장은 아무 때나 능히 가능한 것이니까요."
여기까지 말을 하고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본다. 김 재익 씨는 내가 자신의 발언을 지지해주자 아주 신이 난 표정이고, 전 위원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듣더니 깊은 생각에 잠긴다. 계속해서 나의 말이 이어진다.
"그 방법론은 김 박사님께서 아까 말씀하셨으니 생략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제에서 해방되고 나서 가진 게 뭐 있었습니까? 그나마 조금 있는 공장다운 공장은 이북에 있었고 지하자원 역시 이북에 많지 않습니까? 그런 것이 허리가 동강나고 보니, 남한은 많은 인구와 농토 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이 바탕 위에서 경제를 일으키려니 위정자들 생각에 일본식 모델을 생각해 낸 것이죠. 선단식 경영을 하는 일본의 대기업을 모델로 말이죠. 그래도 이것이 어느 정도 적중해서 그나마 이제는 밥은 먹고사는 처지가 되었지요. 그러나 이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도 강해야 됩니다. 그 모델이 서독과 대만인데 서독은 물론 대만도 지금까지 잘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대기업고 중소기업 모두가 강한 것이 제일 좋겠지요. 세계를 상대로 제 발로 우뚝 서서 제 스스로 제 물건을 팔아먹을 수 있는 강한 중소기업이 수 없이 많은 데다, 자본의 한계가 있어 중소기업이 도저히 커버할 수 없는 대규모 사업은 대기업이 해야만, 나라는 절로 흥기할 것입니다.
제 경우의 예를 들어보더라도 우리가 크라이슬러사의 부품을 들여다 자동차를 만들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 중소기업 부품이 품질이나 가격면에서 만족하다면 왜 먼 나라의 제품을 비싼 운임들이고 사와서 조립합니까? 무슨 물건을 하나 만들려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제품이 없어서 애를 먹는 이유는 다 중소기업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면 앞으로는 여신이고 뭐고 다 중소기업 위주로 정책을 펴서 중소기업을 아주 강하게 많이 키워야 합니다.
여기서 말을 끊고 숨을 돌린 나의 말이 이어진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고찰할 때 정치인부터가 돈 안 드는 선거법을 마련해야 하고, 공무원들도 청렴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이 정치를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네들은 여력이 없으니 어디 가서 손을 벌려야겠는데, 먹고 살기도 바빠 허우적거리는 중소기업에게 손을 벌리겠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여력이 있는 대기업에게 손을 벌리겠습니까? 아닌 말로 중소기업들이 돈을 쥐어주면 또 얼마나 주겠습니까? 그러다보니 대기업에게 신세를 지고, 또 이를 보은하는 차원에서 지원해주게 되니,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벗어나기 힘든 것입니다.
아까 김 박사님의 말씀이 있었듯이 금융실명제로 모든 돈 거래가 투명하게 드러나게 하고, 그 위에서 부정한 돈거래는 엄히 단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인이던 공무원이든 부정을 저지르는 자는, 서민과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기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횡령이든 배임이든 해서는 안 되지요. 제가 이런 말을 자신있게 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대원그룹도 빌린 돈이 좀 있으나,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그룹은 얼마간의 부채를 갚고도 충분히 남아 얼마든지 사업을 할 수 있으니까 드릴 수 있는 말입니다. 이런 기업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몇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일정 규모 이상 되는 대기업을 전제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아무튼 정치인부터 변해야 되고, 그 다음 공무원, 기업가 모두 변해야 되죠. 민족과 조국이 흥기하려면."
나의 장광설에 아예 전 위원장은 넋이 나갔고, 김 박사는 내가 최고라는 듯이 빙긋 웃으며 엄지손을 치켜든다. 그러던 김 재익이 잠시 후 내게 말을 건넨다.
"나는 강 회장님이 대기업의 오너라 중소기업 정책을 아주 심하게 반대할 줄 알았습니다. 금융실명제도 마찬가지고요. 참으로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습니다."
"동감이오. 오늘 새삼 나는 강 회장을 다시 보았소. 정말 인물은 인물이요,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인재외다. 고맙고 존경스럽소!"
전 위원장까지 진지한 낯빛으로 나를 띄워주니 제법 두꺼운 얼굴 측에 속하는 나조차도 낯이 뜨뜻해진다.
"자, 오늘은 좋은 얘기 많이 들었으니 이쯤 해두고, 이제부터는 세상만사 모두 잊고 주 태백이가 되어 선경에서 놀아봅시다!"
전 위원장의 말에 모두 술잔을 지켜든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제동을 건다.
"잠깐 만요!"
"왜요? 무슨 더 할 말이 있습니까? 강 회장?"
"술을 드시기 전에 제가 전 위원장님께 간곡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보시오."
"여러 말 하지도 않습니다. 빙빙 돌려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진실로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하시고, 내가 한 행동과 모든 것이 역사 앞에 철저히 기록되어 자자손손 몇 천 년이고 내려 갈 것을 명심하시고,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로 떳떳한 사람이 되십시오!"
"하하하..........! 내 앞에서 이렇게 방자하게 충고하는 사람은 강 회장이 처음이오. 언뜻 듣기에는 기분이 상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실로 나와 국민을 위해서 하는 말임을 생각하면 정말 고맙기도 하오. 내 강 회장의 충고대로 가능한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짓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 그렇게 행동 하리다."
"고맙습니다!"
우리는 비로소 잔을 부딪치고 건배를 한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부어라, 마셔라 라는 자리의 연속이요, 여흥을 즐기는 자리가 된다. 그렇지만 이 자리가 훗날 나의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될 줄은 당시 나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 효과는 채 두 달이 지나기도 전에 나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80년 8월 20일 국보위 주관으로 발전설비, 자동차, 건설 중장비 부문의 투자조정 단행되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중복 과잉 투자된 중화학 공업 중, 위의 네 부분에 대해서는 국보위가 나서서 그 소유주를 몇으로 줄여 몰아주는 교통정리를 단행했다는 말이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우리 대원그룹은 자동차 부문에서 기아 및 동아 자동차를 흡수 통합하여, 승용차 부분은 물론 상용차도 생산하는 대한민국 유일의 자동차 기업이 되었고, 현대는 상용차는 안 되고 승용차 부분만 생산이 가능하도록, 지분은 물론 소유구조가 변경되었다. 작지만 또 하나 우리기업에 유리하게 전개된 것은, 올 10월부터 칼라텔레비전 방송이 전면 시행될 예정으로, 지난 8월부터는 국내에서도 칼라TV 시판이 전면 허용된 점이다.
이 또한 전자사업부에 보탬이 되었으면 되었지, 마이너스는 아니었기에 충분히 기분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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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종 세트는 작가의 사기를 북돋웁니다!
^^행복한 시간들 되시고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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